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챤 문화선교

선교사훈련

주간말씀나눔

결심과 각오(행 20:17~24)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강수인
댓글 0건 조회 626회 작성일 21-09-01 11:26

본문

1. 남다른 결심과 각오(행 20:17~24)

17)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18) 오매 그들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여러분 가운데서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여러분도 아는 바니 19)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20)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21)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 22)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23) 오직 성령이 각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노벨상이라는 것은 세계 최고의 권위를 갖고 있는 영예로운 상인 것입니다. 이러한 노벨상을 흑인 신분으로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흑인 신분으로 노벨상을 처음 받은 사람은 랄프 분체 입니다.

분체 열두 살 때 어머니와 아버지를 잃어 고아가 되었습니다. 돌봐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혈혈단신이 된 분체는 디트로이트의 자기 집을 떠나 만리타향인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할머니 루시 존슨과 살게 되었습니다. 루시 존슨은 흑인 여류 작가로서 많은 글을 썼던 사람입니다. 그녀의 책 중에는 「너는 너 자신에 신실 하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책에서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무슨 일을 하려 할 때 '한번 시도해 볼까?'라는 말을 하지 말라. '나는 기필코 해내고야 말 것이다.'라는 말을 해야 한다. 그리고 어떤 일을 완성하려면 자신감에 넘쳐있어야 한다." 이러한 그녀의 글과 삶의 주장은 열두 살 난 흑인 소년 랄프 분체에게 무한한 자신감을 고취시켜 주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나약한 소년을 강인한 소년으로, 게으른 소년을 부지런한 소년으로, 놀고 싶어하는 소년을 면학하는 소년으로, 우울증에 걸린 소년을 밝고 명랑한 소년으로 변화시켜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이 소년은 미국 흑인 세계의 교육자가 되었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는 전 미국 사회의 훌륭한 정치가가 되어 세계 제일의 권위있는 노벨 평화상을 거머쥐는 최초의 흑인 수상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 안에서 사람의 결심각오라는 것은 이렇게 사람을 크게 변화시켜 주는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막 9: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흔히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는 여건과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면서도 훌륭한 사람이 못되고 자기의 가치와 하나님의 계획보다 못한 남의 밑에서 심부름이나 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외적인 요인보다는 내적인 요인에 있는 것입니다. 즉, 어느 한 순간에 ❶'나는 보통 사람이 되어 보통 사람으로 살다가 보통 사람으로 죽자. 뭘 그렇게 바득바득 애쓸 것이 있겠는가?'라는 생각을 갖게 된 것에서 연유한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과 정신을 보통 사람으로 정착시키게 되면 그 사람은 공부를 해도 보통으로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기야 요즘 세상은 안정적인 것을 선호하니까? 보통 사람들의 세상이라고 하니까? 중간쯤만 가도 괜찮다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❷ 사람 가운데는 이런 사람도 있습니다. 즉, "보통 사람이 되든 특별한 인간이 되든 나와는 무관하다. 사람의 한평생이라는 것은 아침 안개와도 같다.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떠랴! 나는 되는대로 동물같이 살다가 조용히 사라지겠다." 그렇게 어느 한 순간 생각을 정착시키게 되면 그 사람은 되는 대로의 인생이 되어 저 밑바닥으로 굴러 떨어지는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감사하며 사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되는대로 사는, 실제로 자기 기능과 자기 실체를 보지 못하고 충성되이 자기를 사용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전 3:20)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21) 인생들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겸손이란? 자기를 알고 자신의 할 바를 최선을 다하며, 꿈과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고 부지런히 나아가는 것입니다.

❸ 그런가 하면 사람 가운데는 뜻을 높은 데 두고 하늘에 두고 살아가는 거룩한 성도의 삶을 사는 영적인 사람도 있습니다. 오늘의 현실은 나로 하여금 앞으로 전진 할 수 없도록 얽매인 현실이지만 '나의 이상만은 모든 장애물 너머에 있는 희망찬 미래에 두리라. 나는 나의 희망찬 미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오늘의 장애물과 내일의 높은 장벽들을 하나하나 극복하고야 말 것이다.' 그렇게 신념을 정착시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롬 15:13)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빌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이 세 가지 형태의 사람 가운데 어느 부류에 속하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여기십니까? 보통 사람의 생각입니까? 아니면 되는 대로의 생각입니까? 아니면 기어이 극복하고야 말 것이라는 비상한 생각입니까?

