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46과. 52. 전능자의 손(창 49: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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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46과. 52. 전능자의 손(창 49:22~26)
창세기 49장은 축복의 중요성을 밝히고 있습니다. 야곱은 늙어서 앞을 볼 수 없을 만큼 육신의 눈이 어두웠지만, 그러나 그의 영안은 밝아서, 요셉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에게 축복할 때, 손을 어긋맞겨 얹고 하나님의 뜻대로 정확하게 축복하였습니다. 야곱은 이제 그의 최후의 사명, 즉 열 두 아들에 대한 축복을 하게 됩니다. 아들들에 대한 야곱의 축복은 단순한 축원이 아니라, 예언적 성격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야곱의 축복사건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축복했다는 것이고, 둘째는 행위를 따라 축복했다는 것입니다. 그가 평소에 어떻게 살았느냐, 무엇을 했느냐에 따라 복을 빌거나 저주를 내렸습니다. 셋째는 아버지의 축복대로 성취되었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요셉에게 준 축복의 내용입니다. 요셉 역시 행위에 따라 복을 받게 된 것 입니다. 요셉은 일찍이 형들의 질투 때문에 어린 나이에 애굽으로 팔려갔습니다. 그러나 그의 신앙과 자기관리로 30세에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고 자기 아버지와 형제들 그리고 그 가족 70여명을 애굽으로 초청해 잘 살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요셉의 지난날을 회고하며 나이 많은 아버지가 요셉에게 축복해 준 내용이 본문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1.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고 했습니다.
본문 22절을 보면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라고 했습니다. 유대나라는 비가 적고 물이 적습니다. 그래서 물을 찾으려면 호숫가나 오아시스를 찾아가야 합니다. 애굽 역시 비가 내리지 않는 나라입니다. 나일강을 낀 주변 5%는 옥토여서 농사가 가능하지만 나머지 95%는 사막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애굽도 물이 귀합니다. 그러한 척박한 땅에서 풀이나 과일이 자라려면 샘 곁에 있어야 합니다. 야곱은 요셉을 샘 곁에 있기 때문에 그 가지가 무성하고 담을 넘어 뻗어 나가고 있다고 비유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샘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그 영혼이 말라 죽지 않고 가지가 무성하고 담 너머로 뻗어나게 됩니다.
● 맛있는 과일이 되는 데는 몇 가지 조건이 따라 줘야합니다. (물론 그리스도인은 믿음, 거듭남)
종자입니다. 같은 사과나 포도라도 그 종자가 무엇이냐에 따라 시기도하고 달기도 합니다. 그래서 과일은 계속 새로운 품종으로 개량해야 합니다. 토질입니다. 같은 품종의 사과라도 그리고 같은 밭에 심은 사과라도 그 땅의 토질을 따라 맛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습니다. 땅이 산성화돼 버리면 과일도 맛이 없고 수확도 작아집니다. 제 맛이 나야 합니다. 딸기가 바나나 맛을 낸다든지 포도가 사과 맛을 내면 그것은 돌연변이입니다. 사람도 자기 일이 있고 자기 자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 할 일은 안하고 남의 일이나 간섭한다든지 남의 말이나 곱씹고 있으면 그것은 제 맛 잃은 과일과 다를 바 없습니다. 모든 과일은 신선도가 유지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달고 맛이 있어도 썩은 과일은 가치도 없고 값도 쌉니다. 과일은 싱싱해야 합니다. 사람도 제 아무리 일류대학을 나오고 얼굴이 잘나고 돈이 많아도 그 정신과 삶이 썩으면 가치가 없습니다.
● 대구에 가면 「우방건설」이라는 큰 회사가 있습니다. 대구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경상도지방에서는 가장 큰 회사였고 좋은 일을 많이 했고 아파트 한 채를 꾸려도 든든하게 내실있게 쓸모있게 꾸려서 입주자들로부터 칭찬을 듣는 회사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회사가 IMF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끝내 부도가 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대구에 있는 언론, 시민단체, 시민들이 힘을 합쳐 우방을 살립시다. 라는 플래카드를 도처에 내걸고 서명운동을 벌리는가 하면 요로에 진정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회사가 어려워지고 몸이 허약해지고 하던 일에서 손을 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에라도 사람들로부터 동정과 사랑을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요셉의 가지는 샘 곁에 있었기에 무성했고 담을 넘을 수 있었습니다. 시편 1:3절을 보면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그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라고 했습니다. 우물가에 있어야 무성하고 시냇가에 있어야 형통합니다.
여기서 시냇가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면 뿌리도 마르고 가지도 말라 버립니다. 생명시냇가에 뿌리를 내립시다.
2. 전능자의 손을 힘입었다. 고 했습니다.
본문 23~24절을 보면 활 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군박하였으나 요셉의 활이 도리어 견강하며 그의 팔이 힘이 있으니 야곱의 전능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나도다. 라고 했습니다. 형들이 요셉을 시기하고 질투해 그를 팔이 넘기고 애굽에서 종노릇하고 감옥에 갇히는 고난을 겪었지만 하나님이 능력을 힘입었기에 그가 오히려 성공하고 출세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25절을 보면 그것은 순전히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 이라고 했습니다.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그가 네게 주실 것이라 고 했습니다. 요셉의 성공이나 그가 받은 복은 모두가 하나님이 주신 것이었고, 눈으로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린 여기서 복을 주시는 분이 누구며, 복의 원천이 어디에 있는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복의 원천도, 복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복을 받을 만한 시험을 이긴 자에게 허락하심.
