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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8번째. 36. 시험이 오는 통로(마 26:3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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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수인
댓글 1건 조회 716회 작성일 17-10-25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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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8번째. 36. 시험이 오는 통로(마 26:31~35)

성경을 자세히 보면 크게 두 종류의 사람들로 구분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시험을 이긴 사람들과 시험에 넘어진 사람들입니다. 시험은 누구나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욥이나 다윗이나 베드로나 바울이나 주님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 아나니아와 삽비라, 아간 같은 사람들은 시험을 이기지 못하고 넘어졌습니다. 그렇게 볼 때에 시험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그 시험을 어떻게 대하느냐, 그 시험을 어떻게 이기느냐가 중요합니다.

유비무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마는 시험도 미리 오는 것을 알고 예방한다면 별걱정이 없을 것입니다. 현대인의 적이라고 부르는 성인병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조기에 발견하면 치료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방이라고 합니다. 요즈음 예방의학이 각광을 받고 있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사순절 주일을 맞이해서 예수님의 고난 주간에 있었던 한 사건을 생각하면서 예수님의 제자였던 베드로를 모델로 시험이 오는 경로를 생각하고 예방과 이기는 비결을 찾도록 합시다.

1. 자기도취입니다. 마 26장 33절을 보면 베드로가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라고 했고, 막 14장 31절에 보면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라고 했고, 눅 22장 33절에서는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데도 가기를 준비하였나이다. 라고 했고, 요 13장 37절에는 주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사복음서에 나타나는 베드로의 지나친 장담은 결국 내가 제일이며, 내가 예수를 제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자기 과신과 도취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얼핏보면 신앙고백처럼 보입니다마는 그러나 고백은 실천이 될 때 고백이 되는 것입니다. 말로야 누군들 주님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지 않겠습니까? 헌신하지 못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베드로의 문제는 자기 자신을 지나치게 내세우고 믿는데 있습니다. 그리고 행동보다는 말을 앞세웠다는데 있습니다. 떠벌리는 신앙, 실행 없는 신앙은 시험받기 쉽고 약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십일조, 봉사, 철야, 금식, 헌신, 사랑모든 것을 입으로만 다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미 그런 사람들은 자기가 친 그물에 걸린 사람들입니다. 대개의 경우 장담은 허풍스러움과 통합니다. 속이 차고 능력이 있는 사람은 장담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속이 빈 사람이나 능력이 없을 때 장담을 늘어놓기 마련입니다. 서부영화를 보면 언제나 떠들고 말 많은 총잡이가 말없이 눈을 굴리는 총잡이에게 당하는 것이 정석입니다. 허풍스레 떠들어대는 신앙은 빈 수레와 같습니다. 그리고 그런 신앙태도는 시험이 찾아드는 통로가 됩니다.

2. 혈기입니다. 마 26장 51절에 보면 베드로가 칼을 들어서 사람을 친 이야기가 나옵니다. 마태는 직설적으로 베드로였다고 그 이름을 밝히지를 않았습니다만 요한은 요 18장 10절에서 그가 베드로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평화의 왕이신 주님을 수행하는 베드로가 로마 병사처럼 칼을 휴대하였다는 사실도 문제이고 더욱이 칼을 휘둘러 말고란 사람의 귀를 짤랐다는 것은 더욱 이해가 안 되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의분과 혈기 비폭력과 폭력을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혈기는 자기감정을 통제하지 못할 때 일어나는 심리적인 현상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가 자기를 억제하지 못할 때 혈기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 혈기를 잘 부리는 데는 다음 몇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① 욕구불만 때문입니다.

② 약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③ 주의 성령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④ 사단의 노리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레이버 위크박사(dr.Ray Burwock)혈기 혹은 분노를 가리켜서 감추어진 폭탄 이라고 했습니다. 폭발하는 분노는 여러분의 건강을 해칩니다. 그것은 무서운 파괴력으로 궤양, 고혈압, 그리고 편두통을 일으키며, 감정적으로는 우울증을 일으키며 심하면 정신이상도 일으키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 했습니다.

게다가 혈기는 전염병입니다. 잠언서 22장 24절~25절을 보면 노를 품는 자와 사귀지 말며 울분한 자와 동행하지 말찌니 그 행위를 본받아서 네 영혼을 올무에 빠칠까 두려움이니라. 고 했습니다. 우린 이 말씀 속에서 분노는 전염된다는 사실과 영혼까지도 파멸을 시킨다는 것을 발견해야 합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4장 26절에서 해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 고 했습니다.

