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챤 문화선교

선교사훈련

주간말씀나눔

성도가 해야 할 근심이란? (고후 7:10)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강수인
댓글 0건 조회 594회 작성일 22-01-19 12:10

본문

● 성도가 해야 할 근심이란?

(고후 7: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기도)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걱정)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 근심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육적인 근심과 영적인 근심 혹은 세상 근심과 경건한 근심입니다. 영적인 근심은 우리가 해야 되고 또 유익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성령이 주시는 근심과 간구의 기도는 영혼을 살리는 기도이지만, 사람의 육에 속한 근심은 죽임.

● 잠 17:22에도 보면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육신적인 근심, 세상적인 근심은 우리의 육신과 정신과 심령을 다 해롭게 합니다. 그리고 세상 근심 배후에는 분명히 마귀가 숨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 생활 잘 하던 사람이 근심 걱정이 많아지면 그것은 벌써 믿음의 상태가 건전치 못할 때 일어나는 현상으로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경건한 근심은 성령께서 주시는 것으로 성령을 받은 사람만이 할 수가 있으며 이는 그가 성령을 받은 증거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경건한 근심, 영적 근심은 유익할 뿐 아니라 우리에게 꼭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피하고자 하여도 근심과 눈물이 없이는 못사는 세상인데 기왕 근심하며 살 바에는 이 유익한 영적 근심, 경건한 근심을 하면서 사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기도 한 것입니다.

● 겔 9:1-8에 보면 하나님께서 큰 소리로 사자들을 불러 예루살렘 성을 심판하는데 일곱 사람 중 여섯 사람이 살륙하는 기계를 손에 잡았고 그 중에 한 사람은 가는 베옷을 입었는데 허리에 먹그릇을 찼더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먼저 이 가는 베옷을 입고 먹그릇을 찬 사람을 불러서 명령하기를 예루살렘성읍을 두루 찾아다니면서 (겔 9:4)"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에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를 그리라 하시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여섯 명에게는 살륙하는 기계를 가지고 "그 뒤를 쫓아 성읍 중에 순행하며 아껴보지도 말고 긍휼을 베풀지도 말고 쳐서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 아이와 부녀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말라"고 했습니다. 이마에 표 있는 자, 즉 그 백성들의 가증한 죄악을 인하여 탄식하며 울던 자는 구원하라고 하심입니다.

그런데 이 심판이 성전에서부터 시작됐고 늙은 자로부터 시작했다고 했는데 이것은 마땅히 근심하고 탄식해야 할 지도자급에 있는 사람이나 교회가 무감각해서 근심하고 탄식할 줄을 모를 때에 누구보다 먼저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우리 구원받은 성도는 세상 근심이 아닌 마땅히 가져야 할 영적 근심, 경건한 근심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없이는 우리 자신의 영적 생활을 바로 할 수가 없습니다.

● 그러면 우리가 어떤 근심을 해야 하겠습니까?

1. 먼저 자신의 영적 상태를 인하여 근심할 알아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자신의 영적 상태를 돌아보고 근심하고 탄식할 줄 알아야 합니다.

상대의 티를 보기 전에 내 눈에 들보를 제거해야 합니다.” 만일 자신에게서 어떠한 범죄한 사실을 발견했다면 자기의 죄를 인해서 애통하고 회개하고 근심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 * 예수님께서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함을 받을 것이요"라고 말씀하셨듯이 자기의 죄를 인하여 진심으로 깊이 애통하고 근심해보지 못한 사람은 참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와 행복을 맛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영적 상태 때문에 애통하는 눈물을 흘려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영안이 밝아질 수가 없습니다.

* 성 어거스틴은 자기 죄를 깊이 깨닫고 자기는 이중인격자라고 탄식하며 근심했다고 합니다. 그런 까닭에 그는 위대한 성자가 되었습니다. * 마틴 루터는 어느날 자신의 죄를 너무 깊이 깨닫고 졸도까지 했다고 합니다. 죄를 짓고도 근심할 줄 모르고 애통할 줄 모르는 사람은 이미 화인 맞은 심령이요, 영적 문둥병에 걸린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 사도 바울은 (롬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하고 탄식했습니다. 다윗은 범죄한 후 회개하면서 말하기를 (시 32:3, 4)"3)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4)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라고 탄식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정상적인 영적 상태는 언제나 자신에 대하여 약함과 무능함과 부족함을 깊이 느끼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만 하나님의 능력이 머물게 됩니다.

(삼상 12:23)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인즉 24 너희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신 그 큰 일을 생각하여 오직 그를 경외하며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진실히 섬기라 25 만일 너희가 여전히 악을 행하면 너희와 너희 왕이 다 멸망하리라.” 기도를 쉬는 죄를 범치 않으려고 자신과 다른 영혼을 안타까워하고 근심하는 자가 참된 기도의 생활을 지속할 수 있고 하나님의 능력의 그릇이 됩니다. 자기의 영적 상태를 끊임없이 진단해 보고 근심하며 눈물 흘리며 기도 생활에 힘쓰는 자가 영적으로 성장하게 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강력한 성도가 됩니다.

2. 교회를 위하여 근심할 알아야 합니다.

