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불쌍한 사람입니까?/고전 15: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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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불쌍한 사람입니까?/고전 15:12-19
예전 tv에서 ‘있다 없다’ 라는 프로를 본 적이 있었습니다.
어떤 믿을 수 없는 일을 가지고 과연 이것이 실제인가? 아니면 꾸며낸 것인가? 를 맞추는 내용이었는데 그 가운데는 실제로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사실로 드러나 놀랐던 기억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세상에 이런 일이 라는 프로에 나올만한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천년전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초대교회 당시에 사람들에게 가장 큰 이슈는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예수님의 부활에 관한 문제였습니다.
이 부활로 인해 교회는 큰 도전에 직면하기도 하였는데 이 부활의 논쟁이 가장 크게 일어났던 곳 가운데 하나가 바로 고린도교회였습니다.
고린도는 상업도시로 사람들의 왕래가 많았으며 음란하며 많은 우상을 숭배하는 곳이다 보니 자연 믿음에 대한 공격과 도전이 그 어느 곳 보다 강한 곳이었습니다.
특히 그 영향은 고스란히 교회 안에도 들어와 성도들의 신앙을 크게 흔들어 놓았는데 이러한 때에 바울은 서신을 통해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이란 무엇인가를 부활을 통해 전하였던 것입니다.
특히 고전15장을 부활장이라고 부르는데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믿는 자들의 부활’ 을 언급하면서 이것을 믿는 것이 곧 믿음이라고 ‘만일 부활이 없다면’ 이라는 가정으로 더욱 믿음에 설 것을 권면하였던 것입니다.
실제로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은 이 부활의 신앙을 가지고 모든 것을 견디며 인내 하였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만일 우리가 믿는 믿음이 헛것이라면 어떻겠습니까?
아마도 예수를 믿는 사람만큼 불쌍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이 바울의 반론이며 바울은 부활을 통해 우리가 믿는 믿음의 확실성에 대해 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만일 우리 믿는 자들에게 부활이 없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요?
첫째로 우리가 믿는 믿음이 아무 의미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13-14절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이 말씀은 다시 16-17절에서 반복되었습니다.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을 것이며 주님이 살지 못하셨다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믿는 것도 다 헛것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헛것’ 은 원어적인 뜻으로 내용은 없고 외형만 가진 다시 말해 속이 비어 있는 껍데기란 말입니다.
이처럼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신앙은 껍데기만 있는 것으로 아무 의미가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무엇을 믿는 것인가?
예수님이 날 위해 오심을 믿으며, 날 위해 고난 당하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가장 큰 믿음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정작 부활을 믿지 못하면 그것은 예수님을 바로 믿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 행하신 모든 기적은 결국 부활에 중요한 초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죽은 자도 살리셨던 것입니다.
특히 죽은지 나흘 되었던 나사로를 살리시면서 요11:25-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의 기적을 보이시며 부활을 믿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것은 마르다 만이 아니라 주님을 믿고 따르는 모든 자를 향한 동일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죽은자도 살리는 분이시며 믿는 자들의 부활을 믿느냐?’ 이것이 곧 우리의 믿음의 본질인 줄로 믿으시기를 축원드립니다.
바울은 부활의 예수님을 만났고 누구보다 이것을 확신하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부활의 증인이 되어 이렇게 선포합니다.
고전15:2-4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당시 초대교회 성도들은 누구보다도 큰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모진 박해와 핍박 가운데 그 신앙을 끝까지 지켰던 것도 부활의 신앙과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심지어 히11:35-37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들이 무엇 때문에 그 믿음을 지켰습니까? 부활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믿음은 결코 헛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이상하게 생각하더라도, 뭐라 하더라도 조금도 그것에 위축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엄청난 약속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진리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우리도 함께 부활하게 된다는 전제 위에 그 의미가 있습니다.
주일에 함께 모여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도 매주일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며 지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부활의 신앙이 없다면 예배 자체가 헛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명하신 성찬은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가지 행할 명령입니다.
고전11: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여기서 ‘오실 때까지’ 라는 말씀은 예수님의 재림까지를 전제하는 것으로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동시에 부활의 신앙까지를 함께 포함하고 있음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믿음이 없다면 성찬도 헛것이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도 헛것입니다.
