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챤 문화선교

선교사훈련

주간말씀나눔

내 속이 상할 때 시 143:1-6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강수인
댓글 0건 조회 684회 작성일 20-07-22 01:43

본문

제 목 : 내 속이 상할 때

본 문 : 시 143:1-6

(시 143:1)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시며 내 간구에 귀를 기울이시고 주의 진실과 의로 내게 응답하소서 2) 주의 종에게 심판을 행하지 마소서 주의 눈 앞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나이다. 3) 원수가 내 영혼을 핍박하며 내 생명을 땅에 엎어서 나로 죽은 지 오랜 자 같이 나를 암흑 속에 두었나이다. 4) 그러므로 내 심령이 속에서 상하며 내 마음이 내 속에서 참담하니이다. 5) 내가 옛날을 기억하고 주의 모든 행하신 것을 읊조리며 주의 손이 행하는 일을 생각하고 6) 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 내 영혼이 마른 땅 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 (셀라)

오늘 속상한 일 없으셨나요? 주변에 사람들의 말을 들어 보면? 짧은 인생길에 왜 이렇게도 고난이 많은지? 그저 눈만 뜨면 근심과 걱정이 밀려옵니다. 내가 잘못해서 생기는 고통, 나는 아무 잘못도 없는데 억울하게 당하는 괴로움, 태산 같은 근심 걱정, 한가지 문제를 겨우 해결하고 한숨을 돌리는가 싶은데 해결된 문제 보다 더 큰 문제들, 마치 바다에 파도가 밀려오듯 쉴 새 없이 고난과 고통의 문제가 밀려오는 것이 죄인된 인생살이가 아닌가 싶습니다. 도무지 고생을 하기 위해 사는 것인지, 행복을 위해 사는 것인지 모를 일입니다. 아깝고 소중한 인생살이가 어려운 문제를 피해 가고 도망쳐 가는데 모두 희비가 되는 것 같습니다. 평탄한 길같이 보였는데 갑자기 절벽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앞으로 나갈 일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제는 뒤돌아 갈 수도 없고 앞으로 계속 나아가자니 소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내 맘대로 되는 일이 없습니다. 그럴 때마다 실망과 좌절감으로 인하여 얼마나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고통을 당하는지 모릅니다. 우리 어린 자녀들인 학생들의 입시, 사업하는 사람들이 받는 스트레스, 가장이 받는 긴장, 가정주부들이 만나는 허무감, 아무도 인생의 고민과 고통과 괴로움에서 피할 자가 없습니다. 이렇게 마음 상하는 일만 생각하고 산다면 조금도 살맛이 나지 않을 것입니다. 생의 의욕마저 상실하고 말 것입니다.

그런데 구약 성경에도 하나님이 기뻐하셨고 백성들이 존경하였던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도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당대의 의인으로서 의와 선을 힘써 행하였던 욥도 많은 고난을 당하였습니다. 주님이 사랑하셨던 베드로도 바울도 숫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왜 나만 이렇게 어려움을 당해야 하는가? 왜 나만 이런 고통 때문에 속이 상해 울고 있어야 하는가? 반문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 종류가 다를 뿐이지 어려움과 고통은 누구나 다 당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도 속상하는 일이 조금도 없는 사람은 아마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예전에 모 잡지에서 독자들을 대상으로 일상생활에서 오는 나뿐 감정들을 어떻게 처리하는가를 묻는 의견 조사를 한 일이 있습니다. 즉 ‘속이 상할 때 어떻게 하는가?’하는 질문입니다.

● 20대들의 대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잔뜩 취하게 술을 마신다. 2) 락 까페에 가서 진땀날 때까지 흔든다.

3) 코인 노래방에 가서 목이 쉬도록 소리 지른다. 4) 문 걸어 잠그고 두문불출한다.

5) 친구들에게 전화 걸어 만난다는 것 등이었습니다.

● 30대나 40대들의 대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술을 마신다. 2) 무조건 집을 뛰쳐나간다. 3) 드라이브를 한다.

4) 책을 본다. 5) 친구를 만난다. 6) 노래방에 간다는 것 등입니다.

20대나 40대가 노래방에 가서 주로 불렀다는 노래는 춘천을 노래하는‘소양강 처녀’가 제일 많았습니다.

