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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려주일의 교훈 막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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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회 작성일 20-04-04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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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려주일의 교훈.

종려주일의 교훈 중에 교훈은 주어진 사명을 다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오늘 예루살렘성에 들어가시는 것은 사명을 완수하시기 위함이셨습니다. 그 사명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하시고 그 피로 만대만민의 죄를 대속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사명입니다.

● 막 10:45절을 보면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하셨습니다. 이것이 주님이 세상에 초림 하신 사명입니다. 이 사명은 오직 주님만이 감당할 수 있는 사명입니다. 그의 생명을 바쳐야 합니다. 온갖 고난 고초를 당하셔야 합니다. 인간적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담담하게 어린 나귀를 타시고 사명을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들어오신 것입니다. 사명이란 너와 나 모두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그것이 적든 크든 하나님께서는 내가 반드시 감당해야 할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에게도 나만이 감당해야할 사명이 있으시기에 가능교회에 보내주시고 여기서 신앙생활을 하게 하심을 깨달으시기를 축원합니다.

● 오늘 정치가 이토록 혼란한 것은 저들이 왜 정치인으로 부름을 받았는지를 바로 알지 못하여 책임을 다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정치인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 세워진 자입니다. 나를 희생하고 헌신하여 어찌하든지 나라가 잘살고 번영하도록 만드는 것이 정치가들의 사명입니다. 나아가서 백성들이 맘 놓고 평안히 살게 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역량을 쏟아내는 것이 정치인입니다. 그러나 정치인들의 대부분들은 자신의 부귀와 영달을 위해 정치하는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당리당략에 매달리고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오히려 백성들의 안위를 볼모로 잡기도 합니다. 나아가서는 나라의 안위까지도 자신의 정치세력을 유지하는 방편으로 삼습니다. 얼마나 위험천만한 사고입니까? 이로 인하여 우리의 역사에는 나라를 외국에 빼앗기고 민족 말살의 위기를 당한 적도 있었습니다. 이는 정치인들이 왜 무엇 때문에 자신이 정치인인지를 인식하지 못하고 사명을 바로 감당하지 못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 그러면 믿는 나는 어떤 사명이 있습니까? 이 시대 기독교인으로서 무슨 사명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왜 내가 이 시대에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성도가 되었습니까?

왜 내가 목회자가 되었습니까? 왜 내가 장로 권사 안수집사가 되었습니까?

왜 내가 제직이 되었습니까? 왜 내가 성도가 되었습니까? 왜 내가 찬양 팀에 단원이 되었습니까?

왜 내가 교사로 부름을 받았습니까? 왜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젊은이들 가운데 나를 부르사 내 젊음을 드려 하나님을 섬기게 하시었습니까?

우리는 이 질문에 바른 해답을 오늘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위해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시는 주님의 모습에서 찾아야 합니다. 내게 주어진 사명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주어진 사명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사명입니다. 복음을 위해 주어진 사명입니다. 몸된 교회를 위한 사명입니다. 그러기에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시는 주님께서는 이 사명을 위해 자신을 포기 하십니다. 고난을 감수하시기로 작정하십니다. 자신의 안위를 포기하십니다.

자신의 명예도 이익도 포기하십니다. 자신을 죽이시기로 작정하십니다. 사명을 바로 감당하기 위해서는 내가 존재해서는 안 됩니다. 나를 버리지 아니하면 충성스런 사명 자가 될 수 없습니다.

● 이순신 장군이 왜 충신입니까? 저는 악조건 속에서도 자신의 유익이 없어도 나라 위해 민족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쳤기에 충신입니다.

● 바울이 왜 충성된 종입니까? 저는 복음 위해 주님 위해 하나님의 나라 위해 자지도 먹지도 못하고 죽을 매를 맞기도 하고 자신의 모든 부귀영화를 분토로 여기는 자였습니다. 내가 살아 있고 나의 목적이 살아있는 자는 사명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유익을 주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충성스런 사명완수의 모습을 보여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사명에 살면 축복이 있습니다.

성경은 사명을 감당하는 자들에게 상급이 있음을 약속하시고 있습니다.

(마 25:21-23) 충성된 종에게 많은 상급과 더 좋은 자리에 들어가게 하십니다.

(마 20:1-16) 충성되이 사명을 감당하는 자에게 부족해도 많은 삯을 주신다고 하십니다.

(계 2:10) 죽도록 충성한 자에게는 생명의 면류관을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명에 살고 사명을 완수하는 자의 공통점은 자기를 버리고 맡기신 분을 위해 최선을 다해 죽을 때까지 충성하고 헌신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을 바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만을 사랑하는 일념으로 충성하는 것입니다. 모세가 충성하여 일생의 건강의 복을 누렸습니다. 베드로가 충성하여 그 이름이 세계사에 남았습니다. 충성스럽게 사명을 감당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명 감당에는 마귀의 도전이 있습니다.

사명을 감당하면 이생과 내세에 상급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마귀의 도전과 위헙과 공갈과 협박이 있습니다. 충성된 종들의 삶의 이면을 보면 이런 도전을 받고 굳건하게 서서 이기고 죽으면 죽으리라 라는 각오로 사명을 위해 나아갈 때 승리하였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축복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에게는 겟세마네동산의 시련이 있음을 봅니다. 그 사명이 중대하기에 사탄은 이 십자가를 지지 못하게 하려하여 유혹합니다. 미혹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땀방울이 핏방울 되도록 기도하시고 십자가를 지실 것을 결단하십니다.

우리의 사명을 바로 감당하기 위해 우리도 깨어 기도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아니하고는 도저히 세상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습니다. 육체의 정욕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이생의 안목을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쾌락의 유혹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유다를 보세요. 주님 섬기고 복음 위해 죽어야 할 가룟 유다는 왜 주님이 자신을 부르신지를 바로 알지 못합니다. 예수님 따르며 자신의 부귀공명에 깊은 관심을 가집니다. 눈앞에 있는 이익과 자기 자신의 무사 안일을 위해 사명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스승 되신 예수님을 은 30에 파는 배신자가 되었고 목메어 죽었으며 영원히 오명을 남기는 불쌍한 인간이 되었습니다. 다른 제자들을 보세요. 저들은 한결같이 목숨 바쳐 사명을 완수하므로 위대한 이름을 남기지 않았습니까?

사명을 감당하여 축복을 누립시다.

딤전 1:12에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과거에는 어떤 사람이었는데? 13)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14)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사명은 내가가 아닌, 겸손히 주님의 옷을 입히시고 하나님께서 나를 충성 되이 여겨 일을 맡기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역자나 성도 여러분은 주님 주신 사명을 충성되이 감당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나 맡은 자리에서 생명을 다해 사명을 감당하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내가 기쁘게 감사하며 사명을 감당함으로 교회가 은혜로워지기를 축원합니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의 나라는 날마다 확장되는 역사가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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