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된 자와 나중 된 자. 마태복음 19:27~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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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된 자와 나중 된 자. (성경중심설교연구 7-1)
본문: 마태복음 19:27~30, 20:12~16
● (마 19:27)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29)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30)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 (마 20:12)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13)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14)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15)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16)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질문합니다. 시간을 주신 이의 마음으로 아껴서 더 많은 시간을 얻는 사람과 시간을 내가 원하는 대로 사는 사람과 시간은 어짜피 죽는데 뭐하러 일하냐? 그냥 흘러가자 라며 허비하는 사람과 누가 똑똑한 사람일까요? 누가 정말 지혜로운 사람일까요? 한 알의 밀알로 100배 60배 30배를 얻는 것을 믿고 씨앗을 심는 자와 물주는 자들이 지혜로운 자들일 것입니다. 즉 내게 허락된 시간을 더 늘리는 사람들이 복되고 지혜로운 성도들이 아니겠습니까? 바로 시간을 땅에 뿌리는 성도들입니다. 예를 들자면? 올림픽에 출전하는 프로 선수들은 단 몇 초를 위해서 생명의 시간인 젊음을 다 투자합니다. 더러는 평생을 그 좋아하는 일에 미쳐서 투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먹고 살거나 필요로 원하는 힘을 얻기 위해서 죄의 노예, 물질과 인기의 노예, 권력과 스펙의 노예, 육신의 정욕과 마귀의 노예로의 삶을 살면서도 전혀 자신의 생명이 아까운 줄도 모르고 또한 줄어들고 있음을 눈치 채지 못하고 게다가 아까워하기 조차 않습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들도 깨달아야 합니다. 구원 받은 표를 받고 다 된 줄로 알고 세월을 낭비하지 말고, 오직 주께서 원하시는 삶이 무엇인지를 알고자하며 기도하며 귀 기울일 때 짧은 시간과 세월을 투자하여 하나님의 나라인 천국 복음으로 기쁜 소식을 가지고 영생의 시간을 얻게 되는 것 말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시간을 특히 육신을 입고 있는 시간 동안을 유익하도록 주님를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 히 12장 1~2절에 보면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 고전 9장 24절에는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라고 격려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일생뿐 아니라 우리 성도님들의 신앙생활이라는 것이 곧 영적 경주임을 성경은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처소가 있고, 자리가 있습니다. 영광이 다 다릅니다. 준비된 그 자리를 영광의 그 자리는 최선을 다한 성도에게 주실 자리입니다.
* 오늘 성경에 보면 품꾼들이 일을 시작한 시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있습니다. 옛날 유대나라에서는 해 뜨는 시간부터 해지는 시간까지 12시간을 노동하는 시간으로 간주를 하였던 것입니다. 이른 아침에, 제 3시에, 제 6시에, 제 9시에, 제 11시에 그리고 해가 저무는 제 12시 이렇게 여섯 차례씩 시간에 대한 관념이 오늘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 어떤 성경학자들은 이 말씀을 시대별로 구분하여 아래와 같이 구분합니다. 포도원에 들어와 일을 한 품꾼들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 성도들을 의미하는데 제일 처음 해 뜨는 시간(새벽 5시)에 온 사람들은 아담으로부터 시작하여 노아 때까지의 사람으로 보고 또 제 3시(오전 9시)에 온 사람들은 노아 때부터 아브라함 때까지의 사람으로 보고, 제 6시(12)에 온 사람들은 아브라함 때부터 모세 때까지 산 사람들이고, 제 9시(오후 3시)에 온 사람들은 모세 때부터 세례 요한까지 산 사람들입니다. 제 11시(오후 5시)에 온 사람들은 예수님 이후 신약시대 사람이고 마지막 해가 지는 제 12시는 이 세상 종말 즉, 그리스도가 재림하는 시간이라고 해석을 하였습니다.
