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벳새다의 소경(막 8: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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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23과. 벳새다의 소경(막 8:22~26)
나의 세상적인 고정 관념이 아닌? 오직 순종함이란 믿음으로 구하는 자에게 기적이 나옴.
세상과 사물을 보는 것은 사람의 눈과 짐승의 눈이 다를 바 없습니다. 사람도 보고 짐승도 봅니다. 그러나 사람은 짐승이 보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사람의 눈은 세 가지 세계를 볼 수 있습니다.
① 물질세계를 봅니다. 산을 보고 강을 보고 하늘과 땅을 봅니다. 그리고 사람을 보고 물건을 봅니다.
② 정신세계를 봅니다. 인간만 지식을 탐구하고 가치를 추구합니다. 인간은 음악을 듣고, 연극을 보고, 과학과 물리, 화학과 역사와 철학을 연구합니다.
③ 신령한 세계를 봅니다. 영적인 꿈을 꾸고 환상을 보고 신령한 세계를 볼 수는 없습니다. 사람만 신령한 눈이 있어서 영원한 세계를 볼 수 있습니다.
영원한 세계가 무엇입니까? 고대인들은 막연히 이 세상과 다른 세상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 세계가 어디에 있는지 누가 준비했는지에 대해서 알 수 없지만 영원한 세상이 있다는 것은 인정했습니다. 애굽에 가면 수많은 귀족들과 역대 왕들의 무덤이 널려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무덤이 피라밋입니다. 카이로를 중심으로 93개의 피라밋이 있습니다. 큰 것은 높이가 143미터에 넓이가 230미터입니다. 평면 면적은 15800 평 정도인데 24년간 쌓아 올렸습니다. 한 사람 왕의 시체를 넣어두기 위한 무덤치곤 너무나 방대합니다. 애굽 왕들의 역사를 보면 살아있는 동안의 기록은 짧습니다. 그러나 사후의 세계는 길고 영원하다고 믿었기 때문에 피라밋 같은 대형 무덤을 만들고 그 속에 온갖 보화를 집어넣었습니다. 그리고 시체가 썩지 않고 영원히 남게 하기 위해 미이라를 만들었습니다. 애굽 귀족이나 왕들은 40일 동안 미이라를 만들고 장례식은 30일 동안 계속했습니다. 합하면 70일 장이 됩니다.
왜 미이라를 만들고 피라밋을 만들어야 했습니까? 그것은 영원한 세계를 바로 보는 눈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막연히 영원한 세계가 있겠거니, 내세가 있겠거니, 천국이 있겠거니, 있으면 좋고 없어도 상관없고... 이런 믿음은 믿음도 아니고 영원한 세계를 보는 신령한 눈도 아닙니다.
본문은 주님께서 벳세다 지방에서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을 고쳐 주셨다는 기사입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 한 사람을 마을 사람들이 주님께로 데려왔습니다. 그를 불쌍히 여긴 마을 사람들의 동정심의 발로였습니다. 우린 본문 속에서 그를 고치신 과정을 주목하고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1.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셨습니다.
마태복음 9:27~31절을 보면 두 사람의 맹인을 고치신 기사가 나옵니다. 여기서는 두 사람의 눈을 만지시며 믿음대로 되리라 하시자 그들의 눈이 밝아졌습니다. 마가복음 10:6~52에도 맹인을 고치신 기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디메오라는 맹인이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문을 듣고 길가에 나와 소리를 질렀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가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보기를 원하나이다.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여기서는 그의 믿음을 보시고 말씀으로 눈을 고쳐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9:1~7을 보면 나면서부터 맹인 된 사람을 고치신 기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는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며 실로암 연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고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고 했습니다. 고치신 방법이 다 다릅니다.
본문의 경우는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을 데리고 마을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그로서는 예수님을 만난 자리에서 고침 받는 것이 제일 편합니다. 그러나 마을 밖으로 가자시는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는 고침 받지 못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문제를 해결하려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전폭적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그 어느 한 가지도 거역하거나 불순종하면 안 됩니다. 마을 밖으로 나가자고 하시면 힘들어도 따라나서야 합니다. 내 기분에 맞지 않아도 마을 밖으로 따라가야 합니다. 그래야 눈을 뜨고 세상도 보고 주님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22] 벳새다에 이르매 사람들이 맹인 한 사람을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손대시기를 구하거늘
벳새다는 갈릴리 서북과 동북 두 곳에 각각 있는데 이 벳새다는 동북에 있습니다.
