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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 - 사 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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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수인
댓글 1건 조회 3회 작성일 23-09-01 08:53

본문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

(사 6:1-8)

오늘 본문 이사야 6장 1절에 보면 웃시야가 죽던 해에 일어난 사건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웃시야 왕은 열여섯 살에 왕이 되어서 52년 동안 왕 노릇을 했습니다. 그리고 역대하 26장에 보면 그는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행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잘 섬겨서 축복을 받아 나라가 아주 부강해졌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하나님을 잘 섬겨서 축복받아서 모든 것이 잘 되고 부강해질 때 조심해야할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교만해 지지 않도록 조심해야하는 것입니다. 남보다 은혜를 많이 받으시는 분도 조심해야 할 것이 바로 교만해지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은혜를 많이 받으면 저절로 겸손해질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천국 가는 날까지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이 항상 조심해야 할 것이 교만해지지 않는 것입니다. 기도를 많이 하시는 분도 가장 넘어지기 쉬운 부분도 교만입니다. 기도를 많이 하니 존경 받고 은혜도 많이 받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칭찬하고 우러러봅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교만해지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헛수고가 되고 맙니다. 사탄이 우리를 공격하는 한 가지 방법이 신앙생활 잘하고 기도 많이 하고 전도도 많이 하고 봉사도 많이 하고 헌금도 많이 하는 모범적인 성도들에게 교만을 주어서 쓰러뜨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만이라는 것이 얼마나 우리에게 해가 되는지 모릅니다. 교만하면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교만하면 하나님이 미워하십니다. 교만한 자를 하나님이 버리십니다. 교만하면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그런데 웃시야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잘 섬겨서 축복을 받아 나라가 부강해지고 살기 좋게 되었는데 불행하게도 교만한 마음이 들어와서 대 제사장이 해야 할 하나님 앞에 분향하는 일을 자기가 하겠다고 합니다. 하나님 앞에 분향하고 제사하는 일을 제사장이 하도록 맡기지 않고 자기가 열심히 있다고 나서니까 제사장들이 "왕이여, 안 됩니다." 하고 말렸습니다. 그러면 그만 두어야하는데 도리어 화를 내고 말았습니다. 그 화는 교만함에서 나온 것입니다. 노를 발하는 순간 갑자기 이마에 문둥병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문둥병이 생기면 당장 내쫓게 되어있습니다. 성소에는 문둥병 환자가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 날부터 별궁에서 육십팔 세에 죽을 때까지 혼자 살다가 죽었습니다. 혼자 사는 것처럼 불행한 것이 있을까요? 웃시야는 가족들과 함께 하지 못하고 혼자 살다가 죽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교만을 미워하시는지 아십니까? 저는 교만해져서 넘어지는 사람을 많이 보았습니다. 목사님들 중에서도 교만해지더니 이상한 일을 하고 장로님들 중에도 교만해지더니 이상한 일을 하고 화를 내다가 그동안 공로도 다 날아가 버리고 마는 것을 보았습니다. 교만해지면 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웃시야 왕이 문둥병에 걸렸으니까 왕은 물론이고 온 백성들이 기도를 얼마나 많이 했겠습니까? 그러나 끝까지 병은 낫지 않았고 결국 그대로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낙심이 되었을 까요? 어떤 사람은 섭섭한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분노를 느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믿을 마음이 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나라가 뒤숭숭하고 왕은 죽고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 상태니까 어떤 일을 당할지 모릅니다. 나라가 위태롭고 걱정이 되니까 오늘 본문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 기도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떤 문제가 있든지 그것 때문에 기도한다면 축복으로 바뀝니다. 아멘. 어떤 문제가 있든지 그것 때문에 기도하기로 결심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엎드리면 그 순간 이미 축복은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축복으로 바뀝니다. 그렇게 생각할 때 여러분들이 오늘밤 이 자리에 나온 것이 얼마나 축복이 되는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당장은 잘 모르지만 멋 훗날 돌이켜보면 문제가 크든지 작든지 문제를 안고 하나님 앞에 나아와 여러분처럼 기도하는 사람들이 받는 은혜와 축복이 얼마나 큰지 두고두고 감사하게 될 줄 믿습니다.