● 그러나 또 어떤 성경학자들은 이 성경에 나오는 먼저 된 자와 나중 된 자 두 그룹이 있는데 먼저 된 자는 구약의 선민 유대인을 의미하고, 나중 된 자라고 하는 것은 신약의 이방인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 또 다른 성경학자들은 먼저 된 자를 베드로와 같은 11제자들로 보고, 나중 된 자를 바울 같은 나중에 부름을 받은 자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 일리는 있는 설명인 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우리들의 시대에서 이 말씀이 꼭 적용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즉 우리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이른 아침 해 뜨는 시간에 부름 받아서 교회 생활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조금 늦은 제 3시에 예수 믿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제 6시부터 예수 믿은 사람이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제 9시부터 예수 믿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막차 탄 사람 모양으로 맨 나중에 예수 믿은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물론 먼저 믿은 사람은 먼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 상식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 말씀대로 먼저 된 자가 처져서 꼬리가 되고 나중 되었던 자가 앞질러 선두 주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9장 30절을 보면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즉 신앙생활에서는 선후가 바뀌는 일이 많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올림픽에서 선수들의 라운드 별로 최고 선수의 점수가 기제 되지만 마지막 라운드까지 가봐야 마지막 선수의 점수까지 결과를 봐야 확실히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 과연 무엇이 먼저 된 자를 나중 된 자로 처지게 만드는 것입니까?
1. 첫째로 육신의 태만입니다.
영혼은 일찍부터 주님의 부름을 받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신앙생활을 하기는 하였지만 그만 육신이 게을러서 성수주일도 아니하고 헌금생활도 힘쓰지 아니하고 무슨 봉사나 전도회 사업 등은 시간이 없다고 하면서 게으르고 나태하여 도무지 주의 일에 힘쓰지 아니하는 현상들이 우리들 가운데서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일들입니다.
간혹 어떤 분들은 주일날만이라도 예배에 꼭 참여하라고 하나 친구가 왔다고, 사돈이 왔다고, 곗날이라고, 당번이라고, 배가 아프다고, 기분이 나쁘다고, 꿈자리가 사납다고 등등...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면서 교회에 출석하는 일과 예배에 참석하는 일을 게을리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먼저 되기는 하였으나 꼴찌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1절을 보면 "부지런하여 게으르게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하였습니다.
2. 둘째로 인간의 우월감입니다.
마태복음 19장 27절에 보면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사오니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하고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자기의 우월감을 모든 제자들 앞에서 자랑하였습니다. "나는 주님께로부터 부름을 받기도 제일 먼저 부름 받았고, 부름 받았을 때에 다른 사람처럼 세상에 대한 애착심이나 재물에 대한 욕심 때문에 우물쭈물 차일피일 하지 아니하고 즉각적으로 배도 버리고 그물도 버리고 모든 어장도 버리고 내 정든 갈릴리 바다도 등지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나와 같이 용단 있는 사람이 또 누가 있습니까? 나는 타의 모범이 아닙니까? 제자 중에 으뜸이요, 나이도 제일 고령이고, 믿음도 제일 좋고, 경험도 제일 많고, 직분도 제일 높고, 아는 것도 제일 뛰어나지 않습니까?"라고 베드로가 우쭐되어서 하는 질문입니다. 이런 등등의 우월감들이 결국에 가서는 먼저 된 자를 나중 된 자로 처지게 만드는 요소들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마태복음 19장 30절의 이 명령은 사실 베드로의 우월감을 경계하시기 위하여 주신 우리 주님의 경고장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오늘에 누리고 있는 이 신앙의 자유와 은총에 풍성한 은혜를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늘 고맙게 생각할지언정 이것이 나의 무슨 특권일 줄 생각하는 우월감을 가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3. 셋째로 무거운 짐들입니다.
마 13장 22절에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보면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들"이라고 하였고, 요일 2장 16절에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라 하였습니다. 또 잠언 22장 24절에 보면 "격한 분노와 울분을 터뜨리는 감정들"이라 하였고, 벧전 2장 1절에 "악덕과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이라고 하였으며, 빌 2장14절에는 "모든 원망과 시비들"이라 하였습니다.