거기 가신바 소경을 데리고 나아와 손대여 주심을 바랐다. 이 벳새다는 헤롯 빌립이 중건한 곳으로 가이사 아구스도의 공주 율리야의 이름으로 이름하기도 한다.
손을 대서야 나을 줄 믿었던 저들이 그 방법까지 제시했다. 방법은 주님께 있을 뿐이다 하시고 안 하심이 하실 수 있고 없음이 문제는 아니다. 치유의 은혜를 바라는 그의 믿음이 문제인 것이다. 행불행(行不行)이나 능불능(能不能)이 문제는 아니다.
믿는 자에게“(막 9:23) 신불신(信不信)이 문제인 것이다.
2. 눈에 침을 뱉으셨습니다.
침이란 자기 입안에 있을 때는 꼭 필요한 액체입니다. 입안에 들어간 음식물을 씹을 때 분비되고 소화제 구실을 해줍니다. 침은 음식 맛을 나게 해주고, 음식물을 부드럽게 해줍니다. 침샘이 막히거나 마르면 말도 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침은 치료제 구실도 해줍니다. 그러나 그 침이 입 밖으로 나오면 추해집니다. 한마디로 더럽습니다. 주님이 맹인의 눈에 침을 뱉으신 것은 당시 통용되던 민간요법을 이용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맹인의 신앙을 시험하신 것이었습니다. 침을 바르든지 물을 바르든지 침으로 이겨낸 진흙을 바르든지 주님의 방법에 순응하고 수용하는 믿음과 태도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마을 밖에도 따라갔고 침을 발라도 순응했습니다. 그래서 세상을 보고 주님을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23] 예수께서 맹인의 손을 붙잡으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사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시니 마을 밖으로 나가심은 사람들의 격동이나, 선동을 피하심이다(7:33) 침을 뱉음은 사람을 무시함이다.
3. 그에게 안수하셨습니다.
본문 23절을 보면 그에게 안수하시고 라고 했고 25절을 보면 다시 안수하시매 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병자들을 고치실 때 아무에게나 안수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특별히 사랑할 때, 그에게 믿음이 있을 때 안수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린아이들을 축복하실 때 안수하셨습니다. 마을 밖으로 나가자면 따라나서는 사람, 눈에 침을 발라도 감격하고 감사하는 사람, 그런 사람에게 안수하지 않고 누구에게 안수를 하시겠습니까?
[24] 쳐다보며 이르되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가는 것을 보나이다. 하거늘. 사람이 나무같이 걸어감이 보인다고, 이는 나면서 소경 된 자는 아닌 듯하다. 점점 보이게 하셨다. “의인의 길은 돋는 햇빛 같아서 점점 빛나서”(잠 4:18)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벧후 3:18) 소경의 눈이 점점 좋게 됨을 보이심이니 초목의 자람도 눈에 크게 띠이지 아니하되 점점 자란다.
4. 무엇이 보이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무엇이 보이느냐는 주님의 물음에 그는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의 걸어가는 것을 보나이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25절을 보면 이에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시매 저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만물을 밝히 보는지라 고 했습니다. 드디어 암흑으로 그는 뒤덮였던 세월을 청산하고 두 눈을 뜨고 사람과 만물을 보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감격스러웠겠습니까?
우린 여기서 저가 주목하여 보았다 는 말씀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맹인이 서 있는 곳은 마을 밖입니다. 우리 눈에는 예수님이 보여야 합니다. 교회에 앉아 있지만 세상이 눈에 어른거리면 안 됩니다. 성경을 읽고 찬송을 부르지만 걱정과 근심이 눈에 보이면 안 됩니다. 말씀을 듣고 있지만 유혹과 쾌락의 그림자가 눈에 어른거리면 안 됩니다.
[25]-[26] 이에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시매 그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모든 것을 밝히 보는지라. 예수께서 그 사람을 집으로 보내시며 이르시되 마을에는 들어가지 말라 하시니라.
다시 안수하시매 잘 보여졌다. “그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사 30:18) 눈이 아주 밝을 때는 형제를 사랑한다.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두운 데 있는 자요”(벧후 3:9) 이렇게 저로 보게 하고 이르되 마을에 들어가지 말고 집으로 바로 가라 부탁하셨습니다.
“아무에게라도 이르지 말라”(7:36) 이런 부탁을 때로 하셨습니다(마 8:4, 9:30, 12:16)
보통 은혜 받고 간구하는 것도 기존의 자신만의 기질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해서 주께서 묻죠.
● 무엇이 보이느냐? 주님이 보입니다. 무엇이 보이느냐? 주님의 피 묻은 십자가가 보입니다. 무엇이 보이느냐? 주님의 사랑과 능력이 보입니다. 무엇이 보이느냐? 고난 뒤에 있는 영광이 보입니다. 아멘.
