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48과. 62.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2)(롬 8:3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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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48과. 62.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2)(롬 8:35~39)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휴대폰은 현대과학이 만들어 낸 문명의 이기 가운데 하나입니다. 무선으로 어느 곳이나 연결이 된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휴대폰은 계속 충전을 해야 합니다. 충전된 전원이 사용빈도에 따라 방전되게 때문에 한번 충전했다고 해서 한 달이나 1년을 계속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복으로 하루하루를 살아나갑니다. 그러나 그 은혜와 사랑과 복은 지속적인 것이어야 합니다. 한번으로 끝나는 은혜라든지, 일과성 복이라든지 일회성 사랑은 의미도 가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는 휴대전화의 건전지처럼 방전되거나 중단되지 않습니다. 일과성으로 지나가는 복이 아니라 영원히 계속되는 복이라는데 숭고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본문 속에서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실 때 오는 은총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 일과성 [一過性] 어떤 현상이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것
1.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본문 35절을 보면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사랑을 말합니다. 그 사랑에서 우리를 그 어떤 것도 끊거나 떼어놓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부터 끊거나 떼어놓을 수 있는 조건들이 35절에 열거되어 있습니다. 그것들은 환난, 곤고, 핍박, 기근, 적신, 위험, 칼 이라고 했습니다.
환난이란? 외부에서 닥쳐오는 고난이나 고통을 의미합니다. 곤고함이란? 좁은 방에 갇혀 있는 것과 같은 답답함과 행동의 제약을 의미합니다. 핍박 이란? 주님 때문에 당하는 해를 의미하고, 기근이란? 굶주림을 말하며, 적신은? 헐벗음을, 위험은? 신변의 위기를, 칼은? 상해를 당하거나 칼에 찔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상의 일곱 가지는 안과 밖에서 우리를 위협하는 것들이지만 그러나 그런 것들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울의 고백이며 간증입니다.
그는 예수 믿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굶주리고 헐벗었고 매를 맞았습니다. 환난과 고통을 당했고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겼습니다. 돌에 맞았고 파선의 위기를 겪었고 감옥의 고통도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부터 바울을 떼어놓거나 끊지 못했습니다.
● 성 프란시스코는 돈 많은 직물 상이었던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아버지 덕에 사교계를 드나들며 사교와 파티를 즐기며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하나님의 부르시는 음성을 듣고 모든 것을 다 포기해 버렸습니다. 파티도, 사교도, 지위도, 재산도, 소유권도 다 포기한 채 아버지의 직물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었습니다. <제자의 도>
(마 8:22)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 (마 10: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마 19: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마 19: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29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어떤 사본에는, '부모나' 아래에 '아내나'가 있음 30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당황한 아버지는 아들을 집에 가둔 채 제정신이 돌아와야 한다며 매질을 했습니다. 그러나 프란시스코의 제정신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화가 난 아버지는 홧김에 아들을 끌고 법정으로가 판사에게 고소를 했고, 판사는 아버지에게 진 빚을 변상하라는 판결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모든 것, 심지어 입었던 옷까지 벗어서 되돌려 주고 알몸으로 법정을 나서게 되었습니다. 그쯤 되면 프란시스코가 정신이 들어 아버지의 뜻을 따를 줄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이후 구걸로 생활을 이어가는가 하면 프란시스코 교단을 만들어 고행과 경건으로 사는 새로운 운동을 일으켰습니다. 그 어떤 것도 그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놓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 유대인의 정신적 지도자였던 나흐만(Rebbe Nachman)이 쓴 작은 금언집이 있습니다.『빈 의자』라는 제목이 붙은 책인데 이스라엘 주재 박동순 대사가 한국어로 번역했습니다. 나흐만의 금언 가운데 나는 믿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내가 대단히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믿습니다. 아무리 멀리 길을 잃고 방황하더라도/ 내가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믿습니다/ 내가 변할 수 있는/ 내면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나는 믿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참으로 헌신하고 가까워 질 수 있다는 것을/그렇습니다. 하나님 보실 때 나는 매우 중요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떠날 수도, 떠나서는 안돼는 존재입니다. 떠났더라도 다시 돌아와야 하는 존재입니다.
