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땅은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 /하박국 2장 4-2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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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땅은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 /하박국 2장 4-20절.
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 20)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땅은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 하시니라
예전에 우리나라에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이나 미국에 쌍둥이 빌딩 ‘9.11 테러 사태’에서 그 큰 빌딩이 무너져 내린 잔해 아래에서도 극소수이지만 생존자들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런 기적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그 생존자의 주위에 어떤 형태로든지 최소한 삼각형 꼴의 공간이 형성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가장 흔한 예로서, 바닥과 벽이 유지되고 있는 상황에서 철제 빔 같은 것이 그 두 면을 비스듬히 이어 주도록 떨어지면, 그 사이에 좁지만 안전한 공간이 형성됩니다. 실제로 빌딩 붕괴 사고를 당하게 될 때 가능한 한 벽 쪽으로 붙어 피하는 것이 생존 확률을 높여 주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 작은 삼각형의 공간이 그 주위를 짓누르고 있는 엄청난 압력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피신해 있는 사람의 생명을 지켜 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에게도 그런 ‘생존 공간’이 있었습니다.
그가 살고 있던 시대의 유다는 그 주변 상황만을 보자면 모든 것이 최악이었습니다.
국력은 오래 전부터 쇠퇴일로였고 민생고는 이미 한계를 초과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으로는 부패한 방백들이 착취에 여념이 없었고 밖으로는 당시 근동사회에서 공포의 대명사였던 ‘갈대아 사람’ 즉 바벨론 인들의 위협이 피부로 느껴질 정도로 임박해 있었습니다.
● 말씀(성부)과 기도(성령)와 찬양(성자)
그처럼 누가 보아도 어떤 마음의 여유나 삶의 희망을 찾으려 해야 찾을 수 없어 보이던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오히려 하박국 선지자는 본문 4절 하반 절에서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참으로 놀라운 소망을 선포하고 있었습니다. 그 믿음은 무엇인가요? 바로 하나님을 끝까지 믿는 믿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로 기도하는 자가 말씀을 끝까지 듣는 것입니다.
*의인으로 하여금 그런 기적적인 생존을 가능하게 해 주는 믿음의 근거는 과연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이 곧 20절에서 하박국 선지자가 당당히 선포하는 대로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즉 아무리 세상이 어지럽고 인생이 고통스럽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성전’을 중심으로 사는 성도는 결코 망하거나 죽을 리가 없다는 것이 바로 하박국 선지자 자신의 확신이며 또한 유다 백성에게 가르쳐 준 격려였던 것입니다. 이 시간 교회를 자신의 ‘영적 생존 공간’으로 알고, 그 교회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인 성도가 구체적으로 어떤 세속적인 환난과 위협 중에도 능히 살 수 있는지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교회 중심의 성도는 ‘전쟁의 공포’에 사로잡히지 않고
‘세상이 알지 못하는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본문 5절부터 8절에 “5) 그는 술을 즐기며 거짓되고 교만하여 가만히 있지 아니하고 스올처럼 자기의 욕심을 넓히며 또 그는 사망 같아서 족한 줄을 모르고 자기에게로 여러 나라를 모으며 여러 백성을 모으나니 6) 그 무리가 다 속담으로 그를 평론하며 조롱하는 시로 그를 풍자하지 않겠느냐 곧 이르기를 화 있을진저 자기 소유 아닌 것을 모으는 자여 언제까지 이르겠느냐 볼모 잡은 것으로 무겁게 짐진자여 7) 너를 억누를 자들이 갑자기 일어나지 않겠느냐 너를 괴롭힐 자들이 깨어나지 않겠느냐 네가 그들에게 노략을 당하지 않겠느냐 8) 네가 여러 나라를 노략하였으므로 그 모든 민족의 남은 자가 너를 노략하리니 이는 네가 사람의 피를 흘렸음이요 또 땅과 성읍과 그 안의 모든 주민에게 강포를 행하였음이니라.”고 기록했습니다.
