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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58과. 예배와 사도신경과 주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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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수인
댓글 0건 조회 728회 작성일 18-12-26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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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58과. 예배와 사도신경과 주기도문

정 목사님의 개인적인 생각을 침례교의 모든 방식처럼 말하는 것이 문제가 좀 있네요~

(유 1:4)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그들은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하지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성경말씀을 사용하지만 그 중심에 있는 성령님과 보이는 그릇인 율법과 교리를 묘하게 잘못된 것으로만 표현하고 있네요~ ^^ 자신의 교회 스타일을 침례라는 교단의 특징으로 안착시켜서 자유롭다. 라고 표현하고 기존 교회들을 카톨릭의 잔제로 표현하는 것은 개인의 성형이 우수하다는 교만적인 착각이 매우 큽니다. 정목사님의 개인적 예배 스타일을 마치 자신들은 정상이고, 모든 개신교회는 오히려 이단처럼 잘못 예배하고 있다고 말하는 모습은 지극히 인본과 교만한 모습이 보입니다. 동영상을 보니까? 주기도문과 중언부언 기도를 교묘히 엮고 있고, 주기도문의 원뜻을 외곡 하네요. 자유라는 자유 함은? 구원 받은 주님의 백성이 율법 즉, 원죄로 인한 자유 함입니다. 그러므로 정통이니, 전통이니 하는 카톨릭이나 개신교를 묶어서 교리에만 얽힌 잘못된 것으로 평가하고 비판하는 것 자체 문제가 있습니다.

오늘 보내주신 동영상 말씀은 보니까? 성경 말씀과 교리와 행위를 단지 자신이 보는 자유에서 벗어난 잘못된 것이라고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네요.

★ 제게 주신 생각나게 하시는 말씀을 나눠봅니다.

각 교단과 목사님들의 예배 방식과 순서나 말씀을 풀어가는 것은 조금씩 달라도 구원의 주는 달라지면 안 되겠지요? ^^ 그것처럼 나와 우리만 옳고 기존의 교회는 잘못되었다! 는 말은 이미 자기 율법에 빠지는 것이며 지극히 자가당착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진정 정 목사님이 말하는 것이 설득력이 있으려면? 자신의 자유함도, 하나의 또 다른 자기 방식의 교리를 만드는 것과 같이 똑 같다는 것을 스스로 알아야 합니다. 내가 주 안에서 자유롭다면? 다른 사람의 전통도 그들의 자유이겠지요? 그것을 인정할 때 참 자유로워지는 것이랍니다.

★ 성경 계시록 1장과 2장 부분에 일곱 교회에 대한 칭찬과 책망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 교회에 임하시는, 그리고 그 각 교회에 합당한 말씀이 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진리에서 벗어 날 때 잘못이란 표현을 해야 하는 것이지요. 각 종파나 교단이나 노회가 조금씩 교리나 예배드리는 스타일이 다른 것을 인정 할 대에 틀리다는 말은 부끄러움이 되겠지요?

그러므로 "저희 교회는 저희 교회에게만 주신 성령님 말씀으로 새롭게 거듭나야겠습니다." 라고 하며 설교하거나, 스타일을 만들어서 감사로 즐겨야지, 나머지 "여섯 교회는 틀렸다. 잘못한다."고 하면 자기 율법의 내가 복음으로 자가당착에 빠지게 되는 것이랍니다.

그래서 저도 부흥집회나, 대학교 채플이나, 선교단체 강사로 가게 되면, 각 교회나 학교나 선교단체에 대한 각각 주시는 말씀이 다 다른 것을 자주 느끼게 됩니다.

그것은 다양한 개성과 여러 교회를 인정해주시는 하나님의 광대함과 사랑하심을 보여주시는 예이기도 합니다.

1. 먼저 주기도문은? 왜 하냐? 하지 않는다.

제자인 사도들이 예수님께 "다른 사람들은 자기들만의 기도가 있는데 우리에게도 기도를 알려주세요." 라고 말하는 순수한 믿음의 기도를 가르쳐 달하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달달 외우는 것이든, 보이게 하는 것이든지 상관하지 않고 순수하게 구하는 것입니다.

(마 6:1~15)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그래서 주님은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그 기도에 방법과 그 깊은 뜻을 알게 하십니다.

이 기도를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라 말하며 예배 때에 마지막 기도로 하는 것이지요.

01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02 그리하면 그것이 네가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잠 3:3) 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 판에 새기라

04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05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0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07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08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를 윤택하게 하리라.

01 내 아들아 내 말을 지키며 내 계명을 간직하라 02 내 계명을 지켜 살며 내 법을 네 눈동자처럼 지키라 (잠 7:3) 이것을 네 손가락에 매며 이것을 네 마음 판에 새기라

(고후 3:3)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 판에 쓴 것이라

2. 사도신경은? 우린 안 한다? 그건 억지로 종 만들려는 수작이다. 카톨릭의 후예들이다.

사도들이 늘 스스로를 예수님의 복음을 자신들의 중심에서 잃어 버릴까봐 외우고 다니는 것이었는데 이후에 성도들도 외우게 되어 마음 판에 세기는 것이 훈련되는 중심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통 예배나 모임의 처음을 사도신경으로 외우는 것입니다.

