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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소망의 길 시편 43:5 (잠 8: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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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수인
댓글 0건 조회 3회 작성일 21-04-25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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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소망의 길

시편 43: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 존 해거이라는 미국의 전도학자가 있었습니다. 이 목사님에게는 존이라고 하는 외아들이 있었는데 정신박약아였습니다. 존은 휠체어를 타고 앉아서 아버지가 설교를 하면 뒤에서 소리를 지르면서 좋아했습니다. 부모님은 어떻게 하든지 그 아이를 고쳐 보기 위해서 애를 썼습니다. 이 아이를 안고 다니면서 22년간을 지내다가 결국 그 아이는 죽고 말았습니다.

그는 아들이 죽은 후에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다가 ‘내가 이제 해야 할 일은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해거이 인스티튜트’(Haggai Institute)라는 기관을 설립했습니다. 제 3세계의 선교를 연구하고 그들을 훈련시키는 사람들을 보내는 훌륭한 기관입니다.

해거이 박사는 자기 가정의 실망과 낙담과 좌절을 통해, 선한 일을 함으로써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실망과 좌절만 바라볼 때 우리는 헤어날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선한 일, 의미 있는 일을 하며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헌신하게 될 때에 새 소망의 길이 열립니다. 아무리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며 그분을 생각하면 소망이 샘솟듯 하게 되는 것입니다. * 기도: 하나님께만 소망을 둘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살 소망이 끊어질 때

위대한 바이올린 연주가 '파가니니' 의 이야기는 힘들고 어려울 때 소망과 위로가 되곤 합니다.

파가니니가 바이올린을 연주 할 때 줄 하나가 툭!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청중들은 깜짝 놀라 긴장하긴 했으나 파가니니는 나머지 세 줄로만 연주를 계속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줄 하나가 또, 툭! 끊어졌습니다. 그래도, 파가니니는 아랑곳 않고 연주를 계속 했습니다.

신들린 듯 연주하던 바이올린 줄이 또 하나 끊어졌을 때 파가니니는 멈칫 하더니 그의 유명한 '스트라디 베이스' 바이올린을 높이 들고 "남은 한 줄과 파가니니" 라고 외친 후 연주를 계속 했습니다. 연주가 끝났을 때 청중들은 일어서서 그칠 줄 모르고 파가니니에게 박수를 보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들도 살아가노라면 바이올린 줄이 끊어지듯이, 우리가 굳게 믿고 의지하던 인생의 줄들이 투-두-둑 소리를 내면서 끊어질 때가 있습니다. 건강의 줄, 물질의 줄, 가족 간(친구)의 줄, 때론 기도의 줄, 그리고 그렇게도 든든하던 주님과의 사랑의 줄마저 투-두-둑 끊어질 때를 만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속상하다 못해 속이 썩는 아픔과 절망을 경험하며 밤을 지새우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경험은 바울 사도에게도 있었습니다. 고후 1장에 보면 하나님의 종 바울도 이런 고백을 합니다. "살 소망까지 끊어졌노라" 그러니 믿음 없다하여 너무 자책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고후 1:8~11)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09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10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 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 11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 믿음의 사람도 고통의 size 가 믿음의 size 보다 크면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주님은 아실 겁니다. 그리고 주님은 어떤 경우에도 여러분의 편이심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무슨 결정을 하게 될 때에 반드시 통과하는 두 갈래의 길이 있는데 선한 길과 악한 길입니다. 그런데 악한 길은 유혹의 편안한 길이니 그냥 놔둬도 다들 가니까? 넓은 길이라 말하지만, 좁은 길은 선한 길이기에 이 사랑을 만나기 위해서는 두려움과 더 큰 두려움과 죽음까지를 뛰어 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잠깐 보이던 사랑의 십자가의 길이

사도 바울은 이 고통과 두려움 때문에 사랑의 길을 떠나는 자가 많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결국 많은 이들이 이 유혹과 먹고 사는 것으로 인해 어둠의 큰 사망의 길을 따르는 자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 자신은 그 고통에 들어가 보니 장난 아닌, 고통과 좌절과 두려움의 끝인 큰 사망이 보이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사망 뒤에 보이는 내가 아닌, 주님의 손이 보이기 시작함으로 이길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본인은 그 큰 사망의 고통과 소망이 딱 끊어지는 상황에서 큰 깨달음을 얻습니다. 나를 의지하던 모든 두려움에서 완전히 살리실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는 참된 소망을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죽음과 고통과 환란의 끝에는 비로소 내가 할 수 없다는 깨달음과 함께 완전하신 하나님의 소망만이 보여지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욕심과 다툼 - 죽 쒀서 개주는 꼴.

어떤 아주머니가 공원을 산책하고 있었다. 맞은편에는 자기 앞집에 사는 두 어린 형제가 사이좋게 걸어오고 있었다. 아이들도 그를 알아보고서는 다가와서 공손히 인사했다.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는 기특하게 생각했다. 때마침 그에게는 자두 세 개가 있었다. 그는 그것들을 동생인 아이에게 주면서 형과 사이좋게 나누어 먹으라고 했다. 아이들은 고맙다고 인사를 하면서 그것들을 받았다. 아주머니가 가고 난 뒤 동생은 형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두는 아주머니가 내게 주신 것이니까 형은 한 개만 가져. 내가 두 개를 가질게” 그러나 형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아니야, 내가 형이니까 내가 두 개를 가져야 돼결국 그들 사이에 자두 한 개를 더 차지하겠다는 욕심 때문에 싸움이 일어나고 말았다. 욕심이 있는 곳에는 다툼이 있으며 거기서 불행은 시작된다.욕심을 부리지 말고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으로 만족을 삼고 살아가자. 그러면 우리는 늘 감사한 마음으로 보다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박상훈 목사<승동교회>

올바른 판단

케네디 대통령의 취임식 때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은 그의 취임을 축하하며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케네디 대통령, 당신은 세계에서 가장 큰 권세를 쥐고 있습니다. 당신 손에 있는 권세로 세계의 역사와 운명이 좌우됩니다. 당신은 노련한 전문가인 수많은 보좌관을 데리고 있습니다. 만일 문제가 생기면 그 많은 보좌관들은 제각기 자신의 전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당신에게 조언을 할 것이고 이 사람, 저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게 됩니다. 당신은 당신을 보좌하고 있는 사람들의 말을 모두 경청해야 합니다. 그러나 판단을 내려야 할 때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하나님 앞에 묵상하고, 가슴 깊은 곳에서 울려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욕심, 즉 물질과 건강과 먹을 것을 따를 것인가? 보이지 않고 희생해야 하는 사랑을 따를 것인가? (잠 8:17~19)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18) 부귀가 내게 있고 장구한 재물과 공의도 그러하니라. 19) 내 열매는 금이나 정금보다 나으며 내 소득은 순은보다 나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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