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믿음으로 하는 지혜로운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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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믿음으로 하는 지혜로운 선택.
히 11:1-6.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5)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어떤 무기징역수가 있었습니다. 아주 독하고 질이 나쁜 사람으로 유치장에서부터 여러 번 자해로 자살을 기도했습니다. 경찰도 고개를 흔들 정도입니다. 술 마시다 종업원을 살해했습니다. 그에게 연년생으로 두 아들이 있습니다. 하나는 아버지를 닮아서 마약 중독에다 도둑질을 일삼았습니다. 그러다 살인미수로 잡혀 아버지처럼 복역 중에 있습니다.
그러면 다른 아들은 어떨까요? 완전히 다릅니다. 결혼해서 세 명의 자녀를 잘 키우며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어요. 대기업의 지역 본부장입니다. 모두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어요. 똑같은 환경에서 함께 자라난 형제의 인생이 어쩌면 이렇게도 다를 수가 있습니까? 두 사람에게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어떻게 해서 이런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까?
그 대답은 같았어요.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란 내가 달리 어떻게 될 수 있었겠어요?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증거는 얼마든지 댈 수 있어요. 운명을 만드는 것은 환경이나 사건이 아닙니다. 그 환경이나 사건이 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믿음입니다. 믿음체계가 우리 삶을 창조하거나 파괴하는 힘을 줍니다.
1. 삶을 좋게 이용하라
아버지의 난봉과 방탕을 볼 때 당연히 불행한 느낌이 들지요. 엄마를 때리고 욕을 퍼붓습니다. 대개는 그걸 보고 나쁜 방향으로 삶의 지렛대를 사용합니다. 내 삶은 왜 이 모양이냐? 부모가 저 모양이니 내가 제대로 되겠는가? 저 피가 내 속에 있으니 성질도 운명도 다 같을 것이다. 그리고는 원망과 불평으로 벌써 절반은 아버지처럼 자포자기에 빠져 버리고 맙니다.
반대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어요. 나는 저렇게 하면 안 된다. 얼마나 많은 고통을 주위 사람들에게 주는가? 자신도 너무 괴로우리라. 나는 정반대로 행동해야겠다. 아버지의 행동을 보려 하지 않고 오히려 아픔을 보면서 눈을 돌려 친구의 행복한 가정을 그려봅니다. 부모는 서로 사랑하며 가족을 돌봅니다. 생생하게 그 모습을 반복해 그려봅니다. 그러니까 고통과 즐거움을 적절히 입력하는 것이지요. ▮앞의 경우도 고통과 즐거움이 있어요. 슬퍼하고 괴로워하지요. 아버지가 죽음을 원하지요. 그리고는 성질을 부리고 술을 마십니다. 그래서 고통과 즐거움이 자기를 망치지요. 뒤의 경우도 고통과 즐거움이 있어요. 계속 이러면 우리 집은 더 무서운 상황으로 갈 것이다. 이런 고통을 느끼며 탈출하자. 행복한 모습을 반복해 그려봅니다. 입력이 되요.
▮그런 공상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반복해서 상상하면 뇌는 현실로 기억을 합니다. 십여 번해야 합니다. 상황을 보고 가장 좋은 해석을 만들어 봅니다. 자기를 불행하다고 느낄 수도 있고 아프지만 강하게 하는 훈련으로 여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것을 삶의 지렛대로 이용하는 것입니다. 고통과 즐거움을 자기의 유익을 위해 사용하는 거예요.
▮요즈음 경기가 나빠 고생하지요? 돈이 안돌아요. 부부간에 갈등 있는 분도 있지요. 기타 여러 힘든 일이 있어요. 이때 비참함을 느끼고 걱정과 두려움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오래 가면 습관이 됩니다. 그것이 내 삶이에요. 어떻게 피할까요? 주위 사람들에게 신경질을 내서 피하지요. 우울증이나 무력감에 빠집니다. 그래서 피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신과 삶에 대한 나쁜 믿음을 가지게 만듭니다. 삶은 안되고 재미도 없어요. 교회 와서 막연히 기도하지만 삶에 대한 그림은 완전히 굳어져 있지요. 그래서 그것이 자기 인생이라고 믿어버립니다. 우리 부부는 그렇다 믿어요. 삶을 괴로워하고 상대를 미워하고 그래서 상대가 괴로워하는 것을 즐깁니다. 이것이 내가 원하는 삶인가요?
