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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24과 독수리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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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마른곰
댓글 0건 조회 568회 작성일 18-02-28 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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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24과. 그리스도인의 교육 -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는 독수리

신명기 32 : 10 - 13. 2018.2.27. (서울 지하철 1호선 40대 투신...) 죽었나? 살았나?

2012.12.8일자 조선일보 사회면에 ‘해외연수까지 다녀온 30대 여 고독사 .. 한없이 굶어’ 죽었다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부산 모 대학 4년제를 졸업하고 중국 연수까지 다녀 온 33세의 젊은 사람이 굶어 죽었다고 합니다. 죽은 지 7개월 만에 모친이 발견하였는데 냉장고도 텅 비었고, 먹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이 굶어 죽었다고 합니다. 최고의 학벌을 가졌고 누구보다도 좋은 환경에 자랐습니다. 그러나 자기 혼자 먹을 것도 책임지지 못하는 무능력함을 볼 수 있습니다. 어릴 때 부모의 사랑만 받고 조금도 어려움이나 고생을 하지 않고 자랐기 때문입니다.

<늘 배워온 것에만 충실하다 보니 알 수 없는 어떠한 문제에 부딪히면 좌절부터 합니다.>

이것뿐이겠습니까? 자신이 낳은 아이도 키울 수 없어 버리거나 죽이는 일들을 왕왕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자신 한 몸도 책임지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이 당하는 어려움을 이기지 못해서 무능력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좋은 환경에 부모의 극진한 사랑을 받으며 자라고 있습니다. 날씨가 추워도 별로 떨어보지도 않습니다. 배고픔도 모릅니다. 마치 온실에 자라는 식물처럼 자랍니다. 무엇을 가지기 위해 자신이 노력하지 않아도 부모가 다 해 줍니다. 유치원 학생한테도 핸드폰을 사줍니다. 안된다고 말하면서도 다른 아이들이 가지고 있다거나, 너무 때를 써서 사줍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자녀의 귀가를 위해서 족쇠를 대신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이 때문에 파르르떱니다. 별 어려움을 모르고, 잘 못했을 때에 가부 당하거나, 책망을 받거나, 매를 모르고 자란 아이가 앞으로 세상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어려움이라고는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이 세상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잠 23:13)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14 네가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의 영혼을 스올에서 구원하리라 15 내 아들아 만일 네 마음이 지혜로우면 나 곧 내 마음이 즐겁겠고 16 만일 네 입술이 정직을 말하면 내 속이 유쾌하리라 17 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

예전에는 제가 어렸을 때에는 거지가 참 많았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어려서 더럽고 추하고 동냥하는 거지를 너무 무섭고 싫어했지요. 그래서 어머니들이 공부 안하는 자녀를 공부 하도록 하기 위해서 지나가는 거지를 불러 놓고 묻습니다. “아저씨 학교 졸업 했어요?” “아니요” 그러면 엄마들이 말합니다. “그것 봐 너도 공부 안하며 저렇게 거지되는 거야!”

그런 말에 놀라서 “아 공부해야 쥐!” 그래서 우리나라에 고학력자들이 늘어 난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은 공부 안한 거지보다 공부한 유식한 노숙자들이 더 많다는 것입니다.

서울역이나 부산역사에 노숙자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 노숙자들 대부분은 어렸을 때 어려움을 당해 보지 않고 자란 사람 성실한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다는 그렇지 않겠지만 대다수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어떤 계기로 순간 우울증 환자처럼 자신의 가치를 잃거나, 잊어버리고 갈 바를 몰라서 방황하는 것입니다. 그리곤 자신을 존귀하게 여기는 생각이 사라지고 완전 포기하여 천하게 자신을 학대하며 사는 것입니다. 어려서 너무 보호만 받다가 사회에서 부딪히면 그것을 이길 힘이 없어서 무너지는 것입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부딪히는 것을 이길 힘이 없는 것이죠.

어려움은 모두에게 있습니다. 어려움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어려움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더 큰 어려움이 될 수 있기도 하고, 어려움이 많은 유익이 될 수도 있습니다.

● 어떤 사람은 어려움을 당하면 숙명적으로 이해를 합니다. 팔자로, 운명으로 이해합니다. 그래서 자신은 불행한 사람이라며 비관에 빠져 듭니다. 부모를 잘못 만나서 불행하다고 합니다. 세상이 공평하지 못하다고 세상을 탓합니다.

● 그러나 어떤 사람은 어려움을 섭리적으로 이해를 합니다.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려움을 당해도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고 믿습니다.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깨닫게 됩니다. 어려움 속에 숨겨진 복을 찾아냅니다. 바로 나의 긍정적이고 일을 극복하는 참다운 능력을 발견합니다. 나를 찾습니다.

