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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중에 노래하게 하시는 하나님 (욥기 35: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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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수인
댓글 0건 조회 700회 작성일 21-02-17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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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중에 노래하게 하시는 하나님

(욥기 35:9~16)

9) 사람은 학대가 많으므로 부르짖으며 군주들의 힘에 눌려 소리치나 10) 나를 지으신 하나님은 어디 계시냐고 하며 밤에 노래를 주시는 자가 어디 계시냐고 말하는 자가 없구나. 11) 땅의 짐승들보다도 우리를 더욱 가르치시고 하늘의 새들보다도 우리를 더욱 지혜롭게 하시는 이가 어디 계시냐고 말하는 이도 없구나. 12) 그들이 악인의 교만으로 말미암아 거기에서 부르짖으나 대답하는 자가 없음은 13) 헛된 것은 하나님이 결코 듣지 아니하시며 전능자가 돌아보지 아니하심이라 14) 하물며 말하기를 하나님은 뵈올 수 없고 일의 판단하심은 그 앞에 있으니 나는 그를 기다릴 뿐이라 말하는 그대일까 보냐? 15) 그러나 지금은 그가 진노하심으로 벌을 주지 아니하셨고 악행을 끝까지 살피지 아니하셨으므로 16) 욥이 헛되이 입을 열어 지식 없는 말을 많이 하는구나.

우리가 잘 아는 은 참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모든 면에서 부족함이 없는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그에게 하루아침에 무서운 재난이 닥쳐왔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사라지고 그에게 남은 것이라곤 목숨 하나 밖에 없었습니다. 그의 사랑하는 세 친구가 찾아와서 "왜 욥과 같은 의인에게 고난이 찾아왔는가" 하는 문제를 놓고 장시간 동안 토론을 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대한 대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때 옆에서 이와 같은 상황을 지켜보던 젊은이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는 엘리후입니다. 계속 듣기만 하던 그는 입을 열어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바로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엘리후는 그의 세 친구가 발견하지 못한 중요한 문제를 지적해 줍니다. 마치 혼란 속에서 질서를 찾듯이 그는 놀라운 진리를 말합니다. 그것은 욥을 위시하여 이 땅 위의 고난을 당하는 자들이 불행, 그 자체만을 놓고 탄식할 줄만 알지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9절에 "사람은 학대가 많음으로 부르짖으며 세력 있는 자의 팔에 눌리므로 도움을 부르짖으나 나를 지으신 하나님, 밤중에 노래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찾는 자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불행은 더 불행해 보이고, 인간의 슬픔은 더 슬퍼지며, 인간의 비참한 모습은 더 처절하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엘리후가 발견한 진리였습니다. 그리고 본문에서 엘리후가 소개하는 하나님은 밤중에 노래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우리를 연단하시되 지혜를 주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얘기합니다. 지구에는 낮과 밤이 있습니다. 황혼이 깃들고 농부들이 집에 돌아와 손발을 씻고 될 수 있는 밤이 다가옵니다. 밤의 안식은 우리들의 모든 고민을 다 잊어버리게 합니다. 이 땅 위에서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에게 베푸신 밤은 놀라운 축복입니다. 이와 같이 인생에게 밤은 꼭 필요하며 중요한 시간입니다. 그러나 밤은 동시에 공포를 안겨다 줍니다. 두려움을 동반합니다. 세상 모든 악이 밤을 통하여 일어나고 모든 무서운 계교들이 밤의 침상에서 잉태됩니다. 그래서 밤은 안식을 주면서도 두려운 것입니다.

1. 사람에게도 인생의 밤이 있습니다.

인생은 작은 우주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이 밤을 주었습니다. 당신은 건강을 잃었습니까? 직장을 잃었습니까? 가정에 걱정이 생겼습니까? 사업이 잘 안됩니까? 그러면 밤이 찾아온 것입니다. 우리는 본능적인 이와 같은 밤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되도록 이를 피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싫어하는 밤을 주셨습니다. 지구의 낮과 밤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인생에게도 낮과 밤을 주었습니다.

사 45:7에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란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고백하기를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요 그의 판단은 측량할 수 없도다."라고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인간이 싫어하는 고난과 환란의 밤을 주십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정의하면 "최상의 가능한 목적을 설정하시고 그 목적을 달성하시기 위하여 최상의 가능한 수단을 동원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의 궁극적인 목적은 동일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개개인에게 이 사실을 적용시키면 각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목적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각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최상의 목적이 있습니다. 그 목적을 하나님께서 달성하기 위하여 사용하시는 최상의 수단 중에 하나가 밤입니다.

* 자연계에 밤을 만드신 것은 하나님의 창조 지혜입니다. 꽃은 아침에 피어나기 위하여 밤에 준비합니다. 아름다운 꽃봉오리가 이슬을 머금고 입을 벌려 피어나기 위해서는 어두운 밤 동안 준비해야 합니다. 밤이 없다면 꽃은 피지 못할 것입니다. 벼가 나무 그늘에 늘 가려져 있으면 벼가 자라지 못합니다. 또한 하루 종일 빛이 비춰지면 벼가 잠을 못자서 또한 못자랍니다.

* 인생의 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밤 동안 인간에게 꽃을 피울 준비를 시키십니다. 만일 고난이 없다면 인생의 꽃은 피지 아니할 것입니다. 밤이 없는 대낮만을 걸어가도록 하나님이 만드셨다면 인간은 교만해질 것이며, 완악해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혜자이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싫다고 하여도 불행의 밤을 주시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걸어가게 만듭니다. 어떤 때는 만사가 끝난 것 같이 생각되는 죄악의 밑바닥에까지 떨어지도록 내버려 두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무서운 사망의 골짜기를 인간에게 주셔서 자신이 우리를 위하여 세우신 목적을 달성하시는데 적용하시는 최상의 방법으로 사용하십니다.