● 여기서 “화 있을진저”라고 저주의 대상이 되고 있는 “그”란 바벨론 인을 가리킨 것이었습니다. 당시 막강한 군사력으로써 “자기에게로 여러 나라를 모으며 여러 백성을 모으고” 있던 바벨론 사람들은 그 “거짓됨”과 “교만”과 “욕심”이 극에 달해 있었습니다. 전쟁으로 인한 술취함과 타락과 재앙의 흔적들을 보면서 악이 즉 사단이 역사하는 것을 봅니다.
*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 생활을 하는 것은 크게 보면 세상에 빠져서 나약해지고 타락하게 되면 그 이후에 도적이 들어 점령되고 포로가 된다는 이치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 교회가 우리 가정의 안전지대이며, 영생의 길로 가는 구원의 방주인 답입니다.
2. 교회 중심의 성도는 ‘이기적 물욕’을 추구하지 않고 ‘참된 물질적 축복’을 체험하게 됩니다.
9절부터 11절에 기록하기를 “9) 재앙을 피하기 위하여 높은 데 깃들이려 하며 자기 집을 위하여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10) 네가 많은 민족을 멸한 것이 네 집에 욕을 부르며, 네 영혼에게 죄를 범하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11) 담에서 돌이 부르짖고 집에서 들보가 응답하리라.”고 했습니다.
● 이것은 바벨론 제국이 자국의 부귀영화를 지키려고 국가의 기반을 공고히 다졌던 것과 또한 더 많은 재물을 소유하기 위하여 다른 민족과 나라들로부터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불의한 이득을 취했던 사실. 그뿐 아니라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에 일단 젖어들게 되니까? 그것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더 많은 비용이 필요했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그들은 그 “자기 집을 위하여” 자기네가 점령한 나라들로부터 세금과 공물을 짜내면서 “부당한 이익”을 계속 취했던 것입니다. 자기네의 향락을 위해 그토록 애를 썼던 바벨론 제국이었지만 그것이 결코 오래가지는 못했습니다. 바벨론이 발전한 만큼 바벨론의 이기주의로 인하여 멸망당했던 “많은 민족”의 원한 역시 사무쳐 극에 달해 있었습니다. 결국 바벨론인의 이기적 욕심은 끝내 “네 집에 욕을 부르며 네 영혼에게 죄를 범하게 하는 것” 즉 화를 스스로 부른 자멸행위가 되고 말았던 것이었습니다.
3. 교회 중심의 성도는 ‘문명 진보의 교만’과 짝하지 않고
‘하나님의 절대주권’만을 높이게 됩니다.
12절부터 14절에 “12) 피로 성읍을 건설하며 불의로 성을 건축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13) 민족들이 불탈 것으로 수고하는 것과 나라들이 헛된 일로 피곤하게 되는 것이 만군의 여호와께로 말미암음이 아니냐? 14)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함이니라.”고 기록했습니다.
여기 “성읍”과 “성”이란 말은 ‘도시’와 ‘마을’을 뜻합니다.
이것은 인간 사회가 형성되고 문명이 발달하면서 조성되기 시작한 것들입니다.
셋의 자손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예배생활을 영위해 나가는 동안, 가인과 그 자손들은 ‘여호와 앞을 떠나’ 놋 땅에 거하며 거기서 성을 쌓고 불신문명을 발전시켜 나갔던 사실과 상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가인의 자손 된 “민족”들과 바벨론의 후예 된 “나라”들은 나름대로는 꽤나 화려한 인류문명을 끊임없이 발전시켜 나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모든 것은 장차 하나님의 심판 앞에 “불탈 것”을 가지고 헛되이 “수고”하며 “피곤하게 되는 것”일 뿐입니다.
문명은 사람이 스스로 보기에는 인류의 최고 지혜와 능력으로 만들어낸 훌륭한 작품 같지만 하나님의 심판 날에는 초개처럼 불에 타 없어질 “헛된 일”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문명의 진보가 결국 사람을 영원히 행복하게 해 줄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대기 오염, 해수면 상승, 원유 고갈, 식량 부족, 신종 바이러스 등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을 보면서, 문명의 진보가 세계와 인류를 살려내는 것이 아니라, 오직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온 피조세계를 다스리시는 절대주권자만이 장차 멸망당할 수밖에 없는 세상으로부터 우리를 반드시 구원해 주실 것이라는 위대한 복음을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통해 온 세상에 선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4. 교회 중심의 성도는 ‘육체적 방탕’에 빠지지 않고
‘성별된 경건생활’을 지키게 됩니다.
