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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30과. 슬픈 마음 있는 사람. 말씀:마 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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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수인
댓글 0건 조회 665회 작성일 18-04-25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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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30과. 제목:슬픈 마음 있는 사람. 말씀:마 5:3~6.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성경 말씀은 누구에게 주신 것인가? 상대인가? 나인가? 그러면 이렇게 읽어 봅니다.

3. 내 심령이 가난한 것을 아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나의 것임이요. 4. 내가 나를 볼 때에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내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 내가 나에 대하여 급하지 않고,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내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 내가 하나님의 의를 바라고 내 속이 빈 것을 알고 구하며, 내가 목마른 것을 깨닫고 구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내가 배부르게 될 것임이요.

다른 사람의 모습을 보고 울고 슬퍼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을 보라는 것입니다.

남이 목마른 것을 보고 복이 임하지는 안지요? 결국 내가 목마른 것을 알고 구하는 자가 복이 임합니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타락성을 ‘지껄임’, ‘쏠림’ 등의 용어로 지적합니다. 이 용어들이 내포하는 공통적인 특징은 ‘신중함’이 결여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신중한 생각 없이 ‘지껄이고’ 천박한 유행적 사조에 ‘쏠려 다니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자기’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진정한 자기를 발견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이나 제도, 혹은 유행 등에 자기를 숨기고 살아갑니다. 그들은 자신을 대면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남을 무시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단지 내 자신을 잃지 말라는 것.

●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달란트를 맡기셨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다섯을, 어떤 이에게는 두 개를, 어떤 이에게는 하나를 주셨습니다. 이 달란트는 다름 아닌 우리의 ‘자아’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우리의 고유한 형상입니다. 그 달란트가 몇 개이던 간에 하나님이 주신 기본적인 달란트, 재능은 소중히 가꾸고 더욱 발전시켜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말씀하시고 복되게 하십니다. 반대로 우리의 자아를 상실하고 세상의 말과 체면으로 나를 잃고 종이 되었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악하고 게으른 종으로 평가하실 것이고 영원한 형벌에 처할 것입니다.

● 본문은 진정한 자아! 이것을 회복하는 길을 열어 보입니다. 진정한 자아의 발견은 자신을 가장 솔직하게 대면하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성경은 자신을 대면하는 자의 공통적 심리를 ‘애통’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자기의 모습을 깊이 들여다 보는 사람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을 영적인 시선으로 응시합니다. 그는 삶 가운데서 우리의 자아를 끊임없이 파괴하는 죄의 현실을 봅니다. 그리하여 그는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라고 절규합니다. 그는 자신의 한계와 비참함을 보고 시편 기자의 고백처럼 “나의 죄로 인하여 내 살에 성한 곳이 없사오며 나의 죄로 인하여 내 뼈에 평안함이 없나이다…내가 피곤하고 심히 상하였으매 마음이 불안하여 신음하나이다.”(시 38:4-8)

이토록 애통해 하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그는 위로를 바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찾아가 마구 울고 애통한다면 상대에게 위로 받고 싶은 것 아닙니까? 더 나아가 그는 자신에게 주어질 위로가 세상의 것이 아닌, 하늘의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진실한 모습을 직시하고 위로를 구하는 자에게 하늘의 것으로 위로하실 것입니다. 그는 주님을 만날 것입니다. 자신의 문제를 직시하면서, 추악하고 더러운 죄를 깊이 애통해하는 자는 구원자를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고 외칠 것입니다. 그의 외침은 마침내 받아들여져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나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2)고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문제를 깊이 애통해하면 할수록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이미 말할 수 없는 애통한 삶을 사셨음을 발견할 것이며, 그로 인해 더 이상 우리는 애통의 삶이 아닌 기쁨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위로는 세상의 것과 같지 않습니다. 그것은 생명의 위로입니다. 세상의 것은 시들고 말 것이지만, 그리스도의 것은 영원합니다. 그는 바로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위로의 ‘생수’이기 때문입니다.

애통의 가치

어떤 여자가 자기의 삶을 마치고 사후 세계로 가기 위해서 요단강(스탁스위버라뉴) 강가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그 여자는 웨론이라는 천사를 만났습니다. 천사는 그 여인에게 말했습니다.