이렇게 어려움이 왔을 때 특별히 기도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우선 보너스 축복을 받습니다. 바로 큰 은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어려운 문제가 생겼을 때 특별히 작정하고 기도하다보면 특별한 은혜를 받습니다. 이것이 축복입니다. 왜 은혜 가운데 살지 못하느냐 하면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형식적으로 기도할 뿐 특별히 하나님 앞에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은혜를 받을 턱이 없습니다.

그리고 은혜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능력을 주십니다. 은사가 나타납니다. 그래서 큰 일꾼이 됩니다. 교회에도 어려움이 생길 때가 있는데 특별히 기도하다보면 우선 큰 은혜를 받습니다. 그리고 문제가 해결되고 교회는 부흥됩니다. 교회가 부흥하는 비결이 여기에 있습니다. 여러분, 수영로 교회가 처음부터 지금같이 순탄하고 은혜롭게 지내온 것이 아닙니다. 처음 개척했을 때 말썽꾸러기가 많고 무례한 사람이 많고 양심도 없고 싸움꾼들과 이간질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얼마나 골치가 아팠는지 모릅니다. 저는 그런 것을 그냥 참고 넘어가지 못하는 사람이라서 날마다 강단에서 울면서 부르짖었습니다. 너무 속상하면 밤새도록 하나님 앞에 "아무개 집사를 거두어가시든지 날 거두어가시든지 둘 중에 하나 택하십시오." 하면서 기도했습니다. 해산의 수고를 하듯 기도하다보면 주님께서 불을 내려주실 때도 있고 주님이 말씀하실 때도 있고 주님을 만나는 축복을 받게 되고 간증거리가 생겼습니다. 그러면 그 순간 기쁨이 충만해지면서 능력을 받아 기도의 능력이 생기고 말씀에 능력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은혜를 받으면 마귀들이 인사도 안하고 갔습니다. 문제가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러면서 교회가 부흥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이 그렇습니다. 문제를 통해서 목사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시고 기도하는 종에게 은혜를 주시고 능력을 주시고 응답해주시고 부흥을 주셨습니다. 이 원칙이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항상 반복이 되었습니다. 항상 체험을 하고 해결하다보니 이것이 쌓여서 교회가 계속 성장하게 되고 저도 그 만큼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가 부흥된 과정이 이렇습니다.

여러분, 문제가 있을 때 문제를 안고 고민만 하지 마시고 오늘밤 이 자리에 나온 것처럼 하나님 앞에 나오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부르짖으시기 바랍니다. 너무 급하면 금식하십시오. 너무 급하면 밤새도록 목이 터져라 부르짖으십시오. 그리고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십시오. 반드시 하나님이 응답하시고 은혜 주시고 능력 주시고 간증거리가 생깁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이사야는 특별히 기도하다가 큰 은혜를 받고 큰 사명을 받았습니다. (6장 8절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이사야는 능력 있는 하나님의 종이 되어서 맡은 사명에 충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사야가 기도하다가 은혜를 받으니까 영안이 밝아 졌습니다. 그래서 두 가지를 보게 되었습니다.

첫째로는 1-4절까지 보면 하나님의 보좌를 보게 되었습니다.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이같이 화답하는 자의 소리로 말미암아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의 연기가 충만한지라. 아주 희한한 광경을 본 것입니다. 얼마나 큰 체험을 했습니까?

