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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사의 것 하나님의 것 / 마 22: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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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수인
댓글 0건 조회 2회 작성일 21-07-24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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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사의 것 하나님의 것 / 마 22:15-22

15) 이에 바리새인들이 가서 어떻게 하면 예수를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상의하고 16) 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진리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심이니이다. 17) 그러면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하니 18) 예수께서 그들의 악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19) 세금 낼 돈을 내게 보이라 하시니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왔거늘 20)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21) 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22)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놀랍게 여겨 예수를 떠나 가니라.

1. 어느 분이 제주도에 다녀올 일이 있었답니다.

● 평소 중국 관광객들로 붐비던 제주공항이 텅 빈 듯이 보였답니다. 공항에 있는 사람들 거의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있었고. 사람과 사람 사이, 나라와 나라 사이에도 서로 마스크를 쓰고 거리를 두어야 하는 이전과는 다른 시대가 되어가는 듯한 느낌이었다고 합니다. 펜데믹!

어두워진 시간에 도착해서 택시를 타고 시내로 들어가는데 길거리를 비추는 네온사인 대부분이 관광사업과 관련된 간판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제주도 전체가 중국으로부터 관광객이 와야만 살아갈 수 있도록 변해버린 듯했습니다. 그들이 찾아와야만 살아가게 되어있는데 그런데 현재는 그들을 받아들이기가 어렵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제주도에 너무 중국인들이 많아서 이러다 중국되겠다고 말들이 참 많았지요? 제주도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삶의 전반이 그렇습니다. 무역 위주로 성장해온 이 나라는 국가 간 교류가 활발해져야만 살아갈 수 있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국가 간 교류가 한동안은 경직될 수밖에 없도록 되어가는 것r 갔습니다.

● 이 어려운 문제와 관련해서 중국 칭화대쉬장룬 교수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신종 코로나에 대한 초기 대응이 실패한 것은 중국에서 시민사회와 언론의 자유가 말살되었기 때문이다”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초기에 경고의 목소리가 분명히 나왔는데 그런데 중국의 정치 권력이 언론을 억누르는 바람에 조기 경보에 실패해서 전염병이 온 세상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는 점을 지적한 것입니다. 그런데 중국의 시진핑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중국이 신종 코로나에 잘 대처함으로써 온 세계에 대하여 중국이 거대한 공헌을 했다.”는 것입니다. 중국의 쉬장룬 교수는 중국의 실제 현실과 내적 진실에 대한 이야기를 한 셈이요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외적인 정치적인 이야기를 한 셈입니다. 교수는 내적 진실을 말하려 한 것이요. 시주석은 정치와 권력을 먼저 생각하는 외식하는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그런 거짓된 외식하는 언어로는, 중국과 시진핑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받게 될 것이요. 중국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그 말씀을 해석할 수 있습니다.

* 2019년도부터 일본의 대마도에 한국인들이 여행을 들어가지 않으면서 대마도 사람들이 “차라리 우리를 당신의 나라로 귀속 시켜 주시오.” 라고 말할 만큼 절박한 상황으로 경제가 문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들은 우리 한국인들을 무시하고 관광객들이 찾아오면 불친절하게 다루고 더러운 삶들 보는 것처럼 대한 사람들인데 막상 일본과의 관계가 나빠지면서 우리나라가 발을 끊자! 이제는 오히려 제발 와달라고 하소연을 합니다. 거리가 텅빈 거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지구화 시대가 글로벌 시대가 딜레마에 빠지게 된 것이라 생각되는 것입니다. 자! 일본과 우리나라 인 제주도 그리고 여러 국가에서 보여지는 이런 실태는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 중국의 시진핑의 어처구니없는 발언들... 일본 올림픽의 참담한 개최 이런 일들이 생기는데 어떻게 이 이야기를 지혜롭게 끌어 갈 것인가? 예수님을 말로 함정에 빠트리려는 바리새인들은 중국의 시진핑과 일본의 올림픽 조직위원회와 우리나라 제주도 그리고 대마도의 일들도 비슷합니다. 좋은 것을 좋게 보지 못하고 삐딱한 불평과 교만의 자세로 상대국들을 보다가 이제는 어떻게 대책을 좀 세워 줘 보세요! 라고 말하는 상황이지요. 포장, 외식문화가 가져다 준 가식의 끝입니다.

2.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상황에 놓인 사람을 보고그 사람은 지금 딜레마에 빠져 있다.”라는 말을 합니다.

2-1. 오늘의 본문 마태복음 22장에 나온 예수님께서는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질 위기에 놓이셨습니다. 마태복음 22장 15절은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가서 어떻게 하면 예수를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상의하고” “어떻게 하면 나사렛 예수를 말의 올무에 빠트릴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하면 나사렛 예수를 딜레마에 빠트릴 수 있을 것인가?” 충분히 상의하고 계획을 세운 다음 바리새인들은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님을 찾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바리새인과 헤롯 당원은 정반대의 입장을 지닌 사람들입니다. *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갑니다. 그들은 유대 민족을 소중히 여기는 민족주의자들입니다. “우리가 어찌 로마제국에 세금을 낼 것인가?” 바리새인들은 로마제국에 반대하는 반(反)로마의 입장인 것입니다. 그런데 * 헤롯당원이라는 사람들은 율법을 소홀히 여기는 사람들입니다. 유대민족의 울타리보다는 로마제국이라는 넓은 세상과 국제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친(親)로마의 입장입니다. 로마제국에 세금 내는 일을 거부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의도적으로 그런 헤롯당원들과 함께, 나사렛 예수님을 찾아갑니다.