"그대는 이 요단강을 건너가기 전에 망각(리틀스 계곡)의 샘물을 마시고 가겠는가?"

여인은 물었다. "내가 그 샘물을 마셔야 할 필요가 있습니까?" 그러자 천사는 말했습니다.

"만약 그대가 망각의 샘물을 마시면 세상을 모두 망각하고 이 강을 건널 수가 있다."

"나에게 그 샘물을 주십시오. 나는 이 세상에서의 고통을 다 잊고 싶습니다."

"허나 여인이여, 그대는 동시에 모든 기쁨도 잊을 것이요."

"하지만 나는 이 세상에서의 모든 실패를 망각하고 싶습니다."

"여인이여, 하지만 동시에 그대는 성공도 잊을 것이요."

"하지만 나는 이 세상의 모든 상처를 잊고 싶습니다."

"여인이여, 하지만 그대는 동시에 사랑도 잊어버릴 것이요."

한참을 생각하던 여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그 샘물을 마시지 않겠습니다."

이 여인은 마지막 인생 순례의 정점에서 기쁨은 고통을 동반하고, 성공은 실패를 수반하며, 사랑은 상처를 동반한다는 진리를 배울 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애통은 확실히 가치가 있습니다. - 생명의 양식 중에서

●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롬 5:20) 그리스도의 위로‘애통’의 깊이에 비례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문제를 깊고 철저하게 애통해하는 한, 그리스도로부터 주어지는 위로의 깊이는 커질 것입니다.

  • 우리가 싸움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간단합니다. 말입니다.


나의 죄를 모르는데 큰 문제가 있습니다. 내 죄를 모른다는 말은 남의 죄는 크게 보이는데 내 죄는 말로만 낮아질 뿐 정녕 자신을 못 보는 것입니다. 즉 겸손한척은 하는지 몰라도 정말 겸손한 자는 못되는 것입니다. 내가 진정한 죄를 깨닫는 순간 다른 사람의 죄를 논할 수 없다는 말이 됩니다. 살인죄를 지은 자들이 소매치기를 나무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우린 남을 비판한다는 자체가 얼마나 큰 살인죄인지를 잘 모르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 큰 죄는 바로 상대를 비판하고, 자신을 참소하는 자입니다.

(마 7:1)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02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03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04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05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06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07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08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롬 14:1)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말에 실수가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말하는 기술도 배워야 합니다.

그런 실수하는 건방진 말들을 스스로 고치고 좋은 말을 배워서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기다라시는 하나님은 참으로 우리의 믿음을 자라도록 기다려 주시는 놀라운 사랑의 아버지이십니다.

(약 3: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06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07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 왔거니와 08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09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10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 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11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 의에 겸손애통은 하나가 됩니다.

참 겸손은 상대가 나를 나로 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 주고, 내 맡겨진 일에 충성하는 사람입니다.

겸손한 위인들

만유인력을 발견한 아이작 뉴튼은 자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우주에 관해 아는 지식은 바닷가에서 노는 아이들이 바다의 신비에 대해 아는 지식보다 적거나 아니면 그와 비슷할 것이다.” 이런 겸손의 모습은 슈바이쩌 박사에게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그가 선교하기 위해 아프리카로 가서 병원을 지을 때, 나무를 베고 운반하고 못질하는 일을 직접 했습니다. 그때 혼자 그 많은 일들을 감당하기 어려웠던 슈바이쩌는 옆에 있던 한 청년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러자 그 청년은 “저는 지식인이어서 그런 일은 할 수 없습니다. 그런 막일은 못 배운 사람들이나 하는 겁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에 슈바이쩌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도 자네만할 때는 그렇게 생각했다네. 그러나 웬만큼 배웠다 싶으니까 이젠 아무 일이나 다 하겠더군.” 세계의 성자로 추앙받고 있는 알버트 슈바이쩌 박사가 그 당시 지식인들이 꺼려하던 막일을 했다는 것은 그의 겸손을 보여주는 좋은 일례입니다.

일찍이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이렇듯 자신을 낮추는 겸손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이같은 주님의 겸손이야말로 그리스도인들이 본받아야 할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애통’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자신의 문제를 깊이 느끼고 슬퍼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그런 당신을 기뻐하시고 위로하실 것입니다. “애통하는 자…그는 위로를 받을 것이라”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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