두 번째로는 5절에 보니 자기 자신의 죄와 허물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다시 말하면 자기가 여러 가지 죄를 지었지만 가장 거리끼는 죄가 못할 말을 많이 하고 더러운 말을 많이 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사람이 범하는 죄 가운데 가장 많은 죄가 마음으로 범하는 죄이고 그 다음에는 입술로 범하는 죄입니다. 알게 모르게 우리가 말로 얼마나 많은 죄를 범하는지 모릅니다. 여러분에게 만약 이사야와 같이 영안이 밝아져서 둘 중에 하나만 볼 수 있다면 무엇을 택하시겠습니까? 하늘 보좌를 보는 것이 좋습니까? 자기 죄를 똑바로 깨닫는 것이 좋습니까? 자기 죄와 허물을 깨닫는 것이 사실은 더 중요합니다. 하늘 보좌를 아무리 보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자기의 죄와 허물을 볼 줄 모르고 깨달을 줄 모르면 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 것입니다. 하늘 보좌는 안 보아도 됩니다. 그러므로 이사야가 받은 은혜 중에 더 큰 은혜는 바로자기 자신을 똑바로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이사야가 자기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니까 하나님께서 사명을 맡겨주셨습니다.

◆ 성령의 역사가 일어날 때 두 가지가 일어납니다.

▶저는 성령의 체험을 많이 해서 성령이 역사하시면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는 것을 압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오순절에 성령의 불이 임하는데 그 불의 혀 같은 것이 보이고 성령의 불이 각사람 위에 임하면서 모두 방언을 했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일어날 때 모든 사람이 알고 깨달을 수 있는 겉으로 나타나는 체험적인 역사가 있습니다. 어떤 표적이 일어나기도 하고 음성을 듣기도 하고 기적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제가 아는 어떤 전도사님은 몸에 불을 받았는데 불 받은 자리에 자국이 생겼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성령이 강하게 임하실 때 비가 억수 같이 쏟아지는 그 속에서 "주여!" 외치는 순간 불이 임하셔서 한밤중에 불이 임하니까 얼마나 확실합니까? 그래서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하고 기도하다 보니 몇 시간이 지나가버렸습니다. 이렇게 아주 확실하게 불이 임할 때도 있습니다. 또 불이 그렇게 눈에 보이게 임하지 않아도 우리 몸을 뜨겁게 하며 불이 임할 때가 있습니다. 몸이 뜨거워지니까 자기가 압니다. 그리고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렸을 때도 교회에 나가면 예배당 입구에서 얼마나 향기로운 냄새가 나는지 하나님께서 저를 환영해 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어떤 때는 주님이 말씀을 해주시는데 정확하게도 한 번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정확하게 말씀하십니다. 막연하게도 떠오르는 것이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하는 것은 스스로 속이는 것입니다. 주님이 왜 분명히 말씀하지 않으십니까? 똑똑하게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표면적으로 일어나는 역사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성령께서만 그렇게 하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탄도 마귀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악령도 그런 짓을 하면서 속입니다. 악령도 불이 임하게 하고 악령도 우리 몸을 뜨겁게도 하고 얼마든지 표적을 행하기 때문에 표적을 너무 좋아하면 안 됩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내면적인 역사입니다. 성령이 역사하면 성령의 영이 우리의 영을 밝게 비추어주셔서 깨달음이 오는데 이 깨달음이 시작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성령이 역사하실 때 제일 먼저 내 죄와 허물을 깨달아지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우리의 잘못이 무엇인지 허물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십니다. 성령의 역사의 시작은 회개부터 시작합니다. 이렇게 말씀 듣는 중에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나고 눈물 흘리며 자기 죄를 깨닫고 회개하면 이것은 확실한 성령의 역사입니다. 마음속에 일어나는 역사가 중요합니다.

