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부러진 길을 떠나는 법 / 잠 2: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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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5. 제목: 구부러진 길을 떠나는 법 / 잠 2:10-15.
10) 곧 지혜가 네 마음에 들어가며 지식이 네 영혼을 즐겁게 할 것이요
11) 근신이 너를 지키며 명철이 너를 보호하여
12) 악한 자의 길과 패역을 말하는 자에게서 건져 내리라
13) 이 무리는 정직한 길을 떠나 어두운 길로 행하며
14) 행악하기를 기뻐하며 악인의 패역을 즐거워하나니
15) 그 길은 구부러지고 그 행위는 패역하니라.
사람에게는 각자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한 자기만의 세계가 있습니다. 자기 위치에서 이루고 싶은 것이 있고, 되기를 원하는 바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부르며, 자기 세계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구합니다. 이러한 인간의 욕망에 함께 하고 부추기는 것이 교회에 자리하고 있는 목자라는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은 죄인인 인간이 꿈꾸고 원하는 세계를 위해 일하지 않으신다는 것은 성경을 통해 확인하게 되는데, 성경이 계시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이 원하는 하나님을 제시하며 종교인들에게 접근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부러진 길에 있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13-15절을 보면“이 무리는 정직한 길을 떠나 어두운 길로 행하며 행악하기를 기뻐하며 악인의 패역을 즐거워하나니 그 길은 구부러지고 그 행위는 패역하니라.”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이런 말씀을 대할 때 경계해야 하는 것은 ‘나는 어두운 길로 행하고 행악을 기뻐하고 악인의 패역을 즐거워하는 자가 아니다’라는 생각입니다. 우리는 항상 나를 좋은 편에 두고 싶어 합니다. 10-12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지혜가 나의 마음에 들어오고, 지식으로 즐거워하는 영혼이 되고, 근신으로 지킴을 받고 명철로 보호를 받는 것에 더 마음을 둡니다. 그래서 자신이 구부러진 길에 있고 행위가 패역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언제나 내가 내 편이 되어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찾아도 내 편의 입장이 되어 찾습니다. 그래서 나를 위하고 도우시는 하나님만 생각할 뿐이지 하나님의 편이 되어 하나님을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인간의 편에서, 인간을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은 없습니다. 이것은 창세기 1장의 세상을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일에서부터 드러납니다. 인간을 위한 세계를 만드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세계를 만드신 것이고, 그것이 예수님의 십자가로 완성되어 나타난 것입니다.
세상을 지으실 때마다 하나님은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시고, 사람을 지으시고 모든 일을 마치셨을 때는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하십니다. 죄가 없는 상태의 세상으로 기뻐하시는 것이 더 타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늘에서 사악한 마귀가 쫓겨나게 되며 그 마귀의 미혹으로 낙원에서 영적인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하므로 쫓겨나게 됩니다,
(계 12:7)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과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8)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그들이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9)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그 이후부터 땅이 저주를 받게 되고, 마귀가 공중 권세를 잡고 악을 행하며 천하를 더욱 꾀어 갑니다. 이 죄로 인해 죄의 삯인 사망을 맛보게 됩니다.
(창 3: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19)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롬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결국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죄의 삯인 사망을 해결하십니다. 즉 주님을 믿기만 하면 전혀 은혜로 구원과 영생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자기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세상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창 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그런데 감히 사람들이 하나님을 가르치고 다스리려하는 교만이 들어옵니다. 그 시작이 특별히 첫 아담을 흙으로 만드셔서 생기로 생령이 된 아담을 만드신 것입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아담이 선악과를 먹음으로 사탄의 다스림을 받으면서 하나님의 형상이 없는 육의 인간으로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결국 예수님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오시고 세상을 다스리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창조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는 참된 세계를 목적으로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위해 사탄이라는 존재가 필요했던 것이고, 계시록 12장에서 말하는 것처럼 하늘의 싸움에서 패한 사탄을 땅으로 쫓아내신 이유도 그리고 그 사탄이 둘째 아담인 예수님을 해하려 하는 모든 상황도 이러한 하나님의 뜻에서 그 답을 찾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 10절에 보면“곧 지혜가 네 마음에 들어가며 지식이 네 영혼을 즐겁게 할 것이요”라고 말합니다. 우리 마음에 지혜가 들어오면 어떻게 될까요?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마음이 깨끗해지고, 성품이 변하고, 정의감으로 가득한 상태로 변하는 것인 줄 압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없습니다. 지혜가 들어오면 내 편이 되어 나를 위해 살아가는 마음 자체가 구부러졌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나의 세계를 꿈꾸며 그것을 이루기 위해 힘쓰고 살아가는 인생을 구부러진 길에서 패역을 행하는 것으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분명히 우리에게 구부러진 길을 곧게 펴라거나, 구부러진 길에서 벗어나 곧은길로 갈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마음 자체가 구부러져 있는데 그것을 무슨 수로 곧게 펴겠습니까? 다만 지혜가 구부러진 마음에 들어옴으로써 지혜가 참된 길이 되심을 깨닫고 지혜를 나의 의로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시는 이유입니다.