요즘 우리나라 같으면, 좌파와 우파가 함께 예수님을 찾아간 셈입니다.

그렇게 찾아간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에게, 먼저 이런 말을 합니다. 16절은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진리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 하심이니이다.” 그런 서론적인 말을 하고 나서 바리새인들은 이제 ‘말의 올무’에 걸릴 만한 질문을 해오게 되는 것입니다.

17절을 통하여, 그들은 예수님에게 이렇게 질문합니다. “그러면 당신의 생각은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 하니이까?” “선생이시여! 당신은 항상 두려움 없이 올바로 가르쳐 오지 않으셨습니까?” 그리고 나서 하는 질문이 “로마제국에 세금을 내는 게 옳습니까? 내지 않는 게 옳습니까?” 하는 질문입니다. 만일에 예수님께서 “로마제국에 세금을 내지 않는 것이 옳다”고 대답하시면 바리새인들을 비롯한 많은 유대인들이 좋아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로마제국과 헤롯 당원들은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께서 로마제국에 세금을 내는게 옳다. 고 대답하시면 바리새인들이나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로마제국에 세금을 내는 것이 옳습니까? 아닙니까?”라는 질문은 예수님을 올무에 빠트리려는 의도적인 질문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질문하는 그 의도를 알고 계셨습니다. 18절을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의 악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2-2.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외식하는 자들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외식이라는 말을 그대로 풀이하면 “겉으로 드러난 형식”이라는 의미입니다. 외적으로 드러난 형식은 올바른 말을 하는 듯한데 그런데 내적인 의도는 올바른 게 아니라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말의 형식은, 무언가 중요한 질문을 하는 듯이 보입니다. 그런데 질문을 하는 바리새인들의 내적인 의도는 대답하는 예수님을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해서 쓰러트리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어두운 마음을 감추고 외식하는 질문을 던져오고 있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대답하기 어려운 세금에 대한 질문을 해온 것입니다. 당시에 그들이 말하던 세금은 오늘날 우리의 주민세와 비슷한 인두세에 해당하는 세금이었습니다. 남자는 만 14세가 되면, 여자는 만 12세가 되면 세금을 내기 시작해서 65세가 될 때까지 세금을 내야 했습니다. 보통 은으로 만들어진 동전 하나로 한 데나리온으로 세금을 내었는데, 그 은화에는 로마황제의 형상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금 낼 때 쓰는 그 은화를 가져오게 하셨습니다.

19절과 20절은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세금 낼 돈을 내게 보이라 하시니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왔거늘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형상이 글누구의 것이냐?” 예수님께서는 질문하는 바리새인들에게 은화를 보이면서 질문하십니다. “이 동전에 새겨진 그림과 글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가?” 그러자 질문하던 그들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21절은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그 은동전에 로마황제의 형상이 새겨졌으니 그 황제에게 바칠 것은 그에게 바치고 하나님께 바칠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예수님께서 그렇게 대답하시자, 그들은 놀랍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들이 왜 놀랍게 생각했을까? 예수님의 그 대답이 어떻게 왜 그들을 놀라게 만들었을까?

2-3.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예수님께서는 그 질문의 외적 형식에 대답하신 게 아니라 그들의 어두운 마음을 향하여 대답하신 셈입니다. 예수님의 대답을 듣고서 바리새인들은 놀라워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의 올무에 걸려든 게 아니라서 그들은 놀라워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 대답을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어떤 의미를 전하려 하셨을까?” 예수님의 그 대답의 의미에 대하여 말씀드리면서 이제 이 시간의 결론으로 들어갈까 합니다.

보이는 돈의 형상과 글은 그 형상을 가진 자의 것이니 즉 그 보이는 자의 것이니 보이는 자에게 주고, 우릴 만드신 즉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자들은 즉 하나님의 것은 보이지 않는 은혜의 것이기에 그 은혜는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입니다.

외형과 즉 외식내면의 감사를 구별하라는 말씀이 됩니다. 바리새인들의 외식회칠한 무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죽기 전에는 그렇게도 헐뜯고 원망하고 정치적인 야욕으로 코로나를 이용하며 세월호를 사용하지만 결국 그 속에는 돈 밖에 모르는 전혀 아름다운 마음이 없는 것을 빗대어 말씀하심입니다. 나를 칭찬하고 다가오지만 결국 너희의 속내를 보이게 된 다는 것입니다.

때가 차매 거짓과 외식을 넘어선 하나님의 진실이 밝히 드러나게 될 것을 믿으며, 그 믿음을 마음으로 삶으로 표현하며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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