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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39과. 깨어 있으라.(눅 21:3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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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마른곰
댓글 0건 조회 716회 작성일 18-07-11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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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39과. 깨어 있으라.(눅 21:34~38)

4복음서 가운데 마태복음 24장, 마가복음 13장, 누가복음 21장은 마지막 종말에 있을 사건들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그 가운데 본문은 종말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를 밝혀 주고 있습니다.

종말을 대하는 몇 가지 잘못된 입장이 있습니다.

① 종말은 없다는 것입니다. 시대마다, 해마다, 사건 있을 때마다 종말이 온다고 떠들었지만 종말은 없었다. 종말은 사람을 겁주기 위해 만들어낸 날조된 가설일 뿐이다 라며 종말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② 종말은 멀었다는 것입니다. 종말이 있긴 있는데 그 종말이 오려면 아직 멀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종말이 연기되고 있는 것만 보아도 그 사실을 증명한다는 것입니다.

③ 시한부 종말입니다. 지금 당장 눈앞에 종말이 전개되고 있다면서 날짜까지 밝히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여러 차례 그런 사건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92년 10월 24일 자정에 예수님이 재림하신다고 믿고 소동을 벌였던 다미선교회 사건을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태도는 성경말씀대로 종말을 믿고, 기대하고 준비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본문이 주시는 몇 가지 교훈을 살피면서 우리 자신들의 종말 신앙과 자세를 바로 해야 하겠습니다.

1. 가까운 줄 알라고 했습니다.

31절을 보면 "너희가 이런 일이 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운 줄을 알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런 일이란 마태복음 24장과 마가복음 13장과 누가복음 21장 그리고 성경 도처에 예언한 사건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되면 주님의 재림과 지상의 종말이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특히 마태복음 24장을 보면 자칭 예수라는 적그리스도가 출현하는가하면 이단과 사이비단체들이 극성을 떨게 됩니다. 살전 4:15~18. 세상의 천재적인 과학자도, 현명한 철학자도, 세상의 종말이나 무덤 저편의 세계는 알 수가 없고, 오직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만이 지구의 종말과 죽음 저편의 일을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이 지구가 인간이 행복하게 살며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요사이 지구의 온난화로 온도가 자꾸 높아지고 금세기 말에는 북극, 남극의 빙산도 다 녹아 없어지고 수천 년 묵었던 빙산이 녹아내려 바다의 수면이 올라와 섬나라들이 물에 잠기고 만다고 하며 지하에 묻힌 석유나 지하자원이 다 고갈되고 만다고 해서 대체 에너지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고 소기름이나 식물성 기름으로 자동차가 달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지구의 종말이 반드시 있고 그 후에 영원한 두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 24:12~14. 12.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14절에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있어야 세상 종말이 오는 것입니다.

도처에서 기근과 지진이 터지고 계속됩니다. 지난 2001과 2015년 1월 26일 오전 강도 6.9~7.9의 강한 지진이 인도와 파키스탄 네팔 일대에서 발생했습니다. 이 지진으로 4월 지진까지 해서 총 14,239명이 죽었고, 61,632명이 부상당했거나 실종되었습니다. 2월 17일 오전 7시 34분 미국 뉴욕에서도 진도 2.5의 지진이 있었습니다. 미국의 경우 주로 서부에서 지진이 일어났었습니다만 암반 위에 세워졌다는 뉴욕도 지진이 일어난 것입니다. 만일 뉴욕에 대지진이 일어난다면 고층빌딩으로 숲을 이루고 있는 맨하탄은 아수라장이 되고 말 것입니다. 2010년 아이티 7.0의 지진으로 아이티 인구의 사망자 22만 명과 부상자 수만 30만 명이 넘었답니다. 아이티의 전 국민의 3분에 1이 사고를 당한 셈입니다.

지난 2015년 1월 13일 중미지역의 엘살바도르에서 일어난 강진으로 사망자 600여명에 실종자는 수천 명을 넘었습니다. 지진으로 무너진 집만도 5천여 채가 넘는다고 발표했습니다.