제가 포항의 어느 큰 교회에서 집회를 하는데 첫째 날 저녁에 집회하고 다음 날 새벽 예배하고 낮 집회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 뒤에서 어떤 사람이 왔다 갔다 하고 있었습니다. 설교 도중에 참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그냥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점심시간에 담임목사님과 식사를 하는데 저에게 "오늘 저는 수지맞았습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알고 보니 그 교회에 아주 골치 덩어리인 장로님이 있는데 주일 성수도 안하고 십일조도 안하고 자기 멋대로 예수 믿는 사람이라 모든 장로님의 망신은 다 시키고 돌아다니는 사람이었습니다. 온 교회의 암 덩어리 같이 고통스러운 존재였는데 그 분이 집회하는데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은혜 받고 회개하고 그 날 낮에 뒤에 안내하던 부목사에게 가서 자기가 그동안 떼먹은 헌금을 드린다고 봉투를 달라고 해서 헌금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담임목사님이 그렇게 좋아했던 것입니다. 얼마나 축복인지 모릅니다. 여러분, 이렇게 회개하고 새사람이 되는 것이 은혜의 역사의 시작입니다. 반드시 이 과정을 거쳐야합니다. 이렇게 회개하게 될 때 더 큰 은혜를 받게 되고 아주 겸손해지고 거룩하게 살게 됩니다. 오늘밤에도 이런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깨달아집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을 살려주신 은혜,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십자가를 져주신 예수님의 은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주신 은혜, 이 모든 은혜를 생각하니까 너무 감사하고 기쁨이 충만해져서 마음에 천국이 이루어집니다. 은혜 받으면 기쁨이 충만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충만해집니다.

▶세 번째로는 사명을 깨닫게 됩니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깨달아집니다. 나에게 이렇게 큰 은혜와 사랑을 베풀어주신 하나님을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할지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충성하는 일꾼이 됩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를 드려볼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기쁘시게 찬양을 할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생활을 어떻게 하면 할까,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주일을 보낼까, 봉사를 해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마음을 가지고 모든 일을 행하니까 정말 귀한 보배로운 일꾼이 됩니다. 이런 일꾼 한 사람이 이렇게 은혜 받지 못한 백 명보다 낫습니다. 은혜 받은 다섯 명만 모여도 못할 것이 없습니다. 그 만큼 일꾼이 중요합니다. 오늘 여기 계신 여러분들은 모두 그와 같은 일꾼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우리 교회는 앞으로 모든 것이 다 해결되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오늘밤 이런 일꾼들이 다 되셔서 우리 교회에 큰 부흥을 가져오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렇게 깨닫는 역사가 일어난 다음에 따라오는 것이 있습니다. 깨달은 만큼 변화가 되는 것입니다. 아주 아름답게 변합니다. 성품이 아름다워지고 행동이 아름다워지고 말하는 것이 아름다워지고 얼굴도 아름다워집니다. 은혜 받은 사람의 눈동자를 보면 다릅니다. 생명이 있고 빛이 있고 사랑이 있습니다.

