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의 씨름은 내 씨름. (창세기 32: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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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씨름은 내 씨름. (창세기 32: 22-32)
<평안하십니까?> <형통하십니까?> <하나님과 씨름한 적이 있습니까?>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가 잘 아는 말씀입니다. 생명이 걸려있는 중요한 문제를 놓고 야곱이 생명을 건 씨름을 하나님과 하는 이야기입니다. 야곱은 그 씨름을 밤이 맟도록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야곱의 의지를 시험해 보시기 위하여 환도뼈를 치셨습니다. 환도뼈가 부러진 사람이 어떻게 씨름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끈질기게 하나님을 놓지 않았습니다. 세상에 하나님과 씨름하여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다. 우리는 다 하나님 앞에서 환도뼈가 부러진 사람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하나님과의 씨름에서 결국은 이겨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그 방법은 하나님을 놓지 않고 끈질기게 매어 달린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야곱과 같은 절대 절명의 순간을 만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는 것과 같은 상황에 처하는 수가 많이 있습니다.
힘으로도 안 되고, 능으로도 안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사방이 다 막히는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위를 쳐다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수가 생깁니다. 길이 생깁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수와 길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가리켜 길과 진리와 생명이라고 말씀하신 뜻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께 매어 달리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그 동안 혹시 너무 하나님께 대하여 소홀하고 게을렀던 것은 아닌가 한번 반성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소홀하고 게으른 것은 치명적인 것입니다. 모든 문제가 거기서부터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야곱은 자기 힘으로도 얼마든지 복을 받았습니다. 아주 야곱은 머리가 빠릅니다. 아주 남보다 앞섭니다. 경쟁에 앞서는 사람입니다. 사람 이용을 잘하는 사람입니다. 두뇌가 아주 빠르게 움직이는 분입니다. 찬스를 놓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일 할 때는 적극적으로 생명 걸고 일해서 소득을 많이 올리는 분입니다. 남보다 훌륭합니다. 앞서 나갑니다. 이런 면으로 그는 복을 받았습니다. 돈도 벌었습니다. 자녀들도 많이 두었습니다. 보이는 복을 넘치게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건 복이 아니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야곱이 이 복을 받은 다음에 고향으로 돌아오다가 에서라고 하는 그의 형의 군인들이 사백 명이나 야곱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길목을 지키면서 야곱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오늘이 지나면 야곱은 죽습니다. 그대로 칼을 맞아 죽습니다. 야곱은 이걸 너무 잘 알았습니다. 아!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헛되구나. 이 모든 것을 축복으로 해결 할 수 없구나. 이 모든 힘이 아무것도 아니로구나. 돈 벌고 성공하면 다 되는 줄 알았는데, 이 장애물을 넘어 갈 수가 없었습니다. 가나안인 고향 즉 본향인 천국에 걸림이 됩니다. 그래서 야곱은 어떻게 합니까? 너무너무 비통합니다. 어떻게 할 바를 알지 못하고 재산을 모두 얍복강을 건너게 합니다. 부인도 다 건너게 하고 자녀들도 다 보냈습니다. 노비들도 다 보냈습니다. 이제는 빈털터리, 아무것도 없이 혼자 남아서 밤을 새워서 하나님께 새벽이 되도록 기도하는 것이 본문에 나옵니다. 하나님 내게 복을 주시옵소서. 아! 무슨 복, 너 그만하면 복을 많이 받지 않았느냐? 얼마나 많은 복을 받았는데 무슨 복을 말하느냐? 아닙니다. 이게 복이 아닌 줄을 이제 알았습니다. 하나님 나와 함께 해 주십시오. 나 살려 주십시오. 나를 구원해 주십시오. 하나님 나와 함께 해 주십시오. 여러분 어려운 시험과 환난을 통과하지 않은 재산은 축복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있는 지위와 권력과 지식이 아무리 있어도 환난과 재난을 넘어가지 못하면 그것은 축복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은 어떤 것이든지 넘어갈 수 있습니다. 이길 수 있습니다. 극복할 수 있습니다. 감당할 수 있습니다.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복 주신 자를 넘어뜨릴 세력은 없습니다. 넘어지지 않습니다. 거꾸러지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천만인이 해칠 지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자는 망하지 않습니다. 패하지 않습니다. 실패하지 않습니다. 주시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위기를 넘길 수 있습니다. 절망을 넘길 수 있습니다. 인생이 끝나는 날까지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셔서 지키심으로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복은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넘어갈 수 없습니다. 야곱은 이제 하나님께 다시 부르짖으면서, 환도뼈가 부러지면서, 하나님과 천사와 씨름하면서, 여호와여! 내게 복을 주십시오. 하늘 문을 여시고 하나님이 내게 복을 주셔야 그 복으로 내가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만나서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아야 여러분들 남은 생애를 빼앗기지 않고 오히려 영생의 길을 걷게 되어 있습니다. 천만인이 여러분의 대적이 되어 넘어뜨리려 할지라도, 여러분은 보호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 주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확실한 미래를 향하여 평안하게 달려가며 살 수 있을까요?
