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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눅 10:3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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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수인
댓글 0건 조회 778회 작성일 20-01-14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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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눅 10:30~37)

3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31)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32)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33)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34)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35)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36)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37)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만약 우리에게 이웃이 없다면 그 삶은 고독하고 무미건조 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이웃을 만나느냐하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오히려 해만 입히는 이웃을 만난다면 그 이웃이 우리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질문 하십니다. 누가 선한 이웃이냐? 그 답이 오늘 비유 말씀 속에 있습니다. 함께 차를 마시고 좋은 관계 속에서 왕래 하는 이웃도 좋은 이웃이겠으나 오늘 주님께서는 선한 사마리아 인의 비유를 통해 복음을 전하는 이웃이 진정한 선한 이웃이라 하십니다. 누가 너희들의 선한 이웃이냐? 라는 질문에 정확한 답을 찾아 가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1. 어떤 사람이 강도 만나 거반 죽게 되었습니다.

30절 =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여기서 강도는 마귀, 사탄을 지칭합니다. 그리고 '여리고'는 세상을 의미합니다. 강도 만난 자가 거반 죽게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을 떠난 사람을 의미합니다. 즉 어떤 사람이 강도만나 거반 죽게 되었다는 것은 마귀에게 인간들이 죽게 된 것을 비유로 예표한 것으로 예수 없는 삶은 마귀 사탄에 의해 죽음만이 있는 삶으로 예루살렘 떠나면 죽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두렵고, 아프고, 질투나 시기로 가득하면 이미 이세상은 지옥입니다. 어떻게 보면 삶 자체가 지옥입니다. 왜냐하면 마귀가 이 땅을 지배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 떠난 이세상은 사탄 마귀 때문에 인간의 방황과 교만과 자랑과 슬픔의 죽음만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여리고는 사람 살 곳이 못되는 황량한 곳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이 황량한 여리고의 모습을 통해 지옥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공중 권세는 마귀의 지배하에 있기 때문에 싸움과 다툼과 전쟁과 기근이 쉼 없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마치 지옥과 같은 모습입니다. 피할 수 없는 고통 속에 살고 있는 곳이 이 세상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 떠난 삶은 예루살렘 떠난 삶으로 오직 죽음만이 있습니다. 불 못 지옥은 죽어서 가는 곳입니다. 그러나 살아서 경험하는 지옥도 있습니다. 오늘 이 세상이 바로 살아서 지옥을 맛보는 곳입니다. 마귀는 처음부터 하나님을 대적한 존재입니다. 마귀는 하나님께서 창조해 놓은 모든 피조세계를 죽음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항상 하나님과 반대되는 존재가 마귀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언제나 선택의 기로에 있습니다. 죽음이냐? 생명이냐? 여리고냐? 예루살렘이냐? 이것을 말하기 위해 본문을 비유로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예루살렘 즉 교회에 있다는 것이 복됩니다. 너무 감사하고 기쁩니다. 하나님 없는 이 시대가 여리고입니다. 본문의 나그네는 예루살렘을 떠났기 때문에 거반 죽을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곧 본문은 천국을 떠나면 죽음만이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 땅의 교회는 천국을 상징합니다. 곧 교회를 떠난 인생은 보트피플들처럼 살아 있으나 이미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습니다.

하나님의 주신 복이 있는 땅 예루살렘을 떠나서 세상인 여리고로 가지 말기를 바랍니다.

그곳은 죽음과 강도만이 예비 되어있는 곳입니다. 가면 마귀의 밥이 될 뿐 보호를 받지 못하고 결국은 죽습니다.

● 우리 민족은 예루살렘 신앙을 가진 민족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절기를 지키는 큰 축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개발도상국에서 벗어나 이제 선진국의 대열 속에 들어가게 되어 있는 나라가 우리나라입니다. 복음이 우리나라를 이렇게 축복받은 땅이 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루살렘인 교회와 천국을 주셨습니다. 오늘 예배를 구별하여 주의 전에 나온 여러분들은 예루살렘을 떠나 여리고로 내려가 강도 만난 자들이었던 사람들이었으나 주님을 만나 회복과 은혜를 받고, 하늘의 평강을 누리는 백성인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사마리아인이 도와주었습니다.