이상과 같은 것들이 무거운 짐이 되어서 힘차게 달음질쳐야 하는 우리들의 신앙경주를 우둔하게 둔화시키며 뒤로 처지게 만든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서 적극적인 면을 생각하여 봅니다.
● 무엇이 나중 된 자를 먼저 된 자로 향상시켜 주는 것입니까?
1. 첫째로 그것은 부름 받은 데 대한 감격입니다.
디모데전서 1장 12~14절의 보면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라고 사도 바울은 그렇게 감격해서 편지를 쓰고 신앙생활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큰 사도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에 11시에 부름 받은 자들도 해지는 시간 한 시간을 앞두고 주인의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20장 7절에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섰느냐 가로되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가로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들은 품꾼으로 불러 주신 주인의 관용에 너무 감격하여 기쁨으로 일을 하였던 것입니다. 신앙생활에서의 감격과 기쁨은 이렇게 우리에게 큰 가속도를 제공하여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빌립보 교회 교인들에게 "너희는 주안에서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내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고 하였습니다.
2. 둘째로 일에 대한 사명감입니다.
즉 "우리를 해지는 시간 한 시간을 남겨 두고 이 포도원에 불러 주신 것은 일을 하게 하기 위함이니라 일을 하는 것이 우리 임무이다. 열심히 임하는 것이 우리의 본분이다. 양에 있어서는 아침에 들어온 사람이 낫겠지만 질에 있어서는 우리가 앞서 보자" 그렇게 생각을 하고 열심히 힘을 기울여 정성껏 일을 한 것입니다. 이것이 주인의 마음에 적중하였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 8절에 보면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일에 대한 사명감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선교초대교회 성도 여러분! 무엇이 인생을 이처럼 뜨겁고 또 열심 있게 일을 하도록 헌신과 봉사를 자극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일에 대한 사명감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께 대한 사명감인 것입니다. 행 20장 22~24절을 보면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사도 바울은 고백하였습니다.
또 다른 곳에 보면 (빌 3:13~14) "형제들아 나는 오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가지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붙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좇아가노라" 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열심과 사명감이 오늘도 처진 우리들을 위로 치켜 올려 세워 주고 있으며 낙후된 믿음을 높은 단계의 신앙으로 향상시켜 주고 있으며 나중 된 우리들의 위치를 먼저 되는 선두의 위치로 바꾸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분명히 가룟 유다는 중도에 태만하다가 마지막에는 신앙경주를 포기하고 지옥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먼저 된 자로서 나중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한 강도는 나중 된 자로서 십자가 위에서 신앙고백을 통하여 낙원 허락을 받고 이 강도는 먼저 된 자가 된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에게 사로잡혀 불행한 나날을 삶으로써 나중 된 자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고침 받고 부름 받은 이후에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여 예루살렘교회 여자 수제자가 되었습니다. 사울이라는 청년은 그리스도의 교회를 핍박하였음으로 나중 된 자 중의 가장 처진 꼴지 인생이었으나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의 부름을 받고 그때부터 힘찬 경주를 하여 수제자 베드로를 앞지르는 으뜸가는 선두주자가 되었습니다. 얼마든지 신앙세계에서는 위치의 선후가 바뀌는 것이며 떨어지기도 하고 앞서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된 자는 떨어지지 않기 위하여 고질적인 우월감이나 자만심이나 태만을 버리고 더욱 겸손한 마음으로 신앙의 경주를 하여 선두의 위치를 보존해야 할 것이며, 나중 된 자, 즉 새로 부르심을 입은 성도들은 이제부터라도 늦지 아니하였으니 더욱 말씀의 신념과 기도의 영력을 발휘하여 기쁨의 신앙생활과 사명감의 임무를 수행하여 예수님 말씀대로 모든 선두주자보다 더 앞서는 현대 20세기의 막다라 마리아 또는 사도 바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끝으로 오늘 본문 마태복음 19장 28~30절을 다 같이 읽도록 하십시다.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29)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30)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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