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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는 세상의 빛(마태복음 5: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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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수인
댓글 0건 조회 5회 작성일 21-06-19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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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5:14-16)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빛은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물결처럼 출렁거리면서 앞으로 뻗어 나갑니다. 빛이 한 번 출렁거리는 길이를 '파장'이라고 합니다. 빛은 파장의 정도에 따라 가시광선, 적외선, 자외선 등으로 나뉩니다. 사람이 볼 수 있는 빛을 가시광선이라고 합니다. 가시광선은 무지개 일곱 색깔,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남색, 보라로 나타납니다. 가시광선은 그냥 우리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프리즘이나 물방울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스펙트럼이라고 합니다. 빛의 굴절로 그 색깔을 드러냅니다.

가시광선을 중심으로 빨간색에서 보라색으로 갈수록 파장이 짧아집니다. 적외선자외선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보셨지요? 적외선은 가시광선인 적, 빨간색의 바깥쪽에 나타나는 전자파를 통틀어 말합니다. 파장이 점점 길어집니다. 마이크로파, AM라디오, 항공사진 촬영, 화폐 제조, 건조, 가열, 소독, 멸균, 치료, 자동문 등에 이용합니다. 자외선은 적외선의 반대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가시광선의 자주, 보라 빛의 바깥쪽에 나타나는 전자파를 통틀어 말합니다. 파장이 점점 짧아집니다. FM라디오, X선, 감마선으로 암 치료, 금속재로 내부 결함을 탐지합니다.

*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합니다. 빛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첫째 날 선언합니다. 빛이 있으라. 당시 땅은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습니다. 무질서한 이 세상에 빛을 창조함으로 질서를 주셨습니다. 질서란 좀 어려운 말로,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에게 규칙적인 배치나 배열을 합니다. 일의 원인이나 결과의 근본원인입니다. 사람이 사는 차례나 절차입니다. 즉, 질서는 빛의 결과입니다.

*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데모크리토스. 세상은 무엇으로 만들어 졌을까? 라고 질문합니다. 이 질문에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 아낙시메스는 '만물의 근원은 공기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의 근원은 불이다.' 엠페도클레스는 '만물의 근원은 물, 공기, 불, 흙 이 네 가지다.' 데모크리토스는 ‘만물의 근원은 물질을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원자'로 이루어졌다“고 말합니다.

기독교인들은 만물의 근원을 무엇이라고 말해야 합니까? 만물의 근원은 주님의 말씀이며 그 말씀은 빛입니다.

1. 첫째, 하나님은 빛입니다. 요한일서 1:5절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다”고 말씀합니다. 야고보서 1:17절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다”고 말씀합니다.

2. 둘째, 예수님은 빛입니다. 요한복음 8:12절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9:5절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라.” 요한복음 1장에 예수님을 태초에 계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소개하면서 만물이 다 예수님을 통해 창조되었고,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었는데 사람들의 빛이라고 말씀합니다. 빛이 어둠에 비쳤지만 어둠이 깨닫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3. 셋째, 성도가 빛입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선언합니다. 에베소서 5:8-9절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데살로니가전서 5:5절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였다.”

● 예수님은 빛의 역할을 두 가지로 말합니다.

● 첫째는 산 위에 있는 동네로서의 빛입니다. 둘째는 집 안을 밝히는 등불로서의 빛입니다.

먼저 산 위에 있는 동네로서의 빛은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의미합니다. 산 위에 동네는 그 동네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합니다. 산 위에 있는 동네는 밝기 때문에 다른 아랫동네에서 다 볼 수 있습니다. 세상의 모델로서의 빛입니다. 작은 예수로의 모범된 삶입니다.

소금과 같은 삶을 내적으로 헌신하는 모범적인 삶이라면, 빛은 외적으로 헌신하는 모범된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금은 녹아져서 자신의 존재를 완전히 부정한다면, 빛은 더 강력한 빛으로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일입니다. 빛은 어둡고 컴컴한 곳, 소외된 곳에 빛을 비추어야 합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웃의 고통에 참여하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불이야 했을 때 불을 꺼주려 나가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산 위에서 비추는 빛을 보고 인생길을 발견하도록 해야 합니다. 저 곳에 생명이 있구나, 저 곳에 희망이 있구나, 저 곳에 안식이 있구나, 산 위에서 밝히는 빛으로 오게 해야 합니다.