* 인간은 밤을 통과하지 아니하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아니하는 고약한 기질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밤을 중요하게 다루십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는 방법도 밤의 방법이었습니다. 골고다로 향하는 잔인하고도 무서운 저 십자가의 길, 예수님에게도 그것은 밤의 길이었습니다. 너무나 견딜 수 없는 고난의 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하셨습니다. 죄 없는 아들을 십자가에 매달아서 전 인류를 위하여 피 흘리게 하시고 그 처절한 십자가를 통하여 모든 인류가 죄 용서함 받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볼 때는 미련하게 보인다고 바울은 말했습니다(고전 1:18). 그러나 사람에게 미련하게 보이는 것이 하나님에게는 지혜로운 능력의 길이었습니다.

*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는 방법이 인생의 밤이라는 방법이었다면 한 평생을 세상에서 살아야 할 우리를 하나님이 세우신 최상의 목적에 합당한 존재로 만드는데 선택하신 방법 역시 밤이었다고 말해도 사실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하여서는 밤은 필수적인 요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불행이나 고난을 자초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실 때 아멘으로 받으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엘리후가 우리에게 소개해준 하나님은 밤만 주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밤중(주께서 조용히 일하시는)에 노래하게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2. 밤(어둠의 시간, 시기)중에 노래하게 하시는 하나님

밤중에 부르는 노래는 낮에 부르는 노래와 다릅니다. 실패와 눈물 속에서 침묵을 깨뜨리고 감사와 감격의 눈물로 하나님께 노래한다는 것은 은혜 중에 귀한 은혜인 것입니다. 밤을 맞이한 인간에게는 노래가 나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로 그 밤에 노래하게 하십니다. 바울실라빌립보에서 매를 맞고 옥에 갇혔으나 깊은 밤중에 소리 높여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체험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령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아무리 깊은 밤이라도 찬양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사랑하는 자가 아닙니다. 눈에 보인 세상에 큰 기대를 걸고 인생을 투자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성령을 받고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로 눈에 보이는 것에 소망을 두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아니하는 영원한 데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나그네들입니다. 그러므로 밤이 다가와도 크게 타격을 받지 않습니다. 오히려 찬양합니다.

구세군을 창설한 영국의 윌리암 부스(William Booth)는 기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간결하고도 의미심장한 말을 하였습니다. "야곱이 천사와 씨름하였을 때 마음이 녹아지고, 여호수아가 기도하였을 때 아간의 죄가 심판받았고, 한나가 기도할 때에 아들을 얻었고, 다윗이 기도할 때에 원수 아히도벨 (삼하 15:31)은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고, 히스기야가 기도할 때에 앗수르 군은 진멸되었으며, 엘리야가 기도할 때에 3년 6개월의 가뭄이 끝나고 큰 비가 내렸고, 120문도가 기도할 때에 성령이 충만하게 강림하였습니다."

실로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에게 응답을 주시는 소망의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기도의 자세를 갖추어 기도하고 찬송 부르면 하나님은 어두운 밤을 물러가게 하실 것입니다. 기도는 능력입니다. 찬송은 격조 높은 곡조 있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 귀신들려서 집안이 이상하면? 예전에 굿을 하고 무당을 불러서 난리를 칩니다. 그래도 주님들이 신고하지 않았습니다. “아이고 그 집에 우환이 들어서 굿을 한데...쯧쯧쯧...” 그렇게 넘어갑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찬송 부르고 부흥회를 하면? 신고가 들어가고 주민들이 와서 싸움을 걸기도 했던 것도 이제 옛일이 되었습니다. 세상은 우리가 세상 것을 구하려고 마귀에게 굿을 하는 것이 아니고,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찬양하는 것을 시기하는 것이겠지요?

3. 밤중에 부르는 노래의 내용

밤중에 부르는 노래는 특이한 데가 있습니다. 처절한 심령의 메아리가 동반됩니다. 밤중에 들리는 노래는 가볍게 들리지 않습니다. 마음을 파고 들어옵니다. 우리가 형통할 때 부르는 찬송도 은혜스럽지만, 밤에 부르는 찬송, 고난을 당할 때, 사랑하는 자를 잃어버릴 때, 실패를 했을 때, 건강이 좋지 않을 때, 앞날이 막막할 때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을 가지고 부르는 찬송은 더욱 은혜롭고 감격이 넘치는 것입니다. 밤에 부르는 노래는 세 가지의 노래 내용을 지니고 있습니다. 즉 지나간 과거에 대하여 노래를 부르거나, 밤 자체에 대하여 노래를 부르거나, 앞으로 다가올 내일에 대하여 노래를 부르는 것입니다.

믿음의 말과, 소망의 말은 결국 온전한 감사의 찬양과도 같습니다. 찬양은 격조 높은 기도입니다. 특히 기도 중에 믿음의 찬양과 기도는 막강합니다. 믿음은 능력입니다.

내 속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할 수 있는 이 강력한 믿음은 어디서 온 것인가? 이것은 무엇인가? 바로 하늘에서 온 소망과 주님의 사랑을 아는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언제인가 죽게 될 것이며, 죽기 전에 주님의 재림을 보게 될 수 도 있습니다. 그 때 우리는 환란 중에 즉 밤중에 부를 노래를 필요로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임종 시 필요한 것은 죄인의 친구이신 예수님, 나의 구세주이신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그는 우리를 생명 길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참된 위로 자가 되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들은 죽음의 위기에 있을 때 우리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태연함이 있습니다. 밤중의 노래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둠을 뚫고 환하게 빛나는 보좌를 향하여 찬송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이를 온전한 마음으로 이루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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