유래: 초대교회 즉, 2세기의 교회에서 정리된 세례의 믿음 고백 형식이 3세기 이래로 발전하여 사도신경의 기본이 되었다[1]. 4세기가 되어 처음으로 사도신경이란 이름으로 불리며 사도적 기원과 설화가 나타났다. 5세기 들어서야 현재의 형태를 갖추었으며, 10세기 완결된 형태로 오토 대제에 의해서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을 대체하여 서방교회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2]. 11세기 이후 동방교회와의 분리 이후 서방교회에서 신앙의 기준으로 자리 잡아 지금도 로마 가톨릭교회에서는 전례에 포함시켜 각종 예식이나 미사 때마다 사도신경을 통해 신앙을 고백하며, 성공회에서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신앙을 되새기는 세례 계약을 다짐할 때와 만도 즉, 저녁 기도를 할 때 사도신경으로 믿음을 고백한다. 개신교에서는 예배 시작 시 신앙을 고백하며, 세례와 기도 생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현대에 들어서 찬양예배에 의한 예배 순서 변경이나, 교리적 선언 등 다른 신앙 고백으로 대체하는 경우도 있으나 여전히 주요 신앙 고백문이다. 루터교에서는 예전적 예배를 지향하기 때문에, 정해진 예식에 따라 매사도신조로 신앙을 고백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인 유래 때문에, 로마 가톨릭교회를 극단적으로 배격하는, 일부 개신교 종파(침례교)에서는 사도신경의 유효성을 부인하고 사용하지 않는다. 엄밀히 말하면 예배 때에 해도, 안 해도 무방합니다. 단지 사도들의 신앙고백과 진리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외워서 모일 때마다 마음 판에 새기도록 훈련하는 목적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마치 “선서” 하듯이 처음에 합니다.

3. 증언부언 기도란? 믿음으로 기도하지 않는 기도를 말합니다.

아담과 하와 때에 “선악과를 먹지 말라” 노아에게 "배를 지어라" 그 후에 짓다가 시간이 지나 힘들면 노아가 묻겠지요? "하나님 날씨가 이렇게 좋은데 다른 사람들이 내 말을 안 듣기도 하고요. 진짜 배를 계속 지어요?" 라고 묻는 다면? 하나님은 중언부언 하시는 분이 아니시기에 뭐라고 하실까요? 말씀을 하지 않으시던지 혹시 말씀하시면 책망을 하실 겁니다.

그것처럼 우리도 하나님께 기도했다면 믿으라는 것입니다.

될 줄로 믿는 정도가 아니라 된 줄로 믿는 과거형으로 말입니다.

그런 믿음이 없이 매번 중언부언하지 말하는 말씀입이다.

05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0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마 6:7)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08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4. 외식하는 기도는 남에게 보이려고 하는 기도입니다. 그런 기도하지 말라고 가르치신 기도이지요. 즉 하나님이 아닌, 다른 사람의 시선에 이끌리는 사람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마 6:05)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눅 10:29)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5. 예배를 자유라는 말로 외형만을 보이게 하려는 것도 외식입니다.

오히려 너무 지나치게 자유로운 고린도 교회에서는 질서를 만들어서라도 예배에 흐름을 정리하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옳다 그르다가 아니라, 감사로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바를 따름이 좋겠습니다. 각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성향이나 스타일이 다름으로 같은 마음으로 모이는 무리가 같은 뜻과 모양으로 마음을 같이하여 올려 드리면 되겠습니다. 단지 진리, 즉 예수님이 안 계신 예배는 우상입니다.

♥ 고전 14:26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까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성경을 영적인 눈으로 바르게 옳게 보는 법도 중요합니다. 이런 기도와 축복기도도 있습니다. 그 근거는? 성경 말씀을 근거로 합니다. 사도들의 다짐입니다.

♥ 유 1:24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기쁨으로 서게 하실 이 25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영원 전부터 이제와 영원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그리고 대다수의 교회가 하는 축도입니다. 단지 이 축도가 목사들의 권한으로 묶어 버리고 권위와, 위엄을 누리려고 하는 것이 문제라서 좀 고쳐 보겠다는 의도가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이 축도에 감사하고 깊은 의미를 두는 분들도 있으니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지 말라.

♥고후 13:10 그러므로 내가 떠나 있을 때에 이렇게 쓰는 것은 대면할 때에 주께서 너희를 넘어뜨리려 하지 않고 세우려 하여 내게 주신 그 권한을 따라 엄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1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형제들아 기뻐하라 온전하게 되며 위로를 받으며 마음을 같이하며 평안할지어다. 또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12 모든 성도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즉 멀리 떠나는 사도 바울이 교회들의 성도들에게 바라는 축도를 함으로 그 시작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이 옳다 틀렸다. 라고 말하는 것은 그 목사님이 성경을 한쪽과 자신의 잣대로 확정지으려는 억지가 좀 많이 보이네요.

항상 마음에 중심이 중요합니다. 보통 사도들의 축도는 멀리 있거나 혹 떠날 때라든지, 급하게 복을 빌어 주는 축도를 함으로 평상시에는 모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안수하여 기도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주신 말씀의 중심 즉 그 뜻을 밝히 알려면 주님께 여쭤 봐야 되겠지요? ^^

무조건 시키고 배우면 따라하는 목사나 성도가 아니라 그 근본 뜻을 알고 행하면 좋겠습니다.

이 시대에 대다수의 목사님들이 하늘로 부터 오는 권세와 능력과 권위를 잘 이해도 안 되고, 잘 못 배운 탓에, 잘 모르기에 자꾸 인본으로 치우치거나 권위주의에 빠져서 자신들이 해석하고 자신들이 말하는 것을 마치 하나님께서 시키신 것처럼 선포하다보니 성도들이 그 말에 묶일 때가 많습니다.

선한 목자는 오직 예수님 밖에는 안 계십니다. 그 목자의 마음으로 설교하는 기도하는 목사님들이 많이 필요하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능력으로 일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심입니다.

♥ 마 9:35 <무리를 불쌍히 여기시다>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36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37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38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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