1. 하나님을 이겨야 합니다. (28절)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놀라운 구절이 있습니다. “네가 하나님과 겨루어 이기었다”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과 겨루어 이기다는 말은 놀라운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사람이라고 표현합니다. 하나님을 이긴다는 말이 무슨 말이며 어떻게 하나님을 이길 수 있다는 말입니까? 하나님을 이길 수 잇다는 말이 가능조차 한 말일까요? 성경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이기는 것보다 하나님을 이기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를 이기는 아들) 많은 가정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모습이 있습니다. 신나고 즐거운 모습이 있습니다. 아버지와 어린 아들이 팔씨름을 하거나 닭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두 경쟁자의 얼굴에는 진지함과 단호함이 명백히 드러납니다. 주위에는 의도적인 약간의 긴장감이 돌지만 모든 사람이 결과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결과에 대하여 그리 궁금해 하지 않습니다. 아들은 기세등등합니다. 힘도 없는 아들이 아버지를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버지가 져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힘으로 하나님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져 주십니다. 그러면 이긴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마음을 돌이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마음을 축복의 마음으로 돌이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본질을 이용하여 마음을 돌이키게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많은 경우에 하나님이 진노를 선포하셨다가도 돌이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이 말한 것을 바꾸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간절한 요구에 지고 만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사람에게 쉽게 집니다. 사람들의 요구에 마음을 쉽게 돌이킵니다.
● 히스기야가 3일 만에 죽게 되었을 때 그는 하나님을 향하여 간구합니다. 그의 죽음은 예언자를 통하여 선포가 된 운명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미 결정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께 매어 달렸습니다. 하나님은 마음을 바꾸셨습니다. 그리고 15년을 더 살게 하셨습니다. 히스기야가 이겼습니다.
● 하나님은 니느웨를 멸망시키려고 하였습니다. 요나를 통하여 멸망을 선언하셨습니다. 그러나 니느웨 사람들이 왕과 함께 옷을 찢고 회개하며 매달렸습니다. 하나님이 마음을 바꾸시고 용서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마음을 돌이키셨습니다. 니느웨의 사람들이 이겼습니다.
● 불의한 재판관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어려운 형편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단지 뇌물에만 관심을 갖는 사람이었습니다. 뇌물을 가져오지 않는 사람의 재판에는 신경을 써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마음을 가진 과부가 매일 가서 졸랐습니다. 결국 과부가 재판관을 이겼습니다. 재판관이 마음을 돌이키고 과부의 문제를 풀어 주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이긴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돌이키는 것입니다. 야곱에게 축복의 선언을 하시듯이 우리를 향하여 축복의 선언을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 포인트? 도둑같이 임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도둑은 언제 들어올지 모릅니다. 떠드는 도둑은 허풍쟁이거나 무엇인가? 바라는 마음에 공갈 협박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하나님께서 너희는 죽게 된다고 하시면? 그것은 죽일 마음이 없으신데 회개하라는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2. 기도로 이겨야 합니다.(25절)
자녀의 권세가 있다고 모두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가 부모님을 이기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부모에게 조르는 것입니다. 자녀의 권세는 조르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조르면 맞는다고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그러한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자녀가 아버지에게 조르는 권세를 누리는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이기는 방법) 그것은 기도입니다. 구할 때 주십니다. 간절히 구할 때 하나님의 마음이 돌이키게 됩니다. 야곱은 불안한 마음에 하나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매달리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한 것입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처음에 기도할려고 하면 기도가 잘되지 않습니다. 마귀가 기도를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힘껏 찬양하고 부르짖는 기도하면 그때 기도의 줄이 잡힙니다. 기도만이 악한 영도 몰아내고 기도만이 하나님의 마음도 돌이키게 됩니다. 하나님의 시선을 끄는 방법은 우리의 선한 행동이 아닙니다. 우리의 행함으로는 책망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들고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구하면 됩니다.
