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59과. 사람의 성정이 선지자의 성정? (욘 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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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59과. 사람의 성정이 선지자의 성정? (욘 4:1-11)
우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내 가 아프면? 상대도 아픕니다.
● 유대사람들 랍비들 사이에 전해지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난 한 천사가 광야를 지나가고 있는 두 나그네와 동행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세 사람이 지나가면서 서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길을 걷게 되었는데 서로 헤어질 때가 가까워 왔습니다. 그 때에 천사가 말하기를 "나는 천사인데 여러분들과 오늘 이렇게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헤어지는 마당에 한 가지 소원은 들어주겠습니다. 그러니 한가지씩만 말씀하십시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하면 한 사람은 욕심쟁이고 한 사람은 심술쟁이라고 합니다. 아주 질투가 많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 그런데 천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소원을 들어주겠는데 먼저 말한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고 그리할 때 두 번째 사람은 첫 번째 말한 사람의 그것을 배로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두 사람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내가 받는 것도 좋지만, 다른 사람이 배를 받는다니까 욕심 많은 사람은 꼭 배를 받아야겠습니다. 절반만 받아서는 안 되겠어요. 두 몫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고, 또 심술 많은 사람은 내가 못 받으면 못 받았지 다른 사람 많이 받는 것은 못 봐주거든요. 그래서 서로 신경전을 하고 긴장 관계에서 누구도 먼저 말하려고 하지 않았어요. 정말 헤어질 때가 되었습니다. 재촉을 합니다. 이제 떠나야겠다고.
● 그러니까 욕심 많은 사람이 그 심술쟁이 목덜미를 붙들어 꽉 쥐고 "이놈아 빨리 말해. 말 안 하면 죽여 버리겠다."고 했지요. 그러고는 숨을 못 쉬게 목을 조였어요. 그러니까 심술쟁이가 뭐라고 했는고 하니 "그래요, 그렇다면 말하지요. 나는 눈이 두 개가 필요 없거든요. 눈 하나는 없고 애꾸눈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게 소원입니다" 그랬답니다. 어떻게 되었을 것 같습니까. 욕심쟁이는 그 시간 두 눈 다 없는 시각 장애자가 되어버렸다고 합니다. 기가 막힌 얘기 아닙니까? 이 전설 속에서 사람들에게 유대인들이 무엇인가를 많이 말해주고 있는 거예요.
사람마다 문제가 많은데 그 문제를 분석해 보면 딱 두 가지예요. 하나는 욕심이고, 하나는 심술입니다. (마 20:1)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02 그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삼시, 육시, 구시, 열한시) 08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09 제 십일 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10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11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이르되 12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13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14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15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16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 (욘 4:1)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2)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3)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하니 4)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하시니라.
● 오늘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는 선지자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그 뜻에 불만을 품은 선지자가 있습니다. 심지어는 하나님을 심판하는, 하나님 잘못되었다고 대 들며, 골 부리는 어지간히 못된 선지자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 이름은 요나 입니다. 그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없어요. 율법은 있어요. 그러나 은혜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축제를 지내야 될 시간에 이 시간 지금 죽기를 소원합니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낫습니다.” 물론 애국자인 요나는 이방 원수 나라를 위해 답답하겠지요. 그래도 아무리 생각해도, 아무리 생각해도 못난 사람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사람이 많다는 것이 문제이지요. 그리고 하나님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너무나도 어이가 없는 이야기가 아니겠습니까?
