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알리는가? 나를 사용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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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알리는가? 나를 사용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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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고의 방법에는 1. 회사의 이미지 마케이팅과 2. 제품의 성능을 알리는 마케이팅이 있습니다.
‘광고 불변의 원칙’, 필자는(오두환)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광고의 8원칙을 이렇게 부릅니다. 모든 광고는 이 8원칙의 의식적 흐름을 피해갈 수 없다고 합니다. 광고를 설계하고 집행할 때 이 원칙이 얼마나 잘 지켜졌느냐에 따라 광고의 효율을 가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1. 그것을 바라보게 하라. 합리적인 비용으로 매력적인 위치에 효율적인 기간에 보여야 한다.
2. 그것에 다가오게 하라. 소비자의 구매욕을 자극하면서 기발한 이미지를 연출한다.
3. 그것을 생각하게 하라. 소비자가 머물 수 있도록 다양한 상품의 매력적인 즐거움을 준다.
4. 그것이 필요하게 하라. 소비자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 처음인지, 대체품을 찾는지를 파악.
5. 그것을 소망하게 하라. 대부분의 것보다 우수한 장점을 알리고, 단점을 보완한다.
6. 그것을 구매하게 하라. 미루지 않고 즉시 구매하도록 간편 결재나 온라인 접근성 유도. 변화를 인지시킴.
7. 그것에 만족하게 하라. 공신력이 있는 여론을 만들라. 만족한 사람들의 후기.
8. 그것을 전파하게 하라. 소비자가 전파하게 하라.
광고의 효율을 떠나서 ‘과연 나라면 이것을 이 가격에 사겠는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야 한다고 합니다(가격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특히 ‘소망하게 하라’인 5원칙은 합리적인 가격을 구성하거나 제안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사고 싶지 않은 제품을 남이 사 주길 바라는 것은 억지입니다. 5%가 되려면, 95%와는 다른 길을 가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많이 하고 있다고 그것이 정답은 아닙니다. 차별화된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보통 다르게 마케팅을 하거나, 광고하라고 하면 어려워합니다. 달라지고는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아예 감조차 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르다는 것의 기본은 모방에 있다고 말합니다. 다른 곳의 장점을 최대한 모방한 뒤에, 꾸준히 다른 새로운 것을 추가하는 것이 답입니다. 광고는 사전적으로는 ‘廣告(넓을 광, 알릴 고)’로서 ‘널리 알린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필자는 광고가 이런 의미로서만 존재해서는 안 되며. 광고는 ‘光高(빛 광, 높을 고)’로 ‘빛나게 하고, 높여 준다.’라는 또 다른 의미로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즉, 광고는 무언가의 가치를 진정으로 더 ‘높이고’, ‘빛나게’ 해 주는 수단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만족도는 냉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피 같은 돈을 들여 구매한 것이 그만한 가치가 있는지 따져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소비자가 만족하게 하려면 일종의 착각을 하도록 작은 틈을 적기에 공략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착각이란 소비자가 느끼는 만족도를 실제보다 좀 더 높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입니다. 위의 세 가지 방법을 상황에 맞게 잘 활용한다면 좋은 착각을 일으킬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전에 질 좋은 상품이나 서비스가 전제되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하겠지요.
마케팅과 광고 중 어느 하나에만 치중하면 안 됩니다. 인식과 표현, 즉 마케팅과 광고를 모두 끊임없이 실행해야 합니다. 마케팅이 잘되면 소개가 저절로 늘어나게 되고, 소비자가 저절로 찾아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광고가 잘되면 신규 소비자가 계속 늘어나게 되고, 그들에게 마케팅된 내용을 알려서 브랜드 가치를 지속해서 쌓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필자는 마케팅과 광고를 절대 따로 보지 말고, 하나로 묶어서 생각하고 끊임없이 시도하기를 권장한다고 말합니다.
찬송 중 쓰러진 무당 최낙중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내가 살고 있는 농촌 마을에 개척교회가 세워졌다. 나는 그해 성탄절 전까지 중학생과 고등학생 20여명을 전도했다. 성탄절 새벽 송을 위해 학생들에게 찬송가 3곡을 외우게 했다. 교인 집에 가서는 ‘기쁘다 구주 오셨네.’를 불신자 집에 가서는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부르기로 했다.
새벽 4시쯤 귀신들린 무당집을 방문했다. 징을 치는 소리가 요란했다. 우리는 대문 밖에서 ‘기쁘다 구주 오셨네’를 큰 소리로 불렀다. 요란하던 징소리가 그쳤다. 그때 집 주인이 겁에 질린 모습으로 달려나와 “굿하는 집에 웬 찬송가여. 우리 집 이제 망했어”라며 고함을 질렀다.
왜 그러시냐고 물었더니? 찬송가 소리가 들리자 일어나서 춤추던 무당과 앉아서 징을 치던 무당이 쓰러졌다는 것이다. 그 일로 인하여 그 집이 모두 다 예수를 믿어 구원받게 되었다고 함.
