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의 정체성. 고후 5: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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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의 정체성. 찬: 369장. 273. 325. 436장.
고후 5:11~19
11) 우리는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들을 권면하거니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어졌으니 또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어지기를 바라노라. 12) 우리가 다시 너희에게 자천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우리로 말미암아 자랑할 기회를 너희에게 주어 마음으로 하지 않고 외모로 자랑하는 자들에게 대답하게 하려 하는 것이라.
13)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 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16)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19)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가난했던 1960년 시대에, 당시 어린이들의 약 85%는 교회에 한 번 이상 갔습니다. 교회에 가면 탁구를 할 수 있고, 피아노나 영어 같은 새로운 것들을 배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교회보다 집이나 다른 편의시설을 통해 이런 것들을 더 잘 배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전처럼 교회가 흥미를 돋게 할 만한 새로운 것들이 있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교회는 그 특유의 정체성이 남아있습니다. 그 정체성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능력입니다.
● 우리들은 사람들이나 본인이 생각하기에 어떤 사람으로 불려지길 원합니까?
우리 안에 들어와서 나를 만난 사람이 있는가? 나의 진정한 가치는 어떻게 산출되는가?
많이 버는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어떤 대접을 받는가? 카리스마적 재능이나 직위가 높은가?
외모? 내모? 영모?
● 그렇다면? 이제 내가 보는 상대의 가치는 어떻게 두고 보는가?
가만히 보니 상대나 물건의 가치는 외형인 물질과 보여지는 것에 가치를 두는가? 했는데 그것은 단지 보여지는 평가 기준이고, 실제는 내가 어떻게 잘 알고 있고 얼마나 가까이에 있는가? 에 달려 있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소중함과 사랑의 가치는 결국 내 마음 속에 들어와 얼마나 가까이에 와 있고 가까이에 두고 싶은가가 중요한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예를 들자면? 달의 거치는 얼마나 되는가? 크기가 얼마나 큰가? 지름은 얼마나 되나? 중력은 얼마인가? 다른 별에 비해서 귀한가? 혹 그 안에 보물은 있을까? 등등...
그런데 다 떠나서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이 다일가요? 우리가 보는 작은 태양도 보름달도 힘이 없는 별일뿐인가요? 지구와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렇지 우리의 눈에는 작아 보여도 사실 엄청 큽니다. 그 작은 달이 이 지구에 떨어지면 엄청난 사건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위력적인 달이 힘없어 보이는 이유는? 작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왜 작에 보일까요? 멀리 있기 때문이다. 그 큰 달이 멀리 있다는 이유만으로 내 작은 주먹으로 가리면 가려진다.
그래서 달은 주먹 보다 작은가요? 지금 내 주먹이 가까이 있기에 그 주먹을 들고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고 말하는 사람은 자기 주먹이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못 보거나 능력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가치가 아무리 좋고, 높을지라도 나와의 관계가 멀다면 그 거리만큼 소홀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가치를 누구보다 높게 여기시는 하나님은 우리 안에 계십니다. 그리고 회복시키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을 예배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은혜가 넘치는 일입니다. 우리의 가치를 주께서 높여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첫째, 그리스도인은 예수님 안에서 새롭게 태어난(발견된) 사람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본래 철저한 바리새인으로 유대교는 다른 어떤 종교보다 우월한 종교라고 믿는 우월주의에 빠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예수님을 만나게 되자 사람을 바라보는 눈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원래는 이방인을 개와 돼지와 같은 존재로 여기던 사람이 이제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모두 같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갈 3:28). 그래서 그는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제부터는 누구도 육체대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겠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다.”(16~17절)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고 또 부활하셨다는 복음의 기쁜 소식은 당시 계급사회를 흔들어 놓았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새 피조물이 되었다는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노동자와 같은 형편이 어려운 소외된 사람들을 교회로 초청하여 형제와 자매로 따듯하게 맞았습니다. 거기에는 자유인이나 노예나 그 누구도 우월한 사람 없이 그리스도 안에 모두 평등했습니다.