● 그 다음 질문은당신이 선택한 그 방법으로 속상한 게 풀렸느냐’는 것입니다.

단 한 명도 속이 풀렸다든지 상한 감정이 그런 방법으로 치유됐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예를 들면 ‘밤새도록 술 마시고 속 쓰려 죽을 뻔했다’

‘밤새도록 술 마시고 그 다음날 해장국 먹느라고 돈만 들어갔다’

‘차 몰고 집 나갔다 교통사고로 돈만 손해 봤다.’

‘노래 방가서 소리 지르고 노래 부르다가 이비인후과 신세졌다.’는 등 자신들의 선택한 방법들이 자신의 마음을 치유하는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응답했습니다.

● 그 다음 질문은당신이 선택한 방법 가운데 어느 방법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에 대한 대답은 ‘나를 이해해 주는 친구를 만나서 속을 털어놓고 이야기하는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 그 다음 질문은당신은 그런 친구를 가지고 있느냐 있다면 몇이나 있느냐’라는 것이었는데 92.5%가 그런 친구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더욱 속상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일들, 입시 문제, 직장 문제, 배우자, 자녀들의 문제, 병, 상대적인 박탈 감, 경쟁에서 뒤쳐지는 것 같은 기분, 다른 사람은 벤처 기업에 투자를 해서 엄청난 돈을 벌었다는데 생활 문제든 속상하는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여러분은 어떻게 문제를 풀어 가십니까? 오늘 봉독한 말씀 가운데 나오는 시인의 대답이 우리들이 어떻게 인생이 문제를 풀어야 할지를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주님을 바라보고 거기서 길을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 어떤 아이들 보면 밖에 나가서 놀다 항상 얻어맞고 들어오는 애가 있습니다. 이 어린아이의 사정을 생각해 보면 딱하기 그지없습니다. 싸울 용기도 없고 힘도 없고 해보자니 도저히 안 됩니다. 속이 상해 견딜 수 없습니다. 견디다 못해 한번 용기를 내어서 해봤는데 진탕 얻어맞고 말았습니다. 돌아오면서 그저 돌아올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큰 소리로 악을 쓰며 온 동네가 떠나가라는 듯이 울면서 돌아옵니다. ‘엄마, 엄마’부르는 그 소리에는 한과 억울함과 갈망이 다 들어 있습니다. 한이 맺혀 돌아오는 그 아이의 어머는 그 속이 오죽하겠습니까? 이때 보면 어머니의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납니다.

어떤 어머니는 “‘야 이 녀석아! 어쩌자고 그렇게 항상 얻어맞고만 들어오냐....이 못난 녀석아, 너도 이제는 이렇게 두들겨 패 주란 말이다.” 하고 속이 상해서 죄없는 자기 아이만 두들겨 팹니다. 이 어린것은 자기가 누구 새끼 인줄도 알지 못하고 얻어맞습니다. 동네 애들한테 매맞은 것도 분한데 엄마까지 야단입니다. 어린것의 속이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그런데 어떤 이는 울고 돌아오는 아이를 꼭 안아 주고 치마 자락으로 눈물 콧물을 닦아주시면서 위로해 줍니다. ‘같이 때리는 것은 나쁜 일이지. 남을 때리는 것은 못된 짓이란다. 우리 예수님은 왼쪽 뺨을 때리거든 오른 쪽 뺨을 내밀라고 하셨지.....내 아들 참 잘 했어, 그렇게 울고 나니 시원하겠다.’ 그 때 어린것은 자랑스럽게 말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세상에 사는 동안 속상하는 일이 많습니다. 그 때마다 우리는 시편 기자와 같이 하나님 앞에 찾아 나와야 합니다. 다른데 찾아가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 4절에 보면 다윗은내 심령이 속에서 상하며 내 마음이 내 속에서 참담하니이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속상할 때에 어떻게 하였는가를 밝혀 주고 있습니다.

1. 그는 먼저 하나님 앞에 기도하였습니다.