● (요 1:23) 이르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즉 네가 누를 바꿔라가 아니라, 네 부족함을 알고 주께서 일하시도록 너를 더욱 낮추라는 것임.
지혜가 우리 마음에 들어오는 것은 새 피조물로 새롭게 시작하였음을 의미합니다. 세상과 인생을 바라보는 안목이 새로워진 것입니다. 나를 위한 인생이 아니라, 주를 위해 살도록 허락된 인생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것이 (9절) “그런즉 네가 공의와 정의와 정직 곧 모든 선한 길을 깨달을 것이라”라는 말씀은 지혜가 들어오므로 알게 되는 새로운 안목입니다.
새로운 안목이 있게 되면 전혀 알지 못했던 사실을 깨닫게 되는데, 가장 중심적인 것은 자신을 하나님의 미움의 대상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미움 받는 것이 당연한 자를 예수님 안에 불러주신 이유 없는 사랑에 감격하고 감사하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미움을 알게 해서 사랑이 감당할 수 없는 큰 은혜로 다가오게 하시고, 은혜 아래에서 은혜로 다스려지는 십자가의 세계가 즐거움이 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지혜가 우리 마음에서 행하시는 일입니다.
11-12절을 보면 “근신이 너를 지키며 명철이 너를 보호하여 악한 자의 길과 패역을 말하는 자에게서 건져 내리라.”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나의 존재를 지키고 보호할 힘을 갖고 싶어 합니다. 그런 우리에게 사실 근신과 명철은 도무지 어떤 보여지는 힘으로 여겨지지 않습니다. 추상적이고 막연하게 느껴질 뿐이고 관심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우리의 세계”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자 하는 세계에서 지혜, 근신, 명철은 쓸모가 없습니다. 힘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빠른 것과 지식입니다.((단 12:4)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악한 자의 길과 패역을 말하는 자에게서 건져내는 것은 구별한다는 뜻입니다. 지혜가 우리 마음에 들어와서 우리를 악한 자의 길과 패역을 말하는 자에게서 건져내어 구별하였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구별된 신자 됨은 어떻게 나타나는 것일까요? 선한 일을 하고, 믿음에 열심을 내는 것일까요? 이것을 구별된 것으로 아는 것이 구부러진 길에 있는 것입니다.
지혜로 인한 구별은 나의 선함과 나의 믿음으로 구원될 수 없음을 아는 것입니다. 어떤 행위로도 하나님의 미움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구원받을 수 없는 자로 보게 되는 그것이 지혜로 인한 구별이고, 악한 자의 길에서 건짐 받은 증표입니다. 악한 자의 길은 자신의 선함으로 원하는 것을 이루고자 하고, 자신을 미움의 대상이 아닌 복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근신은 자신을 높임 받을 자가 아닌 미움 받을 자로 바라보며, 십자가의 의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근신이 악한 자의 길에서 우리를 지킵니다. 나의 힘으로 즉 우리의 힘으로 지키고 성취하고자 하는 것이 어두운 길이며 구부러진 길입니다. 지혜는 우리를 이러한 길에서 건져내어 성도들의 길을 가게 합니다. 이것이 용서의 은혜 아래 있는 십자가의 세계입니다. 주님이 지셨던 십자가와 같이 우리도 우리의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근신의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철저히 자기 십자가를 인정하고, 나의 의를 부인하고, 오직 죄인임을 고백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마 10: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눅 9: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즉 죄를 인정하고 핍박과 십자가를 늘 지고 주를 따르는 자는 낙원을 보게 됩니다.
(눅 23:39~42)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40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41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42)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나는 의롭지 못합니다. 근신하며 지혜를 받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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