성공한 사람들 모두에게는 어려움 없이 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죽음의 위협을 느낄 정도의 어려움을 당했을 때 그 어려움 속에서 숨겨진 길을 찾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어려움이 없었다면 성공하지 못했다는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 많은 그리스도인들과 승리자들이 기뻐하고 감동하는 것은 크고 작은 문제와 사람들의 부딪힘 속에서 자신을 오히려 찾아 가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속에 이런 능력이 있음을 감동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사랑도, 자신의 능력도 이런 상황이 발생 될 때에 들어 나게 되어있습니다. 진짜 사랑과 실력이지요, 물론 처음에는 마음은 원이로되 육이 약하여 충분히 실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연단되면 더욱 강해지고 넉넉해지고, 큰 전쟁을 격고 나면 왠만한 일은 일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듯이 강해지는 것입니다.

고난과 환란과 전쟁과 험한 일 가운데 아이디어가 생기고 충신이 생기고 놀라운 기적이 생기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이순신 장군! 요셉! 독립 운동가! 긍정적인 염탐꾼. 감사하며 이기려는 그리스도인들...

반대로 어떤 나쁜 상황에 부딪히면 더 악한 자들도 들어 납니다. 매국노! 도둑! 불평하는 자! 원망하는 자! 적그리스도... 어떤 환경이든지 그 환경을 보는 중심에 따라 겉이 들어 납니다.

그래서 우린 외부적인 것을 구하기보단, 내 속에 내면에 숨겨져 있는 그 힘을 찾아야 합니다.

★마 7:6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7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우리는 내 안에 숨겨진 놀라운 달란트를 찾아야 합니다.

남들의 칭찬에 빠져서 나를 잃어 버려서는 안 됩니다.

모세는 광야 40년을 지나 가나안이 요단강 건너편에 보이는 곳에서 죽음을 앞두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마지막 설교를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해서 광야를 지나 가나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그동안 역사하신 일들을 회상하면서 설교를 했습니다.

●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를 훈련시켜 높은 하늘을 날 수 있는 독수리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하신 하나님에 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로 인도하셔서 그토록 고생 시키셨는가를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는 것은 새끼를 가장 높이 날아오르도록 훈련시키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11절에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이스라엘 백성을 훈련시키고 보호하신 하나님이심을 가르쳐 줍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무엇을 느낍니까? 오늘 우리가 당하는 어려움은 하나님께서 나를 강한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훈련시키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강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나를 훈련시키시는 것이라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큰 고난을 이긴 사람은 큰 사람이 된다.

독수리의 보금자리는 높은 절벽 낭떨어지에 있습니다. 독수리는 폭포수가 무섭게 쏟아 내리는 벼랑 끝에 짓습니다. 밑에는 시퍼른 물이 빙빙 돕니다. 떨어지면 죽을 수밖에 없는 곳입니다. 그리고 보금자리는 찌르는 가시를 먼저 깔고 그 위에 나무 잎이나 풀로 덮고 자기 털을 뽑아 폭신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알을 까서 새끼를 키웁니다. 어미는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며 키웁니다. 새끼가 어느 정도 크면 폭신한 털과 짚을 걷어 내고 가시 때문에 새끼들을 편안히 잠을 잘 수 없도록 합니다. 그리고 새끼에게 날개를 펴서 나는 법을 가르쳐 주다가 어느 정도 날개 짓을 하면 밖으로 밀어 냅니다. 그러면 새끼는 낭떨어지 아래 시퍼른 물을 보고 겁을 먹고 자꾸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나 어미는 새끼를 낭떨어지로 밀어 떨어뜨립니다. 그러면 새끼는 작은 날개로 퍼득이며 떨어집니다. 그때 어미는 떨어지는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떨어지는 새끼를 지켜보고 있다가 새끼가 위험할 정도가 되면 재빠르게 하강해서 날개를 펴고 새끼를 받아 업습니다. 그리고 다시 높이 날아올라 또 새끼를 떨어뜨립니다. 그렇게 하므로 해서 새끼의 날개를 강하게 만듭니다. 독수리로 태어났다고 해서 독수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강한 훈련을 통해서 비로소 하늘 높이 날 수 있는 독수리가 되는 것입니다.

