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강하게 하십시오! (신 3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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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강하게 하십시오! (신 31:1-8)
< 이별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
살다 보면 이별을 할 때가 생깁니다. 때로는 사별을 하고, 때로는 일터를 그만두고, 때로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헤어져야 합니다. 때로는 그 이별하는 사람이 그 동안 크게 의지했던 사람인 경우도 있습니다. 그가 없으면 가게가 돌아가지 않을 것 같고,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제 그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사나?” 그러나 이 세상에 사람이 없어서 못 살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빨이 없으면 잇몸으로 살면 됩니다.
하나님은 선하시고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입니다. 그처럼 선하신 하나님이 이별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그 이별이 결코 나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제 사람을 의지하며 살지 말라는 뜻이고, 이제는 이별하는 사람이 없어도 충분히 혼자 잘 살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리의 생각을 초월한 놀라운 능력을 주셨습니다. 사람을 의지하면 그 능력이 대개 사장됩니다. 창조성도 생기지 않습니다. 절실한 기도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별을 허락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이별도 딛고 성공적으로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만 이별하지 않으면 됩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날 수 있는 두 날개를 주셨습니다. 그 날개를 사장시키지 마십시오.
한 방송국에 유능한 명 PD가 있었습니다. 그는 만드는 프로그램마다 히트를 쳤습니다. 어느 날, 그가 갑자기 자기 프로덕션을 만들겠다고 퇴사를 신청했습니다. 사장과 예능국장은 그가 없으면 시청률이 급속히 떨어질 것 같아서 조금 더 이 있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래도 떠났습니다. 그가 떠난 후, 처음에는 전체 스태프가 사기가 저하되고 어떻게 좋은 프로그램을 제작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습니다. 예능국 직원들은 최고작을 만들지 못했지만 그런 대로 프로그램을 제작했습니다. 2달이 지났습니다. 보조 예능 PD들의 제작 실력이 부쩍 성장했고 스태프 간 팀워크도 점차 잘 맞았습니다. 그 뒤 1년이 지났습니다. 그 방송국 예능국에서 연이어 히트작을 내면서 사장, 국장, 그리고 스태프 모두가 생각했습니다. “그때 그 PD가 떠난 것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다!”
이별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나중이 시간이 지나면 이런 생각이 들 것입니다. “그때 그 이별이 하나님의 선한 섭리 하에서 이뤄진 일이었구나!” 만약 그가 자신과 함께 계속 있었더라면 창의성은 사장되었을 것이고, 자신을 위해 하나님이 준비해놓으신 축복된 길을 멋있게 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인간관계를 할 때나 비즈니스를 할 때, 이별의 순간이 닥치면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이 이별에 하나님의 선한 뜻이 있는 줄 믿습니다. 이 이별을 축복해주소서!” 이별은 하나님이 새로운 축복의 장으로 이끌기 위한 조치입니다. 그러므로 이별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변화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이별의 순간에 뒤를 바라보지 말고 위를 바라보십시오. 그러면 마음에 신비한 평안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이별은 우연한 사고가 아닙니다. 이별은 하나님의 목적 있는 시련입니다. 모든 고난과 상처에는 우리를 좋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오묘한 뜻과 섭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별을 축복으로 받아들이면 하나님이 새로운 축복의 문도 열어주실 것입니다. 그때 내 안의 잠재성이 격발될 것이고, 그때 내 안에 있던 창조성이 나타날 것이고, 그때 하나님은 현재의 여건과 상황에서 가장 적합한 새로운 동역자도 보내주실 것입니다.
지금은 급변하는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에 죽은 적토마 위에 계속 올라타 있으려고 하면 결코 생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별을 허락하시고 변화를 허락하십니다. 그러므로 이별의 순간에 이렇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왜 그가 내 곁을 떠났을까? 왜 이런 이별의 아픔이 생겼을까? 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 이별의 때는 이별의 원인을 찾을 때가 아니라 새로운 선택과 결단을 해야 할 때입니다.
