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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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린 소녀
(마 25: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 선한 의도는 필수적이지만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1993년 3월, 아프리카 수단을 찾아간 케빈 카터는 “사진 보도 역사상 가장 논쟁적인 사진하나”를 찍었다. 사진의 원제목은 ‘굶주린 소녀’였다가 나중에 ‘독수리와 어린 소녀’로 바뀌었다. 카터는 아요드라는 마을 근처에서 기아에 허덕이는 어린 소녀 하나가 유엔 급식 센터로 가다가 땅바닥에 몸을 구푸린 채 쉬고 있고 그 옆으로 독수리가 다가오는 모습을 발견했다. 독수리가 충분히 가까이 접근해 좋은 구도가 잡힐 때까지 카터는 20분을 기다렸고 사진 몇 장을 찍은 뒤 새를 쫓아낸 다음 현장을 떠났다. * 그 사진은 『뉴욕 타임스』에 팔렸고, 1993년 3월 26일에 처음으로 공개됐다. 이 충격적인 사진으로 카터는 퓰리처상을 받았지만 그 소녀를 돕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센 비난을 받았다. 직업인의 관점에서 그는 정당했다. 사진 기자는 “감염의 우려 때문에 기아의 희생자들을 만지지 않도록” 교육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윤리적 관점에서 그는 어린 소녀의 고통에 무관심해서는 안 되었다. 그 아이가 이미 도움을 받고 있었다 해도 말이다. 여론의 비난과 양심적인 괴로움으로 그는 깊은 우울증에 빠졌고 2007년 7월 4일, 나이 서른셋에 자살하고 말았다.
▶ 만약 그리스도께서 죄인인 우리에게 무관심하셨다면 어땠을까? 마태복음 25장 34~46절에서 그리스도는 사람들의 고통에 대해 상반된 반응을 보이는 두 무리를 언급하셨다. 임금은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35~36절)라면서 오른편의 무리를 칭찬하셨다. 어려움에 빠진 이들에게 우리가 한 것을 예수님은 자신에게 한 것으로 간주하신다. 가장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로 하나님의 사랑을 확장하자.
♥ 요일 5:1~6. 1)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자니 또한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자를 사랑하느니라. 2)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5)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6)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 변화된 사람들과 변질된 사람들...
★ “믿음이란 하나님이 생각을 주시면 순종하는 힘이다.”
세상에 살면서 어떻게 믿음을 지키고 그렇게 살 수 있나요? 라고 말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정말 쉽습니다. 살아 있기만 하면 됩니다.
▶짠물 속에 사는 고기가 왜 짜지 않을까요? 짠물이 고기에 살을 뚫고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성도가 세상이란 짠 물에 있어도 그 짠기가 우리 안에 들어 올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우리 안에 살아계신 성령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비눌 사이로 짠기가 못 들어갑니다. ♥ 롬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생명과 부활
몇 년 전에 뉴욕에 살던 한 코미디언이 죽기 전에 이런 유언을 남겼습니다. "내가 죽으면 내 시체를 해부실습용 대상으로 기증하겠소. 특별히 하버드 대학으로 보내주길 바라오. 이것이 부모님의 소원을 들어드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오. 부모님의 평생소원은 내가 하버드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었는데, 내가 하버드에 들어가는 방법은 이 길밖에 없소." 이 사람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죽음은 역시 고통스럽다"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죽음은 웃을 수 없는 사건입니다. 우리는 타인의 죽음에 대해서 여러 가지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나 나 자신에게 죽음이 닥치면 죽음에 대해이러니 저러니 쉽게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죽음을 미화하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C. S. 루이스는 "예수님의 최대 업적은 그분이 부활의 메시지를 선포하신 것이고 그 메시지로 다시 사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지금의 삶이 당신을 좌절과 어두움과 절망에 몰아넣더라도 주께서는 부활과 생명으로 다가오십니다. 주께서는 무덤 저 건너편의 놀라운 소망을 약속하실 뿐만 아니라, 동일한 부활의 능력으로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삶을 치유하시며 나를 새롭게 하기 원하십니다. 문제는 이것을 믿지 못하는 우리의 불신앙입니다. 죽음의 극복은 불로초를 먹고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부활을 믿음으로 가능합니다. 기독교의 특성은 영혼의 불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부활에 있습니다. 기독교는 부활로 인해 모든 종교나 사상을 뛰어넘습니다.
● 부활을 설명한다면
터어키에 선교하던 선교사 한 분에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설명하려 했습니다. "나는 여행하고 있습니다. 길을 가는데 두 갈래의 길을 만났습니다. 어느 길이 내가 목적하는 곳으로 갈 수 있는 길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누군가에게 길을 물으려고 하다가 두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은 살아있는 사람이요 또 한 사람은 죽어있는 사람입니다. 내가 누구에게 길을 물어야 하겠습니까? 산 사람입니까? 죽은 사람입니까?" 그러자 그들은 말하기를 "그야 물론 산 사람에게 물어야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어찌 내가 살아 계신 예수님께 찾아가지 않고 죽어버린 마호멧을 찾아가겠습니까?"
●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 사랑은 우릴 자유케 하시려고 밀어내는 사랑이십니다.
태양이 지구를 당길까요? 밀어낼까요?
태양이 미는 힘이 셀까? 지구가 당기는 힘이 셀까?
우린 부부간에 부모와 자식 간에 그리고 선생과 제자 간에도 큰 사람이 오히려 밀어내는 것이 작은 사람에게 유익합니다.
왜냐하면 간절함이 작은 사람이 더 있어야 할 덕목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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