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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명이 도대체 뭡니까? 고전 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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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마른곰
댓글 0건 조회 3회 작성일 20-09-19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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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명이요? 소명이 도대체 뭡니까?

(고전 7:20)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소명이요? 소명이 도대체 뭡니까? 소명이 뭔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겁니까? 한국교회를 비롯한 많은 외국 교회 목사들이나 선교사들이 이 '소명'이란 단어를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목사로 부름 받았다.", "선교사로 부르셨다." 하며, 마치 소명을 자신의 '성직(?)'에의 대단한 명분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는 겁니다. 심지어는 부흥회와 같은 어떤 사건을 통해 겪은 심리적 혹은 신앙적 감동이나 격변을, 마치 변장된 소명인 양 해석하며 목회자가 되기 위한 정당성을 찾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정말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을 받았냐 하는 겁니다. 그리고 소명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있냐 하는 겁니다. 성경에 따르면 소명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직적접인 부르심 혹은 명령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오늘날 목사나 선교사로 부르는 그런 분위기나 감정에 이끌려 세우거나 직업적인 의무감으로 절차상 받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시 보면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명은 없다는 겁니다. "한국교회의 위기는 목회자의 위기이고 목회자의 위기는 목회자의 소명감 상실을 말합니다. 목회자는 구원의 확신과 믿음 그리고 소명을 가진 선한 목자가 돼야 합니다." 교회 갱신을 위한 어느 교회 협의회에서 나온 말입니다.

한국교회 스스로가 교회 갱신을 외치며 하는 말이, 목회자의 소명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소명과 소명감이라는 단어는 수많은 목회 현장에서 그리고 목회를 꿈꾸는 지망생들에게 절대적인 가치판단과 명분을 주는 노릇을 해 왔습니다. 소명이 없으면 목사도 교회도 성공할 수 없다는 논리입니다. 그렇다면 한국교회는 과연 소명(감)이란 말을 제대로 이해하고 사용하고 있는 건지 또 그 성경적 근거는 무엇인지 살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 소명(Calling)과 소명감

성경에서는 여러 가지 의미로 소명을 다루고 있습니다. '초대'나 '호출(invite or summon)'이라는 뜻으로 또는 '명명하다'는 뜻으로 그리고 많은 주석가들은 고린도전서 7장 20절에 나오는 'calling'을 어떤 특별한 직업으로서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calling은 '구체적인 역사적인 사건으로서의 신성한 부름'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New Bible Dictionary). 즉 소명이란 하나님께서 각 개인을 향한 믿음과 구원으로의 부르심 혹은 특별한 임무를 맡기시기 위한 부르심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소명이란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위와 섭리에서 비롯된 명령으로서 소명을 받는 인간은 결코 거부할 수 없는 신비하고 놀라운 영적 세계를 체험하는 것이며 절대적인 투철한 사명감으로 태어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소명은 전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지 우리의 의지나 결단이나 학습된 책임감으로 소명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면에서 소명감은 소명과 다릅니다. 우리가 '목사로서의 소명감'이 있다고 할 때 사실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소명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본인 스스로 '목사로 소명 받았다', '하나님이 나를 목사로 부르셨다'는 개인적 믿음과 확신을 갖는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이는 소명 받은 것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러나 소명감은 소명 의식의 가치를 동일시함으로써 소명 받은 자의 사명감을 공유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개인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부르심으로서의 소명은 우리 각자가 그 부르심에 응답함으로써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성경적으로 볼 때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하는 그 부르심은 정확하게 말해서 우리가 거부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부르심 또는 절대적 권위로서의 명령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믿음과 구원 문제에 있어서는 '하나님께서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셨다'는 개인적인 신앙고백이 가능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와 나의 믿음이라는 중추적인 고리로 연결된 신비스런 영적 조형물이어서 제삼자의 증거나 인증이 필요 없다 하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특별한 임무를 맡기시는 개인적인 부르심에 대해서는 조심스런 접근이 필요합니다. 특별히 '목사'라는 직업에의 소명과 소명감에 대한 신중한 이해와 적용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특별한 임무를 부여하시는 하나님의 소명은 구약의 아브라함과 모세의 경우처럼 그야말로 하나님께서 직접 나타나셔서 명령을 내리시거나 임무를 맡기시는 것으로 묘사되기 때문입니다.

<차이: 직분이 주는 권위보다 책임감으로 하라(소명감), 보암직함 보단 십자가를 지라(사명감)>

신약에서는 그런 소명의 대표적인 예가 열두 제자를 부르신 예수님의 Calling과 사도바울을 부르신 예수님의 경우를 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Calling의 공통점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위와 명령으로서의 부르심과 그 부르심에 절대 굴복하며 순종하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이것은 우리 스스로의 판단과 선택에 따른 순종이기보다 결코 거부할 수 없는 절대적인 힘에 이끌린 순종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부르심에 대한 12제자의 순종은 우리 인간의 의지와 결단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는 거부할 수 없는 절대적인 권위와 힘에 굴복된 순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모세의 경우 하나님께서 모세를 설득하는 과정이 좀 시간이 걸리는 듯해 보입니다만, 일단 하나님의 소명을 받아 임무를 실천하는 모세의 모습은 사뭇 이전과는 다른 결연한 하나님의 종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이렇듯 특별한 직업이나 임무로서의 하나님의 소명은 성경의 예처럼 하나님의 직접적인 나타나심과 부르심 그리고 절대적인 순종이 있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목사나 선교사로서의 소명에 대해 논할 때 그것은 '소명(Calling)을 받았다'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다'는 개인적인 믿음의 고백이라 할 수 있으며 그것은 소명이 아닌 개인적 믿음에 의한 소명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소명감을 바탕으로 한 사명감에 대해서 논할 수 있을 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개인을 목사로 부르시는 그런 직접적인 소명(calling)은 성경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 목사, 선교사가 소명으로 되지 않는 증거

