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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목자 - 시편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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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665회 작성일 20-05-20 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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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 183. 270. 488. ① 선한 목자. 235.(보아라. 즐거운 우리 집)

(시편 23:1~6)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 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시편 23편은 죽음과 두려움 앞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승리의 노래가 되며, 고독한 사람의 벗이 되어 줍니다.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로부터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는 이 신앙시의 교훈을 여러분들과 함께 이 시간 나누기를 원합니다.

먼저 시편 23장을 보면서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1. 먼저 우리는 목자를 따르는 양떼입니다. 주께서 나의 목자시라는 말씀은 나는 주님의 양떼라는 말입니다. 양은 어리석은 동물이라고 합니다. 양은 맹수가 사는 위험한 지역에 가 있으면서도 그곳이 얼마나 무서운 곳이라는 것을 모릅니다. 다니다가 길을 잃어버릴 줄은 알면서도 자기가 갔던 길을 되돌아 올 줄을 모른다고 합니다. 여름에 자기가 풀을 뜯던 곳도, 겨울에 쉬던 곳도 잘 잊어버리는 정도가 아니라 모른다고 합니다.

(1) 양은 방향감각이 없습니다.

고양이를 자루에 넣어가지고 100리나 되는 곳에 갖다 버렸는데 그 고양이가 주인보다 먼저 집을 찾아왔습니다. 고양이나 개는 이처럼 예민한 방향감각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양은 방향감각이 없습니다. 반드시 목자의 인도를 받아야만 합니다. 성서는 사람들을 양으로 비유했습니다. 인간은 양과 같아서 마귀와 대적해서 싸울 힘도 없거니와 방향감각이 없어서 삶의 방향을 정하지 못해서 방황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의 인도자가 되셔서 (요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2) 양은 전적으로 의존하는 짐승입니다. 양은 어리석고 아무 것도 모릅니다. 또한 어리석을 뿐 아니라 의존하는 짐승입니다. 다른 짐승은 들판에 나두면 스스로 삶을 영위합니다. 또한 개척해 나가면서 스스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양은 자기 혼자 살 수 없는 짐승입니다. 먹이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자기 몸 자기 스스로 지키지도 못함으로 광야에 두면 얼마 가지 못하고 죽고 맙니다. 양은 전적으로 약한 존재입니다.

(3) 양은 자기의 뜻을 고집합니다. 양은 앞으로 나아가기만 합니다. 돌아설 줄 모릅니다. 그래서 길을 잃어버린 양이 얼마나 많습니까? 길 잃은 양은 목자에 의해서만 양 우리에 돌아올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주님의 양 떼들입니다. 사 53:6에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고 했습니다.

우리를 양에다 비유한 것은 적절한 표현일 것입니다. 우리는 양과 같아서 우리 스스로 자신을 방위할 능력도 없고, 살아갈 수 있는 방편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는 하루도 살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옛날 청교도들은 "하나님의 백성은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살아갈 때 하나님의 백성이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가끔 우리 스스로 자신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것 같이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서 자신의 무력함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할 때 행복이 있고, 만족이 있는 것입니다. "주는 나의 목자시니"라고 고백할 수 있을 때만이 그의 의존성은 참된 축복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아마 이 자리에는 유리하는 양과 같이 제 길로 가서 제 마음대로 살다가 벽에 부딪쳐서 고생하고 거의 죽게 되었을 때 목자 되시는 주님의 팔이 우리를 구덩이에서 건져 주셨음으로 오늘이 있는 분도 여러분 계시리라 믿습니다.

● "저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이었어?"

어느 날 뜻밖에 이런 말을 듣는다면 그는 평소에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 살았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음주를 자유롭게 하고 유흥의 장소를 출입하는데 구별 없이 다녔다면 그런 말을 들을 것입니다. "나는 교회 다녀" "나는 예수 믿어" 평소에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왜 예수 믿는 것을 자신 있게 드러내지 않을까요?