둘째,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표는 분명합니다. 예수님을 알고 믿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입니다(엡 4:13~15).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당신께서 보여주신 사랑을 실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13:34-35). 예수께서 보이신 무조건적 사랑, 차별 없는 사랑, 섬김의 사랑, 용서의 사랑 그리고 자신의 몸으로 보여주신 헌신의 사랑을 하면 모든 사람이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인 줄 알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고후 2:15) 삶에서 어떤 고난을 만나더라도 분명한 신앙 정체성에서 나오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뿜어 선한 영향을 끼치시길 바랍니다.
셋째,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새로운 가족입니다.
라틴어로 ‘오이쿠메네’는 한 연방, 한 가족을 뜻합니다. 지중해 주변의 모든 세계를 정복한 로마 제국은 로마 황제를 중심으로 모든 나라를 ‘로마 오이쿠메네’, 즉 로마 연방으로 불렀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성장한 이후로, 전 세계에 흩어진 교회가 ‘기독교 오이쿠메네’가 된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자신들이 어느 교회에 다니든지 ‘우리는 한 교회’라고 했습니다. 공통의 종교적 고백과 공통의 천국 소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나무의 줄기와 가지가 많지만, 그 뿌리는 하나이듯 성도는 예수님이라는 한 자궁에서 태어나 성령이 주시는 모유로 성장하고 생명을 얻는다고 믿었습니다. 예수 안에 한 가족인 교회는 각 구성원이 처한 상황에 서로 공감하였습니다. 나의 일, 너의 일이 아니라 어려운 일이 생기면 서로 돕고 연합했습니다. 마치 우리교회에서 장례가 나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성도님들이 찾아가 위로하고 돕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머리가 되시고, 교회가 그분의 보혈로 세워졌다는 사실에 공감합니다. 이러한 공감대가 우리를 더욱더 굳세게 만들고 세상에 선한 영향도 끼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흔들리지 않는 십자가 부활의 신앙으로 하나님만을 높이며 자랑하고 그분만 믿고 순종하는 겸손의 자녀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내가 주인되는 삶이 교만입니다. 내가 주인되면 청지기 삶을 버리고 내가 하나님을 부리는 교만이 들어 나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집에 진돗개하고 똥개하고 두 마리를 키우면서 주인이 정성껏 밥도 주고 목욕도 시키고 사랑해주고 자식같이 돌봐주었습니다. 어느 따스한 봄날 그런 모습을 보고 두 마리의 개가 대화를 합니다. 먼저 진돗개가 말을 합니다. ‘우리에게 이렇게 잘 해주는 주인을 보니까 나는 꼭 하나님을 보는 것 같아. 정말 우리 주인은 하나님 같지 않냐?’ 그러니까 똥개가 펄쩍 뛰면서 말을 합니다. ‘무슨 소리야 주인이 그렇게 우리를 잘 섬기는 것을 보면 우리가 하나님인 것이 분명해.’
축복하신 하나님께 진정으로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 고난 받는 자를 도와주는 것, 장애인의 복지를 위해 사용하는 것,
자연 재해로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 이것이 착한 일이요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인 줄 믿습니다. 모든 착한 일과 선한 사업에 넘치게 하나님의 받은 은혜를 나누고 섬기려 할 때 은혜를 더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고후 9:9절 말씀에서 바울은 “기록된 바 그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시편 112편 9절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하나님이 주신 복을 감사하며 그것을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주님이 원하시는 착한 일에 넘치게 했을 때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다는 말씀은 하나님이 누구에게 복을 더하시는 가를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정체성입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평등한 관계에 있는 존귀한 자들입니다. 또한 서로 공감하는 한가족 공동체, 영적인 ‘오이쿠메네’입니다. 함께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일, 믿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릅시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모든 성도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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