* 한참 전부터 한국 교회가 무시당하며 더러는 욕을 먹고 있습니다. 오래 전에는 교회가 세상을 걱정했는데, 요즘은 세상이 교회를 걱정합니다.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그 사명을 감당하지 못한 결과입니다. 산 위에 있는 동네로서 다시 일어나 그리스도의 빛을 비춰야 할 줄 믿습니다. 교회와 성도들은 세상을 향한 사회적 책임과 사명을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 두 번째로 집 안에 있는 등불로서 빛입니다. 가정적 책임입니다.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위에 둡니다. 그래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게 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씀합니다. 노아의 방주는 가족 방주였습니다. 방주 한 척에는 최소한 우리 가족들은 다 타야 합니다. 여리고 성이 멸망할 때 라합과 그 가족, 친척들은 다 구원 받았습니다. 내 등불이라고 가정을 밝히면 희망이 있습니다. 가족들에게 빛의 사명을 다 해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산위에 있는 동네로서 빛이나, 집안에 있는 등불로서의 빛을 잘 비취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6절에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빛을 비추는 곳은 사람 앞입니다. 벽이 아닙니다. 사람 앞입니다. 사람 앞에 비출 빛은 착한 행실입니다. 빛의 특징 중에 가시광선은 사람이 볼 수 있습니다. 그냥 보면 다 백색이지만 프리즘이나 물방울을 통하면 스펙트럼이 생성이 됩니다. 팔주노초파람보, 아름다운 무지개 색깔이 나타납니다. 빛의 굴절 때문입니다.

*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했을 때, 우리도 빛입니다. 광원입니다. 그렇지만 정확한 의미는 우리 스스로 만들어내는 빛은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달처럼 빛을 받아 반사하는 반사체도 아닙니다. 우리가 세상의 빛이 된다는 의미는 진짜 빛을 보게 하는 프리즘이나 물방울통로역할을 하는 도구로서 빛이라고 생각합니다. 빌립이 예수님에게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요구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보았다고 말합니다. 마찬가지로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통해서 진짜 빛인 하나님과 예수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진짜 사람들의 영혼을 살리는 진리의 빛입니다. 우리의 착한 행실은 참 빛을 볼 수 있는 프리즘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진짜 예수님의 빛을 보고 기뻐하며, 감격하며, 주님께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착한 행실은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입니다. 착한 행실은 팔주노초파람보처럼 무지개 색깔의 열매를 맺게 합니다. 바울은 빛의 열매는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이라고 말합니다. 열매의 목적은 생명의 빛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는데 있습니다.

빛은 파동을 하면서 직선 운동을 합니다. 빛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있으면 빛은 더 이상 직진하지 못합니다. 강한 빛은 사물을 뚫고 갑니다. 전파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빛에는 그림자가 생깁니다. 사물 뒤에는 어둡습니다. 산 위에 동네가 비추는 빛은 어떤 방해를 받지 않습니다. 만약, 빛을 가리우는 큰 나무가 있거나 방해물이 있다면 제거해야 합니다. 집안의 등불도 마찬가지입니다. 집안 골고루 잘 보이도록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위치해야 합니다. 그림자가 생기지 않아야 합니다. 그림자란 무엇입니까? 인간의 죄입니다. 탐욕, 불순종입니다. 내 고집입니다. 안목 정욕, 육신의 정욕, 인간의 자랑거리들입니다. 심령을 꿰뚫는 참된 빛으로 섬김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약 1:17)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 하나님이 보실 때 세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첫 번째 사람은 빛이 없어서 처음부터 죽은 사람, 두 번째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로 빛은 받았지만 잠자는 사람, 세 번째 사람은 빛을 받고 그 빛을 비추는 깨어 있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죽은 사람입니까? 잠자는 사람입니까? 깨어있는 사람입니까? 성도는 죄와 죽음의 잠에서 깨어난 사람들입니다. 생명의 빛을 받았습니다. 다시 잠을 자면 안 됩니다. 죄 가운데 살면 안 됩니다. 어둠을 더 사랑하면 안 됩니다. 다시 일어나 성령의 빛을 받아야 합니다. 바울은 로마서 13:12절에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라고 말합니다. 빛의 갑옷을 입고 깨어 일어나, 착한 행실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빛의 사회적 책임, 가정적 책임을 감당해 나가기를 원합니다.

● 보화라고도 하고 보석이라고도 하는 보석과 사람의 가치는 비슷합니다.

다이아몬드와 인간의 가치를 결정하는 기준으로 ‘4C’가 있습니다. 첫째는 투명도(Clarity)입니다. 보석과 사람은 맑음의 정도에 따라 가치가 달라집니다. 둘째는 무게(Carat)입니다. 가벼울수록 다이아몬드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처럼 생각과 행동이 가벼운 사람은 인정받지 못한다. 셋째는 색깔(Color)입니다. 가치가 있는 보석일수록 신비한 빛을 발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삶에도 나름대로 빛과 향기가 있습니다. 넷째는 모양과 결(Cut)입니다. 보석은 깎이는 각도와 모양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고 합니다. 가치가 있는 사람은 주위를 향해 찬란한 빛을 발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다이아몬드가 지닌 ‘4C’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해야 참다운 가치를 지닌다고 말하십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Christ)이의 사랑의 흔적입니다. 인간은 그분의 피로 씻음을 받고 그분의 손길로 빚어질 때 비로소 ‘걸 작품’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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