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하는 말씀을 직접 행함으로 보이신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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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는 말씀을 직접 행함으로 보이신 본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 13:15)
부전자전(父傳子傳)이란 말은 부자간의 전승을 말합니다. 생리적으로 유전도 있으니 이는 선천적이라 할 것입니다. 씨족의 전승! 생물계에 이렇게 전승되어 씨족이 말씀하신대로 번식하여 오늘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후천적이라고 말하는 이어감도 있습니다. 배우는데 학생은 스승을 닮게 되어 있고, 그리하여 가르치는 교육이 있습니다. 더러는 닮기 위하여 훈련도 합니다.
옛 사람의 말 가운데 생이지지(生而知之)라는 말과 학이지지(學而知之)란 말이 있으니 다 그 유전으로의 전승(傳丞) 또 배움으로의 전승을 언급함이라 하겠습니다. 예로부터 저명한 스승에게 사람들이 모여 제자가 됩니다. 저명한 스승은 한번에 많은 제자를 가르치진 않습니다. 기술 분야에 있어서는 중국 사람들은 학문에 스승이 있을 뿐 아니라 목수, 철공, 미장이, 땜장이 등등 근일의 말대로 기술자들 글은 못 배운고로 전혀 모르나 기술 학습을 위하여 스승을 찾게 됩니다.
예전에는 제자를 徒弟(중국:오~우디~)라 부르고 그 徒弟는(도제: 배우러 온 사람)
스승을 老師(중국: 로~우시~)라 불러서 老師(노사: 선생님, 나이 많은 중을 높이는 말) 일생동안 자기에게 기술을 배워준 이를 잊지 못한다 절기가 되면 의당 老師(노사)를 찾아갑니다. 그 생신에 찾아가 예를 갖춘다. 이 상하의 관계가 상당히 철저함을 보았고 군사부일체라 하여 범할 수 없는 절제와 권위로 상당한 위계질서를 경험했습니다. 다 老師보다 더 훌륭하게 되어 성공한 기술자라도 그 스승을 존경함은 말할 것 없습니다. 현대에도 음악이나 미술 분야에서 그 발표 때에 뉘게 사사한 것이 그 기록에 적힘도 한가지 맥락이겠습니다.
가정에서 나오는 범죄.
우리 사회의 범죄자들은 어디에서 생겨났을까? 대부분 부모의 관계가 좋지 않은 결손 가정에서 많이 생겨난다고 합니다. 가정은 어린이들의 삶 전반에 걸쳐 직접적으로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J. 에드거 후버는 이 점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범죄자는 가정에서 키워진다. 법을 준수하는 것은 명예로운 시민도 마찬가지다. 선과 악은 가정에서부터 기본적으로 틀을 형성하게 된다. 대개의 경우 범죄자들은 가정 밖에서 못된 버릇을 익히게 된다. 결국 그들은 적당한 가정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러한 길에 서게 된 것이다. 이 세상에서 좋은 가정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UNITED PRESBYTERIAN)
● (고전 4:15)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16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17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 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으니 그가 너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행사 곧 내가 각처 각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우리 주님께서 그 택한 제자가 열둘로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사도라고도 하여 주님의 보내신 대사의 지위이기도 합니다. 여러 가지 교훈을 많이 주셨거니와 오늘 본문에 주신 바는 주님이 친히 행하신 바를 제자들에게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렇게 주님께서 보여 주십니다. 주님 자신이 (4~5) “4)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5)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요즘도 아닌 예전에 가르치는 선생을 보는 그 제자들은 당연히 매우 거북하였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제자의 대표로“6)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라며 떨리는 마음으로 말하였을 성 싶습니다. 몸 둘 바를 몰라서였을 것입니다.
(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지금은 말씀하셔도 모르니 예의상 (8a)“베드로가 이르되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베드로의 이 “절대로”는 베드로의 상용어라고도 하겠습니다. (마 26:35)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이 속에 절대와 맹세까지 들어 있는 말이었습니다. 상대적 인간에게는 절대는 없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못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8b)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이제 본심이 나옵니다. (9)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라고 말합니다. 이에 주님은 (10a)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이렇게 친히 하신 후에 말씀이 내가 이 같이 본을 보였으니 (14)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이본을 보이시면서 이본을 받으라 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오늘 이대로 산다고 세족회(洗足)라고 따로 모임을 가지는 이들도 있어, 모여서 서로 발을 씻기면서 모임을 시작하기도 합니다. 문자 그대로 실행함이 가상도 합니다. 외관적으로 발을 씻는 일을 행하여 같이 모임까지 가지면서 그 속뜻 (7)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발이나 씻으면 다인 줄 안다면 지금은 주님의 그 교훈을 겉으로만 행함입니다. 바리새인의 전철을 밟음이 되기도 쉽겠습니다. 죄를 씻는, 죄를 속하는데 주님의 교훈은 살아 있는 것입니다. “이미 목욕한 자”속죄함을 받았다 속죄함을 받은 자들이 서로 신앙의 교제에서는 피차 서로의 대화, 서로의 만남, 더욱 예배, 말씀의 나눔(分餠에 해당한다)에서 작은 죄, 어긴 일, 교훈에 위배함이 찾아지매 피차 서로 죄를 고하는 일에서 십자가의 그 피의 진가를 맛봄에 있다 하겠습니다. 발을 씻겨 주면서 죄 인식, 죄를 도수 높은 현미경으로 찾는 것같이 죄가 찾아진다. 이 일인 것입니다. 우리 서로 반갑게 손을 잡으면서도 내가 상대에게 부족했던 것 모자란 것이 찾아질 때의 심정이 과연 발을 씻기는 일입니다. 서로 고생할 발과 고생한 발을 씻기면서야 십자가의 주님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의 말씀이 들려지지 않습니까?
● 가난한 시골 소녀가 본 그리스 소녀의 동상
이탈리아의 어떤 도시에 아름답고 우아한 표정을 한 그리스 소녀의 동상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루는 가난한 시골 소녀가 그 동상을 마주 대하게 되었는데 한참을 선 채로 빤히 쳐다보다가 집으로 돌아가서 세수를 하고 머리를 빗었습니다. 그 다음날 소녀는 다시 그 동상 앞에 서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 그녀의 누더기 옷을 수선했습니다. 날마다 소녀의 모습은 점점 우아하게 변화되었습니다. 그 동상에서 풍겨 나오는 아름다움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닮기 위해 노력한다면 우리의 삶에서 그리스도의 향기와 모습이 나타날 것입니다.
(약 3:1)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벧후 2:1) “그러나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 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주님의 보여주신 본, 짐을 서로 지는 일입니다”
“서로 죄를 찾는 일로서 서로 발을 씻기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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