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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합시다/ 요 4:3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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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수인
댓글 0건 조회 701회 작성일 19-10-02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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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합시다/ 요 4:31~34


어떤 신학대학교 교수님이 목회학 강의를 한 학기 마치고는 기말고사 시험을 출제했습니다. 시험 문제는 딱 한 줄이었습니다.

“앞으로 목사가 되면 어떤 목회를 하기 원하는가?” (답은 한 줄이면 족하다. 두 줄 이상 쓰면 낙제다)


여러분! 그 교수님이 원한 정답은 무엇이었을까요?

학생들은 고민 고민하다가 각자 답을 써내고 나갔습니다. 답안지에는 “선교목회를 하겠습니다.” “도시 교회에서 교육목회를 하겠습니다.” “도시에서 개척하여 목회를 하겠습니다.” “시골 농촌목회를 하겠습니다.” 등등 여러 가지 답을 써 냈습니다.

시험 후에 한 학생이 교수님께 찾아와 물었습니다. “교수님, 답이 뭡니까?”

그러자 씩 웃으시면서 “답은 이것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목회하겠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왜 이 세상을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살기를 원하실까요? 정답은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원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을 향하신 그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보세요.

어느 날 예수님이 사마리아로 지나가시다가 수가성의 우물가에 쉬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이 동네로 음식을 구하러 간 그때 한 여인이 물을 길러 우물가에 나왔습니다.

주님은 그 여인에게 “물을 달라” 하시면서 말을 걸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여인에게 전도를 하였습니다. 그때 제자들이 음식을 구해서 돌아왔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여인과 대화를 하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슨 말을 했는지 물어 보는 자들이 없었습니다. 그 후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뛰어가자 제자들이 주님께 음식을 내 놓으면서 식사하라고 합니다.

 

그때 주님은 제자들에게 아주 중요한 말을 합니다. 32절 말씀을 다 같이 보세요.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 이것이 무엇일까요? 34절을 보세요. 다 같이 읽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할렐루야!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아주 중요한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특별히 오늘 2부 예배에서는 도금수 선교사님의 방글라데시 파송예배를 겸하여 드립니다. 우리 성도는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까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오늘 깨달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1. 나를 이 세상에 보내신 이가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태어 나셨나요? 부모님의 사랑으로 태어났습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태어남은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그렇다고 우연이라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특별한 존재이기에 탄생도 창조주의 섭리와 계획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적어도 하나님을 믿는 성도라면 성경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은 하나님에 의해 보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요1:6~7절을 보세요.

6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7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세례요한은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는 주님을 증언하러 보냄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을 믿게 하러 왔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세례요한만 보냄 받은 사람이냐? 아닙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은 사람임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엄마 아빠가 어쩌다 만나 어쩌다가 태어난 존재가 아닙니다. 외적으로 부면 그런 것 같으나 실상은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와 계획 속에서 태어난 것입니다. 아멘?

그러기에 예수를 믿는 성도는 자신의 정체성과 존재이유가 하나님께 있음을 확신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주님도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34절을 보세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그분의 뜻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 당신의 사명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도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신 분이 하나님임을 확신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이 보낸 대사, Ambassador입니다. 주한 미국 대사가 미국을 대표하기에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보낸 자이기에 천국의 대사인 것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내가 누군지를 올바로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내가 누군지 모르기에, 자기 정체성을 모르기에 남과 비교해서 열등감을 갖거나 우월감을 갖곤 하는데 그럴 것이 없습니다. “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 나를 부르신 이가 하나님, 나를 보내신 이도 하나님,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아멘?

 

이것을 알면 실패했다고 실망할 필요 없습니다. 못생겼다고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을 알면 육체가 연약하다고 한 숨 쉴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나를 지으셨고 하나님이 나를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아멘?

 

그런데 왜 걱정하시고 왜 염려하시고 왜 속상해 하시나요? 그런다고 생긴 것이 달라지나요? 그런다고 남들이 알아주나요? 아닙니다. 그냥 나를 보내신 분은 나를 이 세상에 보내신 뜻이 있다고 믿고 그 뜻을 찾아서 살아가시길 축원합니다.

 

2.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사명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이 땅에 보내실 때, 모든 사람에게는 보내신 분의 뜻이 있고 맡기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요? 그것을 한 단어로 사명이라 합니다. Mission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세상에 보내실 때 그분의 뜻과 맡기신 일이 분명히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맡겨진 그 뜻과 일, 즉 사명은 무엇일까요? 사람마다 다 다를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 다른 성품과 모양으로 이 땅에 때어났기에 보내신 분의 뜻과 맡기신 일이 다 다를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을 향한 주님의 뜻은 무엇이고 맡기신 일은 무엇인가요?

