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에 부요한 자가 참된 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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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에 부요한 자가 참된 부자입니다.
● 살면서 모든 일에 불평이 나오는 것은 내 욕심이 들어나는 증거입니다.
정의를 말하는 것이라 구요? 그러나 실제 정의에 기준이 무엇입니까? 다 내 기준에서 보는 나에 기준 아닐까요? 내 기준이 법이 되고 비교와 판단의 기준이 될 때 이미 우린 교만의 자리로 올라가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조물주가 되는 신의 자리에 허락도 없이 앉는 마귀와 같은 것입니다. 회개하고 한주간도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창 3: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창 3:22)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주님의 말씀을 먹는 것이 참으로 행복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한테 들어나야 하고, 칭찬 받아야 하고, 인기가 있어야하고,,,, 이 모든 것이 내 중심의 사고에서 빚어진 병일뿐입니다. 결국은 사망입니다. 누구에게 나의 사망을 자랑 할 수 있을까요? 참된 부자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을 본받아야 합니다.
누구나 가난하기 보다는 부자 되기를 바라고 사모할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진정 우리가 추구해야 할 부요는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참된 부는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 성도들도 세상 사람과 똑같이 세속적인 부자가 되는 것만을 꿈꾸며 살아가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과는 달리,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참된 부는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는 먼저 믿음에 부요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죽어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되면,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이 딱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가 세상에서 살 때 얼마나 많은 것을 갖고 살았느냐 하는 것은 보시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는 믿음이 있었느냐만 보십니다. 그것에 의해서 천국과 지옥이 나뉘어집니다.
부요에는 물질적 부요와 영적 부요가 있습니다. 성경은 세상의 물질적 부요보다,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삶을 진정한 부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느 1급 장애인이 쓴 시 중에 ‘하나님의 은혜로’라는 시가 있습니다.
그는 “나는 부자예요. 내 말이 자유롭지 못하여도 주님과 대화할 수 있으니까요. 나는 부자예요. 내 손이 자유롭지 못하여도 주님을 전하는 말을 쓸 수 있으니까요. 나는 부자예요. 내 발이 자유롭지 못하여도 주님복음 가지고 어디든지 갈 수 있으니까요. 나는 부자예요. 나는 행복해요. 주님이 나를 사랑하고 계시니까요”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는 중증 장애인으로서 자신도 힘겨운 삶을 살고 있지만, 자신보다 더 힘든 장애인들을 위해 복음의 편지를 써서 보내는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는 세상의 눈으로 볼 때는 가난한 자이나, 믿음의 눈으로 볼 때는 심히 부요한 자입니다.
여러분은 사람이 볼 때 부자입니까? 하나님이 볼 때 부자입니까? 사람이 볼 때 부자인 것도 좋지만, 더 좋은 것은 하나님께서 볼 때 부자인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믿음에 부요한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고후 6: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참된 부자는 가진 자가 아니라 베푸는 자입니다. 있어야 베풀지요? ㅎㅎ
먼저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나는 보여지는 세상에 부자나 권력자들이 그토록 바라는 구원과 영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넉넉한 파워를 나누세요. 당신이 말하는 구원이 세상의 그 어떤 것 보다 큽니다.
1. 상대를 위한 기도는 내 기준이 상대를 비판하는 기준이 되는 것이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내 기준이 상대와 같이 낮아지는 것이라.
예를 들자면, 내가 누군가를 위해 바뀌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서 내 기준으로 만들어 달라고 하는 교만의 사람이 되어서는 안되고 오직 상대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했다면 오히려 내가 상대를 위해 낮아지고 상대를 용서하며 그를 이해하는 자리에 앉으라는 것다.
2. 세상에 믿음과 신뢰는 천국에 믿음과 신뢰와는 반대다
공과 사를 구별해야 한다고 세상은 말합니다. 그런데 무엇이 공이고 무엇이 사인가?
하늘의 공과 사는 어떻게 다른가? 세상과 완전 반대이다.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공의로 사랑하는 것이 공이고, 내가 경험하는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 사이다.
3. 우린 어쩌면 순간을 맛보기 위해 사는지도 모른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선한 일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내 의를 보이려고 일을 하는 사람도 있지요.
♥마 6:1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2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가롯인 유다는 누가 봐도 선하고 백성들 편인듯한데 자신의 것으로 하지 않고 상대의 것으로 생색을 낸듯합니다. 어찌보면 선한척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그가 자살까지 한것을 보면 확실히 자신이 볼때도 충분히 선한줄 착각하고 산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이겐 진정한 선인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가 없이 살았기에 마귀의 속임수에 빠진 안타까운 사람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도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 깨어 있음은 교만하지말고 오직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하여 듣는 삶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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