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챤 문화선교

초대교회

기도와 찬양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본문 : 왕상 19:9-14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강수인
댓글 0건 조회 4회 작성일 24-12-07 23:05

본문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본문 : 왕상 19:9-14

9) 엘리야가 그 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머물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10)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1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12)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13)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14)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본인 힘을 사용하면서도 보이지 않게 하심을 힘 빠진 엘리야 에게 알려 주십니다.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관심은 지극하신 것입니다. 돌보시기 위해, 사랑하시기 위해, 복을 주시기 위해 하나님은 한시도 우리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시며 수시로 부르시고, 찾으십니다. 이에 대한 인간의 반응은 어떠한가? 진정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신 관심만큼 우리는 하나님을 찾으며 부르짖는가? 결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우린 잘 압니다. 오히려 양같이 제 갈 길로 흩어지며, 하나님 앞에서 숨으려 하고 뒤로 물러서려는 것이 인간의 죄악된 본성이라 하겠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지금도 부르십니다.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이 물음은 누구를 향한 것인가요?

◆아담과 같은 자. 죄를 짓고도 회개치 않으며 그 자리에 머물러 고민하고 있는 자를 부르십니다. (창 3: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인도네시아의 티몰족은 신앙을 '마음으로 순종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순종이 없는 참 신앙은 있을 수 없다는 말이죠. 적도 아프리카의 카레족은 신앙을 '듣고 영혼에 받아들이는 것'이라 합니다. 듣고 배척하는 것이 아니고, 영혼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와 같이 신앙이란 듣고 순종하며 따르는 것이라는 점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동일합니다. 들리죠?

◆요나와 같은 자. 하나님은 특별한 사명을 받고도 그 명령대로 준행치 않고 떠나는 자에게도 외치십니다. (욘 3:1).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하신지라.”

◆도마와 같은 자. 믿는다 하면서도 굳건한 믿음을 갖지 못하고 수시로 흔들리는 자에게 하나님은 다시 한 번 손을 내미십니다(요 20: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이웃의 도움 받는 것을 거절하던 교만한 노부부가 아사와 폐렴으로 죽은 사건이 보도되었습니다. 이웃의 증언인즉 그 부부는 누구의 방문도 허락하지 않았으며, 급기야는 배고픔을 못 이겨 굶주린 채 죽어갔던 것이죠. 호의를 거절할 만큼 교만한 이들은 수없이 많습니다. 그들은 지금도 영적으로는 이 세상에서 멸망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놀라운 선물(호의)이며, 그의 안에 있는 영생은 값없는 은혜입니다. 이것을 거절하는 자는 가장 미련하고 교만한 자인 것입니다.

◆베드로와 같은 자. 수 없이 주님 보다 앞서고 또 상대적으로 두려워서 주님을 부인한 자라도 찾아가서 사랑으로 중심을 물어 보십니다. (요 21: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하나님은 오늘도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을 듣는지를 확인하십니다.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 두 가지로 오늘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열겠습니다.

▮어느 양로원에 기거하고 있는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열광적인 야구팬이었는데 마침 프로야구 올스타전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어느 주일 아침, 할머니는 오후 3시에 결정적인 게임이 중계되는 것을 몹시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후 3시에는 이웃 교회에서 목회자가 오셔서 예배를 드리는 시간이었습니다. 할머니는 야구팬이기도 하지만 아주 경건한 신앙인이었기 때문에 어려운 결정을 해야 했습니다. 주일 아침이 되자 요양사가 “할머니 예배에 갈 거예요 아니면 야구중계 보실 거예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직 결정을 못했어요. 누가 공을 던지느냐, 그리고 누가 설교를 하느냐에 달려있지요.”

▮오래 전, 어느 군 형무소에 두 사람의 사형수가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전방에서 총기를 난사하다가 민간인 몇 사람을 죽였고, 또 한 사람은 월남전에 참전했다가 분노를 참지 못해서 동료를 죽였기 때문에 사형선고를 받아 집행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총기를 난사한 사형수가 죽기 전에 고기를 실컷 먹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돈도, 사식을 넣어줄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결과 자기의 몸을 대학병원에 해부용으로 팔기로 하고 선금 10만 원을 받았습니다. 죽기 전에 실컷 먹고 싶었던 고기를 주문해서 먹었습니다. 그러나 그토록 먹고 싶었던 고기지만 3만 원어치 이상을 먹지 못했습니다. 그가 맛있게 먹고 있을 때 옆 친구가, “야. 그거 맛있겠구나.”하니까. “맛은 무슨 맛. 내 몸뚱이를 팔아서 먹는 고긴데” 하면서 숙연해했습니다. 결국 그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동료를 죽인 사형수는 자신의 총재산 15,000원이 있었습니다. 자기도 이것으로 먹을 것을 실컷 사 먹을까 궁리하다가. “마지막 남은 생명인데 무엇인가 좋은 일 한 가지는 하고 가야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중에, 어느 교회 성가대가 위문 차 왔습니다. 함께 오신 전도사님께 “무엇인가 좋은 일에 사용해주십시오”하며 15,000원을 드렸습니다. 이 돈을 받은 전도사님은 '어떤 좋은 일에 쓸까' 궁리하다가, 마침 그 교도소에 교회당을 새로 짓고 헌당하게 된 사실을 알고 부족한 돈을 더해서 아담한 강대상을 마련했습니다. 헌당식 날 그 사연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습니다. 결국 그는 사형수에서 감형되어서 무기징역수가 되었습니다.

야구팬 할머니나 사형수들이나 그들은 자신의 생각을 따라서 결정을 했고 그 결정의 결과를 얻게 될 것입니다. 오늘 예배에 오신 여러분은 이 자리에 오면서 갈등을 느낀 일은 없었습니까? 사람은 누구나 매일 많은 일들을 결정하고 실행하게 됩니다. 그리고 일을 결정할 때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선택의 기준을 적용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선택하고 결정한 일의 결과에 대하여 책임을 지게 됩니다. 이것은 영적인 일에 있어서도 동일합니다. 로마서 2:6-8절에서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고 하십니다. 여러분이 일을 결정할 때의 결정 기준은 무엇입니까? 자신의 생각과 계획? 자신의 유익과 세상의 부귀영화?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 이 시간에 주시는 말씀을 통하여 자신의 결정기준을 돌아보며 지혜로운 결정을 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첨부파일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총회신학교
CCS
쥬빌리 통일구국기도회
대한민국전자정부
행복발전소
Prayer
대한성서공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