하나님은 찬송 중에 임하십니다. 여호사밧 왕의 찬송대가 찬송 부른 때에 여호와의 복병이 적군에 임하여 그들이 패망한 일이 생각났다. (대하 20장 1~30절) 14) 여호와의 영이 회중 가운데에서 레위 사람 야하시엘에게 임하셨으니 그는 아삽 자손 맛다냐의 현손이요 여이엘의 증손이요 브나야의 손자요 스가랴의 아들이더라 15) 야하시엘이 이르되 온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과 여호사밧 왕이여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이 큰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16) 내일 너희는 그들에게로 내려가라 그들이 시스 고개로 올라올 때에 너희가 골짜기 어귀 여루엘 들 앞에서 그들을 만나려니와 17)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대열을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 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유다와 예루살렘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내일 그들을 맞서 나가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매 18) 여호사밧이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니 온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도 여호와 앞에 엎드려 여호와께 경배하고 19) 그핫 자손과 고라 자손에게 속한 레위 사람들은 서서 심히 큰 소리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니라. 20) 이에 백성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드고아 들로 나가니라 나갈 때에 여호사밧이 서서 이르되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아 내 말을 들을지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의 선지자들을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하고 21)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22)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주민들을 치게 하시므로 그들이 패하였으니 23) 곧 암몬과 모압 자손이 일어나 세일 산 주민들을 쳐서 진멸하고 세일 주민들을 멸한 후에는 그들이 서로 쳐죽였더라. 24) 유다 사람이 들 망대에 이르러 그 무리를 본즉 땅에 엎드러진 시체들뿐이요 한 사람도 피한 자가 없는지라 25) 여호사밧과 그의 백성이 가서 적군의 물건을 탈취할새 본즉 그 가운데에 재물과 의복과 보물이 많이 있으므로 각기 탈취하는데 그 물건이 너무 많아 능히 가져갈 수 없을 만큼 많으므로 사흘 동안에 거두어들이고 26) 넷째 날에 무리가 브라가 골짜기에 모여서 거기서 여호와를 송축한지라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그 곳을 브라가 골짜기라 일컫더라. 27) 유다와 예루살렘 모든 사람이 다시 여호사밧을 선두로 하여 즐겁게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이 그 적군을 이김으로써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 28) 그들이 비파와 수금과 나팔을 합주하고 예루살렘에 이르러 여호와의 전에 나아가니라. 29) 이방 모든 나라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적군을 치셨다 함을 듣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므로 30) 여호사밧의 나라가 태평하였으니 이는 그의 하나님이 사방에서 그들에게 평강을 주셨음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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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살 소망이 끊어질 때
위대한 바이올린 연주가 '파가니니' 의 이야기는
힘들고 어려울 때 소망과 위로가 되곤 합니다.
파가니니가 바이올린을 연주 할 때 줄 하나가 툭!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청중들은 깜짝 놀라 긴장하긴 했으나 파가니니는
나머지 세 줄로만 연주를 계속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줄 하나가 또, 툭! 끊어졌습니다. 그래도, 파가니니는 아랑곳 않고 연주를 계속 했습니다.
신들린 듯 연주하던 바이올린 줄이 또 하나 끊어 졌을 때 파가니니는 멈칫 하더니 그의 유명한 '스트라디 베이스 ' 바이올린을 높이 들고
"남은 한 줄과 파가니니" 라고 외친 후 연주를 계속 했습니다.
연주가 끝났을 때 청중들은 일어서서 그칠 줄 모르고 파가니니에게 박수를 보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들도 살아가노라면 바이올린 줄이 끊어지듯이, 우리가 굳게 믿고 의지하던 인생의 줄들이 투-두-둑 소리를 내면서 끊어질 때가 있습니다.
건강의 줄, 물질의 줄, 가족간(친구)의 줄, 때론 기도의 줄----
그리고 그렇게도 든든하던 주님과의 사랑의 줄마져 투-두-둑 끊어질 때를 만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속상하다 못해 속이 썩는 아픔과 절망을 경험하며 밤을 지새우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경험은 바울 사도에게도 있었습니다. 고후1장에 보면 하나님의 종 바울도 이런 고백을 합니다.
"살 소망까지 끊어졌노라" 그러니 믿음 없다하여 너무 자책하지 마십시요.
믿음의 사람도 고통의 size 가 믿음의 size 보다 크면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주님은 아실 겁니다. 그리고, 주님은 어떤 경우에도 당신 편이심을 잊지 마십시요.
요즈음, 우리들 주변에 보면 이 세상 어디에도
마음 둘 곳도 없고 의지할 곳도 없다며 그래서 차라리
자살이 죄가 아니라면---- 한숨 짖는 분들을 가끔씩 만납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분들의 상황과 형편을 들어보면 누구도 그러하겠다 여겨집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믿음의 사람들이여! 우리에게는 이 세상의 모든 줄이 다 끊어졌다 할지라도 마지막 남은 줄 하나가 있지 않습니까? 그 줄은 세상의 줄이 다 끊어졌을 때 비로소 그 위력을 실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믿음이라고 하는 줄입니다. "예수"라고 하는 줄입니다.