이스라엘 나라는 북쪽은 이스라엘이고 남쪽은 유다입니다. 그런데 북쪽 이스라엘은 그 위에 있는 앗수르 나라가 쳐들어와서 나라를 온통 망하게 하고, 포로해 가고, 또 돌아와서 잡혼을 하고 해서 아주 이스라엘을 망가뜨렸습니다. 나라가 망해 없어질 정도가 되었거든요. 이 앗수르 나라는 한마디로 말하면 이스라엘 나라에 대해서는 원수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타난 이 니느웨 성이라는 말은 앗수르의 수도입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아주 멸망시킨 그리고 공략을 한 수도입니다. 그 수도가 죄를 많이 지어서 하나님께서 더 이상 보실 수가 없어서 “소돔 고모라와 같이 멸망시키겠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멸망될 수밖에 없는, 그래서 심판을 선언하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십 일로 한정하시고 니느웨 성을 향해서 요나 선지자를 보냈습니다. '가서 사십일 후에 망한다고 마지막 통첩을 하라' 그랬지요. 하나님의 뜻은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렇게 마지막 경고를 하고 회개를 하면 용서하겠다는 그런 깊은 뜻이 마음에 있으셨겠지요. 그런데 요나는 하나님을 잘 압니다. 가서 외쳤다가 만일에 회개하면 안 망할 거라는 거죠. 그래서 그는 “혹시라도 회개할까봐 걱정이 되어서 안가겠다”고. 그래서 다시스로 도망을 가다가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서 사흘 동안 있다가 그것이 토해버림으로써 니느웨 성에 아주 직행을 하게 되었어요. 이제 꼼짝 못하고 니느웨 성에 왔는데 그가 물고기 뱃속에서 2장에 보면 회개하는 장면도 나옵니다. 이렇게 해서 니느웨 성에 와서 이제는 메시지를 전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어요. 돌아가서 전합니다. 뭐라고 했겠어요.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니 40일 후에 망한다고 합니다. 빨리 회개하세요. 그래야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라고 해야 되겠지만 그럴 마음이 없어요. 그러니까 "40일 후에 망한다. 40일 후에 망한다" 하고 억지로 메시지를 전했단 말이에요. 아주 고약한 사람이에요. 어쨌든 "40일 후에 망한다" 하는 말을 마지못해서 니느웨 성에 가서 외쳤는데 놀라운 것은 왕으로부터 백성까지 재를 무릅쓰고 다 회개했습니다. "그래, 그래, 우리가 죄를 너무 많이 지었지. 이제는 살아남을 수가 없지" 하고 다 회개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저들을 용서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요나가 못마땅한 겁니다. 마음에 안 들어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4장 1절에 보면 기막힌 얘기가 나옵니다. "요나가 심히 싫어하고 노하여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습니다." 내 이럴 줄 알았어요, 그래서 요나가 못마땅한 거예요.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리고 원망할 뿐만 아니라 괴로워하고 싫어하고 그 다음에 죽기를 소원합니다. '나 이런 꼴보고 사느니 죽고 싶습니다.' 참 못난 사람이에요. 아니 죽을 사람이 살았다면 잘 된 거지 니느웨 성이 회개하고 구원받는 것을 보면서 '차라리 이런 꼴 보느니 나가 죽고 싶습니다.'
이 사람이 선지자입니다. 여러분, 왜 이렇게 되었겠습니까. 그는 하나님의 뜻을 몰랐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내 생각, 내 뜻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먼저 이해하고, 그 다음에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고, 그 다음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헌신하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들의 가는 길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요나는 하나님의 마음과 계획과 뜻을 이해하려고 들지 않았답니다. 거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만 위하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작게 본 것.
그러나 여기서 선교학적인 중요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속에 양심도 주었고, 이성도 주었고, 감성도 주었고, 많은 사건을 통하여 깨달음을 주십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선지자를 통해서 반드시 말씀하십니다.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지 않고 멸망케 하시는 일은 없습니다.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비록 이방 나라도 뭐 바벨론이건 애굽이건, 앗수르건, 어디든지 간에 선지자를 보내십니다. 회개하라고. 그리고도 회개하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이 점을 꼭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죄 때문에 망하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죄 때문에 망하는 것만이 아니고, 마지막 통첩을 받고 회개하지 않음으로 망하는 것이지요. 죄로 인하여만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개인도 민족도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질 때, 회개하지 않음으로써 멸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회개하라...
● (욘 4:5) 요나가 성읍에서 나가서 그 성읍 동쪽에 앉아 거기서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그 성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려고 그 그늘 아래에 앉았더라. 6)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넝쿨을 예비하사 요나를 가리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하며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 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더니 7) 하나님이 벌레를 예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 넝쿨을 갉아먹게 하시매 시드니라 8)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쪼이매 요나가 혼미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이르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하니라. 9)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 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하시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하니라 1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 하였고 재배도 아니 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 넝쿨을 아꼈거든 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 삶의 벼랑 끝에서
1965년 세계적인 컨트리 포크 가수인 미국의 자니 캐시가 마약과 다름없는 신경안정제를 1천개 소지한 혐의로 체포되었습니다. 그는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인기와 부를 누렸으나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빠져나가는 것처럼 평화와 기쁨을 잃고 방황하다 신경안정제를 과용하게 된 것입니다.
마약복용과 방황, 허무와 불안 등으로 그의 인생은 흔들렸습니다. 그는 구속되었다가 풀려난 후 더 큰 삶의 벼랑에서 절망했습니다. 그러던 1971년 5월 어느 주일. 그는 남루한 인생을 마감하고 새로운 신분으로 거듭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고,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그의 모든 어둠을 몰아냈던 것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인생의 내리막길이 내겐 구주를 만날 기회가 되었습니다."
야곱이 천사를 만나 씨름한 것은 '홀로 있었을 때'였습니다.
나 밖에 모르고, 내 아픔만 크게 느껴지고, 나만 힘들고, 나만 똑똑한 자랑에서 낮아짐의 횡재...
나만 보이던 삶에서 다른 사람의 아픔도 볼 수 있게 되는 순간 참으로 거듭난 삶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의 역전, 신앙의 회복, 즉 천국 백성의 하나님을 체험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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