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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책망하시는 성령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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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수인
댓글 0건 조회 5회 작성일 20-12-19 21:50

본문

세상을 책망하시는 성령님.

예수님은 불신앙의 세상 속에서 교회를 통해 이루실 성령의 사역에 대해 설명하십니다.

성령은 자신을 환영하는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라, 미워하는 세상에 오셨습니다.

(요 14: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성령은 성도들에게는 보혜사로 오셨지만, 세상에 대해서는 삼중의 책망을 하고 계십니다.

(요 16: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1) 죄에 대해

이는 불신앙의 죄를 말합니다. 개인적인 죄들을 양심이 할 일입니다.(행 24:24-25) "수일 후에 벨릭스가 그 아내 유대 여자 드루실라와 함께 와서 바울을 불러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를 듣거늘 25) 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대답하되 지금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하고"

영혼을 정죄하는 죄는 불신앙, 즉 그리스도를 거절하는 것입니다.(요 3:18-21)

"8)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21)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성령께서 세상에 계심은 세상이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증거입니다.

2) 의에 대해

예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과정의 완성이며, 또한 그리스도의 의로우심을

입증해 보인 예수님의 승천과 깊은 관련이 있다.(시 17:1-15)

테레사 수녀 같은 사람의 삶을 세상은 치하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의인이다. 성령이 이 땅에 오심으로 드러내는 그리스도의 의는 절대적이다.

3) 심판에 대해

그리스도는 미래의 심판이 아니라, 십자가에서의 과거의 심판을 말씀하신다.

이것을 사도행전 24:25의 "장차 오는 심판"과 혼동하지 말자. 예수님은 요한복음 12:31-32에서 "31)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 32)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사탄과 세상을 심판하실 일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 성령이 계심은 사탄이 심판을 받았고, 패배했다는 증거입니다.

● 참새와 죄수. 사랑과 집착과 무관심과 정과 좋아함의 차이.

평생 감옥을 제 집 드나들듯 한 늙은 장기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틈만 나면 수감되는 그에게 처음에는 가족과 친지가 방문했지만 나중에는 아무도 그를 찾아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오직 고독만이 그의 유일한 벗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머무는 창살 너머로 참새 한 마리가 날아들었습니다.

늙은 죄수는 참새에게 빵부스러기를 주면서 처음으로 정이 무엇인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참새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죄수가 주는 음식을 쪼아 먹고 뾰로롱 뾰로롱 노래를 부르곤 했습니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 가지 않는다고 했던가?

이 늙은 죄수는 곧 먼 바다의 외딴 섬에 있는 감옥으로 이송되게 되었던 것입니다.

참새와 떨어지기 싫었던 늙은 죄수는 나뭇가지와 철사 부스러기를 주워서 조그마한 조롱을 만들었습니다. 조롱을 가슴에 품고 외딴 섬으로 가는 배에 탄 늙은 죄수...

하지만 죄수들끼리 밀고 당기는 혼잡 속에서 그만 그의 허술한 조롱은 부서지구 그 순간 놀란 참새는 푸르르 날라 올랐습니다. 그러나 오래 날지 못하고 그만 바다 위로 떨어지고 말았답니다. 참새가 조롱에서 빠져나와 달아 날까봐 늙은 죄수가 참새의 꼬리를 잘랐기 때문입니다.

"내 새가 빠졌어요. 새를 건져주세요!"

늙은 죄수는 울부짖었지만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새 한 마리를 건지기 위해 커다란 배가 멈출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늙은 죄수는 배의 갑판에서 조금씩 날개를 파닥이는 가여운 새를 비통하게 바라보고 있었지만 이내 새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피에르 로티의 <늙은 죄수의 사랑>의 줄거리입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할 때 혹시 그의 날개를 떼어서 내 곁에 두고 싶어 하지 않았던가요.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입니다.