우리가 조금 전에 읽은 오늘 본문 사도행전 20장 17절 이하를 보면 사도 바울은 자기의 일생을 삼등분 하여 간단, 명료하게 설명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첫째로, 나는 지나간 과거를 어떤 정신으로 살아왔는가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나는 어떤 상황 가운데서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나는 어떤 각오와 결심으로 다가오는 미래를 맞을 생각인가 하는 것입니다.

1. 첫 번째로 생각할 것은 어떤 정신으로 나는 과거를 살아왔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20장 17~21절을 보면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나는 최고의 겸손과 눈물, 그리고 인내와 봉사로 일관하여 왔으며 유익하다고 판단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전달하고 가르치면서 살아왔고, 또 불신자들에게는 회개와 신앙을 외치면서 활동해 왔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의 과거 회상이라는 것은 최선을 다하여 살아온 것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사도 일을 맡기 전에 즉 부르심을 받기 전에도 그는 세상에서 대충 살던 사람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여 말씀을 연구하고 자신이 생각한 신앙의 기준을 세워 모든 것에 강력한 신뢰가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사람이었기에 주님의 크신 일을 위해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 그가 이전 것을 오물처럼 여기고 하늘의 일에 충성한 것입니다.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자기가 과거의 삶에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될 때에는 보람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먹고 마시는 것이 전부로 끝나는 존재는 결코 아니지 않습니까? 사람은 먹고 마시는 것 이상의 삶의 의미와 보람을 만끽하면서 자신이 세운 계획과 일에 결코 좌절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그 삶의 의미와 보람은 자기 하나만을 위하는 데서는 결코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처럼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겸손과 어느 누구를 구원으로 인도하기 위한 간절한 눈물의 기도가 있어야 하는 것이고, 또 선한 일을 도모하는 중에 닥치는 어려움을 참아내는 인내와 말 많은 비난 속에서도 묵묵히 교회를 받드는 봉사가 있을 때에 생의 의미와 삶의 보람은 넘쳐흐르게 되는 것입니다. * 주께서 부르실 때가지 하나님의 뜻을 구하시고 자신의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십시오. 그리고 사명을 받으십시오.

또한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오늘 본문 20~21절의 말씀대로 모든 사람의 유익을 위하는 전도와 교육에 힘을 쏟고, 또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회개를 고취시키고, 신앙을 증거하는 데서 성도로서의 보람과 삶의 의미를 꽃 피우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복음을 전하지 못하는 사람한평생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다른 사람을 주 앞으로 인도해 내지 못하는 사람들부끄러운 구원을 면하기가 매우 어렵게 되는 것입니다.

* 살전 2장 19~20절을 보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9)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20)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보아야 합니다. '참으로 내 외침을 통해 누가 회개하였던가? 내 간증을 통해 세속적 인간이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하였던가? 눈물 어린 내 기도로 인해 불신 가정이 교회로 나오게 되었던가? 내 전도를 통해 지옥 가던 인생이 천국으로 방향 전환을 일으켰는가?' 이러한 물음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예수님의 강림하시는 그날에 소망의 면류관, 기쁨의 면류관, 영광의 면류관, 영생(자랑)의 면류관을 모두 받아쓰게 될 것입니다.

2. 두 번째로 생각할 것은 자기 자신의 현재 방향을 어떻게 바르게 판단하느냐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20장 22절을 보면 "보라 이제 나는 성령(심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지금 가고 있는 도성은 불확실성이 깔려 있는 예루살렘 도성입니다. 그러나 그는 분명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인생이라고 하였습니다. 인생 가운데는 여리고로 내려가는 인생이 있고, 또 소돔이나 고모라로 찾아드는 인생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인생을 살았다고 합니다. 얼마나 목표가 분명한 것입니까? 사람은 현재를 보는 시각이 분명해야 하고, 자기가 걸어가고 있는 방향을 명확히 인식해야 하는 것입니다.