이별의 순간에 자기연민에 빠지지 마십시오. “나는 패배자다! 내 모습이 얼마나 처량한가? 내가 이제 살아나갈 수 있을까?” 그러면 정말 영혼이 처량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별의 순간에도 변함없이 승리자의 고백을 해보십시오. “하나님! 이것은 저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목적 있는 시련인 줄 믿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 믿음의 고백을 들으시고 ‘이별한 삶’을 ‘특별한 삶’으로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 거룩한 낙관주의자가 되는 길 >
항상 모든 상황을 낙관적으로 받아들이는 삶을 훈련하십시오. 물론 낙관주의가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죄를 짓고 엉망으로 살면서 미래를 낙관하는 낙관주의는 헛된 낙관주의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는 거룩한 낙관주의자는 되어야 합니다. 거룩한 낙관주의자가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1. 준비
본문 1-2절 말씀을 보면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는 자신은 120세가 되었고, 출입하기가 힘들 정도로 노쇠해졌고, 민수기 20장에서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해서 백성들이 불평한다고 분노를 가지고 바위를 지팡이로 때림으로 요단강을 건너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새로운 변화를 준비하고, 특히 본문 3절에서 새로운 리더인 여호수아를 준비시킵니다.
이 장면을 보면 준비가 중요함을 깨닫게 됩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대개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미래를 준비하고, 죽음의 때를 준비하고, 특별히 땀을 준비해야 합니다. 왜 사람들 사이에 갈등과 문제가 생깁니까? 가장 큰 이유는 땀을 적게 흘리고 단기간에 많은 것을 얻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땀을 찾아야 행복도 찾아옵니다.
땀이 없이 노는 것이 좋은 것일까요? 아닙니다. 노는 것은 힘든 것입니다. 오래 놀아본 사람들은 노는 것이 힘들고 고통스럽다는 것을 압니다. 땀을 흘리지 않고 노는 것만 좋아하면 정말 오래 노는 수가 생깁니다. 잠은 소중한 것이지만 잠이 많은 것은 큰 문제입니다. 이제 무덤에 가면 반듯이 누워서 1년 365일 동안 계속 잠만 자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너무 잠자는 시간이 많으면 내일의 행복이 보장되지 못합니다.
성공하려면 일의 재미와 기쁨을 알아야 합니다. 거룩함이 무엇입니까? 땀이 거룩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땀을 흘릴 줄 알고 일하는 사람에게 복을 줍니다. 땀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참된 믿음은 돈에 대한 관심보다 일에 대한 관심을 증대시킵니다. 돈복에 큰 관심을 가지기 전에 일복에 큰 관심을 가지십시오. 일복이 터지면 행복이 있고, 거기에 돈과 명예는 덤으로 주어집니다.
미국의 험프리 대통령의 아버지는 항상 그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습니다. “험프리! 너는 침대를 멀리하며 살아라! 침대를 멀리할 때 내일을 소유할 수 있단다!” 내일을 준비하면 내일이 겁나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이 많이 연약합니다. 부족한 부분도 많습니다. 그래도 위축될 필요가 없습니다. 계속 준비하면 하나님이 언젠가 쓰십니다.
1991년 10월 전혀 한국에 동역자도 없는 상황에서 미국 기독교 선교연맹 출신 목사로서 한국에 혈혈단신 귀국했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 많이 축복을 받았습니다. 비록 크지 않지만 자체 소유센터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또한 미국 기독교 선교연맹 소속 정회원 교회가 6개가 되었고, 한국 복음주의 기독교 선교연맹 회원 목회자가 40명이 넘었습니다. 저의 메일 회원이 4130여 명인데, 그 중에 천 명 이상이 목회자입니다.
요삼일육선교회도 지경이 점점 넓혀지고 있고, 미션퍼블릭도 세워졌습니다. 미션퍼블릭에서 책이 3권 나왔고, 파일은 27개가 완성되었습니다. 네트영어도 잘 착근이 되고 있습니다. 비록 교인 숫자는 적지만 한국 사회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습니다. 때가 되면 준비한 사람들을 많이 보내주셔서 교회의 외적인 큰 성장도 있게 하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준비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흘린 땀의 대가를 되돌려주실 것입니다.