# 오늘의 명언- 사랑한다는 것으로 새의 날개를 꺽어 너의 곁에 두려 하지 말고, 가슴에 작은 보금자리를 만들어 종일 지친 날개를 쉬고, 다시 날아갈 힘을 줄 수 있어야 하리라 - 서정윤 『홀로서기』 - 따뜻한 하루 중에서..

● 내 주는 살아계시고

1926. 11. 7,출생. 오스트레일리아의 시드니에서 태어난, 성악가 존 서덜랜드헨델의 메시야 중 제 45곡내 주는 살아계시고’를 런던 심포니와 부르게 되었습니다. 최고의 소프라노답게 리허설임에도 완벽한 발성과 테크닉으로 불렀습니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찬사를 보냈습니다. 그때 지휘자인 콜린 데이비스가 웃으면서 다시 한 번 하자고 했습니다. 서덜랜드는 기꺼이 다시 노래를 불렀습니다. 단원들은 또다시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습니다. 그런데 데이비스가 또 “다시 한 번 하자”고 했습니다. 서덜랜드는 불쾌했지만 보란 듯이 완벽하게 노래를 했습니다. 데이비스는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최고의 연주였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는 오케스트라를 향해 “한 번만 더 하자”고 말했습니다. 화가 난 서덜랜드는 “무엇이 문제냐”며 항의했습니다. 그러자 데이비스서덜랜드를 향해 조용히 말했습니다. “당신은 ‘내 주는 살아계시고’를 노래했는데 저는 당신의 노래 속에서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느끼질 못했습니다. 정말 당신에게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입니까?” 이 대화가 오간 뒤에 서덜랜드는 다시 노래를 불렀지만 너무 눈물이 나서 리허설을 제대로 마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모두에게 잊을 수 없는 감동적인 리허설로 기억됐다고 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내 주는 살아계시고”라고 수없이 말합니다. 정말 여러분에게 주님은 살아계신 분입니까? 김한호 목사(춘천동부교회)

● 한 변호사의 간증

젊은 나이에 벌써 성공의 길에 들어선 영국의 한 변호사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영국 의사당 앞에서 비중 높은 변호를 하기로 되어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일에 대해 많은 긴장과 부담감을 가진 나머지 지나친 스트레스로 인하여 그만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 이후 출세 가도를 달리던 그의 인생은 점차 망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정신착란 증세로 정상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없었습니다. 급기야 그는 자신이 더럽고 추한 무가치한 존재라고 자학함으로써 자살까지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변에 그를 불쌍히 여기며 관심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을 통해서 복음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자신의 존재를 쓸모없다고 여기며 자살하려 했던 그가 죽음의 쇠사슬로부터 풀려 나오는 데는 10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는 주님께서 자신의 죄를 담당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써 더럽고 추한 자신의 삶이 새로운 삶으로 변했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변한 삶의 모습과 그 사랑의 감격을 시로 고백하기 시작합니다.

(1)샘물과 같은 보혈은 주님의 피로다. 보혈에 죄를 씻으면 정하게 되겠네!

정하게 되겠네! 정하게 되겠네! 보혈에 죄를 씻으면 정하게 되겠네!

속함을 얻은 백성은 영생을 얻겠네! 샘솟듯 하는 피 권세 한없이 있도다.

찬송가 258장이 바로 그의 간증의 노래입니다. 그는 바로 윌리엄 카우퍼(William Cowper)로서

영국 문학사에 있어서 고전 문학가로 손꼽힐 만한 인물입니다.

그는 스가랴서 13장 1절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라는 구절을 읽다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흘리신 보혈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 이제 그는 세상의 굴레로부터 영원히 해방된 자유의 몸이 되어 이렇게 찬양합니다.

날 정케 하신 피 보니 그 사랑 한없네! 살 동안 받는 사랑을 늘 찬송하겠네!