삶속에서 문제의 해결의 비결은 오직 기도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부르짖음을 들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성경은 우리들에게 기도의 능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간절한 기도) 야곱은 환도뼈가 어긋날 정도로 간절하게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축복하지 않으면 절대로 놓지 않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기도를 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부르짖는 기도입니다. 단순한 큰 소리가 아니라 간절한 마음입니다. 반드시 응답을 받아야 한다는 간절한 마음입니다. 응답을 받지 못하면 안 된다는 간절한 마음입니다. 기도의 방법은 간단합니다. 응답을 받을 때까지 간절히 구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복주심의 선언이 있을 때까지 간절히 사모함으로 구하여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지지 말고 구하여야 합니다. 먼저 구하여야 합니다. 기도의 선봉에 서야 합니다. 남들보다 먼저 일어나서 기도하여야 합니다. 남들보다 늦게까지 기도하여야 합니다. 생명을 걸고 기도하여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에게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기도의 방법입니다. 그들은 때로 금식을 하면서 기도하였고 밤을 지새우며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간절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쉬지 않고 기도하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기도가 삶이되기를 원하십니다. 자녀는 모든 일을 부모에게 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3. 능력의 주께서 주시는 복의 선언이 있습니다.(29절)
(무엇을 구하여야 할까요?) 하나님의 복의 선언입니다. 아버지의 복이 선언도 아닙니다. 어머니의 보장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복의 선언에는 엄청난 것이 담겨 있었습니다. 어찌되었던지 복을 받아야겠다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였던 야곱은 상상할 수 없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야곱이 받은 복은 무엇입니까?
*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벧엘에서 만났던 하나님을 다시 한 번 만나게 되었습니다. 실제적인 체험입니다. 체험으로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으로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한다는 것은 복중에 복입니다. 사람이 뽑고 시간이 지나면 물러나야 하는 대통령을 만나는 것 가지고 대단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영적인 체험을 한 기쁨을 맛보는 성도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때로는 기도를 하면서 방언의 체험 하나 가지고도 어느 것과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을 실제적으로 경험하는 것은 놀라운 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만난다는 것은 하나님을 바로 알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복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게 되어야 합니다. 재난을 통해서도 알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재난을 통하여 알지 말고 은혜를 통하여 아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이름이 변하였습니다. 운명이 변화되는 승리입니다. 얍복강에서 그의 이름은 바뀌었습니다.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바뀌었습니다. 개인의 이름에서 민족의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사람과의 경쟁자라는 이름에서 하나님과의 경쟁자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남의 발뒤꿈치나 잡고 사는 인생에서 하나님과 씨름을 하는 새로운 차원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무리 부자가 되어도 결국 사람과의 경쟁에서 끝이 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하던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위한 사람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사람과의 경쟁의 삶에는 끝이 없습니다. 남들보다 높은 자리, 많은 재산, 많은 지식이 결국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 않습니다. 영적인 삶의 기쁨을 맛보아야 합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후에 이스라엘민족이 나라의 이름을 정하면서 지역의 이름도 아닌 한 사람의 이름으로 정하게 되는 복을 누렸습니다.
* 미래에 대한 불안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평안함을 얻었습니다. 내일에 대한 염려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형이 두렵던 것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동행하심을 믿게 됨으로 이후에 발생할 일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믿음의 선배들이 담대하게 살 수 있었던 것은 자신과 동행하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순교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사람이 두려워 지지 않게 된 것입니다. 내일을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의 동행하심과 인도하심에 대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 어떤 청년이 교회 가다가 길가에 놀고 있는 어린 아이 네 명을 데리고 교회로 왔습니다. 하나님 말씀 가르쳤습니다. 주일학교 선생님이 그 아이를 데리고 왔습니다. 이 아이들이 교회에 와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놀라운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복을 받은 것입니다. 몇 십 년 지나서 이 선생님에게 다 연락이 왔습니다. 생일에 똑같이 연락이 왔습니다. 한명은 후버 대통령이 됐습니다. 후버댐을 만든 미국의 대통령이 그때 똑같은 친구 네 명이 선생님이 끌고 교회학교 가서 이 분이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한 사람은 연방 은행에 총재가 되었습니다. 한 사람은 은혜를 받아 목사가 되어 중국 선교사로 갔습니다. 한 사람은 후버 대통령 비서실장입니다. 친구이기에 그 자리에 같이 있었습니다. 네 명이 다 성공했습니다. 왜? 교회는 하나님이 복 주시는 곳입니까? 야곱이 복을 받는 곳입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 앞으로 나아 갈 때만이 내 잔이 넘치도록 채워 주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유하심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채워 주시는 참 복을 가지신 분입니다.
내 삶속에 하나님을 채우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내 삶속에 하나님과 씨름하겠다는 생각을 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내 삶속에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로 승리하면 내게 기적이 일어납니다. 내 삶속에 하나님의 축복선언을 받으면 복이 임하고 은혜와 평강의 복이 넘치게 됩니다. 야곱이 환도뼈가 불러질 정도로 하나님과 씨름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내니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부유하심이 나에게 채워졌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를 축복하노라><“God bless you”>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새벽이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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