15절부터 17절에 기록하기를 “15) 이웃에게 술을 마시게 하되 자기의 분노를 더하여 그에게 취하게 하고 그 하체를 드러내려 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16) 네게 영광이 아니요 수치가 가득한즉 너도 마시고 너의 할례 받지 아니한 것을 드러내라 여호와의 오른손의 잔이 네게로 돌아올 것이라 더러운 욕이 네 영광을 가리리라 17) 이는 네가 레바논에 강포를 행한 것과 짐승을 죽인 것 곧 사람의 피를 흘리며 땅과 성읍과 그 안의 모든 주민에게 강포를 행한 것이 네게로 돌아오리라”고 했습니다.
여기 15절에서 묘사하고 있는 것은 바벨론 제국의 음란과 방탕입니다.
앞서 5절에도 나왔던 것처럼 바벨론 사람들은 “술을 즐기는” 민족이었습니다. 그처럼 술을 마시는 동기 중에 하나가 “자기의 분노를 더하여” 즉 홧김에 마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처럼 만취한 결과 “그에게 취하게 하고” 즉 “이웃”에게도 억지로 권하여 술을 먹이고, 또한 “그 하체를 드러내려 하는” 즉 남의 치부, 알몸을 훔쳐보는 음탕한 짓을 저질렀던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바벨론 사람들이 그런 일을 “수치가 가득한” 행위인 줄로 전혀 자각하지 못했다는 점이었습니다. 결국 “여호와의 오른손의 잔” 즉 ‘진노의 잔’을 받게 되는 그 날에 가서야...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사는 인생들이 육체의 욕구와 향락만을 추구하기 위하여 허비하는 시간과 돈이 얼마나 많은지는 아마 우리로서는 상상도 못할 것입니다.
더구나 그런 불신자들은 그와 같은 자기네의 삶을 조금도 부끄럽게 생각할 줄 모릅니다.
아니 오히려 ‘내일 죽으리니 오늘 먹고 마시자.’는 것이 인생의 의미요 보람인 줄로 알고 있으며, 그처럼 현재의 인생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사람을 부러워하며 성공한 사람이라고 우러러보는 것입니다. 부러워하지 마세요. 이 땅에 교회와 술 마시는 자들과 누가 선한 일을 할까요?
바벨론의 악한 싸움으로 벌어서 개처럼 쓰는 헛된 삶이 부러운가요?
* 우리나라가 2019.12 세계 맥주를 제외한 술 소비량 1위이고 2위가 러시아입니다. 그런데 러시아에 두배나 차이가 난다고 합니다. 엄청 드신 겁니다. 게다가 증류주에서 판매량으로 보면 소주는 판매가 세계 1위와 3위를 차지했는데 그 1위가 진로 참이슬 (9L상자) 6138만이고 3위가 롯데에 처음처럼 2390만 이라고 합니다. 동남아로 보면 1, 2위가 단영 소주입니다. 대박....
그리고 외국인들이 보는 한국은 미친 음주 문화라고 표현하며 대단하다는 말을 한다고 합니다.
● 하루 술 먹는 성인 숫자는 598만명(추정치. 질병관리본부) 하루 국내 술 소비량(주류산업형회)은 맥주 952만병, 소주 896만병에 이른다. 매일 성인 6~7명중 한 명은 취할 정도로 술을 마신다는 예기입니다.
● 벌써 40년 전이된 1980년대의 통계입니다만, 한국의 복지시설 즉 고아원, 양로원, 모자원, 장애인시설, 정신박약아 시설이 당시 455개 인데 그 중의 84%를 교회가 세웠고, 운영하는 기관들이었다고 합니다. 약 20년 전인 2000년대에 한국 교회 전체 예산이 4,400억 원이라는 발표가 나자 전 매스컴이 한국 교회를 치고, 까고, 혹평했습니다. 그해 술 먹어 없앤 돈이 2조 3천억 원이라고 합니다. 2013년도에는 교회예산이 4조원까지 올랐다고 말합니다. 2019년도와 지금은 술 마셔 없애는 돈이 20조가 넘으리라고 예상합니다.