2. 용기
본문 4-5절 말씀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이미 멸하신 아모리 왕 시혼과 옥과 및 그 땅에 행하신 것과 같이 그들에게도 행하실 것이라/ 여호와께서 그들을 너희 앞에 붙이시리니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명령대로 그들에게 행할 것이라.” 모세는 어떤 대적도 이길 수 있다는 거룩한 낙관주의자였습니다. 그런 자신의 낙관주의를 전파하려고 무엇을 강조합니까?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는 하나님 말씀입니다.
본문 6절 처음 말씀을 보십시오.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그래도 두려워할 것 같아서 본문 7절에서 또 말씀합니다. “모세가 여호수아를 불러 온 이스라엘 목전에서 그에게 이르되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가나안의 축복을 얻으려면 무엇보다 마음을 강하게 먹어야 합니다.
이제 문제 때문에 너무 낙심하지 마십시오. 이 세상에 문제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 문제를 극복하며 전진하는 것이 바로 성도의 삶입니다. 건강이 무엇입니까? 병균이 없는 것이 건강입니까? 아닙니다. 누구나 병균이 있고 그래서 모든 사람은 넓은 의미로 다 병자입니다. 그런데 그 병균을 이길 수 있는 저항력이 있기에 건강한 것입니다. 믿음생활에서도 그런 영적 저항력이 있어야 사단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어느 날, 한 점쟁이가 어떤 처녀에게 점을 쳐주면서 말했습니다. “살이 꼈는데.” 그런 말은 단호히 물리쳐야 하는데 이 처녀가 그 말을 물리치지 못했습니다. 그 후, 그 말이 계속 머리에 맴돌면서 결국 그녀는 점쟁이의 한 마디로 폐인이 되었습니다. 성도는 호기심으로라도 점을 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사실상 점을 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도는 점이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점은 치지도 말고 듣지도 마십시오. 귀를 믿음으로 잘 지키십시오. 살다 보면 가끔 마음속에 마귀가 와서 두려움을 주며 가끔 속삭입니다. “애들에게 사고가 나겠는데. 큰일이 생기겠는데. 실패하겠는데.” 그런 속삭임을 단호하게 물리치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딜 수 없습니다. 그러면 정말로 불행이 찾아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을 생각하고 믿음으로 나가면 어떤 근심과 두려움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근심은 대개 불필요한 것입니다. 일전에 미국 정신과 의사협회에서 근심에 대해 조사했습니다. 그 조사에 의하면 조사자의 40%가 일어나지 않은 일을 근심하고 있었고, 30%가 이미 지나가 버린 일을 근심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12%가 헛된 상상을 하며 근심을 만들어내고 있었고, 나머지 18%는 근심하지 않아도 될 일을 근심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사람의 근심은 거의 모두 불필요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살다 보면 가끔 근심스런 상황을 만나게 되지만 그런 상황과 한계를 뚫고 나가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와 섭리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주님 안에서는 모든 위기가 모든 기회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마음을 강하게 하고, 좋은 일이라면 과감히 뛰어드십시오.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그 일을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부족한 사람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얼마든지 큰일을 할 수 있습니다.
3. 희망
본문 7절 말씀을 보십시오. 모세는 후계자 여호수아를 불러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얻게 하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본문 8절 말씀에서 항상 하나님이 여호수아와 함께 하실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에게도 유효합니다. 그러므로 현재의 부족한 모습만 보지 마십시오.
모세와 여호수아가 처음부터 위대했습니까? 아닙니다. 모세가 처음 부름 받던 날 그가 무슨 말을 했습니까? “하나님! 저는 입술이 뻣뻣한데, 어떻게 제가 바로와 백성들을 설득합니까?” 그때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출 4:11-12) 그렇게 해서 바로에게 갔습니다. 그때 모세의 나이가 80세입니다.