오히려 성경은 교회안의 리더가 되고자 하는 사람에 대한 자격 요건과 기준에 대해 상세히 열거합니다(딤전 3:1~13, 딛 1:5~9). 하나님의 소명 받은 자들을 교회의 리더로 세워야 한다고 말하지 않으며 리더가 되고자 하는 사람을 성경의 기준에 따라 검증하고 시험한 후 직분을 주어야 한다고 적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목사나 선교사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소명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마련하신 자격 기준에 따라 교회로부터 임명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명으로 되는 것이라면 굳이 이러한 자격 요건이나 기준이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모세나 바울처럼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소명을 받은 자들은 교회 안에 마련된 리더의 자격 요건과는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스스로 그들을 리더로 지정하시고 임무를 맡기셨습니다. 그러나 그런 소명 받은 자들과는 달리 오늘날 교회안의 목사를 비롯한 리더들은 소명이 아닌 성경적 기준에 의한 자격 검증을 통한 직분 임명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사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소명이나 소명감을 언급하기보다 먼저 성경적 자격 기준에 비추어 자신을 스스로 검증한 후 목사로서의 자격 여부를 살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성경적 리더로서의 자격 요건을 갖춘 자들이 소명감을 갖는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소명감에 대해 주장하기에 앞서 소명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하셔야 합니다. 신약에서 소명 받은 자의 대표적인 인물은 사도바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나타나신 예수님은 사도바울을 부르셨으며 그에게 지상 최대 과제인 복음 전파의 사명을 명령하셨습니다(행 26:16~18).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사도바울에게 그 임무를 요청하신 것이 아니라 명령하셨다는 것입니다. 명령은 위로부터의 하달 사항이지 결코 부드럽게 요청하는 것이 아닙니다. 국어사전에 보면 소명에 대해 '임금이 신하를 부르는(내리는) 명령'이라 해석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소명은 바로 이런 뜻일 겁니다. 소명을 받은 바울의 모습이 어떠했습니까? 그는 모든 위험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오로지 맡겨진 복음 전파의 사명을 위해 매진하다 생을 마감합니다. 바울의 삶은 소명 받은 자로서의 자세를 극명하게 보여 주는 모범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소명감 또는 소명 의식의 착오

그렇다면 여러분은 소명을 어떻게 생각해 오셨습니까? 하나님께서 내리신 불같은 명령으로서의 소명입니까? 아니면 점잖게 찾아오셔서 "제발 목사가 되어다오" 하시며 부드럽게 간청하신 소명입니까? 아니면 어느 날 부흥회에서 갑자기 심금이 울리며 벅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아, 내가 목사가 되어야겠다.' 하신 겁니까? 여기에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예수님의 명령을 받은 바울은 후에 고린도전서 9장 16절 이하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17) 내가 내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내가 자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사명을 받았노라. 18)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특권)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 이렇듯 사명감을 강조한다는 측면에서 볼 때 실제 하나님의 소명은 없었지만 자기가 소명을 받았다고 믿는 그런 소명감을 가진 자들은 사도바울을 거울로 삼으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으로 복음 전하는 자가 되었다고 믿는다면 그야말로 목숨 걸고 그 맡기신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절대명령으로서의 소명감을 감당할 수 없다면 그것은 단지 여러분의 희망 사항 내지는 소원일 뿐입니다. 그것은 언제든지 취소가 가능하며 포기할 수 있습니다. 가끔씩 상황이 불리하면 물러설 수도 있습니다.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 안 되면 다른 일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내리신 소명이란 그야말로 절대적인 명령입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그런 취사선택이 가능한 성질의 일이 아닙니다.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바로 소명입니다. 그것은 내 목에 칼이 들어와도 당장 내일 굶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수행되어져야 하는 의무 사항이지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런 소명, 소명감이 아니라면 내가 소명감이 있다고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라 말하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만일 그래도 여전히 "하나님이 나를 목사로 부르셨다"고 주장하고 싶으시다면 고린도전서 9장 6절에서 고백한 사도바울소명 의식을 여러분의 것으로 만드셔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죽도록 충성하십시오. 소명감은 자신의 직분 자나 목사로서의 입지를 보전하기 위한 방편도 아니며, 또 평신도와 구분 짓는 성직자로서의 명분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일이라 믿으신다면 죽음을 각오하고 충성하셔야 됩니다. 소명을 너무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의 충동적인 심리적 욕구나 희망 사항과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불같은 절대적이고 거부할 수 없는 소명을 혼돈해서는 안 됩니다. 따라서 말세의 한국교회가 겪는 문제는 단순히 목사의 소명감의 결여 때문이기 보다 소명에 대한 무지와 소명감에 대한 이해 부족, 안일한 신앙관 때문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마련하신 목사 자격에 대한 성경적 기준과 가이드라인을 무시한 결과라 해야 할 것입니다. 소명이라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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