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 믿음 (요 14:2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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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 믿음 (요 14:25-29)
25)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28)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더라면 내가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라 29) 이제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은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 지금부터 8백 여 년 전에, 마르코 폴로가 중국을 방문하여 십여 년 살다가 귀국한 후에 ‘동방견문록’이란 책으로, 유럽에 중국을 자세히 소개했는데, 당시 유럽인들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그 책에 ‘백만 가지 거짓말’이란 별명을 붙일 정도였지요. 마르코 폴로의 죽음이 가까워오자, 신부가 ‘죽기 전에 당신이 거짓말했다고 고백하세요. 그래야 천국 갑니다.’ 폴로는 ‘신부님, 다 정말이고요, 보고 체험한 것의 반도 말하지 못했어요.’세월이 흐르자, 마르코 폴로의 말이 사실임이 드러났습니다.
교회를 다니는 이들 중에, 하나님과 예수님은 믿으나 성령님은 믿지 못하는 이가 적지 않다고 합니다. 마치, 동방견문록을 보고도 중국의 실체를 믿지 못한 유럽인들과 같다할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 중국이 사실로 드러났듯, 성령의 실체는 이미 드러나 있고, 앞으로 더 분명히 드러날 것입니다. 유럽인들이 믿지 못한 중국이 있듯이, 믿기 힘든 성령님은 계십니다. 성령을 믿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성령은 영이기 때문에, 우리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성경에 ‘영은 영으로만 이해할 수 있다.’ 했으니, 성령을 구해야 받고 받아야 믿어지고 이해가 됩니다.
● 사도신경에 성령에 대해 달리 설명하지 않고 ‘성령을 믿사오며’한 것이 그런 이유지요.
사도신경의 대부분이 세 분 하나님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전능하시고 천지의 창조주요, 아버지 되심과, 예수님이 우리 구세주 되심을, 믿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요, 예수님이 구세주이심을 믿도록 하는 분이 성령님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이 함께 하시기에 삼위일체 하나님이라 하는 것은 당연히 아실 줄 믿습니다. 어떤 이는, 삼위일체란 단어가 성경에 없어서 안 믿는다고 하지만, 성경에 삼위일체를 알게 하는 말씀은 여러 곳입니다.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물에서 나오실 때, 성령이 하늘에서 내리고, 하나님의 음성이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라’ 예수님, 성령님, 하나님이 한 곳에 계십니다. 또, 오늘 함께 읽은 요 14:26에, 하나님께서 예수님이름으로 보내실 성령이라 합니다. 역시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이 함께 합니다. 함께 고후 13:13을 읽어 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두려워서 골방에 숨어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세 번이나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바라는 것도 평안, 평강입니다. 오늘말씀 27절에도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여러분이 예수님 믿고 교회 다니고, 기도하며 바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부요함입니까? 건강, 명예입니까? 자녀가 잘되는 건가요? 좋은 성적을 받고, 좋은 직장에 취업하는 것인가요? 다 좋습니다만, 오늘 말씀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기 전 날 밤에 하신 겁니다. 예수님은, 내일 당하실 온갖 모욕과 매 맞음, 십자가 죽음을 아시면서, 주려는 평안이 무엇일까요? 우리의 건강, 부요, 명예 등은 아니겠지요? 우리는 자주,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께 부끄럽지 않은 기도를 드리자고 합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은,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믿는 우리가 죄 사함 받음으로 하나님과 평안을 회복해서, 영생에 참여하는 겁니다. 잠깐 뿐인 이생이 끝난 후에 영생이 있음을 믿는 성도는, 부귀영화에서 평안을 누리려하지 않고, 아프거나 힘들어도 주의 평안을 누립니다.
* 남편을 잃고 어렵게 딸을 키우던 한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희망대로 딸이 어엿한 대학교수가 되었는데, 딸이 생각하니, 어머니가 자신을 위해 뒷바라지하느라 평생 고생만 했습니다. ‘엄마, 소원이 뭐예요? 제가 꼭 들어드릴게요.’ 어머니는 신앙생활은 잘 했지만, 딸은 공부가 바쁘다며 그러질 못했습니다. 어머니는 ‘내 소원이야 우리 딸! 함께 교회에 나가는 거야. 다른 건 없어.’ 딸은 ‘기꺼이 교회에 나가지요.’다음 주에 어머니와 함께 교회에 갔습니다.
그런데 딸이 본 것은 다 부정적인 것이었습니다. 마침 교회 내에 분란이 있어, 서로 나뉘어 싸우는데 꼴불견입니다. 겨우 예배를 마치고도, 시기하고 질투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집에 와서 어머니에게 투덜거립니다. ‘나 다시는 교회에 안 가요.’하면서, 왜 갈 수 없는지, 자기가 본 것을 다 얘기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머니가 ‘사랑하는 딸아, 엄마는 수십 년 교회를 다니면서 예수님 얼굴 밖에 보지 못했는데, 너는 하루 동안에 참 많은 것을 보았구나.’