그 뒤로부터 40년이 지나고 모세가 여호수아를 후계자로 임명할 때, 여호수아의 나이도 80세가 넘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나이가 많아도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살다 보면 희망은 언제나 장벽을 만나지만 그래도 희망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절대 자신의 현재 환경과 처지만 바라보지 마십시오. 믿음의 눈으로 우리를 통해 이뤄질 놀라운 일을 바라보십시오.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무슨 명령을 주십니까? “너희는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고 했습니다. 그게 얼마나 불가능한 숙제입니까? 그들에게는 물질도 없었고, 학력과 인맥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명령을 듣고 모든 제자들은 “우리는 못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 말은 사실입니다. 제자들만으로는 절대로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그 일을 할 수 있고, 마침내 그들은 해냈습니다.
이제 항상 “주님 안에서 할 수 있다!”는 고백으로 사십시오. 말부터 먼저 승리해야 하고, 말에서 먼저 행복과 성공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불행한 삶의 현장에서도 얼마든지 행복을 만들 수 있습니다.
한국 농학계의 거두 유태영 박사는 전라도 외딴 섬 출신으로 어렸을 때 머슴살이를 했습니다. 그런데 머슴살이를 하면서도 농업혁명으로 한국을 살리겠다는 꿈을 꿨습니다. 그리고 선진농업을 배우고 싶다는 편지를 덴마크 국왕에게 보냈습니다. 그래서 정말 국왕 초청으로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덴마크에서 공부를 마친 후, 다시 이스라엘로 가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결국 가난한 섬 출신의 머슴소년이 한국 학계의 거두가 되었습니다.
아무리 고통스럽고 불행한 환경에 있어도 하나님 안에서 거룩한 꿈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면 반드시 길이 열립니다. 하나님은 능력보다 태도를 더욱 귀하게 보시고, 더 나아가 태도보다 믿음을 더욱 귀하게 보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철저히 신뢰하고, 항상 하나님을 자랑하고, 변함없이 헌신하는 자에게 축복을 주십니다.
요새 모든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아주 힘든 시절을 지나고 있습니다. 저희 요삼일육선교회도 후원금이 많이 줄었습니다. 후원금 마련을 위해 더욱 절실히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선교사님들은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그처럼 힘들어도 희망을 잃지 마십시오. 환경을 탓하지 마십시오. 돕는 사람이 없다고 탄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만 온전히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해 신비하게 채워주시지만 사람을 의지하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훨씬 많습니다.
<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십시오 >
가끔 보면 아내의 운전을 지나치게 막는 남편들이 있습니다. 어떤 남편은 아내에게 동네 운전은 하게 해도 고속도로 운전은 절대 못하게 합니다. 그것이 아내를 사랑하는 표시일까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태도는 때로 부담스럽습니다. 그것은 자기 품을 떠나서 살지 못하도록 하려는 치사한 태도가 될 수 있습니다. 남편의 도움 없이는 어디도 못 가는 아내가 되게 하는 것은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의 아버님이 미국으로 이주하셨을 때 어머님 연세가 61세 이셨습니다. 그때 아버님은 옛날 군대식으로 어머님에게 운전을 가르치셨습니다. 결국 어머님은 얼마 후에 운전면허를 따셨습니다. 그리고 도로연수도 아버님이 직접 가르치셨습니다. 내가 유학을 가면서 LA에 있는 아버님 집에 잠깐 들렸는데, 옆에서 지켜보기가 조마조마할 정도로 아버님이 어머님에게 짜증을 내면서 도로연수를 시키고 계셨습니다.
어느 날 저녁, 제가 조용히 아버님에게 물었습니다. “아버님! 왜 어머님이 그렇게 잘 못하겠다고 하는데 운전을 강제로 시키세요.” 그때 아버님이 말했습니다. “내가 일찍 죽으면 네 어머니가 혼자 운전하고 다녀야지. 미국에서는 운전하지 못하면 살 수 없어.” 결국 아버님이 그렇게 어머님에게 운전을 가르쳤던 것은 어머님을 진정으로 아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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