본문 1절에 보면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시며 내 간구에 귀를 기울이시고 주의 진실과 의로 내게 응답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모든 형편과 처지를 하나님께 아룁니다. 자신이 부족하고 연약한 죄인임을 먼저 하나님 앞에 고백합니다. 다시 말해서 모든 어려움과 고통이 다 자신의 부족으로 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부족을 먼저 시인 할 때에 억울함이 사라집니다. 사람들은 속상한 일이 생기면 나는 이렇게 속상하지 않아도 되게 되어 있는 사람인데 왜 이런 일이 내게만 생기는 것일까? 억울하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속상한 일에 더 속이 상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런 보통 사람처럼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당하는 고통은 마땅히 당해야 하기 때문에 당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 다윗의 생각이 2절에 있습니다. “주의 종에게 심판을 행치 마소서 주의 목전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은 다 죄인이고 자기도 죄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죄인이 고통을 당하고 사는 것은 당연한데 그걸 억울하다고 기분 나빠하고 속 상하면 더욱 더 나빠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증권에 투자를 했다가 엄청난 손해를 보았답니다. 그는 너무 화가나 식사도 안하고 고민을 하다가 견디지를 못하고 권총으로 자살을 해 버렸습니다. 미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아버지의 병원비를 벌려고 동분서주하던 두 딸아이가 여의치 않자 아파트 옥상에서 나란히 떨어져 자살을 해 버렸습니다.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돈이 문제가 아닙니다. 아버지의 병 치료가 문제가 아닙니다. 속이 상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손해를 보았다고 이런 식으로 일을 벌리면 잃어버린 것을 찾기커녕 더 큰 고통과 괴로움을 당하고 남은 가족들까지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원한을 남기게 되는 것입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짓입니까? 그런데 사실 알고 보면 문제를 이런 막가파식으로 해결하려 드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아니라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다윗은 그런 식으로 자기의 억울함과 고난을 해결하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긍휼에 호소합니다. ‘주여, 심판을 행치 마시고 긍휼을 베풀어주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처참한 모습을 그대로 하나님께 아룁니다. 3-4절에서 그는 원수들로 인하여 죽은지 오래된 자 같다고 말합니다. 이제는 자기 힘으로는 다시 일어날 수 없는 자가 되었다고 진술합니다. 소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심령은 멍들대로 멍들고 상할 대로 상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세상에 그 무엇으로도 치료받을 수 없는 참담한 모습을 하나님 앞에 고합니다.

이 기도들은 다윗이 지금 자기가 당하고 있는 정신적인 고통과 심리적인 괴로움과 육체적인 어려움과 환경의 난관들을 하나님께 자세히 말씀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이 왜 이런 태도를 취했을까요? 하나님께서 자기의 억울함과 고통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으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하나님의 긍휼을 믿고, 하나님의 능력 있으심을 믿었습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형편이 좋을 때는 잘 믿는 것 같은데 어려워지면 언제 하나님을 믿었느냐는 식으로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께 시비를 거는 사람이 있습니다. 도무지 어쩌자는 것인지----- 그건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믿고, 하나님의 능력 있으심을 믿었습니다. 어려울 때 기도합시다. 기도하되 자세히 말씀을 드려야 합니다. 몸이 아픈 사람은 몸 아프다는 말을 하게 되고, 속이 상한 사람은 속상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합니다. 그걸 사람에게 하지 말고, 아니 사람에게 하듯 하나님께 하자는 것입니다. 내 속상한 이야기를 속에 두고 참으면 병이 됩니다. 빚을 지거나 증권에 투자했다가 손해를 본 것을 사람들에게 자꾸 말하고 다니면 사람들이 나를 경계하고 오히려 부담을 갖고 멀리합니다. 하나님께 말씀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괜히 우리 아버지입니까? 우리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손해 본 것도 보상해 주시고 얻어맞은 것도 위로해 주시고 죄도 용서해 주시고 약한 것도 강하게 해 주시고, 구원해 주시니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기도할 때에 위로와 사랑의 빛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2. 주님을 깊이 생각했습니다.

5절에 보면 “내가 옛날을 기억하고 주의 모든 행하신 것을 읊조리며 주의 손이 행하는 일을 생각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주께서 행하신 일들을 깊이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지난날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고 언제나 복되고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신 일들을 생각합니다.

애급의 노예 생활에서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주신 일이며, 깊은 홍해를 가르시고, 난공불락의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고 가나안 복지로 인도해 주신 일과 그리고 자기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행사를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나를 끝까지 사랑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상한 마음과 곤경을 다 해결해 주실 것을 확실히 믿었습니다. 또 과거에 그런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속상할 때 떠들고 폭음하고 설치지 않고 ‘묵상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출 14장에 보면 애급을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과 모세는 사람이 달랐습니다. 먹고 마시는 것으로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다른 사람 보다 달랐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사랑하시고 그의 기도를 들어주신 것입니다.