여기 서있는 최목사는 목회자로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 사역자로 보내졌습니다. 그래서 누가 뭐라고 해도 이 길을 갑니다.

 

성도 여러분은 어떤 사명을 갖고 계신가요?

어떤 할머님이 목사님을 찾아와서 질문을 했습니다. “목사님 나는 이날 이때까지 해놓은 것이라고는 자식을 7명 길러서 공부시킨 것 밖에 없는데 내 사명은 뭔가요?”

목사님이 그 할머니를 보는 순간 답답했습니다. 그분은 학교를 다녀 본 적이 없어서 글도 떠듬떠듬 읽고 나이도 많으나 열심히 주님을 섬기고 있는 분이었습니다.

목사님이 순간 잠깐 눈을 감고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은혜를 주셨습니다.

“집사님, 자식이 7명인데 모두 다 예수님을 믿나요? 그 자식들 통해 태어난 손자 손년가 몇인가요?” 물었더니 자식과 자부 사위 모두 합해서 32명이랍니다. “그들 중에 믿지 않는 자식과 손주가 몇인가요?” 그러자 “큰 아들만 안 믿고 다 믿습니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그 집사님을 칭찬하면서 말했습니다. “집사님, 집사님은 지금까지 사명 잘 감당하셨군요. 남은 사명은 아직 믿지 않는 자식이 주께 돌아와 모든 자녀가 주안에 거하고 그리고 그들이 주님께 붙들린바 되어 쓰임 받도록 새벽 기도로 돕고 믿음으로 축복하는 것이 사명입니다.” 라고 했답니다. 그러자 “목사님 잘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갔답니다.

 

성도 여러분! 자식을 믿음으로 잘 기르는 것도 사명입니다. 그냥 내 자식이니, 내 손주 새끼니 어쩔 수 없이 기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하나님 나라에 큰 일꾼이 되어 든든히 교회를 섬기고 주의 백성들을 섬겨 나간다면 그보다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새벽기도도 사역입니다. 새벽마다 교회에 나와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몸 된 교회를 위해, 그리고 주의 종과 성도를 위해 기도로 섬기는 것도 사명입니다. 그것을 사명으로 여기면 거기에 목숨을 걸 수 있습니다.

시간나면 나오고 안 되면 못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사명은 죽으나 사나 나와서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사명을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사명은 남들이 하기 싫은 것을 즐겁게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여성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을 여러분 가정에 파송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왜 그 집안에 시집가서 수고하시고 계십니까? 왜 姓이 다른 집에 시집가서 그 집안의 대를 이어주느라 수고하시나요? 그것도 하나님이 보내신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직장에도 파송하셨습니다. 많고 많은 직장 중에 왜 그 직장입니까? 밥 벌어먹고 살려니 어쩔 수 없이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 직장에 선교사로 파송된 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이 하신 말씀을 보세요. 요한복음6:38~40절을 보세요.

38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 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 것이니라 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주님도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라 아멘?

그 사명을 위해 오셨고 그 사명을 다루셨다고 십자가에서 선포하시고 죽으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이 뭔지를 분명히 하고 그 사명을 위해 시간을 사용하고 물질을 사용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럴 때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3. 내게 맡겨진 사명이 내 양식임을 믿어야 합니다.

양식은 우리가 살아가 동력을 제공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살아가려면 먹는 양식도 필요하지만 영의 양식인 하나님 말씀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우리에게 살아갈 동역을 주는 것이 바로 사명인 것을 믿으셔야 합니다.

주님도 이 사명이 양식이라 하셨습니다.

32절을 다시 보세요. “이르시되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다 했습니다.

그 양식이 뭔지를 구체적으로 34절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사명이 양식인 것입니다. 왜 사명이 양식이냐? 사명이 내게 힘을 제공하는 동력이고 그 사명 때문에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 사명이 끝나면 내 생명도 끝나는 것입니다. 아멘?

 

죄송합니다. 여러분은 왜 아직도 죽지 않고 살아 계십니까?

잘 먹어서 입니까? 그러면 암으로 질병으로, 사고로 죽는 사람은 잘못 먹어서 죽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분들도 다 잘 먹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들을 데려가셨고 여러분은 살아 있을까요? 그분의 뜻이라고요? 그렇습니다. 그분이 왜 살려 주셨을까요? 왜 수많은 죽음의 고비 고비를 넘기고 살려 주셨을까요? 이유는 하나입니다. 아직 사명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그 사명이 여러분의 생명을 유지시켜 주기에 사명이 양식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 사명, 그 일, 그것을 부담스럽게 여기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있음을 감사해야 합니다. 왜냐? 그것이 여러분의 생명을 유지시켜 주는 양식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사라지면 여러분도 사라집니다. 그 사명이 끝나면 그 누구도 예외 없이 세상에서는 불러 가십니다.