● 2001년 1월 10일 국민일보에 실린 기사가 있었습니다. 경북 영덕군 남정면 구계리에 구계교회가 있는데 교인은 30여명 정도 모이는 작은 교회입니다. 21년 전에 세운 교회지만 자립도 어렵고 예산부족으로 교회건물이 낡고 헐어도 수리도 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 교회 김상태 안수집사(44세)는 고기를 잡는 어부 인데. 성탄절을 앞둔 어느 날 목사님을 찾아와 “목사님 이번에 고기가 많이 잡혀야 성전 수리라도 할 수 있을텐데 기도해 주십시오.” 라고 뜬금없이 말하면서 구하자? 목사님은 “집사님 믿고 기도합시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도와주실 것입니다.” 라고 대답하고 같이 기도를 드렸답니다.
김상태 집사의 어장 양 옆에는 다른 사람들이 쳐 놓은 대형 정치망이 둘러쳐 있었습니다. 보도가 되기 전인 2000년 12월 24일 어장에 나간 김집사는 깜짝 놀랐습니다. 양쪽에 쳐 있는 다른 사람네 정치망은 텅 비어있는데 김집사 정치망엔 방어 떼가 몰려 있었습니다. 그는 24일 하룻 동안 2,300여 마리를 건져냈습니다. 폭풍주의보 때문에 나머지 3,000여 마리는 그 다음에 건져냈습니다. 겨울은 방어철이어서 그 당시 가격으로 한 마리당 16만 9천원을 받고 수산협동조합에 팔았습니다. 마리당 16만 9천원에 팔았으니까 5천 마리면 8억 4천 500만원입니다. 그 동네 생긴 이후 한사람 그물에 이토록 엄청난 방어 떼가 걸린 것도 처음 있는 일이고, 양쪽 그물은 텅 비어있고 가운데 있는 그물에만 5천여 마리가 걸린 것도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신문은 이 사건을 한국에서 일어난 베드로의 기적이라고 머릿 기사를 적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신 복 받은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결론
복은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복은 아무나 주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나 나를 도와 줄 수는 없습니다. 도와줄 능력이 있는 사람, 내 부탁을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나를 도울 수 있습니다. 이유는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시고 모든 것을 소유하셨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샘 곁의 무성한 가지였습니다. 전능자의 손을 힘입었습니다. 우리함께 복의 근원 되신 주님을 찬양합시다.
약속의 의미
독일의 유명한 역사학자 랑케는 산책을 하다 우유 배달원 소년이 길가에서 울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길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우유를 쏟았으나 변상할 돈이 없어 울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랑케는 딱한 사정을 듣고는 소년에게 “내일 이 시간에 이곳에 오면 변상할 금액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랑케가 집에 돌아오니 그의 친구로부터 연구비를 지원할 사람과의 만남이 갑자기 내일 잡혔다는 전갈이 와 있었습니다. 이 만남은 연구를 계속해야 하는 랑케에게 매우 중요한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소년과의 약속을 지키기로 결심했습니다. 랑케는 자신에게 주어진 이득보다 어린 소년과의 신용을 소중히 여겼던 것입니다.
약속을 지킨다는 것은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지는 성숙한 행동이며, 우리에게 약속하신 말씀을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따르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약속은 신성한 것이다. 약속의 의미는 가치의 비중이 아니라, 지키려고 노력하는 성실함에 있다. 내가 약속을 안 지키면서 상대방이나, 하나님은 지켜 주시길 바라는 것도 거짓욕심이며, 무지이며, 교만이고, 감사를 모르는 악한 사단과도 같은 것입니다. 마치 심지 않은 대서 거두려하는 도둑과 같은 것입니다.
누구와 함께 가시렵니까?
힌두교, 불교와 더불어 인도에서 발생한 3대 종교 가운데 하나가 '자이나교'입니다. 자이나교의 창시자인 바르다마나는 극도의 금욕주의를 내세웁니다. 어느 날 그의 제자들이 물었습니다. "스승님! 우리가 어떻게 해야 스승님을 따를 수 있겠습니까?" 바르다마나는 자신을 따르려는 제자들에게 이런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너희가 나를 따르려면 삭발을 하고, 노란 법의를 입어야 하느니라. 무엇보다 살생을 하지 말아야 하니 흙을 파헤치거나 낚시하거나 살생하는 직업에 종사해서는 안 되느니라. 그리고 보는 것, 듣는 것, 냄새 맡는 것, 맛을 느끼는 것, 촉각과 같은 여러 감각에 집착하지 말아야 하느니라. 우리 교단에서 여자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리 가르침은 확고히 설 것이다." 이처럼 세상의 여러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을 따르는 것에 자격 제한을 두거나 법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거운 짐을 지고, 고행을 하라고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요구를 결코 만족시킬 수 없는 연약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율법을 완성하신 분입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다주시는 절대자요, 우리가 전적으로 의지하고 신뢰할 수 있는 유일한 대상입니다. 자기 목숨까지 아낌없이 내주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에게 참된 안식을 주시는 예수님과 날마다 동행하는 제자가 되십시오. “내 제자가 되려면 짐이나 사랑하는 모든 것을 나눠주고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간단합니다. 이전 것은 버리고 오직 말씀만 따르라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인 것입니다.
* 기도: 현실 문제에 매여 기쁨이 없었습니다. 우울한 마음이 구원의 은혜 하나만으로 기쁨과 감사와 감격이 넘치는 밝은 마음으로 변하게 하소서. 진짜 축복은 이 땅이 아니라 천국에 있음을 기억하고 신자든 불신자든 그 앞에서 제 자랑은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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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회 다운로드 | DATE : 2018-09-19 13:2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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