일본의 경우 2001년도 9월부터 2016년 1월까지 540여 회의 크고 작은 지진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났습니다. 지진전문가들은 후지산 지하의 마그마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것으로 보고 후지산의 폭발이 임박한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과거 2012년 9월 12일, 일본 경시청 보고서는 15,878 명 사망, 6,126 명 부상,2,713 명 실종을 확인했고 또한, 254,204동이 반파되었을 뿐만 아니라 건물 129,225 동이 붕괴되었고 691,766동은 부분적으로 손상을 입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아주 최근에는 하와이에 화산폭발입니다. 지난달 3일 분화한 미국 하와이 주 하와이섬(일명 빅아일랜드) 동단 킬라우에아 화산에서 지금까지 흘러나온 용암의 양이 얼마나 될까? 미 일간 USA투데이는 21일(현지시간) 킬라우에아 화산에서 약 50일간 흘러나온 용암의 양이 2억5천만㎥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이는 올림픽 규격 수영장 10만 개를 채우고도 남을 만한 양이어서 현지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 그 정도 사라졌다는 뜻이다.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2001년도 1월 29일 전북 부안에서 리히터 규모 3.0의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2천년도 우리나라의 경우 29차례 지진이 발생했고 2000년 12월 22일 오전 8시 19분 대전 일대에서도 리히터 규모 2.7의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지진의 면책특구는 없습니다.

요즘 한국에서도 종종 지진이 발생하여 사람들이 피해를 입고 있네요.

2017년도 상반기에만 한국에서 발생한 지진이 34차례라고 하는데요. 진도 2.0 이상의 지진이 일어난 횟수로, 최근에는 울산에서 진도 5.0의 지진이 발생하기도 했었죠. 최근에 일어난 지진은 울산의 지진이 가장 규모가 컸는데, 다행히 큰 피해는 없었다고 합니다. 점점 지진이 많이 발생하면서 지진 대처방법의 중요성이 높아지는데요. 한번 같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동남아시아, 남미, 인도차이나, 한국, 서구할 것 없이 지진의 위협지대에 속해 있습니다. 주님은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가까운 줄 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 다 이루리라고 했습니다.

32절을 보면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다 이루리라"고 했습니다. 기독교는 예언과 성취의 종교입니다. 예언한 것은 반드시 성취되었고 또 성취될 것입니다. 구약에 예언된 모든 사건들은 그대로 신약에서 성취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남은 한가지 예언사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재림입니다. 주님은 그 사건이 반드시 이루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당도, 점쟁이도, 역술가들도 장차 될 일을 예언합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맞는 것보다 맞지 않는 것들이 더 많습니다. 유명한 역술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사람의 얼굴모습(소위 관상)과 목소리만으로도 그 사람의 과거는 물론 장차 될 일을 알아맞히는 신통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가 만나는 사람들 가운데 꼭 죽었거나 불행해졌거나 이미 망했어야 할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망하지도 않고 죽지도 않고 건재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가 볼 때 그것은 신기한 사건이었고 숙제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이유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발견한 놀라운 사실은 이미 죽었어야 할 운명인데 죽지 않고 살아있는 사람들과 이미 망했어야 하는데 망하지 않고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그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죽음을 뛰어넘는 종교, 인간의 운명을 뒤바꿔 놓는 종교는 기독교뿐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은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병든 자를 고치셨습니다. 망할 사람을 흥하게 하셨습니다. 깨어진 가정도 새롭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일이 다 이루리라"는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주님이 하시는 일은 이미 다 이루었고 지금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리고 장차 다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저는 창세기 1장을 읽을 때마다 하나님의 능력에 감격하곤 합니다. 그것은 "그대로 되라"는 말씀 한마디에 "그대로 되니라"가 6번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대로 되니라" 이것이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2000년 7월 미국이 낳은 세계적인 육상선수 벤 존슨이 로마를 방문했습니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선수입니다. 로마 관광도중 그는 짚시 여인과 소녀에게 지갑을 소매치기 당했습니다. 지갑이 없어진 것을 알고 즉시 짚시 여인들의 뒤를 전속력으로 뒤쫓았지만 이미 소매치기들은 지갑과 함께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동행했던 사람이 이렇게 중얼거렸답니다. "벤 존슨보다 빠른 사람이 로마에 있었구먼"