자신의 육신을 쾌락의 도구로 전락시키고 스스로를 짐승보다 못한 저질적 존재로 타락시키는 ‘음녀 바벨론의 음주와 음행의 잔’에 빠지지 않도록, 하나님의 양자답게 더욱 교회 중심의 경건생활을 통하여 성화의 진보를 나타내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5. 교회 중심의 기독신자는 ‘우상숭배의 미혹’을 이겨내고
‘여호와 유일신앙’을 지키게 됩니다.
18절과 19절에 “18) 새긴 우상은 그 새겨 만든 자에게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부어 만든 우상은 거짓 스승이라 만든 자가 이 말하지 못하는 우상을 의지하니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19) 나무에게 깨라 하며 말하지 못하는 돌에게 일어나라 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그것이 교훈을 베풀겠느냐 보라 이는 금과 은으로 입힌 것인즉 그 속에는 생기가 도무지 없느니라.”고 기록했습니다.
바벨론 제국은 또한 우상숭배가 만연했던 나라였는데, 그것도 한 가지 우상이 아니라 사람의 욕구와 소원에 따라 온갖 종류의 우상들을 대량 생산하면서 섬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박국 선지자가 지적하고 있듯이 그런 우상숭배는 그 우상을 섬기는 당사자가 바로 그 우상을 “새겨 만든” 장본인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자기가 만들어 놓은 것을 자기가 받들어 섬기면서 그것을 “의지”하고 그것에게서 “교훈”을 들으려 하는 것은 삼척동자가 보아도 어리석기 짝이 없는 헛수고에 불과했습니다. 아무리 “금과 은으로 입혀서” 그럴듯하게 보이게 해도 그 본질은 역시 “나무”나 “돌”에 불과했으니, 그것이 사람에게 무슨 “유익”을 줄꼬,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벨론 사람들은 그런 어리석은 짓을 가장 고귀한 행위인 양, 가장 중요한 일과인 양 온 백성이 날마다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와 똑같이 어리석은 우상숭배에 빠져 있습니까? 자기 자신의 지식만을 최고로 여긴다든지 혹은 자신의 재물만을 전적으로 의지하면서 사는 인생도 역시 우상숭배자입니다. 왜냐하면 그 지식과 그 재물이란 것이 곧 하나님 대신 자신이 의지하고 있는 우상이기 때문입니다.
● 오늘날 이 현대사회의 현실도 우리를 숨 쉴 틈이 없도록 죄어오고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신(新)냉전, 세계적인 경제위기설과 장기화된 국내 경기침체, 지구온난화로 인하여 이미 피부로 느끼게 된 이상기후, 여전히 입시지옥에 시달리며 성인음란문화에 노출되어 있는 자녀교육 문제, ‘하나님 절대주권 신앙’을 조롱거리로 삼는 ‘금송아지 혼합종교’의 연합세력 등 온갖 ‘바벨론의 압제와 침략’이 완전히 대세를 이루면서 우리를 사방팔방으로 ‘욱여싸고’ 있는 것입니다. 과연 누가 이처럼 ‘온 땅에 창일한 바벨론의 세파’ 속에서 생존할 수 있겠습니까? 오직 ‘교회’를 자신의 ‘도피성’ 같은 ‘생존 공간’으로, ‘산성과 요새’ 같은 ‘안전지대’로 삼고 그 안에 거하는 성도만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 교회가 없는 세상을 가정해 본다면 거기에 남는 것이라고는 전쟁과 죽음, 욕심의 싸움, 세속적 문화, 육체적 타락, 불신 우상종교 등 그야말로 ‘온갖 죄악만 관영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벌써 그 자체로 이미 지옥이나 다름없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교회중심의 신앙생활을 통하여 사신 하나님의 보호와 도움을 받는 성도는 설사 천하가 한꺼번에 덤벼든다 할지라도 바로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넉넉히 살 수’ 있습니다.
온갖 천재지변과 불신 세력이 ‘우는 사자’처럼 우리를 에워싸고 위협해 오는 이 말세에 끝까지 ‘오직 성전에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함으로써 ‘온 땅이 우리 앞에서 잠잠해지는’ 놀라운 구원을 반드시 체험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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