이사야도 죄를 깨닫고 회개한 후에 변화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변화된 이사야를 크게 들어 쓰시니까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변화된 하나님의 종에게 능력을 주셔서 귀하게 쓰십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능력이 나타날 때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그 능력은 자신의 능력이 아니고 나를 통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 것뿐입니다. 마치 그것이 내 능력인 것처럼 행세를 하고 허세를 부리고 교만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그 때부터는 벌써 하나님의 능력은 떠나고 마귀가 가짜 능력을 주어서 행세를 하게 해서 망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9장 12절에 보면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가고 악귀도 나갔다고 했습니다. 대단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사도바울에게 능력이 임해서 나타나니까 병자도 고치고 죽은 자도 살리며 굉장했습니다. 사도바울의 손수건을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병이 낫고 귀신이 나가버리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렇게 사도바울을 통해서 큰 기적과 이사가 나타날 때도 있었는데 디모데 전서 5장 23절에 보면 사도바울이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위장과 자주 나는 병을 위하여는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 디모데가 너무 소심하고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는지 자주 속이 안 좋았던 모양입니다. 예전 같으면 한번 기도해주면 끝날 것입니다. 디모데를 위해서 기도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래도 안 나으니까 그 당시는 위장약이 없으니 포도주를 약으로 조금씩 먹으라고 합니다. 또 디모데 후서 4장 20절에 보면 에라스도는 고린도에 머물러 있고 드로비모는 병들어서 밀레도에 두었노니. 병들어서 두고 왔다고 합니다. 기도했는데도 낫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그 전에 능력을 행하고 손수건을 얹기만 해도 병이 낫고 귀신이 물러난 것은 사도바울의 능력이 아닌 것입니다. 사도바울을 도구로 하나님이 쓰신 것뿐입니다. 사도 바울을 세워서 하나님의 능력이 직접 역사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드리면 여러분들이 확실히 깨달을 수 있지요?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우리를 통해서 병자를 위해 기도할 때 병이 나았다든지 귀신들린 자를 놓고 기도해서 귀신이 나갔다고 했을 때 교만해지지 말아야합니다. 착각하지 말아야합니다. 내가 능력이 있고 권세가 있다는 생각을 하지 말기 바랍니다. 다만 나를 도구로 써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행하신 것뿐입니다. 하나님이 그 능력을 행하지 않으시면 우리가 기도해도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역사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사도바울을 무시하면 안 됩니다. 그 대신 사도바울에게는 말씀의 영감을 주어서 감옥에서 편지를 보내서 오늘날 바울 서신이 우리에게까지 남아있어서 성경을 통해 우리가 은혜를 많이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전하도록 쓰신 것입니다. 말씀을 기록해놓아야 이천년 후에 우리들도 그 말씀에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의 병을 고치고 귀신 쫓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천년 후에 우리들을 위해서도 남는 일을 하려고 하면 말씀을 남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더 중요한 일을 시키기 위해서 은사가 안 나타나게 하신 것입니다. 은사가 자주 나타나면 사람들이 기도를 받으러 자꾸 올 것이니까 언제 편지를 쓸 수 있었겠습니까? 하나님이 알아서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모두가 하나님이 들어 써주시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써 주시느냐 써주지 않으시냐가 중요합니다. 아무리 귀해 보이는 사람이라도 하나님이 써주지 않으시면 그 사람을 통해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열매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볼 때 부족해 보여도 하나님이 도구로 써주시면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도구일 뿐입니다. 모세가 들고 있는 지팡이는 지팡이일 뿐입니다. 우리는 그 지팡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지팡이를 통해서 기적을 일으키신 것입니다. 그 지팡이가 능력이 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행하신 것입니다. 홍해를 가르신 것도 하나님이 행하신 것입니다. 모세가 지팡이로 가리키며 갈라지라고 해서 홍해가 갈라진 것이 아닌 것처럼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써주시기만 하면 우리를 통해서도 엄청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로 내가 어떤 일을 얼마나 많이 하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내가 어떤 인간이 되었느냐가 중요합니다. 여러분, 항상 조심하십시오. 내가 어떤 일을 얼마나 하고 나는 어떤 일을 이렇게 열심히 하고 내가 굉장한 것처럼 큰 소리 치기 쉬운데 하나님은 그것보다 더 중요하게 보시는 것이 그 사람이 어떤 인간이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먼저 사람을 보십니다.