이 줄의 힘은 실로 너무 커서 세상의 모든 소유의 유무를 초월케 하며,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감사케 하며, 최악의 조건 가운데서도 견디게 하는 소망의 줄입니다.
그리고, 생명의 줄입니다.
힘들고 어렵지만, 믿음의 줄 붙들고 있다보면 주님은 우리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건져내십니다. 이 믿음의 줄을 통하여 죽음에서 생명으로, 절망에서 소망으로 옮겨진 사람들이 이 땅에 헤아릴 수도 없이 많습니다.
믿음은 대단하고 위대한 것입니다. 믿음을 시시하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그러니, 세상 줄 다 끊어졌어도 이 줄을 잡고 있으면 복 있는 사람이나, 세상 줄 다 잡고 있어도 이 줄을 놓치고 있다면 그 사람은 복 없는 사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상 줄은 우리를 속입니다. 그러나, 그 줄은 미끼이지 우리의 밥이 아닙니다. 혹시 사방으로 우겨 싸임을 당하고 기가 막힌 문제를 홀로 끌어안고 침이 마르도록 힘들어하시는 분이 계세요? 포기하지 마세요. 결코, 결코! 한번만 더 시도해 보세요. 한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주님을 조르세요. 촛불은, 어두워져야 밝게 빛나듯이 우리의 신앙과 인격도 고난과 실패 그리고, 눈물을 통하여 성숙해지고 밝아진다는 사실은 진리입니다.
그러니, 힘을 내세요. 힘을 내셔야 해요. 왜, 나만 당하는 고난이냐고 원망하거나
절망하지 마세요. 고난의 뒤편에 숨어 계신 주님을 바라보세요. 그 분을 묵상하세요.
주님은 우리의 문제도 아시지만, 우리의 문제가 언제쯤 해결될지도, 그리고 어떻게 하면 해결될지도 정확히 알고 계실 뿐 아니라, 그 분 만이 해결하실 능력을 갖고 계십니다.
지금 외치세요. "나는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하나님의 자녀라고"
그리고, 기억하세요. 당신이 마지막 남은 믿음의 줄 붙잡고
애쓰고 힘쓸 때, 하늘에서는 모든 천사와,
앞서 가신 믿음의 증인들이 당신을 응원하며 기립 박수한다는 사실을 ----
누가 뭐래도 당신의 형편이 어떠해도
당신은 하나님의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자녀입니다.

마른곰님의 댓글
마른곰 작성일
새 소망의 길
성경: 시편 43 장 5 절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존 해거이라는 미국의 전도학자가 있었습니다. 이 목사님에게는 존이라고 하는 외아들이 있었는데 정신박약아였습니다.
존은 휠체어를 타고 앉아서 아버지가 설교를 하면 뒤에서 소리를 지르면서 좋아했습니다. 부모님은 어떻게 하든지 그 아이를 고쳐 보기 위해서 애를 썼습니다. 이 아이를 안고 다니면서 22년 간을 지내다가 결국 그 아이는 죽고 말았습니다.
그는 아들이 죽은 후에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다가 ‘내가 이제 해야 할 일은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해거이 인스티튜트’(Haggai Institute)라는 기관을 설립했습니다. 제3세계의 선교를 연구하고 그들을 훈련시키는 사람들을 보내는 휼륭한 기관입니다.
해거이 박사는 자기 가정의 실망과 낙담과 좌절을 통해, 선한 일을 함으로써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실망과 좌절만 바라볼 때 우리는 헤어날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선한 일, 의미 있는 일을 하며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헌신하게 될 때에 새 소망의 길이 열립니다. 아무리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며 그분을 생각하면 소망이 샘 솟듯 하게 되는 것입니다.
* 기도: 하나님께만 소망을 둘 수 있도록 도와 주소서.
/시편을 통한 매일 묵상집(아가페)

강수인님의 댓글
강수인 작성일
돈이 없던 사람이 돈이 생기면 무엇 부터 할까요?
돈이 없을 때 해 보고 싶었던 것을 마음껏 하려 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시각에서는 어떠하실까요?
돈이 없게 된 이유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려 하니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서 절제해야 함을 알려 주신 것일텐데, 자꾸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정욕과 잘못된 경험만 고집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더 돈을 달라고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잘 못 구하고 있다고 하시는 것이구요.
내가 왜 건강을 잃게 된 것일까요?
내 건강을 잘 못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왜 물질이 부족하고 쪼달릴까요?
내 가진 물질도 잘 못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왜 시험을 잘 못 볼까요?
내가 시험 공부하는 곳이 잘 못 된 곳이기 때문입니다.
내 사랑은 왜 안 올까요?
내가 바라기만 하고 나를 상대에 맞추기 싫어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왜 못 만날까요?
나는 안 바뀌면서 늘 하나님만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01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02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
03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시 24:4)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05 그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06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 (셀라).
(마 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