● 무엇이 보이느냐? 돈이 보입니다. 쾌락이 보입니다. 무엇이 보이느냐? 유혹이 보입니다. 무엇이 보이느냐? 세상이 보입니다. 무엇이 보이느냐? 성경도 교회도 예수도 안 보입니다. 만일 기독교인이 그런 대담을 하게 된다면 그 사람은 두 눈먼 영적 장님인 것입니다.
● 눈 먼 자의 겸손한 전도? 그리고 내가 겸손해 진다면?
장님은 지하철을 탈 때마다 성경을 들고 갔습니다. 사람이 붐비는 곳에서 자리를 잡아 앉게 되면 옆 사람에게 아주 조용한 목소리로 성경 몇 장 몇 절을 펴서 읽어 줄 수 가 있겠느냐고 물어 봅니다. 옆의 사람이 앍고 난 후에 다시 이렇게 말합니다.'읽은 부분을 제가 외워 볼 테니 한번 맞는가? 틀리는가? 확인해 주시겠습니까?' 옆의 사람은 이렇게 20여분 동안 자신이 성경을 읽고 또 암송하는 말씀을 듣게 된다는 것입니다. 많은 것을 시사해 주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그렇게 해서 비록 소경이지만 전도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확실하게 순종하는 삶을 살기보다는 핑계를 대는 습관에 젖어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하나의 작품이라면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어 나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성도라면 그리스도를 위한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하여야 하는 것을 왜 잊고 사는지.... (눅 6:42)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 (요 14: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고전 2: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롬 8: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0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0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0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영적 소경
어느 목사가 글래스고우에서 열심히 옥외 집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설교 마지막에 결론을 내릴 쯤 어떤 불신자가 앞으로 나와서 말하기를 "목사 양반, 나는 천국도 지옥도 믿지 않소.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믿지 않소. 나는 그것들을 본 적이 없소이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옆에 검은 색 안경을 낀 소경이 앞으로 나왔습니다. "이 부근에 클리이드 강이 있지만 저는 믿지 않소. 여기 사람들이 많이 서 있지만 저는 믿지 않소. 나는 그들을 본 적이 없소. 나는 맹인으로 태어났거든요. 나는 눈이 없는데도 믿는데 당신은 눈이 있으면서도 못 믿는다면 참으로 이상하군요."
이 맹인이 하고자 하는 말이 바로 제가 드리고 싶었던 말입니다. 영적으로 눈먼 사람들은 아무 것도 볼 수 없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별함이니라." (고전 2:14).
(잠 1:22) 너희 어리석은 자들은 어리석음을 좋아하며 거만한 자들은 거만을 기뻐하며 미련한 자들은 지식을 미워하니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잠 1:32) 어리석은 자의 퇴보는 자기를 죽이며 미련한 자의 안일은 자기를 멸망시키려니와
(잠 9:18) 오직 그 어리석은 자는 죽은 자들이 거기 있는 것과 그의 객들이 스올 깊은 곳에 있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잠 14:15) 어리석은 자는 온갖 말을 믿으나 슬기로운 자는 자기의 행동을 삼가느니라.
(잠 19:25) 거만한 자를 때리라 그리하면 어리석은 자도 지혜를 얻으리라 명철한 자를 견책하라 그리하면 그가 지식을 얻으리라
(잠 19:29) 심판은 거만한 자를 위하여 예비된 것이요 채찍은 어리석은 자의 등을 위하여 예비된 것이니라.
(잠 22:3) 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하여도 어리석은 자는 나가다가 해를 받느니라.
(사 32:6) 이는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은 것을 말하며 그 마음에 불의를 품어 간사를 행하며 패역한 말로 여호와를 거스르며 주린 자의 속을 비게 하며 목마른 자에게서 마실 것을 없어지게 함이며
08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주 여호와가 당신을 두고 맹세하셨노라 내가 야곱의 영광을 싫어하며 그 궁궐들을 미워하므로 이 성읍과 거기에 가득한 것을 원수에게 넘기리라 하셨느니라. 09 한 집에 열 사람이 남는다 하여도 다 죽을 것이라.
(암 6:10) 죽은 사람의 친척 곧 그 시체를 불사를 자가 그 뼈를 집 밖으로 가져갈 때에 그 집 깊숙한 곳에 있는 자에게 묻기를 아직 더 있느냐 하면 대답하기를 없다 하리니 그가 또 말하기를 잠잠하라. 우리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지 못할 것이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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