호세아서 11:8을 보면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이방도시, 이방민족을 버리고 방치하시는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을 버리거나 방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찌 너를 놓겠느냐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결단코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지면 안 됩니다. 철사 줄보다 강하고 나일론 줄보다 질긴 것이 사랑의 줄입니다. 주님과 나 사이에 맺어진 사랑의 줄은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줄이 끊어지면 안 됩니다. 줄 끊어지는 순간부터 내 생명은 죽음에 이르게 되고 맙니다. 죽고 사는 것도, 영물인 천사도, 정권도 권력도 성공과 실패도 그 어떤 것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위대한 고백이 우리들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2. 넉넉히 이깁니다.
본문 37절을 보면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고 했습니다. 넉넉히 이긴다는 것은 이기고 남는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17장을 보면 불레셋군의 총사령관이었던 골리앗과 소년 다윗의 대결 장면이 극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의 키는 여섯 큐빗 한 뼘(1큐빗은 45cm 정도니까 2m 80cm정도를 넘는다)으로 거인이었고 놋 투구와 갑옷을 입었는데 그 무게가 57kg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그와 싸우기 위해 준비한 것은 조약돌 5개였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조약돌 하나로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남은 돌이 4개였다는 것입니다. 넉넉히 이기고 4개가 남았습니다. 벳세다 광야에서도 비슷한 기적이 있었습니다. 보리떡 5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이 먹고 12바구니가 남는 사건 역시 넉넉히 먹고 남는 기적이었던 것입니다. 사사기 7장을 보면 기도온의 300명이 미디안 군대 사단병력을 이긴 기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경우도 300명의 작은 수로 넉넉히 이기고 남았 습니다. 여기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그것은 상대가 골리앗처럼 크냐? 작으냐, 미디안처럼 수가 많으냐? 적으냐, 문제가 어려우냐? 쉬우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넉넉히 이기고 남는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하시면 끊을 자도 없고 대적할 자도 없다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불로초를 먹고 보약을 먹고 운동을 하고 요가를 하고 맑은 물을 마신다고 해도 심기가 불편하고 인생관이 부정적이면 건강도 장수도 보장이 안 됩니다. 소년 다윗이 어떻게 물 맷돌 하나로 거인 골리앗을 넉넉히 이길 수 있었습니까? 그의 믿음 때문입니다.
(삼상 17: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사무엘 상 17:45∼47을 보면 소년 다윗의 신앙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칼과 창에 있지 않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다 참으로 놀랍고 위대한 신앙입니다. 그가 넉넉히 이기고 남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가진 믿음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 구원과 멸망이 결정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시련이나 고통을 알고 계십니다. 내가 겪고 있는 고통과 아픔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시련과 아픔 속에서 나의 믿음이 자라기를 기대하고 계십니다.
기다림의 유익
우리는 배우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기도 응답이 오기를 기다리고, 반항적인 자녀가 철들기를 기다리고, 일자리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건강이 나아지기를 기다리고, 갈등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경제적인 압박에서 벗어나기를 기다린다. 기다리는 것은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이 곧 인내다. 우리는 기다림을 통해 인내를 배운다. 믿음의 영웅들의 명단을 보면, 잘 기다린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기에 앞서 광야에서 40년을 기다렸으며, 다시 40년을 광야에서 방황하면서 보냈다. 욥은 소중히 여기던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도 하나님을 기다렸다. 엘리사벳과 사가랴는 노년이 될 때까지 기다리고 난 후에야 특별한 아이인 세례 요한을 낳았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서 석방되기를 기다리면서 편지들을 썼는데, 그것이 오늘날 신약 성경의 일부를 이루게 되었다. 하나님 역시, 세상 죄를 대속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기 위해 ‘때가 찰 때까지’ 기다리셨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주재권(主宰權)에 얼마나 굴복하며 사는지는 ‘기다림’이라는 도가니에서 시험된다. 하나님은 우리가 운명론적인 관점을 가지고 체념 상태로 기다리거나 초조해하고 염려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기다림을 통해 하나님이 모든 일에 있어서 주님이시요, 그 모든 것의 시간 조절에 있어서도 주님이심을 고백하기 원하신다.
기다림은 내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림도 중요하지만? 그분이 원하시는 도구가 되어 질 때 까지 하나님도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왜 안주세요? 왜 안 되나요? 그러나 주님은 네가 온전히 도구될 때 까지 기다린다. 네가 온전히 예배드리는 예배 자가 되길 기다리며 찾는다.
결론 - 하나님께서 일하실 수 있도록 기다림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담대히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선포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나를 높이지 말고, 겸손히 하나님만 높이시는 주님의 백성들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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