▮잔치는 즐겁기 위해서입니다. 거기서도 나쁜 것만 보는 사람이 있어요. 음식이 싸구려다. 손님이 수준이하이다. 분위기가 좋지 않다. 화장실이 지저분하다. 이런 식으로 잘못된 것을 찾아 사진을 찍어 보세요. 파티도 역겨워져요. 실제로 그렇게 사물을 보도록 훈련된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자신이 그런 줄도 모르고 삶이 그런 것인 줄 알고 있어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내가 보고 느끼는 것은 내 믿음의 결과입니다. 내 앞으로 될 일을 예측하는 것도 내 믿음의 결과입니다. 나쁘게 경험하고 나쁜 것을 기대하는 것은 나쁜 믿음입니다. 좋은 경험과 기대는 좋은 믿음으로 합니다. 스스로 물어보세요. 내가 경험하는 것과 기대하는 것이 내가 원하는 것인가?
2. 좋은 믿음을 훈련하라
▮일흔 살로 접어든 두 여인이 있었어요. 한 사람은 이제 인생이 끝나가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몸이 점점 더 망가져 가니까요. 그래서 술과 담배에 빠집니다. 화투에 빠져요. 고통에 대한 해결책이었지요. 다른 한 사람은 능력은 나이보다 믿음에 달렸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더 높은 삶의 기준을 세웠습니다. 등산이 그 나이에 좋은 운동이라 생각했어요. 다음 25년 동안 새로운 탐험에 몸을 바쳐 실력을 쌓았습니다. 그래서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들을 정복합니다. 90살이 되었을 때는 후지 산에 오른 최고령자가 됩니다. 훌다 크룩스라는 분이지요. 그러나 저러나 다 늙고 죽으면 끝나는 것인가요? 하나님 앞에서 최상의 삶을 살아드려야 하지 않겠어요? 그것이 또한 만족과 행복을 주지 않겠어요?
▮내 믿음은 나를 파괴도 하고 창조도 합니다. 내 삶이 만족스럽지 않으면 더 나은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믿음은 산도 움직일 수 있어요. 하지만 멀쩡한 사람을 죽이기도 해요. 기차 냉동 칸에 갇힌 어떤 사람이 얼어 죽는 이야기 아시지요. 전기도 안 들어가는데 냉장고 안이라고 믿으니까 추워서 못 견디는 거예요. 어찌 보면 우리 삶은 이와 같아요.
▮행복과 불행이 모두 믿음 체계에서 나옵니다. 상황을 나쁘게 해석하고 그 느낌을 유지합니다. 그리고는 미래도 그렇게 투영합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에 대해 제한적으로 믿습니다. 과거에 별 특별한 성공이 없었기에 앞으로도 계속 그것을 기대합니다. 물론 잘되기를 간절히 소원하지만 실제로는 믿지 않아요.
▮만약 내 자신을 바꾸고 싶다면 바꾸겠다고 결심하고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체중이 좀 줄어야 할텐데. 사업이 이런 식으로 되어서는 안 될텐데. 우리 부부 사이가 좀 더 좋아져야 할텐데. 이렇게 생각만 해서는 절대로 바뀌지 않아요. 반드시 변해야 한다고 굳게 다짐해야 합니다. 그리고는 스스로 변화할 수 있다고 믿어야 합니다.
자신의 문제를 반복해서 생각하고 말하고 하는 것은 아주 나빠요. 그것은 계속 그 상황을 현실로 가져와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더욱 더 그에 대한 믿음만 강화되지요. 그러므로 그 문제를 두고서는 자신이 얼마나 괴로울지를 생각해 보고는 자신이 변화된 모습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즐거움을 느껴야 합니다. 이것을 반복해서 해야 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할 때 바라는 것을 현재로 느끼는 것이 믿음이라는 말입니다. 문제를 원할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실제로 문제를 원한다고 뇌에다 신호를 보내요. 반복해서 원망하고 불평하고 다시 그려보고 하는 것이지요. 그 반대로 해야 합니다. 실제로 원하는 것을 자꾸 그려보고 말하고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바른 믿음 체계를 가지게 하십니다. 에녹은 자신이 죽음을 통하지 않고 하나님께로 갈 것을 늘 그렸습니다. 그 반대로 죽음을 두려워한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이 계신 것과 자기를 찾는 이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한다고 했지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늘 유지해야 대가가 온다는 말입니다.