우리가 분을 이기려면 ① 그 위험성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② 그 무익성을 깨달아야 합니다.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기분에 얽매이지 말고 이성을 찾고 지각을 사용합니다.

3. 무사안일주의에 빠진 신앙태도입니다. 마태복음 26장 40절을 보면 너희가 한시동안도 나와 함께 깨어 있을 수 없더냐? 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한시동안은 극히 짧은 시간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한 시간 정도도 깨어 있지 못했다는 책망이며 탄식인 것입니다. 사실 그날 밤에 제자들이 한 시간 정도도 깨어 있을 수 없을 만큼 중병에 걸려서 있었거나 허리가 부러졌던 것은 아닙니다. 인간의 신체구조상 적당한 휴식을 통해서 새로운 활력을 얻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적당한 때 적당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정상적인 삶의 태도입니다. 신앙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해야할 때 졸고 있다든지 찬송해야할 시간에 잡담을 한다든지 일해야 할 때 잠자고 있다면 시험이 오는 통로를 열어주고 있는 것입니다.

4. 거리 때문입니다. 마 26장 58절에 보면 붙잡혀 가는 예수를 따라가는 베드로의 모습을 베드로가 멀찍이 예수를 따라갔다. 고 했습니다. 멀찍이라는 거기에 함정이 있습니다. 자기 나름대로 적당한 간격을 두고 불리하면 뛰어 달아날 수 있는 거리를 유지한 채 따라서 갔다는 말입니다. 베드로의 이 태도를 가리켜서 부르스라는 사람은 다른 제자들보다는 용기 있는 처신이었지만 그러나 만족할만한 것은 아니었다. 고 했습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와 자동차 사이에는 거리가 절대로 필요합니다. 속도만큼의 간격을 두고 달려야 급제동을 할 때 충돌을 막을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남남끼리는 적당한 간격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부부 사이라든지 부모 자식 간의 사이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산다면 그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더구나 주님과 나 사이에 거리가 있으면 그 사이에 시험이 끼어들게 되는 것입니다.

틈이 생기는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감정, 편견, 고집, 게으름, 완악함 등이 원인이 됩니다. 빨리 거리를 좁히고 틈을 막아야 합니다. 그래야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시험을 이깁니까? 그것은 시험이 오는 통로를 차단해 버려야 합니다. 시운말로 원천 봉쇄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혈기는 마귀의 선물이니까 그 대신 성령이 주시는 은혜를 충만히 받아서 온유와 절제와 화평의 선물을 받으면 물러갑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면 됩니다. 그리고 이미 시험을 이기신 주님을 의지하고 내 모든 시험을 주님께 말씀드리면 시험은 나를 떠나게 될 것입니다. 광야에서 예수님처럼 우리도 시험이 오는 통로를 차단해 버립시다. 말씀과 믿음으로 무장하고 마귀의 도전을 물리칩시다.

사람은 내가 부족하고 힘들 때 주님을 만나게 되고, 가장 강력한 설교와 가사와 그림과 지혜와 아름다움과 성숙한 힘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그 힘이 바로 나를 알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무뎌지거나 나의 교만이 들어나는 순간 바로 시험이기에 반드시 지혜를 구해서 승리하시길.

시험을 이기는 은혜

중국의 유명한 부흥사가 20대에 중병을 얻어 사형선고를 받았는데 간절히 기도하는 가운데 환상을 보았습니다. 배를 타고 양자강을 건너는 중에 큰 바위에 부딪치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노를 저어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하나님의 음성이 잔잔히 들려왔습니다.

“네 앞의 바위를 치워주랴, 물이 불어나서 물 위로 배가 지나가게 하랴?” 그는 “물이 불어나 그 위로 지나가게 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이 같은 환상을 체험하고 난 후 그는 많은 사람들을 주께로 돌아오게 하는 유명한 부흥사가 되었습니다. 넘치는 은혜 속에서 시험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지금 당신 앞에 커다란 바위가 놓여 있습니까? 단지 그 시험을 제해주실 것을 기도하는 소극적인 기도가 아니라, 강물이 넘쳐나도록 부으시는 은혜를 간구하는 적극적인 기도를 하십시오.