창세기 4장에 보면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하나님께서 두 가지를 보셨습니다. 인간을 먼저보시고 그가 드리는 제물을 보셨습니다. 그런데 아벨이라는 인간과 그가 드린 제물은 하나님이 받으셨지만 가인이라는 인간과 그가 드린 제물은 하나님이 받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먼저 보시는 분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알아야합니다. 요한 일서 3장 12절에 보면 가인 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아우를 죽였으니 어떤 이유로 죽였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의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 하나님 앞에 아무리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드려도 악독한 인간을 하나님이 기뻐하실까요? 절대 아닙니다. 잠언 15장 8절에 보면 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신다고 했습니다. 악한 인간이 제사를 드릴 때 기뻐하시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괴로워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변하여 새사람이 되어야할 줄 믿습니다. 에베소서 5장 8절에 보면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그들이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들이라. 우리가 과거에는 어둠에 속해있었다 할지라도 이제는 주안에서 빛이요 빛의 자녀입니다. 완전히 변하여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빛의 자녀로서 빛의 열매를 맺어야합니다. 악한 성품을 다 버리고 착한 성품을 갖고, 불의한 성품을 버리고 의로운 성품을 갖고, 거짓된 성품을 버리고 진실한 성품을 가지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아야합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일을 많이 했지만 자기 자신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을까봐 얼마나 두려워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고린도 전서 9장 27절에 보면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자기는 복음을 많이 전했는데 정작 자기 자신이 버림을 받으면 무슨 소용입니까. 그런 일을 당할까봐 자기 몸이 자꾸 죄를 지으려고 하니까 자기 몸을 쳐서 복종시켰다고 합니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자기 속에 육의 욕망이 있고 자기 속에 육신의 잘못된 속성이 남아 있으니까 자기와의 싸움을 그렇게 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인간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얼마나 많이 하느냐 보다도 내가 어떤 인간이 되느냐가 중요합니다. 여러분, 강아지도 주인을 알아보고 주인이 자기를 싫어하는지 좋아하는지 잘 압니다. 그래서 자기를 좋아하는 주인이 오면 냄새만 맡아도 좋아서 미리 나와서 꼬리를 치며 반긴다고 난리법석입니다. 그런데 자기를 싫어하는 주인이 오면 자기 집에 쏙 들어가서 눈치만 보고 있습니다. 개들도 사람을 알아봅니다. 하물며 사람들이 모르겠습니까? 그 사람이 지금 성질이 어떤지 어떤 인간인지 어떻게 사는지 다 압니다. 우리는 유리집속에서 삽니다. 다른 사람들이 안 보는 것 같아도 집안에서 무엇을 하는지 다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 자신을 항상 돌이켜보며 반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정말 은혜 받은 사람인가 한번 생각해 볼 수 있기 바랍니다. 나는 성품이 좋은 사람인지 한번 반성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진짜 좋은 사람은 지나면 지날수록 더 좋고 세월이 갈수록 더 좋아지는 사람입니다. 지낼수록 안 좋으면 진짜 안 좋은 사람입니다. 우리 교회는 지나서도 좋은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 교회에 오래 나오신 분들을 보면 어쩌면 그렇게 변함없이 목사를 사랑하고 기도해주는지 참 존경스럽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좋은 성품을 가지고 계실까요? 은혜 받지 않으면 이렇게 좋은 성품을 갖지 못할 줄 믿습니다. 나는 충성된 사람인지 반성해 보아야합니다. 누구나 처음에는 잘합니다. 그러나 세월이 갈수록 게을러지고 불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용두사미입니다. 집사나 장로가 될 때도 처음에는 굉장하게 충성할 것같이 의욕이 충천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다보면 평신도만 못하게 되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먼저 된 자중에 나중 된 자가 많고 나중 된 자 중에 먼저 될 자가 많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과거에 충성했다고 그것만 붙잡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지금 내가 충성하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과거에는 불충했고 부족했더라도 지금 하나님 앞에서 충성하면 그것이 그 사람에게 가장 빛나는 것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옛날만 들먹이지 말고 지금 내 모습이 어떤지 보아야합니다. 또 나는 얼마나 사랑의 사람인가 반성해 보아야합니다. 내가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스스로 반성해 보아야합니다. 또 나는 믿을만한 사람인가 나는 얼마나 진실성이 있고 신뢰성이 있고 책임감이 있는지 반성해 보아야합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철저한 회개가 있어야한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타락된 성품을 회개해야 합니다. 성품이 가장 큰 문제가 됩니다. 악독한 성품, 불의한 성품, 진실하지 못하고 교만한 성품, 너그럽지 못하고 남을 미워하는 성품, 경솔한 성품, 혈기와 분노를 잘 내는 성품, 게으른 성품, 음란한 성품을 하나님 앞에 철저히 회개해야합니다. 우리에게는 타락의 근성이 남아있습니다. 사탄은 계속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노리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너무나도 타락하기 쉬운 세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깨어 있어야합니다.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철저히 회개하고 항상 정신을 차리고 깨어 기도하면서 살아서 언제나 승리하시고 하나님이 높이 들어 쓰시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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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인님의 댓글

강수인 작성일

사람이 도리를 아는 사람은 그 행함으로 칭찬과 함께 존경까지 받게 됩니다.
하물려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얼마나 큽니까 그 도리를 감사와 믿음의 삶을 통해 보이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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