(골로새서 3:10절) "새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골로새서 3:1절)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 마태복음 5장 3절 말씀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최근 “신과 함께”라는 영화에 지옥이 나오는데 신학자 신성종 목사님은 8일간 환상을 통해 천국과 지옥에 가보셨는데 지옥은 3층으로 되어 나누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그 중 지하 3층 서관에는 독재자 대통령들, 비리 대재벌, 사기와 협박 자들, 기독교의 교권을 위하여 싸웠던 유명한 목사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 광경을 구경하던 신목사님은 거의 기절할 뻔

했다고 합니다. 자신의 영상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니 왜 내가 여기 있냐고 묻자 “교회 당회장 시절 주의 영광을 많이 가로 챘기 때문” 이라는 것입니다.

천국과 지옥에 다녀오신 신 목사님은 그때부터 겸손히 낮은 자세로 선교사로 남은 여생을 주님께 충성을 다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입니다.

마 3장 2절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마 5장 22절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마 18장 3절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 비누 한 장 사건

노벨상 수상자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Gavriel Garcia Marquez)의 작품 <콜레라 시대의

사랑(Love in the Time of Cholera)>이라는 소설은 비누 한 장 때문에 깨진 결혼 생활을 그려 놓았더구나. 소설에서 집 안을 정돈하는 것은 아내의 일이었단다. 수건이나 휴지, 비누 등을 욕실에 챙겨 놓는 것도 마찬가지였지. 어느 날 아내는 비누를 미처 새것으로 갖다 놓지 못했는데 남편이 그 실수를 과장되게 표현하자 완강하게 부인을 했다는구나. 아내가 비누를 갖다 놓지 못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비누 한 장 때문에 어떤 결과가 일어났는지 알겠니? 그 뒤 7개월간 두 부부는 각 방을 사용했고 식사 때는 침묵을 지켰단다.

비누 한 장이 어떻게 결혼 생활을 망칠 수 있을까? 그것은 양쪽 배우자 모두 “만둡시다. 이렇게 계속해서는 안 돼요. 미안해요. 용서해요”라고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그런 사소한 일로 평생의 관계가 금이 갈 수도 있지. 용서만이 점점 벌어지는 틈을 메울 수 있는 거야.

우리에게 용서란 부자연스러운 일이지만 하나님께 용서는 자연스러운 일이란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용서하셨지. 우리가 용서받을 자격이 없을 때,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 죄를 기억하지도 않으신단다. 나는 비누 한 장의 에피소드를 읽고 웃었지만 이 웃음과 함께 나 역시 사소한 일을 문제 삼았다는 내적인 경종을 듣게 된다. 이제 문제는 내 선택에 달렸구나. 용서할까 아니면 원망을 품고 있을까?

- 「준비된 결혼, 준비된 배우자」/ 린다 딜로우

● 사울은 비난 받는데, 왜 솔로몬은 비난받지 않을까?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이 저지른 실수 중 대표적인 것은 아말렉 전투에서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지 않고 전리품을 챙긴 혐의이다. 사무엘을 기다리지 못하고 손수 제사를 드린 조급함, 기브온 양민 살해 사건, 엔돌 점장이를 찾아간 일 등도 사울 왕의 실수로 꼽힌다. 그러나 그의 실수들은 대부분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일하다가 생긴 것들이었다.

이에 비해 솔로몬 왕이 저지른 실수들은 대부분 자기 자신을 위한 일 때문에 생겨났다. 대표적인 것이 이방 우상을 끌어 들인 죄이다(왕상 11:5). 따라서 그는 실수한 왕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실패한 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비난받지 않는다. 사울 왕이 비난을 받을 때에도 그는 오히려 칭송을 받는 쪽이다.

솔로몬 왕은 우상을 끌어 들인 죄 외에도 신명기 17장 16절 즉 "왕된 자는 말을 많이 두지 말것이요 ... 아내를 많이 두어서 그 마음이 미혹되게 말 것이며, 은금을 자기를 위하여 많이 쌓지 말것이니라 "라는 구절에서 3가지 명령을 모두 어겼다.

