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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61과. 네 십자가를 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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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수인
댓글 0건 조회 702회 작성일 19-01-10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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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61과. 네 십자가를 지라!

주님의 십자가와 우리가 잘 못 아는 내 십자가의 차이를 아는가?

“나는 내 고집이나 성격과 아픔이 십자가야!” “당신은 나의 십자가야” 라는 말을 해 본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 말의 뜻은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나의 지고 갈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그 운명을 십자가로 표현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두 가지의 십자가: 내가 죄인이기에 지는 십자가와 다른 사람에 의해, 위해서 지는 십자가.

우리는 우리의 잘못된 의나 경험을 통한 고집이나 습관이나 악한 생각과 정욕을, 그리고 내가 짊어 질 수밖에 없는 환경을 주님이 내게 주신 십자가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먼저 주님의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영광입니다. 우릴 위해 죄도 없으신 분이 대신 죽으신 공의와 사랑의 십자가입니다. 육에 속한 우리의 정욕 그 자체가 아닌, 우리의 허물과 죄로 죽으신 십자가는 우리 것으로 인해 다른 분이 죽으심입니다.

우리가 우리 죄로 매를 맞거나, 감옥에 갇히거나, 죽는 것은 죄인이기에 받는 마땅한 십자가이겠지만? 주님의 십자가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잘못을 주님의 십자가와 동급처럼 우리의 십자가를 지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라고 하시는 십자가는 다른 사람의 영혼을 위해 죽어지는 십자가를 말씀하심입니다.

우리의 죄로 인한 것이나, 우리의 정욕의 십자가를 지라는 것이 아니라? 우린 우리의 죄나 악을 갚을 만한 능력과 의가 충분하지 못합니다. 아니 못 갚습니다.

그리고 완전 회개란 있을 수도 없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예수님을 죽이는 자들의 그 손에 죽는 십자가! “저들이 저들의 죄를 모르나이다.” 여러분을 핍박하는 자들이 우리에게 지우게 하는 다른 이의 죄를 짊어지는 십자가를 말씀하심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원죄와 허물과 정욕을 사하시려고 주께서 우리의 십자가를 대신 지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해결한 십자가를 우리가 또 진다면 그것은 주님을 또 죽이는 꼴이 되며, 내가 죄를 감당 하겠다는 자의의 교만입니다. 가롯 유다와 같은 것이지요.

그들은 주님의 십자가에 구원과 희생을 모르는 불신자와 같은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내 죄를 자꾸 내 십자가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서 문제가 있음을 말씀드립니다.

★ 롬 6: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줄을 믿노니

9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 고전 1: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 고전 2: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 고전 2:8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9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자 한번 봅니다. 우리의 죄로 당연히 지는 십자가는 하나님이 주시는 십자가가 아닙니다.

★ 눅 23:39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40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41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42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그러므로 하늘로 부터 주시는 사랑의 십자가를 지어야합니다.

★ 마 16: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도다. 하시고 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우리가 자주 빠지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결론입니다.

★ 갈 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5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26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그분 예수 그리스도가 지신 십자가는 우리의 원죄와 고범죄, 자범죄와 사소한 모든 죄를 위해 믿기만 하면 깨끗하게 하시고 구원 하셔서 피 값으로 끝을 내셨기에 우리는 그 것을 믿고 우리의 정욕도 탐심도 다 고하고 회개하여 그분의 사랑을 십자가를 희생을 계획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욕도, 탐심도 다 못 박혔으니 그렇게 믿는 우리에겐 더 이상의 정욕이 아닌, 감사로 살라는 말씀입니다. 과거에 머물러 있지 말라는 말씀이며, 너무 먼 미래의 사람되지 말고 지금을 주님의 뜻대로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 내 의와 공의 차이와 내 힘을 의지함과 성령님을 의지함의 차이!

성냥불과 등불의 차이

성냥불과 등잔불의 차이가 무엇인지 아시지요? 성냥불은 잠시 밝게 탈 뿐입니다. 20∼30초를 넘기기 힘들게 됩니다. 그러나 등잔불은 기름만 공급된다면? 계속 탑니다. 무슨 차이인가?

심지의 차입니다. 성냥은 공급되는 기름이 없기에 잠시 환하게 타지만 금방 재가 됩니다.

그러나 등잔불은 심지가 있고, 기름이 있기에 계속해서 탑니다. 3시간이든 3일이든 계속 탄다.

주를 의뢰하는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기름을 공급받는 자입니다.

성령의 기름으로 새 힘을 공급받으며 사는 자들입니다.

그러기에 지치지 않습니다. 힘은 들어도 고갈되지 않습니다.

‘큰 집회 후의 고갈’이란 말이 있습니다.

큰일을 하고 난 다음에 찾아오는 허탈감이나 고갈 상태를 말하는 단어입니다.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가요? 사람의 노력으로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불을 붙이는 역할은 좋습니다. 그러나 그 쏘시개는 자기 일을 하기는 하지만, 애쓰다 죽습니다.

하나님의 힘으로 했다면 그런 일은 생기지 않겠지요.

무디 목사님은하나님의 일꾼을 망가뜨리는 것은 과도한 일이 아니라, 성령님 없이 일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성령으로 일해야 지치지 않고 기쁨으로 소망에 이릅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안하면서, 부질없는 짓이라고 말하거나, 다 내려놓음을 말하면서 꿈을 꾸거나 시작도 해 보지 않고 포기하는 사람은 게으른 사람이거나 믿음이 없는 불신 자일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러므로 최선을 다 해 본 사람만이 누리는 안식과 참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경우는 부지런히 자신의 일에 충성되며 나머지 와 나의 행한 모든 것을 포함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 운행하신 다는 사실을 믿는 자의 몫입니다.

● 세상은 참 사랑의 깊은 맛을 모르기에 보여지는 승부욕과 광신과 자랑을 좇습니다.

하나님의 짝사랑

구약성경 중 호세아서에는 이런 안타까운 Love Story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 고멜은 남편을 배신하고 창녀의 소굴로 도망쳐 버리고, 남편 호세아는 보리를 싸들고 찾아가서 팔려간 고멜을 돈을 주고 사오는 겁니다. 그녀의 배은망덕한 사랑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에 대한 태도였습니다. 계속되는 배신은 하나님을 짝사랑의 애닮은 연인으로 전락시킨 것입니다. 그 이후-- 하나님은 짝사랑의 아픔을 앓고 계십니다.

헌데 당신도 하나님을 짝사랑하게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요? 어느 날인가 복잡한 통근시간에 시내버스를 타고 있었습니다. 저만치 한 여학생이 무거워 보이는 책가방을 들고 있었습니다. 앉아 있던 나는 꼭 그 여학생을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손을 뻗쳐 가방을 받기에는 애매한 거리였습니다. 그저 그 학생이 한번만 돌이켜본다면 나는 그를 부를텐데, 조금만 더 다가선다면 그 가방을 받아줄텐데 --그녀는 끝내 더 먼 위치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눈뜨는 아침부터 저녁 잠자리에 들 때까지 돌보시는 그의 사랑을 아십니까? 당신의 먼 장래까지 보장하시는 그의 관심을 아시나요? 그런데 당신은 어쩌면 주님께 시선한번 안 돌리는 사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일주일 내내 성경 한 장 안 보고, 하루 중 기도 한 번 안하고, 그나마 주일 예배엔 늦게 나오고, 오후 집회엔 관심도 없고......

이중 하나라도 해당된다면 .... 슬프다! 당신은 그 분을 짝사랑하게 만들고 있는 것임을 기억하십시요. 그의 도움의 손길이 끝내 근처에 머물고 있음을 기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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