● 항상 모든 일에 성도는 정확한 목표인 방향(하나님)과 목적에 맞도록 충성(성령님)과 자신을 돌아보는 겸손(예수님)과 모든 지금의 결과에 대한 감사(성도)가 필요합니다.

● 어느 목사님의 말씀입니다. 그 목사님이 전에 섬기던 교회에 윤도안이라는 거물급 인사가 있었다고 합니다. 외국 국빈을 모시는 영빈관의 책임자였던 그는 성품이 강직하고 바른말을 잘하며 책임감이 강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아무리 공무가 바쁘고 보살피는 일이 힘들다 하더라도 성수주일과 성경 읽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었습니다.

* 그러던 어느 날 직장에서 퇴근하여 저녁식사를 마치고 성경을 읽는데, 너무 피곤하여 요에 엎드려 성경을 읽게 되었습니다. 얼마쯤 읽다가 그는 퍼뜩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요에 엎드려서 읽다니? 이런 자세로 성경을 읽으면 안되지. 차라리 이런 자세로 성경을 읽을 바에는 안 읽는 편이 낫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읽던 성경을 접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화근이었습니다. 한 번 접어둔 것이 버릇이 되어 그는 다음 날도, 그리고 그 다음다음 날도 성경을 접어둔 채 잠자리에 들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다 그는 결국 그때부터 종전의 성경 읽던 좋은 습관을 완전히 버리게 되었습니다.

* 그리고 얼마의 세월이 지난 후 그는 갖은 고초를 겪으며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내리막 인생을 맞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퍼뜩 사무엘상 15장 23절 말씀,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라는 말씀이 생각났다고 합니다. 하루는 그 목사님을 찾아와서 "목사님! 그때 왜 제가 '이런 엎드린 자세로 성경을 읽으면 안 되지!'라는 생각 대신에 '일어나 앉아서 성경을 읽어야지.'하는 건설적인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요?"하며 울먹였다고 합니다. 우리는 자신이든지 누군가의 지적이나 책망이 나를 멈추게 하는 소리가 아닌 더 일어나 갈 길을 찾고 건설적인 말로 받아들이는 성도가 다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날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을 택해야 하는데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을 택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좁은 길입니다. 거기는 두려움이나 무서운 강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우리들은 넓은 길인 유혹의 소돔과 고모라를 택하는 이 되거나, 날마다 뒤를 돌아다보는 롯의 처가 되어도 안 되는 것입니다.

3. 마지막으로 어떤 각오결심으로 다가오는 미래를 맞을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20장 23~24절을 보면, "23) 오직 성령이 각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즉, 자기 앞에 어떤 시련이나 고통이 가로막고 있다손 치더라도 자기의 사명만은 반드시 완수하고야 말 것이라는 굳은 각오입니다. 사람은 생의 전환기에서 어떤 결심과 어떤 각오를 가지느냐에 따라서 자신의 운명과 장래뿐 아니라 세상이 달라지게 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보통 사람이 될 것이냐, 아니면 되는 대로의 동물이 될 것이냐, 아니면 현실주의자가 될 것이냐? 아니면 사명감의 사람이 될 것이냐?' 하는 생각과 정신, 그리고 그 결단과 포부에 따라서 그 사람 앞에 펼쳐지는 생의 방향이 결정되고 미래지향의 목표가 좌우되는 것입니다.

● 세계사를 둘러보니, 약 250년 전 유렵에는 불가지론자들이 많이 머리를 들고일어나 현실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세속을 뜨겁게 제창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몰간이라는 사람과 (Hume;1711~1776)이라는 철학자는 신령한 세계와 영적 고귀함 등을 모두 부인해 버리는 그런 경향의 책들을 많이 저술했다고 합니다. 그러한 영향으로 일반 서민들은 기독교를 하나의 몽상으로 여기게 되었으며, 기독교의 가르침을 조롱의 대상으로 간주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심지어 볼테르 같은 사람은 "앞으로 50년 후에는 어느 누구도 신구약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읽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라고까지 악평했습니다.

첨부파일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총회신학교
CCS
쥬빌리 통일구국기도회
대한민국전자정부
행복발전소
Prayer
대한성서공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