참으로 진실한 성도라면 내 가족 내 집안 일 못지않게 주님의 피로 사신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서 근심할 줄 알게 마련입니다. 이 귀한 교회를 위해서 근심하며 안타깝게 기도하고 봉사할 줄 아는 사람은 진실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죽은 영혼을 살려내며 수많은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이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에 대한 책임감을 느낄 줄 안다면 참 믿음으로 소유했다고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부담 없이 예수를 믿는다고 집에서 라디오를 틀어 놓고 예배드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특정한 교회에 등록은 하지 않고 등 뒤에서 예배만 드리고 살짝 피해 달아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 어리석은 것이요, 지혜로운 처사가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를 아벨과 같이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예배하고, 힘껏 책임을 지고 선한 부담감을 가지고 해 나가야 믿음이 자라고 더 큰 하늘의 복을 받는 것입니다.

* 아프리카의 어느 곳에는 물이 아주 세게 흐르는 강이 있는데 이곳을 무사히 건너려면 큰 돌을 등에다 짊어지고 건너야지 그렇지 않으면 거센 물살에 떠내려가서 빠져 죽고 만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무겁고 등이 아프지만 큼직한 돌멩이를 일부러 힘껏 지고 건넌다고 합니다.

할 수 있는 한 받은 재능과 역량대로 책임을 지고, 교회 일을 나의 일처럼 근심하며, 걱정하며, 일하며 다녀야 믿음도 자라고 축복도 받습니다. 학개서 1장에 보면 하나님의 성전은 황폐해졌는데 백성들이 자기들은 좋은 집에 거하면서 아직 성전을 건축할 때가 아니라고 회피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그것을 보고 하나님께서 학개 선지자를 통해 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학 1:5, 6에 보면 "5) 그러므로 이제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니 너희는 너희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6)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학 1:9-11)"9)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것이 무슨 까닭이냐 내 집은 황폐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을 짓기 위하여 빨랐음이라. 10) 그러므로 너희로 말미암아 하늘은 이슬을 그쳤고 땅은 산물을 그쳤으며 11) 내가 이 땅과 산과 곡물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땅의 모든 소산과 사람과 가축과 손으로 수고하는 모든 일에 한재를 들게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근심하며 돌보지 않고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이와 같이 큰 손해가 온다는 말씀입니다. 내 집보다 나를 사랑하신 주님의 몸 된 교회 일을 더 염려하고 근심하며 책임감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충성스럽고 진실한 성도라는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성도가 많이 모이는 교회일수록 영적인 성장과 함께 모든 가정의 일도 부흥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내가 주께 한 약속은 하나님께서 들으십니다. 반드시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3. 나라를 위하여 근심할 알아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자기 개인의 영적인 상태나 교회뿐만 아니라 나라를 위해 근심하고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하고 물을 때에 '가이사(황제)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의무와 국가에 대한 의무를 다 해야 된다는 것을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장차 죄 값으로 멸망당할 자기 나라를 내려다보시며 울며 탄식도 하셨습니다.

특별히 우리 한국의 성도들은 정말 나라가 안전하고 튼튼하기 위해서 염려하고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도를 펴놓고 보십시오. 토끼 꼬리만한 나라가 그것도 바다 끝에, 그리고 위에 절반은 붉은 무리들이 적화야욕을 품고 남침의 기회를 노리며 막강한 군사력을 키우며 도사리고 앉아 있습니다. 그런데도 정신 차리지 못하고 나라야 망하든 말든 자기 배만 부르면 된다는 식으로 사리사욕만 채우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도덕적으로는 날이 갈수록 타락해서 음란하고 패역한데다 하나님이 가장 가증히 여기는 우상은 날로 늘어가고 있으니 이 나라가 장차 어찌되려고 하는지 정말 우리는 근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시 6.25와 같은 전쟁이 일어난다면 6.25동란보다 수십배 더 비참한 참극이 벌어져서 아름답게 건설한 대한민국은 다시 잿더미가 될 것이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나라가 망하면 교회도 나갈 수 없고 바른 신앙생활도 제대로 할 수가 없게 됩니다.

예전 베트남 월남전의 목사, 신부, 중들이 매일 데모만 하더니 그들이 지금은 다 어디로 갔습니까? 정말 우리 한국의 성도들은 책임의식을 가지고 염려하고 이 나라에 후손들이 건강하고 잘되기 위해서 기도하고 또한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해야 할 것입니다.

* 롬 13:1에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고 했습니다.

* 딤전 2:1-3에는 “1)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2)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3)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고 했습니다.”

우리는 나라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참된 하늘의 평강이 넘치도록 영적으로 기도하고, 위정자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국가의 부흥과 위정자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성경이 명하는 바요, 하나님의 뜻입니다. 성도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참된 애국자가 되어야 합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나라를 위해 고난의 길을 자처했습니다. 우리는 천국의 백성인 동시에 대한민국의 백성으로 이중 국적을 가졌으므로 둘 다를 위해서 충성해야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나라를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영적 상태를 위해서 근심하고 기도할 줄 아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첨부파일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총회신학교
CCS
쥬빌리 통일구국기도회
대한민국전자정부
행복발전소
Prayer
대한성서공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