성경을 아는 모든 것이 헛것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의 방편으로 주신 모든 것이 다 헛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모두가 이 부활의 믿음을 가지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둘째로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이 거짓이 되어 거짓 증인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15절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무슨 말씀입니까? 만일 부활이 없다면 바울은 사기꾼이며, 제자들은 거짓을 말한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부활이 없다면 주님의 말씀은 진리가 아닌 것이고, 성경은 가짜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거짓 증인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거짓 증인은 언젠가는 탄로가 나고, 진실은 밝혀지기 마련입니다.
여러 사람을 잠깐 동안 속일 수는 있어도, 여러 사람을 오랫동안 속일 수는 없는 법입니다.
하지만 부활이 거짓이 아닌 확실한 증거가 되는 것은 주님이 부활하신지 2천년이 지난 오늘까지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여전히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물론 여러분과 저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또 그렇게 부활을 믿는 사람들이 너도 나도 자청해서 부활의 증인이 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부활의 역사성을 부정하려고 애를 썼고, 또 부활을 증언하는 사람들의 입을 막으려고 했지만 여전히 부활을 믿는 사람들은 늘어가며 부활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지 않으며 오히려 부활의 증인들은 지금도 계속하여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부활의 확실성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는 것은 모두가 확실하며 가장 분명하게 되어질 약속이라는 것을 믿으시고 모두가 이 일에 분명한 증인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셋째로 부활이 없다면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19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만일 부활이 없다면 우리가 가장 불쌍한 사람이 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그렇습니까?
그렇게 부활을 확신했는데 만약 부활이 없다고 생각해 보세요.
유혹과 시험 가운데서도 눈물과 땀과 피로 부활의 신앙을 끝까지 지켰습니다.
그런데 부활이 없다면 헛되게 믿은 것이고, 헛되게 산 것이고, 지금까지 헛수고만 한 것입니다. 그래서 불쌍한 자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불쌍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랑스럽고, 영광스럽고, 축복을 받고,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히려 믿지 않는 자가 더욱 불쌍할 뿐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믿습니다. 무엇을요? 다시 사는 부활을 믿습니다.
우리는 언젠가는 이 세상을 떠나겠지만 그러나 우리는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부활의 날에 다시 살 것입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기에 우리는 아무리 슬픔과 괴로움을 만나도 위로와 소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불신자들은 결코 이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불신자들은 죽음이 모든 것의 끝이고 영원한 이별이라고 생각하기에 장례식을 ‘영결식’ 이라고 부르면서 죽음을 애통하며 슬퍼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 부활을 믿습니다. 먼저 죽은 자는 부활할 것이며 살아서 주님을 영접하는 자는 변화하여 주님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함께 영원한 나라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 믿음을 가진 성도는 죽음 가운데서도 찬송하며 소망 가운데 천국에서 다시 만날 것을 노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보기엔 불신자들과 우리 믿는자들 가운데 누가 과연 더 불쌍한 사람들입니까?
여러분 부활의 신앙을 끝까지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 날에는 진정한 회복이 있을 것이며 주님께서 우리에게 한 없는 영광을 부어 주실 것입니다.
사61: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이렇게 우리를 세워주십니다. 화관으로 재를 대신해 주실 것입니다. 분명 기쁨으로 슬픔을 대신해 주십니다. 찬송의 옷으로 근심을 대신해 주시고, 의의 나무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만일 우리의 믿음이 헛것이라면 우리의 인생은 너무나 허무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거짓 증언자가 되고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부활이 있기에, 부활을 믿기에, 이 믿음을 가진 저와 여러분들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 아닌 세상에서 가장 복된 사람들인 것입니다.
얼마전 저희 장모님과 가깝게 지내던 같은 교회의 권사님이 소천하셨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참 인간적으로는 너무나 불행한 인생을 살아오셨습니다. 이제 말년에 조금 좋은 날을 보내나 싶었는데 지병으로 인해 얼마 수를 누리지 못하고 갑자기 그렇게 떠나신 것입니다.
하지만 권사님이 병상에서 찾아오신 분들을 향해 마지막으로 “집사님 권사님 우리 천국에서 만나요” 그렇게 말씀을 남기셨다는 말씀을 듣고 참 마음에 감동이 되었습니다.
비록 세상에서는 말할 수 없는 고단한 인생을 살았지만 천국이 있고 내가 갈 곳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복인지 모릅니다.
어리석은 우리 인생도 평소에는 이것을 잘 깨닫지 못하다가 시간이 다 지나고 인생의 끝자락에 가서야 후회하는 일들이 다반사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믿음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 인생에 가장 가치 있고 복된 일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고 저와 여러분 모두가 끝까지 누가 뭐라 하더라도 이 믿음을 붙들고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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