므깃도에 가면 많은 마굿간들이 있는데, 솔로몬 왕이 지은 것들로 알려져 있다. 이와같은 솔로몬의 외양간들은 전국에 4만개나 되며, 마병은 모두 1만 2천명이었다. 말을 많이 두지 말라고 한 성경을 현격하게 위반한 것이다.

솔로몬은 또한 아내를 많이 두지 말라고 한 성경을 철저하게 어겼다. 마치 신명기의 경고를 어기기 위해 작심한 사람처럼 그는 1천명의 여인들을 끌어 모았다(왕상 11:3). 실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솔로몬은 자기를 위하여 은금도 모았다. 그 분량이 얼마나 많았던지 "솔로몬 왕이 마시는 그릇은 다 금이요 레바논 나무 궁의 그릇들도 다 정금"이었다(왕상 10:21).

솔로몬 왕은 우상을 섬긴 일로 하나님의 진노를 받았다(왕상 11:9). 그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일하기 보다는 자신의 쾌락과 안일에 몰두하였으므로 죄질도 나빴다. 자녀 교육에 시간을 투자하지 못하였으므로 아들 르호보암은 분별력이 부족한 사람으로 성장하였고, 그 결과 나라는 두 동강 나고 애굽의 침입으로 경제도 피폐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로몬 왕에게 손가락질 하는 사람이 없다. 왜일까?

이 일에 대하여 성경은 다음과 같이 하나님 생각을 기록해 두었다. 즉 하나님은 그의 아버지 다윗을 생각하사 솔로몬의 형벌을 아들 대까지 유보해 주신 것이다(왕상 11:12). 마치 동네에서 어떤 아이가 잘못을 저질렀더라도 그 아이의 부모를 보아 때로는 용서를 해주는 것처럼 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이러한 사상은 우리로 하여금 관대하게 솔로몬을 보도록 만들고 있다.

솔로몬에게 쉽게 손가락질을 못하는 이유는 더 있다. 그의 정성스런 일천 번제, 하나님이 주신 지혜와 잠언들, 성전 건축 업적, 국토 방위망 확충 등이다. 이 네 개의 기둥들은 마치 그의 실수를 가려 주기라도 하듯이 그를 둘러싸고 있다.

문제는 그의 실수가 그의 업적에 가려져 있다는 바로 그 점이다. 가려져 있다는 것은 면제가 아니다. 솔로몬도 다윗처럼 굵은 베를 입고 애곡한 내용이 성경에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힘든 때일수록 위를 보자

저는 어느 책에서 윌리암 피들 (William Feather) 이라는 사람이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한 것을 읽어 보았습니다.

한 어린 아이가 길을 가다가 미화 $5달러(한화 약5,000원)짜리 지폐 한 장을 줍게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이 아이는 길을 다닐 때면 으례히 “오늘은 또 무엇을 주우려나…?” 하는 생각에 항상 목을 구부리고 땅만 내려다보면서 걸어 다녔다고 합니다.

그가 땅만 내려다보고 산 70여 평생에 그가 주운 것들은 단추 29,516개, 바늘54,172개, 그리고 동전12개가 전부였다고 합니다. 그가 허리를 굽혀서 그 무가치한 것들을 줍고 다니는 동안 그의 목과 허리는 꾸부정하게 구부러졌고 성질은 아주 인색해졌으며 또 괴팍스러워져 버렸다고 하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유야 어떠하든지 땅만 내려다보고 사는 사람들은 무가치한 것에 자기의 소중한 목숨을 거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얻는 소득이란 이 세상의 몇푼어치 되지 않는 썩고 없어질 것들뿐입니다. 그것을 탐하는 결과로 그들에게는 영원한 지옥불이 기다리고 있을 뿐, 아무런 가치가 없는 헛된 삶, 무가치한 인생을 남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골로새서 3:1절)

많이 힘드시지요...

우리들의 주께서 사랑하는 당신에게,

모든 역경을 이기고 승리하는 멋진 인생이 되라고 권면하십니다!

오늘도 위를 바라보며 힘차게 걸어요,우리. By: 별똥별/최송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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