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챤 문화선교

선교사훈련

주간말씀나눔

영성5. 18. 땅의 장막과 하늘의 집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강수인
댓글 0건 조회 730회 작성일 17-09-27 03:13

본문

영성5. 18. 땅의 장막과 하늘의 집(고후 5:1~10)

우리 성도들은 영원한 하늘나라를 소망하며 사는 자들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땅위에 있지 아니하고 영원한 천국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 14:1~3)고 하셨습니다. 인생을 사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김우중(대우그룹회장-년 11월 3일 열린 서울고등법원 항소심에서 분식회계 및 사기대출, 횡령 및 국외 재산도피 혐의로 징역 8년 6개월, 벌금 1000만원, 추징금 17조 9천 253억원의 형을 구형받았고, 항소를 포기하여 형이 확정되었다. 2007년 12월 31일 대통령 특사로 사면되었다. 2014년 기준으로 전체 추징금의 0.5%정도인 약 887억원을 납부하였다. 2013년 김우중법에 대해 논란이 일었고, 17조 8000여 억에 달하는 추징금을 미납한 상태이다. 2014년 대우그룹 창립 기념일에 추징금 문제가 불거져 참석하지 못했다. 그해 8월 26일에 대우그룹 해체 15주기를 맞아《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라는 회고록을 출간하였다.)씨 사건을 보면서 무엇을 생각하십니까? 목적이 분명하지 못한 인생은 그 결과가 불행합니다. 어제보다는 오늘을, 오늘보다는 내일을, 내일보다는 영혼의 날을 준비하는 인생 삶의 목적이 필요함을 느낍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오늘을 잘 살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육체는 고난이 연속하고 있습니다. 이런 속에서도 육신의 날을 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낙심치 않을 이유가 무엇입니까? (지나간 과거만 말하는 자, 현재의 보이는 것만 말하는 자, 미래를 말하는 자, 영원을 말하는 자) <육으로 싸우지 않고 달라는 것을 주는 것? 예수님이시라면?>

1. 우리의 영원한 집이 하늘에 있습니다.

본문 1절을 보면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라고 하였습니다. 땅에 있는 장막 집은 신자들의 육신의 몸을 의미합니다. 땅에 있는 장막 집은 육체의 나약성과 임시성 및 무가치성을 나타냅니다. 본문에서는 장막과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을 비교해 놓았습니다. 장막같이 무너지기 쉬운 육신과 영원한 집, 하늘에 있는 집을 비교한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살던 시대의 장막의 사용은 로마 사람들 사이에서도 보편화되어 있었습니다. 바울은 장막 만드는 일에 익숙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의 직업은 장막을 만드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장막은 새것으로 세운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무너지기 쉬운 건조물입니다. 견고한 집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이점에 있어서 장막은 질병에 쉽게 무너져 내리는 연약한 우리 육신의 조직과 매우 흡사합니다. 견고한 석조 건물이라면 무너뜨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장막이라면 쉽게 뒤집고 황폐케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육신이 거품처럼 부서지기 쉬운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 땅에 있는 그의 영혼의 집이 무너질 때를 예상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무너진다고 하는 것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죽기 마련입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최대의 문제는 곧 죽음의 문제입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만일 땅위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안다. 라고 하였습니다. 죽음이란 마침표가 아닙니다. 죽음 이후에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천국이 있습니다. 이 하늘에 있는 집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였습니다. 쎄크위치의 쿼바디스에 의하면 바울은 순교할 때 형장으로 끌려가면서 마치 이웃에 놀러가는 것 같아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알지 못했다고 합니다. 죽음의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이요, 영원한 집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대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도덕, 가문과 물질에 대하여 두려워하거나 걱정하지 않고, 오히려 진정으로 하늘을 소망하는 성도들의 평강이 주께서 말씀하신 참 평안입니다.

그래서 본문 2절은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를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 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믿는 그리스도인은 이 땅위에 살면서도 항상 천국을 사모하며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장막 집()은 임시 거주하는 집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집()은 건축물, 교회를 말합니다. 손으로 지은 것은 일시적입니다. 하늘에 있는 것은 영원한 것입니다. 여기 있는 우리는 무엇을 취하여야 하겠습니까? 간절히 사모하노니 () 사랑에 빠져서, 절실히 바란다는 것입니다.「공동번역」고후 5:2절우리는 이미 이 세상살이에 지쳐 신음하며 새 옷을 갈아입듯 하늘의 몸을 입게 될 날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라고 했습니다.

2. 우리 몸은 주와 따로 거하고 있습니다.

본문 6절이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에 거할 때에는 주와 따로 거하는 줄을 아노니 라고 하였습니다. 무엇에 대하여 담대한 것입니까? 앞에 있는 죽음에 대해서 담대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오래 살아야만 복이 아닙니다. 죽는 것도 복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사는 것만 복이 아니라 죽는 것도 복입니다. 계시록 14:13절에 자금 이후로 주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고 하였습니다. 죽음을 복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기독교인 밖에 없을 것입니다. 모든 종교나 사람들은 보통 죽음을 저주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죽음을 복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 8절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고 하였습니다. 바울의 천국관은 이처럼 확고부동하였습니다. 영원한 집에 대한 소망은 죽음에 대해서만 담대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길이 비록 힘들고 거칠다고 할지라도 오히려 말할 수 없는 기쁨의 장소로 여길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 영원한 집에 대한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에 신앙을 실패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육체로 있는 동안에 주님에게서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항상 담대 하라 () 용기를 보이라 '자신만만 하라' 육체를 벗으려고 하지 말고 영으로 덧입으라, 우리 몸은 성령을 보증으로 받아 세상 가운데 있습니다. 잔여분의 보증을 위한 공탁금, 이 일을 위해 성령을 우리에게 보증으로 주셨습니다.

3.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본문 9절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육신에 있든지 떠나 천국에 가든지 우리의 삶의 목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데 있습니다. 이제는 삶의 주체가 내가 아닙니다. 지금까지는 나를 위해 살고 나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살았지만 이제는 내가 주체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삶의 주체요,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14:8에서 이렇게 고백하기를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했습니다. 힘쓰라 는 것은 어떤 일을 하는데 열심히 노력한다. 지지않도록 하는 것을 말합니다.「현대어 성경」우리는 이 육체를 가지고 항상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 목적입니다. 우리가 다 반드시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는 날이 있습니다. 심판대 땅 위에서 육체로 사는 동안에 행한 일에 대하여 보상하는 날입니다. 회개하여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주를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첨부파일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총회신학교
CCS
쥬빌리 통일구국기도회
대한민국전자정부
행복발전소
Prayer
대한성서공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