33절~34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B.C 721년 북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완전히 멸망당하므로 사마리아는 야훼 신앙을 잃어버렸습니다. 이들은 정복국인 이방인과 통혼하므로 이교적 생활, 종교, 등 혼합족속이 되어 버렸습니다. 유대인들과 적대적인 관계에 있던 사마리아인들은 예루살렘성전에 대응하는 성전을 그리심 산에 따로 지어서 이것을 자기들의 중앙 성소로 삼고 그리심 산에서 제사를 지냈습니다.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가자면 사마리아를 경유하여 가는 길이 가장 빠른 길이었어요. 그런데 유대인과 사마리아인들 사이에는 종교적인 골이 있어 깊은 불화와 반목이 있었습니다.

(왕하 17:24) "앗수르 왕이 바벨론과 구다와 아와와 하맛과 스발와임에서 사람을 옮겨다가 이스라엘 자손을 대신하여 사마리아 여러 성읍에 두매 저희가 사마리아를 차지하여 그 여러 성읍에 거하니라..." (요 4:9) "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 함이러라."

이러한 종교적 반목이 있기 때문에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으로 가는 순례자들과 사마리아인 사이에는 충돌이 늘 있었습니다. 이러한 대립의 관계 때문에 순례객들은 가까운 사마리아 길로 가지 않고 먼 베레아 지방으로 지나다니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유대주의 자와 사마리아 인들을 대조시키고 있습니다. 이방 문화로 인해 절대 신앙을 잃어버린 사마리아인을 오히려 선하다 하십니다. 여기서 '사마리아인''예수님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즉, 사마리아 인이 도와주었다는 것은 죄로 죽게 된 인간을 구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의미합니다. 사마리아 인의 모든 모습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예수그리스도의 모습과 동일합니다. 예수님 만나면 구원받고 살아납니다. 마치 강도 만나 자가 사마리아인을 만남으로 살아난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인들이 멸시와 천대를 받음 같이 예수님 역시 이 땅에 오셔서 멸시와 천대를 받았습니다.

오늘 본문의 핵심은 이 강도 만나 거반 죽게 된 자를 누가 도와주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경건과 율법지킴을 자랑하는 교만한 유대인이 아닌, 사람 취급받지 못한 사마리아 인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를 도와주시고 살려 주신다는 것이 본문의 핵심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의 이름으로 주신 이름은 예수 이름 외에는 구원의 이름을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행 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마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요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죄의 지배는 지옥죽음을 가져 다 주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찾아 오셔서 구원 생명을 주셨습니다. 너무나 감격스럽고 감사합니다. 혼합주의에서 하나님만이 우리를 구원하고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는 유일한 이름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오직 예수만을 붙들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다 죽게 되었을 때 남편이, 자식이 도와 줄 것 같아도 극한 상황에 오면 그들도 주저하고 계산하는 이기주의자가 될 수 있고, 도울 수 없는 상황으로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 죽게 된 우리를 값도 없이 구해 주실 분은 오직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세상에서 거반 죽게 된, 아니 죽은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지옥의 아픔을 경험하고 사는 우릴 위해 예수님 오셔서 새 생명을 주셨습니다. 우리역시 전에는 강도 만난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젠 염려 없습니다.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여리고에서 큰 집 짖고 살아보십시오. 그리고 여리고에서 명예 쌓아가며 살아보십시오. 영원할 것 같으나 멸망만이 있는 곳이 여리고입니다.

한국에 하나님이 찾아오심으로 세계 선교 2위 국가가 되게 하셨습니다. 선교 1위 인 미국과 인구를 비례해보면 오히려 우리나라가 1위입니다. 4000만이 넘는 한국 숫자로 볼 때 우리가 1위입니다. 가난한 한국 전쟁으로 온 국민이 거지였던 한국에 예수님 찾아오시므로 도시를 지날 때 마다 십자가가 세워지는 놀라운 영적 부흥을 갖게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여리고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 우리를 찾아오심으로 예루살렘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너무 좋습니다. 오직 예수님만 붙들고 구원받은 삶, 보호받는 삶, 이러한 축복을 풍성히 받아서 행복한 성도들이 다 되기를 축원합니다.