군인이 훈련을 받아야 적을 두려워하지 않는 군인다운 군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해병대를 훈련시킬 때 밤중에 깨워 망망대해에 파도치는 바다 한 가운데로 데리고 가서 파도치는 바다에 집어 던진답니다. 그리고 배는 어디론가 가버리는 것입니다. 불빛 하나 보이지 않는 캄캄한 바다 한 가운데 빠졌을 때 살기 위해 최선을 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멀리서 배는 지켜보고 있다가 지쳐서 위험할 때 쏜살같이 달려와 군인을 건집니다. 이러한 훈련을 받아야 적을 두려워하지 않는 강한 해병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해병대나 훈련된 여러 군인과 군대가 있어야 국민이 평안합니다. 우린 그래서 모든 환란을 훈련으로 이기고 담대해져야 하는 것이죠.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로 인도하신 것은 강한 민족으로 만드시기 위해서라는 것을 가르쳐 주셨고, 광야의 훈련을 통해서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경외함과 회개를 가르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여 낸 광야는 마실 물조차도 없는 곳 이였습니다. 애굽보다 더 힘든 곳이었습니다. 먹을 것, 마실 것도 없는 광야, 낮에는 뜨거운 햇볕에 지치고, 밤에는 추위에 떨어야만 했습니다. 그럴 때 ‘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만나 주셨습니다. 10절“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지켜주셨습니다. 반석을 쳐서 물을 마시도록 해 주셨습니다. 아말렉과의 싸움에도 이기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출 19: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의 노예로 고통당했던 것이나, 광야 생활도 하나님이 보금자리를 어지럽히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이 없는 애굽에서 살도록 하지 않고, 언약 맺은 백성으로 가나안에 들어가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주신 고난 이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믿음과 고통이 없었더라면 아직까지도 애굽을 떠나지 않고 살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언약 맺은 백성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죄악와 더불어 종으로 살았을 것입니다.

바이올린이 비싼 것은 수억 원짜리가 있답니다. 저도 그렇게 비싼 바이올린은 구경도 못했습니다. 비싼 원인은 장인의 기술도 있지만 바이올린을 만든 나무랍니다. 오랜 세월을 눈비를 맞고 자란 나무를 또 오랫동안 말려서 비틀어지지 않는 것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랍니다. 쉽게 비틀어지거나 금이 가는 나무로 만든 바이올린은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다윗이 왕 중의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십수년을 사울 왕으로부터 쫓겨 다니는 어려움을 당하였기 때문입니다. 쫓겨 광야 굴속에 숨어 지낼 때 하나님을 향하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부르짖을 정도로 시련을 당했습니다. 다윗이 이러한 시련이 없었더라면 백전백승의 훌륭한 왕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시련을 통해서 위대한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어려움이 있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이 지금 여러분을 강한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주신 시련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당하는 시련을 지켜보고 계십니다. 힘들어 지칠 때 하나님은 날개를 펴서 업어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강한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세상을 이길 수 있도록 훈련을 시키십니다. 그 어떤 것도 이길 수 있는 존재로 만드십니다.

어려움을 통해 하나님의 돌보심을 체험하시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려움이 없고 시련이 없다는 것은 결코 행복이 아닙니다. 무능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을 이길 수 없는 존재가 될 뿐입니다. 독수리가 보금자리를 어지럽히듯이 어려움이 있을 때 강한 자로 만들기 위해 하나님께서 훈련하시는 것으로 알고 감사하며 이길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어려워 힘들어 하는 것을 하나님은 지켜보십니다. 그러나 지칠 때 하나님은 날개를 펴서 업어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강한 능력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 요셉은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자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셉을 아버지의 사랑만 받고 자라도록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의 보금자리를 어지럽혔습니다. 그리고 낭떨어지로 밀어 떨어뜨렸습니다. 형들에 의해 애굽으로 팔려가게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셉을 마치 떨어지는 새끼 위에 어미가 너풀거리며 새끼를 지켜보듯이 팔려가는 요셉을 지켜보셨습니다. 그리고 위험하고 외로울 때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종이였지만 형통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릴 강하게 만들고 내 속에 능력이 들어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당신의 날개를 펴야 합니다.

그러나 명심해야 합니다. 내가 힘들게 살았다는 생각을 고통으로만 보는 사람들은 부귀와 성공을 좋아하면서도 자신의 과거에 힘든 삶은 자식에게 물려주기 싫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하나님의 방법을 기쁘게 배우고 행복한 삶이었음을 자녀들에게 보여줘야 할 것입니다. 항상 내가 힘들게 자랐다고 해서 자수성가하신 분들은 자손들에게 고통을 안주겠다고 곱게 키우거나 나중에 자녀들에게 손 내밀지 않게 하겠다고 말하며 지나치게 강하게 사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외로워집니다. 그리고 자녀들도 오늘 말씀처럼 나약해저서 타락 할 수 있습니다.

아부라함도 이삭을 올려 드립니다. 요셉도 야곱의 사랑에서 떼어 내십니다. 사랑은 마음껏 하되, 모든 것을 지으신 하나님께 배워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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