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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겉옷만 만져도(마 9: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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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수인
댓글 0건 조회 3회 작성일 22-07-02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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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겉옷만 만져도(마 9:18~26)

18)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한 관리가 와서 절하며 이르되 내 딸이 방금 죽었사오나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어 주소서 그러면 살아나겠나이다. 하니 19) 예수께서 일어나 따라가시매 제자들도 가더니 20) 열두 해 동안이나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 21)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22)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이르시되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즉시 구원을 받으니라. 23) 예수께서 그 관리의 집에 가사 피리 부는 자들과 떠드는 무리를 보시고 24) 이르시되 물러가라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그들이 비웃더라.25) 무리를 내보낸 후에 예수께서 들어가사 소녀의 손을 잡으시매 일어나는지라. 26) 그 소문이 그 온 땅에 퍼지더라.

사람은 만남의 역사입니다. 치마 끝만 스쳐도 천생연분이면 인연을 맺고 백 년 해로 합니다. 사회라고 하는 인간관계 속에서 우리가 살아간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남자도 그렇거니와 특히 여자 분들은 같이 학교를 졸업하고 그렇게 친구지간으로 커가지만, 시집 잘 가고 못가고 함에 따라서 그들의 인생이 바뀝니다.

회당장 야이로가 예수님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딸이 죽었습니다. 무남독녀 외동딸입니다. 애지중지하던 딸이 죽었으니 체면이고 뭐고 "주님 만나자"라고 결정하고 체면이고 뭐고 제쳐놓고서 주님께 갔습니다.

여러분, 속이 상하더라도 교회 생활하면서 속상하세요. 아파도 약을 먹으면서 아파야지 교회라고 해서 뭐 여기가 천당인가요?

예수님께 자기 딸 살려달라고 찾아온 것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본 거요. 예수를 구주로 보았고 예수는 내 딸을 살릴 수 있다고 보았어요. 할렐루야!

여러분 자동차가 가는 것도 일단 기어를 넣어야 돼요. '일단.' 신앙생활도 일단으로부터 시작이 돼요. 회당장은 일단 주님께 나왔습니다. 그는 선입견을 버리고 자존심도 버렸어요. 직접 자기가 온 거요. 웬만한 사람 같으면 비서를 보냈을 거요. 하인을 보냈을 겁니다. 그러나 그게 예의가 아니거든요. 손수 가서 주님께 "내 딸 살려 주옵소서" 이게 얼마나 큰 믿음이 있는 회당장인지 모릅니다.

그래 예수님이 그 믿음 보시고 따라가는데 노상에서 누가 새치기를 했어요. 새치기를 하는 사람이 남자도 아니고 여자예요, 열두 해를 혈루병으로 고생하던, 냄새나는 웬 여자가 예수님의 옷자락을 싹 붙잡았습니다. 여기서 혈루증이라고 하는 병은 만성 자궁 출혈병으로, 얼마나 지저분하고 몹쓸 병인지 몰라요.

이 만성 자궁출혈병자는 거기에 따르는 여러 가지 계명이 있습니다. 한 서른 가지 돼요. "가까이 하지 말고, 항상 격리 수용돼 있어야 하고요……" 이 모든 계명을 무릅쓰고 예수님을 붙잡은 거요. 이건 "저 분만이 내 병을 고쳐주실 수 있다. 예수는 나의 구주다. 저 분이 나의 피를 멈추어 주실 분이다." 그래서 바쁜 일이 있어 가는, '방장' 죽어 가는 딸을 살리러 가는 예수님을 새치기를 해서 붙잡았어요.

여기서 '붙잡았다'라는 말은 헬라어로 '합토오'라는 말인데, 그냥 스쳐 지나가는 정도가 아닙니다. 어떤 물건과 어떤 물건이 끈으로 꽁꽁 동여매는 상태를 두고 '합토오'라는 말을 씁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예수님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독생 성자 예수 그리스도에게 죄 많이 지은 세상에 약으로 고칠 수 없는 여자의 최후의 수단, 최후의 방법, 이것은 곧 믿음이올시다. 믿음은 표현입니다. 믿음은 표현이요, 믿음은 행동이요, 믿음은 감사입니다. 나타나야 합니다.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이게 바로 믿음이올시다.

미국과 캐나다 동북부 국경을 이루는 나이아가라 폭포가 있는데 상류에서 뱃놀이 하던 두 젊은이가 배가 뒤집히는 바람에 물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육지에서 어떤 분이 밧줄을 던졌습니다. 한 청년이 그 밧줄을 붙잡았어요. 붙잡고 보니까 마침 구명보트가 하나 내려오고 있어요. 그래서 밧줄을 놓고 이왕이면 보트를 타는 게 더 안전하다고 생각해서 보트에 올라타고서 내려가다가 그만 나이아가라 폭포에 아주 떨어져 죽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청년은 먼저 청년이 붙잡았던 보트로 옮겨 타느라고 버렸던, 그 밧줄을 붙잡고 결국 살아났습니다. 무엇을 붙잡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눈에 보기 좋은 세상 줄 붙잡느냐, 마귀 줄 붙잡느냐. 우리는 주님의 줄, 생명의 줄, 천당 줄 붙잡고 영생하는 그 나라에 다 들어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믿음은 의심을 버리고 무언가를 지불하는 겁니다. 잘 믿는게 뭐냐하면 시간을 지출하는 겁니다. 물질까지 바치는 겁니다.

요한 웨슬레 목사님이 어느 집회에서 설교를 하는데 돈만 아는 부자 농부가 참석했습니다. 요한 웨슬레가 열심히 설교하였습니다. "여러분, 돈을 벌 수 있는 대로 힘껏 버십시오." 그러니까 이 부자 농부가 옆 사람을 쿡쿡 찌르면서 "저 양반 참 설교 잘하신다."고 그래요. 목사님이 또 말합니다. "돈을 저축할 수 있는 대로 힘껏 저축하십시오." 이 부자 농부가 양손을 비비면서 "아이구, 내 생전에 이렇게 좋은 설교는 처음 들어보았다"고 감탄을 하면서 흥분을 합니다. 그 다음에 목사님이 계속해서 설교를 합니다. "그런데 번 돈 바칠 수 있는 대로 힘껏 바치십시오."하니까 이 부자 농부가 이빨 빠진 고양이 얼굴에 똥파리 기어가는 인상을 쓰고 나가 버리더래요.

웨슬레 목사님은 말했습니다. "그 사람이 아무리 중생하고 믿음이 있다고 해도 그의 돈주머니가 끌러지지 않았으면 그의 회개는 믿을 수 없다"고 그랬습니다.

잘 믿는 건 고통과 고난을 이길 줄 아는 사람입니다.

● 시편 119:67~71에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고난 당한 것이 오히려 내게 유익이라. 이로써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고난을 당하고서야 그 말씀을 지킨다고 시편 기자는 고백했습니다.

여러분, 고난을 통해서 눈물을 배우게 되었고, 고난을 통해서 찬송을 배웠고, 고통을 통해서 사랑을 배웠습니다.

● 고린도전서 10:13기자는 말했습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케 하시느니라."고 그랬습니다. 여러분 부부간에 가깝다는 게 뭡니까? 남편이 퇴근하고 돌아오면 얼른 그 얼굴을 읽을 줄 아는 부인이 좋은 부부지요.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와 같은 잘 믿는 믿음의 승리자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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