 

어떤 분은 여기까지 들으면 머리가 좋아서 이런 생각을 할 것입니다.

“그러면 오래 살려면 사명을 천천히 감당하면 될 것이 아닌가?”

그럴까요? 사명이 있어야 살 수 있기에 천천히 감당하고 적당히 하면서 게으름 피우면서 하면 오래 살까요? 그런 얕은 머리 쓰는 자는 인생 드라마 무대의 감독이신 주님께서 배우를 얼른 교체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런데 잔머리 쓰지 마시고 그런 머리를 사명 감당하는데 쓰시기를 축원합니다.

 

대학교 입시에서 대부분 면접관들이 응시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합니다.

“네가 이 대학에, 이 학과에 들어와야 할 이유가 뭐냐?”

 

저는 이 질문을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이 아직도 죽지 않고 이 땅에 살아가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많은 사람이 대답을 못합니다. ‘그저 죽지 못해 삽니다’ 라고 할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분도 그렇다면 이 시간 분명한 답을 찾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명이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일이 있습니다.” 크게 대답하셔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때 내게 주어진 사명을 온전히 이룰 수 있을까요?


1) 내 사명에 모든 것을 집중해야 합니다.

내게 주어진 거룩한 사명이 뭔가를 속히 깨닫고 거기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 사명 때문에 내 믿음도, 내 시간도, 내 물질도, 그것을 위해 맡겨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그 사명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가시길 축원합니다. 얼마나 거기에 집중하느냐가 성공과 실패의 열쇠입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에 볼록렌즈로 햇빛을 모아 종이를 태운 경험들을 했을 것입니다. 햇빛을 모으면 타지 않을 것 같은 물질에서 연기가 납니다. 이것이 집중의 힘입니다. 주님을 섬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이 주신 은혜를 집중하면 큰일을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실력이 있고 기술과 인맥이 좋아도 집중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소위 말하는 성공과 실패의 열쇠는 집중입니다. 공부를 잘하느냐 못하느냐의 차이가 머리가 좋으냐. 그러지 못하냐의 차이도 있으나 그보다는 얼마나 집중하느냐의 차이에 있습니다. 사명도 그렇습니다. 내게 주어진 사명에 목숨을 건다는 것은 집중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맡겨진 일은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2) 방해되는 것들을 과감히 버려야 합니다.

내게 주어진 사명완수에 방해되는 요소가 뭐가 있을까요?

가장 큰 방해물은 ‘타락한 욕심’입니다. 재물에 대한 욕심, 세상 명예에 대한 욕심, 그리고 게으름이 방해물입니다. 이것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그냥 벗어지지 않습니다. 가치관이 변해야 합니다. 뭐가 더 중요하고 뭐가 덜 중요한지를 아는 가치관의 변화 없이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대가 지불이라 합니다. 버려야 합니다. 주를 위해 세상 것을 배설물처럼 버려야 합니다. 양다리 걸치면서 주를 위해 살겠노라 하면 가랑이가 찢어집니다.

 

어찌해야 합니까? 주님처럼 해야 합니다. 바울처럼 해야 합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라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했습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내가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주님을 따라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세상에 대하여 죽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이 성 <마카리우스>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도대체 세상에 대하여 죽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랬더니 <마카리우스>가 이 사람을 데리고 무덤으로 갔답니다. 그리고 도착하여 무덤에 묻힌 친구를 향하여 마구 욕을 하라고 합니다. 또 잠시 후에 칭찬을 많이 해 보라고 합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욕을 하고 칭찬을 해보니 무어라고 응답이 옵니까? 화를 내던가요, 기뻐하던가요?”

그러자 그 사람은 “아니요, 아무 말도 없지요”

이에 마카리우스는 분명한 어조로 말을 했습니다.

“세상에 대하여 죽는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세상이 당신을 비웃고 조롱한다고 절대로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또 세상이 당신에게 온갖 칭찬과 기쁨을 주어도 현혹 되지 말아야 합니다. 당신은 이미 하나님과 함께 세상에 대하여 육체에 대하여 죽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 맡겨진 사명을 위해서라면 세상에서 죽은 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3) 충성된 자에게 상이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마25장에 보면 달란트 비유가 나옵니다. 그 비유의 목적은 만물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그가 우리에게 일하도록 재능을 주시고 일을 주셨다. 그런데 착하고 충성된다는 잘 감당하여 상을 받았으나 악하고 게으른 종은 있는 것도 빼앗기고 어두운 것에 쫓겨났다는 것입니다. 그 어두운 곳이 어딜까요? 지옥입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다섯 개를 받았던 자나 두 개를 받았던 자 모두가 같은 칭찬을 받았다는 것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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