시험을 이기는 말씀의 능력

한 신학생이 첫 학기에 조직 신학 시험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서술형 문제였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백지를 내고 나올 수도 없었던 그는 답안지에 이렇게 썼습니다.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과연 성적이 어떻게 나왔을까요? 채점 지를 받아 보니 이렇게 씌어 있었습니다. "하나님=100점, 너=0점." 인생의 광야에서 각자 경험하는 시험은 유형만 다를 뿐 피해갈 수 없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마귀가 우리에게 주는 시험은 주로 세 가지인데, 첫 번째'먹음직함'의 시험입니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이 부당한 투기나 투자, 뇌물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 마귀에게 자신의 영혼과 양심을 팔고 있습니까. 두 번째는 '지혜로움'의 시험입니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이름 석 자를 남기려고 발버둥 치며 살아갑니다. 세 번째'보암직함'의 시험입니다. 보이는 세상의 환상을 미끼로 사탄을 경배하도록 하는 것이 우상 숭배의 유혹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만 섬기고 경배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시험을 이기는 비결은 예수님처럼 '기록되었으되'라고 말할 수 있도록 성경의 가치관을 내면화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세상의 유혹, 마귀의 유혹을 단호하게 거절할 수 있습니다. 성도는 그런 삶의 태도를 통해 세상이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는 자임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거룩한 순례 / 이동원.

어느 취업시험의 합격자

어떤 회사에서 신입 사원을 뽑기 위한 시험이 새벽 4시부터 치러진다고 공고되었다. 너무 이른 시간이었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시간을 맞추어 일찍 회사의 정한 시험장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공고가 된 새벽 4시가 지났지만 회사의 문은 열리지 않고 굳게 잠겨 있었다. 점차 응시자들이 여기저기서 불만을 틀어놓기 시작하였다. 예정된 시간보다 무려 다섯 시간이나 늦은 9시에야 문이 열리고 수험생들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회사의 무성의에 대한 수험생들의 불평과 불만이 끊어지지 않았다. 어떤 응시자들은 화가 나서 돌아가 버렸다. 아홉시가 조금 넘어 면접시험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면접관이 수험생에게 묻는 질문은 대기업 수험생들에게 맞지 않는 질문들이었다. “한국의 수도는 어디 입니까?” “대통령의 이름이 무엇입니까?”라는 식의 웃기는 질문만 늘어놓고는 면접을 끝내었다. 입사시험이란 그게 전부였다. 며칠이 지난 후 몇몇 수험생들에게 합격 통지서가 배달되었다. “저희 회사에 합격하신 것을 축하합니다. 당신은 몇 가지 테스트에서 좋은 성적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첫째 당신은 시간을 잘 지켰습니다. 둘째 당신은 인내심이 있었습니다. 다섯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인내하면서 기다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셋째 당신은 평범하고 짜증나는 질문에도 성실하게 그리고 온화하게 답하므로 성격이 원만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우리 회사(천국인)가 원하는 1) 시간 지키기 2) 오래 견디기 3) 원만한 성품이라는 세 가지 선발기준에 모두 합격점수를 얻었으므로 귀하를 본사에 채용하기로 하였습니다.”라는 내용의 통지문이었다. 시험이나 면접은 누구나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합격자는 시험을 내는 회사에 합당한 답을 구하는 사람이 됩니다. 시험지에 답을 채우는 것만이 그 사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면접의 과정이 그 사람의 인품을 나타낸다. 우리는 남이 보는 데서는 곧 잘 점잖은 채, 공손한 채, 동정심이 많은 채 하지만 내면은 그렇지 못할 때가 많다. 한 사람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전인격적인데서 나타난다.

엡 6:6-7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고 하였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인격은 한 두 시간 예배하는 데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전체의 삶 속에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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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인님의 댓글

강수인 작성일

나의 나됨은 아직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다....

눈가림이란 말은 상대의 눈가림이 아니라 내 눈가림이란 인식을 해야 합니다.
내 눈만 가리고 거리에서 옷을 벗고 활보하는 짓이지요.

운명 교향곡에 맞추어 방구를 낀 어떤 미련한 청년처럼 지하철 안에서의 에피소드는 실로 자신 뿐 아니라 많은 사람의 얼굴을 불게 만드는 것입니다. 남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스스로 너무 눈가림만 하는 어리석은 백성이 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성도에게 특별히 무엇을 잘해서 선물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훈련과 마귀의 유혹을 통해 당신의 말씀을 잘 이행하는 지를 보신답니다.

끝까지 쉽게 느껴지고, 마음에 두렵고, 참기 힘들어 버리기 쉬운 우리 마음을 견고하게 지키는 성도들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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