예수님은 이런 모습을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예수를 믿는 다는 의미는 교회출석을 하는 것이 본질이 아닙니다. 구원받는 것이 곧 교회출석만을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학생이 청소부 아버지를 부끄러워하여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아버지는 아들을 어떻게 생각할까요? 물론 자신이 자녀에게 부족한 부모다. 라고 생각한다면? 자녀를 이해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서운함은 어떻게 할까요? 갓난아이 때부터 너무 이쁘게 자란 아이인데 어느 날 다른 사람의 눈과 편견에 눌려서 아버지를 무시하게 되는 이런 몹쓸 인간이 된 자녀를 그냥 보고 정말 이해만 하면 될까요? 그것이 부모의 도리일까요?

만약 신자가 예수 믿는 것을 부끄러워하면 예수님은 어떻게 여기실까?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눅 9:26)

● 예수님을 믿는 다는 의미는 인격적인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일상의 삶에서 친밀한 관계로 동행하고, 그 말씀대로 실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것 되시는 능력의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믿기로 작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결단하는 마음이 약하면, 10%나 20%밖에 안 되면 자신감이 떨어집니다.

세상 사람들과 구별 없이 똑같이 행동하는 것입니다

부끄러운 모습으로 살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실을 숨기려고 하는 것입니다.

100% 결단하고 실천하면 금 같은 신앙이 됩니다. 아무리 못된 재벌가라도 자신의 자녀들이 엉망으로 산다고 해서 정말로 버리는 자가 있겠습니까? 하물며 혹 실수를 하거나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모르고 사는 백성들이라도 주님은 기다리시고 기대하시고 기도하십니다.

2. 그리고 여호와는 우리의 목자이십니다. 사 45:22에 "땅의 모든 끝이여 내게로 돌이켜 구원을 받으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또한 사 46:9에 "너희는 옛적 일을 기억하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같은 이가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시 33:12에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 축복의 말씀은 여호와를 목자로 삼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약속하신 말씀입니다.

원래 양을 치던 목자였던 소년 다윗은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러 나가면서 사울 왕에게 목자로서의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삼상 17:34-36)"34)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 가면 35)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 36)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다윗도 목자생활 할 때 이같이 용감하여 자기 양 떼를 보호했는데 하물며 전능하신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의 목자가 되신다고 하였으니 우리에게는 문제될 것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 요 10:11에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고 말씀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말씀은 십자가를 지심으로 실현했습니다.

● 마 9:36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37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38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1) 주님이 바로 나의 목자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가장 귀한 신앙의 고백입니다. 양에게는 목자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목자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라" 할 때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다 이런 고백을 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여러분 스스로 생각해 보십시오. 주님이 과연 다른 사람의 목자보다도 나의 목자로 오셨습니까? 하나님을 나의 목자로 모신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2) 목자는 양을 사랑합니다. 요 15:13에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고 하셨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목숨을 버려가면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나를 정말 사랑하는 친구, 죽기까지 사랑하는 신랑이 되신 분이십니다.

(3) 목자는 양을 인도해 주십니다. 벧전 5:7에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고 했습니다. 선한 목자이신 주님은 양과 같은 우리를 향하여 "너희 염려를 다 내게 맡기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미래의 두려움 때문에 염려, 근심 이런 것들을 하게 되니까? 불순종과 불신앙을 다 버리라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교회 집사님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과거에 하나님을 멀리 떠나 유리하는 양과 같이 육신의 향락에 파묻혀서 돌아서야겠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돌아서지 못하고 빠져 나와야겠다고 다짐을 하면서도 나오지 못하고 빠져 들어가서 기쁨도, 평화도, 만족도, 감사도 없는 나날을 보내며 노래와 춤과 향락에 빠져 살다가 지금 50이 넘어서 주님의 손길을 체험하게 되었고, 양의 우리 안에 들어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전에는 주말에 밤 1시에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고 밤 2시에 자면 아침 10시에도 일어나지 못했는데, 이제는 주일 아침 5시 반이면 일어나 1부 예배에 참석하며 봉사하신다고 합니다. 주님은 그분의 목자이십니다. 성령님은 방황하는 우리를 우리와 양 무리 안으로 인도하시고 사자와 곰의 입에서 우리를 건져 주십니다. 여호와는 참 나의 목자이십니다. 그러기에 어느 것에도 부족함 없이 인도하시며 정말 필요함을 다 채워주시는 목자이십니다.

선한 목자는 양떼의 마음을 알고, 양은 목자 뒤를 따릅니다.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들을 줄 알고 구별합니다. 우리 모두 선한 목자이신 주님의 신뢰받는 양떼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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