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 충성되고 의로운 죽음 요 12:2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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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일] 충성되고 의로운 죽음
*생명의 양식인 말씀:(요 12:24∼26) 찬송:445, 492. 510. 580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25)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26)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하나님이 만드신 밀알이 땅에 즉 육에 속한 세상에서 죽으면 열매를 많이 맺게 됩니다.>
이번 달은 현충일과 과거 민족 비극의 6,25 전쟁이 있었던 달입니다. 현충일은 조국 광복과 국토방위를 위해 싸우다 돌아가신 순국선열과 전몰장병들의 영령을 추모하기 위해 정한 기념일이다.
(참고)
1. 추도식 또는 추도예배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지요? 추도(追悼) 와 추모(追慕)
추도의 '도'자가 슬퍼할 '도'자입니다. 반면 추모의 '모'자는 그리워할 '모'자입니다.
신앙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추도라는 말은 맞지 않습니다. 고인을 그리워하는 '추모'가 맞는 말입니다. 그래서 추도식, 추도예배라는 말보다는 추모식 또는 추모예식이라는 말로 바꾸어서 사용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2. '좇다'와 '쫓다'는 표현도 많이 틀리는 표현입니다.
'좇다'는 "남의 뒤를 따르다. 자취를 따라가다."라는 뜻이고,
'쫓다'는 "내쫓다"는 뜻입니다. 많은 경우에 혼용되어 사용됩니다.
예를 들어 "예수를 쫓아서"라는 말 대신에 "예수를 좇아서"라는 말을 사용해야 합니다.
예수의 뒤를 따라가야지 내쫓아서야 되겠습니까?
● 우리나라는 1948년 8월에 정부를 수립한 뒤, 2년도 못 되어 1950년 6 · 25 전쟁을 겪었다. 이 때 25만 명 이상의 국군이 사망하였다. 이에 정부는 1956년에 대통령령으로 6월 6일을 현충일로 정하고, 추모 행사를 갖도록 하였다. 우리 모두는 나라, 민족, 그리고 우리의 역사를 통하여 우리의 참된 자아를 반성하는 그리스도의 길을 가야 되겠습니다.
● 이스라엘에 가면 반드시 들려야할 곳이 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독립기념관과 전쟁박물관입니다. 전쟁박물관에는 600만 구루의 나무가 있습니다, 이 나무는 히틀러에게 희생당한 구민을 추모하기 위하여 온 국민의 성금으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이 나무를 "통곡의 나무, 눈물의 나무"라고 합니다. 또한 우리나라에도 서울 강남 동작동 국립묘지와 대전국립묘지가있으며 용산에는 전쟁박물관이 있습니다. 외국의 유명인사가 한국에 올 때, 또한 나라의 어려움이나 나라를 위하여 일하고자 할 때 모든 이들은 국립묘지를 참배하곤 합니다. 왜 그럴까요? 나라의 존패는 희생과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만 합니다.
● 지금의 우리나라는 현실은 어떻습니까? 젊음을 바친 순국선열들의 희생과 피 흘림이 오늘의 경제 부흥을 이루고 또한 자원이 전혀 없는 이 땅에서 경제적 성장을 이룩했건만 현실은 너무도 70년 전의 사실을 잊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멀리하고 오직 나라를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받친 이들에게 우리는 그들을 생각하고 나라를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는 지금 눈을 때려서라도 눈물을 흘리며 이 나라의 영적인 성장과 성숙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눈물을 흘리는 민족은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임진왜란 때의 눈물, 일제 강점기 때의 눈물, 6,25전쟁 때의 눈물 이 영, 혼, 육의 눈물들을 통하여 우리는 선열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있어야합니다. 희생이 없으면, 자유와, 번영이 없고, 나라와 가족, 하나님의 나라도 존재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예레미야의 기도, 예수님의 눈물이 있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듯이 의로운 죽음이 나라와 주님의 의를 나타내는 길입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 이야기, 주기철 목사님의 일사각오의 순교정신, 스데반집사의 순교 이 모든 것이 희생과, 눈물, 헌신을 통해서만이 이룰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이며 행동 강령입니다. 크리스천의 모습은 주께서 십자가의 희생을 통하여 주신 구원을 믿음으로 완성되게 됩니다.
● (요 15: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 (사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 (요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사랑에는 반드시 성숙한 누군가의 희생이 있기에 다른 사랑스런 백성과 성도가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이 희생하고 그 희생의 가치로 기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주는 자가 복된 사실입니다.
(말 3:13~18) 13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완악한 말로 나를 대적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나이까? 하는 도다. 14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만군의 여호와 앞에서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
(말 3:15) 지금 우리는 교만한 자가 복되다 하며 악을 행하는 자가 번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하노라 함이라 16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 책에 기록하셨느니라. 17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나는 내가 정한 날에 그들을 나의 특별한 소유로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 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18 그 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을 분별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
● 기도는 많이 하면 길이 생기는 것이 원리입니다. 눈물은 기도를 돕는 지름길. 기도의 오솔길
서아프리카의 국경지대에 모든 부족이 예수님을 믿는 작은 마을이 있었습니다.