사람은 제 맘대로, 제 뜻대로 안 됩니다. 저하고 싶은대로 못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대로 됩니다. 그대로 하십니다. 약속을 지키시고 그대로 이루십니다. 다 이루십니다.

3. 스스로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본문 34절을 보면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하에서 조심할 것들이 무엇인가를 밝히셨습니다. 그것은 방탕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계속 방탕하고 술 취하고 세상 염려에 빠져 살면 "주님 오시는 날이 덫과 같이 임하리라"고 했습니다.

그 뜻은 절제하고 기다리고 준비하는 사람들에게는 주님 오시는 날이 축제의 날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방탕하고 주색에 빠져 살고 믿음을 저버리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그 날이 두렵고 떨리는 날이 된다는 것입니다. 누가 내 대신 신앙을 지켜주고 경건을 지켜주고 입을 지켜주고 마음을 지켜줍니까? 누가 내 대신 재림하실 예수님을 영접해 줄 수 있습니까? 내가 믿고 내가 구원받고 내가 준비하고 내가 천당가는 것입니다. 내가 스스로 조심해야 버림받지 않고 주님을 영접할 수 있는 것입니다.

4.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고 했습니다.

본문 36절을 보면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고 했습니다. "인자 앞에 서도록" 무슨 뜻입니까? 주님 앞에 서게 된다, 심판대 앞에 선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5:31 이하를 보면 주님이 재림하신 후 세상을 심판하실 때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듯 오른편에는 양들을 왼편에는 염소를 두듯이 갈라놓고 심판하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다 주님 앞에 설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졸지 말고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깨어 있으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잠자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잠자지 말라는 것입니다. 절기적으로 우수 경첩이 지나면 동면상태에 있던 개구리도 땅 밖으로 나옵니다. 입춘이 지나면 언 땅이 녹기 시작합니다. 봄기운이 돌면 나뭇가지에 물이 오르고 새움이 돋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영적으로 3년, 5년, 10년씩 장기간 동면 상태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기도하던 사람이 기도 쉬는 것, 저녁예배 나오던 사람이 저녁예배 안 나오는 것, 봉사하던 사람이 일손을 놓는 것, 전도하던 사람이 전도를 포기해 버리는 것, 이런 것들이 그리스도인의 영적 동면인 것입니다. 그들에게 주님은 "깨어있어 기도하라"고 말씀했습니다.

비행기는 뒤로 가지 못 합니다. 비행기는 엔진이 빨아들인 공기를 압축시킨 뒤 이를 뒤로 강하게 분사시킵니다. 그때 연료가 점화되면서 강한 폭발력이 생기고 그 힘으로 비행기가 앞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신앙 역시 앞으로 가야 합니다. 퇴보해도 안 되고 뒷걸음질 쳐도 안 됩니다.

우리가 종말론을 가지고 살되 그 종말이 답이 없는 막막한 절망과 삶을 포기한 사람들의 의지를 무모하게 파괴해 버린 자들에겐 심판과 이미 죽은 아무 의미 없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교도소에서 새롭게 비전을 가지고 출감하는 죄인들에겐 큰 감격이 되 것입니다.

우리들의 삶 가운데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순간 종말을 선포하십시오.

나의 더러움의 습관과, 나의 이기적인 나쁜 자아와 그리고 잘 못 산 후회의 결과와 경험에서 종말을 선포하십시오. 그리고 절망이 아닌 빛을 찾아 나아가는 열쇠를 들고 나아가는 종말의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마치 종말은 준비된 자의 완전한 졸업과 같습니다. 결혼이 과거의 부모 아래서의 삶과 완전히 새롭게 한 가정을 세우는 새로운 종말과 시작을 말하는 것 과 같습니다.