3. 보아야 할 것만 보라
▮하나님이 계신 것을 의식하는 것과 안 그러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좋은 믿음을 가지려고 해도 하나님 밖에서 그러면 되겠습니까? 부인이나 남편이 맘에 안 든다고 죽기를 바라면 잘되겠습니까? 자기 경쟁상대나 자기 편 안 드는 사람이라고 망하기 바라면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라고 하겠습니까? 옳지 않는 것을 간절히 바라면 복 받습니까?
▮성전에 나오는 사람들이 꼭 거쳐야 할 장소가 있습니다. 번제단이지요. 일단 여기서 지나간 나는 죽어야 합니다. 어제의 내가 그대로 하나님 앞에 나올 수는 없어요. 그래서 양을 대신 죽게 합니다. 그리고는 새로 일어나서 하나님 앞에 나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예배하러 일단 들어오면 무엇을 먼저 봅니까? 십자가 아닙니까? 죽어야 살아나요.
▮어제와 오늘 나는 같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성도는 매일 죽습니다. 특히 하나님 앞에 나올 때는 그런 것입니다. 내가 지금 나쁜 일을 하고 있으면서 합리화하려면 안되지요. 죽고 다시 일어나는 것입니다. 새사람으로요. 그래야 부활이라는 선물이 옵니다. 생각해 보세요. 이대로 가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그리고 변화된 자신 행복한 자신을 반복해서 바라보는 것입니다.
▮남편이 우습게 보이거나 아내가 밉게 보입니까? 잘못 되었어요. 바꾸어야 합니다. 바른 믿음의 체계를 만드세요. 상대의 미운 모습을 멋진 모습으로 그려보아야 합니다. 반대로 악하게 나를 유혹하는 사람의 얼굴은 마귀의 것으로 고쳐놓고 생각해야 합니다. 무서운 사람은 우스운 사람으로 바꿔보세요. 생각도 그렇게 하고 몸도 그렇게 느껴야 합니다.
▮십여 번을 반복해야 기본이 됩니다. 단어나 이름을 외울 때도 같은 방법으로 합니다. 연속해서가 아니라 간헐적으로 그렇게 하세요. 그러면 뇌는 그 단어를 입력시킵니다. 마음속의 그림도 그렇게 반복해 보세요. 내가 원하는 삶을 그리고 써보세요. 그러면 경험한 것으로 입력이 됩니다. 일단 그렇게 입력이 되면 무의식 속에서 습관처럼 진행됩니다.
▮심리학 연구는 무엇이든 16번 이상 입력하면 확실히 기억된다고 합니다. 이것을 바른 믿음 형성에 어떻게 사용할까요? “속담에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늘 자신에게 물어보세요. 더 잘 할 수는 없는가? 내가 버릴 것은 없는가? 과연 나는 하나님을 의식하는가? 그분이 기뻐하시는 최상의 가치 있는 일을 향해 일어나는가? 내 인생을 최고로 만들려면 어떻게 할까? 그 일을 경주용 자동차 운전자로서 해보세요. 한 눈 팔 수 없어요. 과거 미래, 아니 현재의 다른 생각도 못해요. 가는 방향만 보아야 합니다. 조금만 방향을 이탈하면 벽을 보게 됩니다. 공포 속에 그 장애물을 계속 보면 차는 그리로 갑니다. 안 볼 것에서 고개를 돌리세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정신을 집중하세요. 그러면 그 방향으로 내 삶도 움직입니다. 볼 것을 보세요. 거기 집중하세요. 생각 날 때마다 적어도 열 번 이상하세요. 그러면 삶 전체가 그리로 향합니다. 하나님께 나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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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회 다운로드 | DATE : 2025-03-29 20:2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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