토담으로 지은 교회에는 따로 남는 방이 없어 마을 사람들은 숲속에 조용히 기도할 수 있는 작은 집을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이 어찌나 기도를 많이 했는지 몇 달 만에 숲 속의 오두막으로 가는 오솔길이 생길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기도를 소홀히 할 때는 잡초가 빠르게 자라 길이 사라졌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기도하는 방으로 가는 길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삶이 너무나 달라진 것을 알고는 잡초가 자라려고 하면 의식적으로 더 기도를 하러 많이 찾아갔습니다. 지금 내 마음에 있는 기도의 오솔길은 어떤 상태일까요? 충분히 주님께 무릎을 꿇는 신앙생활일까요?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영광이 떠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의 계획이 많아집니다. 기도생활을 통해 염려를 떠나보내고 사탄을 쫓아내십시오. 반드시 주님께서 좋은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우리가 분병히 알아야 할 것은 내가 누군가에게 가르치고 싶어 하는 그것이 바로 내가 먹어야 할 음식이며, 양식입니다. 아울러 목표가 하늘이라면 기도는 그 길을 만드는 것이 될 것입니다.
(살전 5:2~9) 2)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3)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4)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5)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6)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를 우리에게 정확히 말씀하셨던 것을 알고 있습니까?
살전 5:2절은 주님의 날은 밤에 도적과 같이 올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직 어둠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4절과 6절은 계속해서 빛의 자녀들이 이 날에 놀라서는 안될 것이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마 24:14에 따르면, 예수님은 그리스도의 몸이 하나의 아름다운 신부로서 일어날 때 그리고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이르는 것을 보기 위해 세계를 가로지르는 기도의 손들이 참여할 때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그분의 신부로서 신부가 준비될 때 오실 것입니다. 성경이 묘사하는 하나님의 사람은 우리를 파멸시키려는 적들과 실제 전투에 참여하는 것으로 설명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군대는 평화 시에 전쟁놀이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긴장은 육체적인 영역보다 영적인 영역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그 위험은 실제적이고 위험은 더 높은 것입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이미지나 용어로서 전쟁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어두움의 영적 권세들을 대항하여 우리가 무장된 전사로서 저항과 싸움을 취하도록 부릅니다(예를 들면, 시 144:1, 149:6, 고후 10:3-4, 딤전 6:12, 딤후 2:3을 보십시오). 우리는 에베소서 6:12의 말씀처럼, 혈과 육에 대항하여 싸우는 것이 아니라, 사탄과 악한 영들과 그리고 그들의 악행에 대해 싸우는 것입니다. 우리의 적인 사탄은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을 이 땅에서 영원히 포로로 잡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그리하여 그들로 하여금 창조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속에 왕되신 예수님을 모심으로써, 철저하게 사탄과 싸웁니다. 그때 우리의 보여지는 그림자와 같이 도시들과 국가들을 얻을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축복하는 동시에 예수님을 사랑하고, 높이는 것은 사탄과 그의 음모를 패퇴시킬 것입니다.
● 요한계시록 11:15의 말씀을 외쳐봅니다.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이르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하시리로다. 하니” 하나님 아버지는 너무 오랫동안 적에게 사로잡혀있던 더 많은 하나님의 자녀들과 공동체들이 그들의 진정한 주인이신 그리스도께로 다시 돌아가서 기쁨을 찾기를 원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지금은 보이지 않는 그러나 살벌한 영적 전시(戰時)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후, 우리는 이미 승리가 보장되었습니다. 만일 하나님과 함께 해온 선교초대교회의 사역과 성도 각자가 세상 가운데 누리는 개인적인 삶 가운데서 하나님을 경험했던 그 여정을 채색할 수 있는 한 구절이 있다면 바로 고린도후서 2:14일 것입니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우리의 삶과 사역을 뒷받침 해 준 이 핵심 구절은, 황제와 백성들에게 선물할 전리품을 가지고 승리의 개선을 하는 로마 장군들의 방식과 관련이 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토를 되찾고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어두움의 권세에서 벗어나서 빛의 나라로 옮겨지도록 하는 영적 군대의 지체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전시 중에 있는 군인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가 그를 찬양하고 있는 교회당 뿐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이 있는 거리에서 더 분명히 나타난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은 죄인들을 사랑하시고, 유난히 좋아하십니다. 그래서 만약 우리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밖으로 나가야 하며, 그리고 가난한 자와 병든 자와 상한 자를 섬겨야만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사탄에 대항하여 전쟁을 선포할 것이며, 하나님께서 일어나셔서 도시와 나라들을 회복시키시는 그의 군대를 전진하도록 부르시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전쟁을 통해서 무엇을 볼까요? 밥을 먹으면서 무엇을 깨닫는가? 옷을 입으면서 무엇을 느끼는가? 부모가 되면 자녀를 통해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도 우린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말씀과 기도로 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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