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가 잘 익은 커다란 나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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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과가 잘 익은 커다란 나무에서 열매를 따서 그 사과를 칼로 반을 가릅니다. 무엇이 보일까요? 그렇습니다. 씨앗입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있는 씨앗을 반을 가릅니다. 무엇이 보입니까? 하얀 속이 보입니다. 그리곤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 씨앗이 지금 열매를 딴 나무가 되는 것입니다. 과연 우린 우리의 자녀를 씨앗을 가르고 아무것도 안 보이는 즉 없는 것으로 보입니까? 아닙니다. 우린 보이지 않지만 씨앗의 미래를 볼 수 있는 눈이 있습니다.
▲ 예수님은 제자를 자라도록 제자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역사를 그대로 삶 가운데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가 다음 세대를 위해 해야 할 일은 그들의 소릴 마음으로 들어 줄 솔로몬의 지혜를 구해야 할 것이며, 나아가서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리얼하게 사과의 씨앗과 사과라는 열매와 그 본체인 나무와 뿌리를 볼 수 있도록 함께 주님께 붙어야 합니다.
기도 24365. 참조.
◆“복음은 우리의 가치체계뿐 아니라, 행동양식까지도 변화시킨다. 나를 움직일 수 없는 믿음은 믿음이 아니며, 나를 변화시킬 수 없는 복음은 나에게 더 이상 복음이 아니다.”
● (마태복음 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다시 말해 말씀이 우리의 가치체계를 바꾸고 행동양식을 변화시키는 데까지 나아가지 않으면 아직 복음화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를 움직일 수 없는 믿음은 믿음이 아니며 나를 변화시킬 수 없는 복음은 더 이상 자신에게는 복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위대한 모세는 이스라엘과 영원히 함께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통해 여호수아를 준비시키셨습니다. 40년 동안 모세를 지켜보며 양육된 여호수아는 모세와 같은 동일한 생명으로 이스라엘을 이끌어 가나안 정복을 이룰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마침내 여호수아 11장은 여호수아의 승리를 선포하며 12장에 이르러서는 여호수아가 멸망시킨 왕의 목록들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3장에 들어서자 하나님은 이미 늙어 그 발을 거둘 때가 이른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의 차트를 펼치시며 아직 정복되지 않은 가나안 땅을 나열하십니다. 그들이 다 정복했다고, 다 끝났다고 여긴 그 시점에, 정복되지 않은 땅이 많다고 하시며 그분의 남은 과업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마치 이제 복음이 지구를 한 바퀴 돌아 정복되지 않은 땅은 얼마 남지 않았다고 보고되는 이 시점에 이미 복음을 받았던 지역들이 정복될 땅(세속주의, 인본주의와 강신술과 다른 철학으로 초토화된 유럽이나 미주와 같이)으로 드러난 것과도 같이 말입니다.
▲ 그러나 이제 여호수아는 너무 늙었고, 그는 이 일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죽는 시점에는 이제 곧 죽음을 앞둔 장로들 외에는 그의 후사가 준비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죽음 이후에 그 세대 사람이 다 열조에게로 돌아간 후 일어난 세대는 ● (삿 2:8-10)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더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역사는 저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사사기의 혼란 속으로 빠져버리게 됩니다. ▲우리 천국의 백성들의 전쟁은 진리 전쟁입니다. 우리는 지금 세상 전쟁과 기근과 정치적인 대립이나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를 말하는 세상 전쟁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영혼이 죽고 사는 영적 전쟁 중입니다. 여호수아와 우리가 어찌 다른 삶을 살 수 있겠는가? 더불어 여호수아가 맞닥뜨린 위기는 오늘 우리의 위기인 것입니다. 진정한 제자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가나안 정복은 복음화가 아닙니다. 무엇으로 이 일이 가능할까? 사사기의 실패를 허용하지 않는 진정한 제자화는 말씀이 육신이 되는 과정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이는 오직 복음과 기도로만 실제가 될 수 있습니다. 말씀을 주셔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전하는 일은 바울의 요청에서처럼 기도로만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가 싸우는 이 전쟁은 진리의 대결입니다. 진리의 대결에서 진리를 지적으로 동의하거나 지식의 차원에서 공유하는 것만으로는 승리할 수 없습니다. 오직 진리를 살아내는 능력뿐입니다. 진리를 살아내는 능력이란? 살리는 의가 생명이 된 십자가에서만 가능한 일인 것입니다.
주님이 짝지어 주신 짝^-^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형제와 자매와 있었는데, 결혼을 하지 못한 형제와 자매는 교회 집사님의 소개로 맞선을 보게 되었다.
워낙에 말수가 적어서 애인이 없었던 두 사람은 멀뚱멀뚱 앉아서 커피를 시켰다.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제 이름은 [철] 입니다." "철이요?" "네. 성은 [전]이구요. 전 철이 제 이름입니다." 남자는 사뭇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갑자기 여자가 박장대소를 터뜨리며 뒤집어지는 게 아닌가. 남자는 민망한 듯 물었다. "아니, 뭐가 그리 우스우시죠?" 그러자 여자가 대답했다. “사실, 전 [이 호선] 이거든요.”
고해성사
어떤 중년 부인이 고해성사를 했습니다. “신부님, 저는 하루에도 몇 번이나 거울을 보면서 제가 너무 아름답다고 뽐냈습니다. 제 교만한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이 고백을 들은 신부가 칸막이 커튼을 조금 들어 올려 그녀를 힐끗 쳐다보고는 이렇게 답했다
“자매님 안심하세요. 그것은 죄가 아니고 착각입니다. 평안히 돌아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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