● 어머니와 딸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어머니는 성령을 믿고 의지함으로 예수님만을 바라봤으나, 딸은 그저 육신의 눈으로 보았습니다. 어머니는 평안했고, 딸에겐 평안이 없었지요. 예수님을 주로 고백한 분에게는 다 성령이 함께 하십니다. 내 속의 성령을 의지하는 분은, 그 어머니와 같은 평안을 누리나, 밖을 보고 내 안에 성령님을 의지하지 않는 분은, 딸처럼 평안을 누리지 못합니다. 지금 내게 평안이 없는 분은, 무엇보다 먼저 내 속에 계신 성령님께 매달리셔서 평안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사랑의 예수님은, 우리가 어떤 형편에서든 평안을 누리며 살기를 원하시지만, 우리가 그렇지 못한 것을 잘 아십니다. 그러기에, 성령을 보내주시며, 성령이 하실 일도 자세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첫번째로, 성령의 이름이 보혜사라 하십니다. 돕는 분이십니다. 주장하지 않고 돕는 분이심
두번째로, 예수님은 성령이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것을 생각나게 한다 하십니다. 우리가 쉽게 상상할 수 있는 것은, 제자들이 삼 년을 따라다니며 무수한 말씀을 들었지만, 어디 기록할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성경이 기록될 수 있었던 것은, 성령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시고 생각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함께 할 때는 안 적더니 구하니까? 제자들을 깨닫게 하고, 말씀을 생각나게 하신 성령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그리 역사하실 줄 믿습니다.
● 그런데 간혹 잘 못 구하면? 특히 정욕으로 구하면 얻지 못합니다.
(약 4: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진리의 영이신 성령은 우리를 바로 깨우쳐주시지만, 우리가 종종 오해하기도 합니다.
어느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예배가 끝나자 한 교인이 목사님에게 다가와서 “목사님, 목사님이 설교하시는 중에, 성령님이 제게 ‘네게 꼭 필요한 아들 대학등록금을 목사님께 달라하면 주실 거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이 ‘거참 이상하네요. 제게 그런 돈이 없는 줄 아시는 성령님이 왜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성령하나님이 확실했어요?’우스개 같지만, 성령에 관한 이런 오해가 적지 않습니다.
비슷한 경우입니다. 한 청년이 기도를 참 열심히 합니다. 열심히 하니 성령님의 역사가 느껴집니다. 그 청년이 목사님에게 ‘제가 결혼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니, 어느 자매와 하라고 응답을 주셔서, 자매를 찾아가 결혼하자했더니, 나를 싫다고 하는데, 도대체 어떻게 된 것입니까?’ 목사님 대답은 ‘성령 하나님이 역사하실 때는 너에게만 아니고, 상대에게도 하시니까, 상대가 듣기까지 기다려봐. 그렇지 않은 것은 너의 집착이야.’ 우리는 성령을 의지하되, 바르게 해야 불편함과 불평이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좀 더 기도하거나 정욕을 내려놓고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진정 하늘의 평강이 옮니다. 그것이 성령이 주시는 평안입니다.
세 번 째로, 성령은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심으로, 우리가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요 14:28에 ‘나를 사랑하였더라면’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 제자들은 거의 공황상태입니다. 자기생업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며, 예수님이 왕이 되시면, 장관 한 자리는 하겠지. 그런 예수님이 떠난다고 합니다. 어디로 가시냐고 물어도, 너희는 모른다하지요. 그런 형편이니, 예수님이 잡히실 때에,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진정 사랑했다면, 예수님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하실 일을 제대로 알았지요. 예수님은 세 차례나 당신이 고난을 당해 죽고 사흘 만에 살아나리라 하셨으나, 귀담아 듣거나 이해하는 제자들은 하나도 없었지요. 예수님이 죽으면 자신들의 소망이 끝나니 그렇고,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산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했음에도, 이어지는 성경말씀은, 제자들이 확 변화된 것을 알려줍니다. 성령이 오심으로 제자들은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이, 인간을 위한 예수님의 사랑임을 알고 나니, 예수님을 더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자들은 목숨을 아끼지 않고 나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 평안을 누릴 길이기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물으셨죠. 우리도 ‘예, 제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이 아십니다.’대답하며 그리 살 때에, 세상이 줄 수 없는 주님의 평안을 누릴 것입니다.
무엇이 예수님의 말씀과 사랑을 깨닫게 했습니까? 무엇이 하나님아들이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신 이유를 알려줄까요? 무엇이,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이 세상이 줄 수 없는 참 평안임을 깨닫게 할까요? 지금까지 세상의 부귀영화, 즐거움, 자랑을 따르던 삶이 어떻게 주님의 평안으로 바뀌게 될까요? 이 모든 일을 성령님이 하시지요. 그럼으로, 여러분 속에 계신 성령님을 온전히 믿고 따르면, 세상이 줄 수 없는 참 평안을 누립니다. 할렐루야!
롬 14:17 후반에 ‘하나님 나라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합니다. 성령의 도우심 속에 의롭게, 평안하게, 기쁘게 사는 것이 하나님나라임을 믿습니다. 오늘 성령으로 평안을 누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천국의 백성이며, 주의 군사요, 천국의 의병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동역자입니다. 이 시간 간절히 성령의 충만을 구하고 평강을 우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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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회 다운로드 | DATE : 2020-06-07 00:4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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