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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보다 시간을 더 중요시하는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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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마른곰
댓글 0건 조회 2회 작성일 20-10-03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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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보다 시간을 더 중요시하는 인생

시 90:8~12 8)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 빛 가운데에 두셨사오니. 9)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 10)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11) 누가 주의 노여움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의 진노의 두려움을 알리이까? 12)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13)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 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14)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만족하게 하사 우리를 일생 동안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15) 우리를 괴롭게 하신 날수대로와 우리가 화를 당한 연수대로 우리를 기쁘게 하소서

16) 주께서 행하신 일을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시며 주의 영광을 그들의 자손에게 나타내소서.

17) 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내리게 하사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우리에게 견고하게 하소서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견고하게 하소서

▲시간과 돈의 불균형. 인생살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요소를 들자면 아마도 시간과 돈일 것입니다. 시간이 충분히 있으면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며, 또 돈이 충분히 있으면 시간을 잘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둘은 한 몸에 머리가 둘 붙은 샴쌍둥이처럼 항상 한 짝이 되어 함께 다니는데, 이상하게도 서로 반대쪽으로만 가려 합니다. 돈이 있으면 시간이 없고, 반대로 시간은 있는데 돈이 없습니다. 시간과 돈 둘 다 여유가 있다면, 성공한 인생일 것입니다.

▲돈보다 시간을 더 중요시하는 인생

둘이 함께 있되 서로 반대로 간다면 반드시 한 쪽 방향은 포기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돈을 벌기 위해 시간을 포기하든지, 시간의 여유를 갖기 위해 돈을 적게 벌든지 해야 합니다.

따라서 인생을 살아가는 두 가지 방식이 나타납니다.

먼저 충분한 만큼의 돈을 번 후에 시간을 즐기자는 주의와 아예 처음부터 돈보다는 시간을 더 중요시하는 주의입니다.

어차피 돈과 시간이 불균형을 이룰 수밖에 없다면, 돈보다는 시간을 중시하는 인생이 훨씬 더 보람찹니다. 돈이 시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시간이 돈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자족할 수 있는 정도, 즉 일용할 양식과 비를 피하는 공간과 감기에 걸리지 않을 만큼의 의복만 있으면 나머지 시간에는 어떻게 인생을 의미 있게 보내느냐에 모든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입니다.

시간을 잘 관리하는 자가, 돈을 잘 관리하는 자보다 훨씬 더 성공한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

본문 표현대로 우리 날을 계수(計數)하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자기 인생을 카운트다운 한 사람

D. J. DePree 라는 사람이 “우리 날 계수한다.”는 말을 실제 문자적으로 적용하며 살았습니다.

즉 70년의 날수를 계산(70년 X 365일=25,550일)해서 날마다 하루씩 감해가면서 살았습니다.

매일 아침 자기가 생존 가능한 날 수가 점차 줄어감을 볼 때마다, 그는 더욱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다졌습니다. 흔히 말하듯 그 하루가 생의 마지막 날인 양 최선을 다했습니다.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인생들이 주의 분노 가운데 일생을 순식간에 마치는데 주의 노의 능력과 이유를 잘 몰라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누가 주의 노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를 두려워하여야 할대로 주의 진노를 알리이까? 대부분은 주님의 심판과 진노를 아예 까마득하게 모르고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만약 우리가 그것을 잘 안다면, 즉 우리 날 계수하는 지혜가 있다면, 우리 인생이 주의 분노 중에 일순간에 지나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뜻이 됩니다. 다시 말하면, 현실의 문제와 고통을 해결하는 데만 정신을 쏟다보니 (모세가 보니) 순식간에 우리 일생이 끝나더라는 것입니다. 그 힘든 일 가운데는 주의 분노로 인한 징계도 많이 포함되어 있었음에도 원인을 알지 못한 채, 즉 주의 뜻대로 회개하고 고치치도 못한 채 그저 환난만 없애달라고 매달렸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하나님으로부터 특정한 징계를 받지 않았어도 모든 인간은 아담이 범죄한 이후로 “이마에 땀을 흘리고 종신토록 수고해야 소산을 먹을”(창 3:17)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주의 분노 가운데 일생을 보낸 것이 평생 죄만 짓다가 벌을 받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자기가 어떤 존재이며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몰라서 진정한 구원의 길에 들어서지 못한 채 살았다는 것입니다. 죄악과 사단과 사망의 권세에 묶인 노예이다 보니 돈만 쫓느라 도무지 앞뒤 분간도 못하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신자라고 해서 크게 다를 것 없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고 고통을 없애려는 데에만 하나님을 찾고 산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날을 계수하며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날려 보내는 것 같이 살고 있습니까?

오늘 복음과 함께 고난을 당하는 삶을 만약 살지 못하고 있다면, 그저 축복과 안락한 삶만 추구한다면, 그것은 헛되이 날려 보내는 세월이 되기 쉽습니다.

딤후 4:5-8. 5)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6)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 찢어진 복음서

수년 전 인도의 썬다 싱이 기차 안에서 사람들에게 책을 나눠주며 복음을 전하고 있었을 때의 일입니다. 그는 열차 승객들에게 요한복음이 기록된 작은 책자들을 나눠주고 있었는데, 이것을 받아 든 어떤 사람이 보지도 않고 갈기갈기 찢어 창밖으로 내던져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일은 여기서 끝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는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마침 한 사람이 철길을 따라 걷고 있었는데, 종이조각이 흩어져 날리는 것을 보고는 호기심에 그것들을 주웠습니다. 그가 주운 종이에는 ‘생명의 떡’이라는 글이 씌여 있었습니다.

그는 ‘생명의 떡’이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궁금했습니다. 그는 이것을 알기 위해 성경책 한 권을 샀습니다. 그는 ‘생명의 떡’이라는 말이 어디에 나오는지 찾기 위해 성경을 한장 한장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성경을 읽으면서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비밀의 책을 주어도 버리는 자가 있고, 어떤 사람은 하늘에 날리는 작은 종이조각에도 반응하며 비밀을 소망하는 자가 있다는 말이 됩니다. 과연 하나님은 합력해 선을 이루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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