3. 비용이 더 들면 돌아와서 갚겠다고 했습니다.

35절 =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거반 죽게 된 나그네를 돌봐준 사마리아인은 일곱 가지 사랑의 모습을 통해 나그네를 돌봐 주었는데요. 먼저 불쌍히 여기는 사랑의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름을 붓고 상처를 싸맵니다. 그리고 포도주를 부어 줍니다. 그리고는 자기 짐승에 태워 줍니다. 그리고는 주막에 데리고 와서 돌봐줍니다. 그리고 주막 주인에게 이 나그네를 부탁합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다시 돌아와서 비용을 더 갚겠으니, 잘 돌봐 주기를 부탁합니다. 이러한 사마리아인의 행동 속에는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주는 복음의 진수가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여기서 "비용이 더 들면" 한 것은 일에 드는 비용을 갚겠다는 의미로 곧 책임성을 말합니다. 예수님과 연결해서 생각해 보면 먹고 사는 것 책임져 주겠다는 약속과 동일합니다. 우리를 교회에 맡기시고 그 교회에 사는 날 동안 다 지켜주겠다 하십니다.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의 모습 속에는 각종 보화들이 다 숨겨져 있습니다.

본문에 '다시 와서'의 의미는 재림의 예표성을 의미합니다. 즉 비용이 더 들면 돌아와서 갚겠다 한 것은 주님 재림해서 우리들을 다시 찾아주실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지키시고, 그리고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서로 도우면? 반드시 주께서 비용을 갚아 주듯이 갚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눈물을 씻기시고, 칭찬과 하늘의 처소를 주실 것입니다.

(요 14: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다시 와서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부비를 책임지겠다고 약속한 사마리아 인과 같이 이 땅에 사는 날 동안 우리를 책임지시겠다는 것입니다. 치료받고, 먹고 하는 모든 일 즉, 이 땅에 모든 삶을 책임지시겠다는 것입니다. 예수 찾아 오셔서 우리를 책임지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 (신 29:5) "주께서 사십 년 동안 너희를 광야에서 인도하게 하셨거니와 너희 몸의 옷이 낡아지지 아니하였고 너희 발의 신이 해어지지 아니하였으며"

광야로 떠난 이스라엘을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노예의 땅인 애굽에서 꺼내시고 가나안땅을 향하여 가는 모든 노정을 책임지셨습니다. 그들이 가나안땅에 들어갈 때 까지 신발과 의복이 쇠하지 않았다고 증거하고 있지 않습니까? 염려 할 것이 없습니다.

● 우리 주님 신약에 와서는 우리가 염려하지 말 것을 자연을 통해 비유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 6:25~3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 하냐 ~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우리 주님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몸을 위해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해 무엇을 입을까? 염려 말라는 것입니다.

"사마리아인이 돌아올 때" 곧 재림을 의미합니다. 이 땅의 최종위로는 역사의 마감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영원한 천국이 예비 되어 있습니다. 눈물이 없고, 애통이 없는 곳,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없는 나라 천국입니다. 언제나 가고 싶은 곳, 저 천국이 값도 없이 믿음으로 은혜로 예비 되어 있는데 이 땅에 사는 삶 동안 무엇이 그렇게 염려스럽단 말입니까? 주님 함께 하셔서 이 땅에서 사는 삶을 책임 지시겠다는데 무엇이 걱정입니까? 염려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염려는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불신앙에 불과 합니다.

이 시대 모든 징조를 통해 재림이 아주 가까웠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사랑에 흠뻑 젖어보시기 바랍니다. 그 사랑에 감격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비용을 책임져 주신다고 하십니다. 우리의 먹을 것 입을 것 책임지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세상은 무시하고 우습게 볼 지 몰라도 주님은 선한 사마리아 인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생명까지 강도 만나고, 사단에 눌려 있던 상처 받은 우리에게 선한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주님의 일들을 감당하며 세상으로 염려 하지 말고, 선한 사마리아인 되어 주님의 천국에 속한 비용으로 추가 지급을 받아 우리 주님 붙들고 승리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강력하게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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