절망(絶望)의 종말

강남세브란스병원 재활치료실에서 물리치료를 받는 전신마비 환자 이의빈 군의 기사를 보았습니다. 제목은 “전신마비 슛돌이 난 절망 안해"였습니다. 이군은 엄마 얼굴을 모른다고 합니다. 미혼모였던 어머니는 출산 직후 친권을 포기했다고 합니다. 부산 암남동 '소년의 집'에서 자랐는데 축구를 잘하여 중학교에서 축구부 주장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쉬는 시간 책상에 엎드려 있는 그의 목을 같은 반 친구가 장난삼아 팔꿈치로 내리 찍었답니다. 그대로 졸도했고, 의사는 "평생 다시는 두 발로 서지 못할 것"이라고 했답니다. 그는 말하였습니다. "커서 축구 선수가 되기 힘들다는 걸 나도 압니다. 그래도 절망은 안 합니다. 축구는 못해도 체육 선생님은 할 수 있잖아요. 눈으로 움직일 수 있는 마우스가 있다고 들었어요. 몸이 좀 더 나으면 공부를 열심히 해서 대학도 꼭 가고 싶어요." 어떤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는 한 젊은이의 모습입니다. 절망하는 자에게는 미래가 없습니다. 국어사전에 절망(絶望)이란 “바라볼 것이 없게 되어 모든 희망을 끊어 버림. 또는 그런 상태”라고 설명해 놓고 있습니다.

절망감은 어떤 희망도 바랄 수 없다고 여겨 모든 희망을 아주 버리게 된 느낌이며, 미래에 대한 부정적인 기대감입니다. 자신이나 어느 누구도 불행이나 고통을 변화시키기 위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신념입니다. 이러한 절망의 종착역은 죽음입니다. 절망은 자살사고를 설명하는데 우울보다 1.3배 정도 중요한 변수라고 합니다(Beck).

희망이 인간 삶의 중요한 동기라는 점에서 희망이 없음은 죽음과 같습니다. 절망하는 사람에게는 기대도, 기대에 대한 확신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면 생을 포기합니다. 하루에 절망으로 1100명이 자살을 시도하고 그 중 36명쯤이 사망하고 있다고 합니다. 1년에 13,000명이 사망합니다. 아무도 나를 도울 사람이 없다고 절망하기 때문입니다. 키에르케고르는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규정합니다. 그러나 “삶이 있는 곳에 희망이 있으며 희망이 있는 곳에 삶이 있다(Lange)”라는 말처럼 생명이 있다면 어디에서나 절망하지 않고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습니다. 희망은 삶의 한 현상으로 생명이 있는 한 희망은 존재합니다. 아름다운 장미는 퇴비로 기릅니다. 어두울수록 등대는 더 밝게 보입니다. 광풍타고 비상할 기회가 주어집니다. 파도타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오히려 큰 파도를 기다립니다. 연을 높이 날리려는 아이들은 바람을 기다립니다. 골이 깊으면 봉우리도 높습니다.

● 다윗은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 빠진 듯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골리앗 앞에 설 때, 장인 사울에게 쫓겨 다닐 때, 적국에 도망갔을 때, 밧세바를 범했을 때, 아들 암논이 배다른 딸 다말을 겁탈했을 때, 압살롬에게 반역 당했을 때 참으로 수렁에 끌려들어가는 것과 같은 절망적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시 40:2)

절망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선택의 기로에서 자신만 바라보는 사람은 수렁에 빠진 자가 되고,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알고 하나님을 찾는 자는 반드시 구원을 얻게 됩니다.

참 신앙인은 모든 시련을 담대히 이기며 절망과 종말을 오히려 탄력 있게 되는 기회로 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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