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 천당 가시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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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 천당 가시겠소
한 개척교회 전도사가 설 명절 귀성길에 올랐습니다. 고속도로에 오르자 눈이 내렸고 설상가상 차량의 시동이 꺼져 레커차 도움을 받아야 했습니다. 전도사 부부와 첫돌을 막 지난 딸아이는 레커차 조수석에 앉아 가까운 정비소로 향하게 됐습니다. 이동 중 레커차 운전자는 개척교회 전도사 가족이 고향 집에 내려가는 길임을 알게 됐습니다. 그런데 레커 차량이 톨게이트를 지나쳐 갑니다. 전도사가 운전자에게 묻습니다. “어디로 가시나요?” “어차피 제 차에 타셨으니 고향 집까지 모셔다 드리려고 합니다.” 그때 다른 레커차에서 무전이 옵니다. “형님 지금 어디세요?” “손님 모시고 고향 가는 길이야.” “형님 오늘 고향 가신다는 말씀 없으셨잖아요?”
그제야 전후 사정 이야기가 오갑니다. 그러자 무전을 해온 분이 기분 좋게 말합니다. “어이쿠 형님, 죽어서 천당 가시겠소.” 믿지 않는 사람은 좋은 일을 하면 천당에 간다고 생각합니다. 새해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미루거나 외면하지 않기를 소원합니다.
우린 알아야 합니다. 이방인들도 천당과 지옥을 말 할 때 저렇게 착한 사람이 천당 간다고 한다면? 우린 정말 성도로써 당연히 구원 받아 천국 가겠지? 가 아니라 착한 일을 더 많이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만약 천국 가는 사람들이 악하게 악을 행한다면? 과연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요?
일방통행 쌍방통행
영화 ‘러브레터’의 여주인공 히로코는 죽은 연인을 그리워하며 그의 옛 주소로 편지를 보냅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그녀는 답장을 받고, 영화는 그 사연을 풀어나갑니다. 이미 죽은 사람이 답장을 보낼 리 없습니다.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돌아온 답장 때문에 히로코의 가슴은 뛰고 그의 잿빛 인생은 환하게 밝아집니다. 인격적 교통이 얼마나 위대한지 생각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돌아오는 반응이 있는 삶과 없는 삶은 전혀 다릅니다. 돌아오는 반응은 마치 꺼진 등불이 다시 켜지는 것과 같습니다. 살아있는 관계인지 죽은 관계인지 판단하는 잣대는 관계의 방향성입니다. 인격적 관계가 일방통행이면 죽은 관계입니다. 쌍방이면 살아있는 관계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 본질은 ‘교통’, 즉 쌍방입니다. 성령은 우리와 교통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성경은 ‘성령의 교통하심’(고후 13:13)을 드러냅니다. 많은 기도도 중요하지만 교통의 확신이 그보다 더 중요합니다. 우리는 영적 존재이기 때문에 내 영이 하나님과 제대로 교통하고 있는지 스스로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살아있는 교통은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합니다.
우리는 삶에 소통이 꼭 필요합니다. 대화는 룰이 필요하고 게임에도 룰이 있으며 스포츠나 유행에도 룰이 있습니다. 특별히 성도에겐 소통과 화통이 결국 소화가 잘되는 평강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을 해도 대답이 없습니다. 죽지 않은 사람인데 죽은 사람 보다 더 차갑습니다. 과연 그리스도인일까요? 우린 모두 죄인입니다. 그러나 그 죄를 고백하고 겸손히 나와 이웃을 용서하며 사랑하게 된다면 그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말을 이쁘게 하는 사람과 말을 차갑게 하는 사람과 말을 빈정거리며 하는 사람과 말을 무섭게 하는 사람. 그리고 말을 예수님처럼 하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와 함께하고 싶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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