말 보다 침묵이 무섭습니다. 이것은 명상이 아닙니다.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주님을 생각하고 그 행하신 능력을 기억해야 합니다.

3. 주를 향하여 손을 폈습니다.

6절에 보면 “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 내 영혼이 마른 땅 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 (셀라)”라고 했습니다. 앞에서 생각하고 묵상했다고 하는 것은 내적 행동이며, 정신적인 태도입니다. 그러나 6절에서 손을 폈다는 것은 외적 행동이며 결단을 했다는 말입니다.

주먹을 쥐는 것은 내가 무엇인가 결단하여 해 보겠다는 의도가 보이고, 손을 폈다는 것은 자신의 무능력을 의미하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도 아무 것도 없다는 뜻입니다. ‘저는 가진 것도 없고, 저는 힘도 없습니다.’라는 것을 하나님 앞에 솔직히 보여 드리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이 세상에 태여 날 때 주먹을 쥐고 한갓 힘을 쓰며 울며 태여 납니다. 살기 위한 힘이 넘치며 생존을 위한 의욕이 넘칩니다. 그 힘으로 엄마의 젓을 얼마나 힘껏 빨아 대는지 실험을 해 보니 가는 빨대로 3미터 정도되는 물을 빨아올리는 힘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죽을 때는 반드시 손을 쫙 폅니다. 이제는 끝났다는 것입니다. 자기 몸도 스스로 주체를 못합니다. 전적으로 다른 사람이 그를 처리해 주어야 합니다. 죽었습니다. 다윗이 손을 펐다는 것은 이런 의미입니다. 전적인 의탁, 전적인 의존, 절대적인 신뢰심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심리학들은 말하기를 ‘못난 척하고 사는 사람, 없는 척하고 사는 사람, 모르는 체 하고 사는 사람보다 잘난 체 하고, 있는 체 하고, 아는 체 하는 사람이 10배 이상 스트레스 증후군에 시달리게 된다’고 합니다.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나는 믿음이 부족해, 나는 믿음이 모자라’하며 사는 사람보다 ‘나는 믿음이 좋아, 나는 신앙이 제일이야’라며 사는 사람이 훨씬 더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 시인은 그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손을 펴 보인 것입니다. 현대인은 자신의 손으로 과학 문명이라는 거대한 바벨탑을 쌓아 올리고 있습니다. 사람이 분수를 알지 못하고 생각한 대로 다 될 것으로 착각하고 살면 무슨 일이 안될 때마다 좌절과 공허에 빠지게 됩니다. 원망과 불평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마음은 점점 상하고 병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를 사모하며 손을 펼 때에 우리 하나님께서는 울고 돌아오는 아들을 엄마가 품에 안고 위로해 주시듯이 진정한 하나님의 위로와 평안을 얻게 해 주실 것입니다.

속상한 사람들, 참담한 아픔으로 한숨짓는 사람들, 그리고 자신의 능력의 한계 때문에 번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그리고 자신의 체면과 자존심 때문에 자신의 아픔이나 상한 심정을 노출시키지 못한 채 가슴앓이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그렇게 살지 마십시오.

탕자처럼 살지 마십시오. 사랑과, 은혜와 용서와 위로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풍성한 아버지가 계시지 않습니까? 나는 아버지 집에 종이라고 해도 그걸 인정하시지 않고 아들이라고만 우기시는 아버지가 계시지 않습니까? 정말 잘 믿어 봅시다. 진짜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지난날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얼마나 많은 은혜를 주셨습니까?

은혜를 받은 일이 없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은 추운 겨울에 노점에서 장사를 하시는 아주머니를 보고 오십시오. 종합 병원에서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재활원에서 작은 선물에도 눈물 나리만큼 고마워하는 장애우를 보십시오.

그때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주님을 향하여 손을 폈던 시편 기자처럼 나의 필요를 채우시고 내 마음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전심으로 믿고 기도하며 찬양으로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마음 상할 때마다 겸손히 나의 모든 형편을 그대로 하나님께 아뢰며, 주님을 생각하고, 특히 내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깊이 생각하고, 주님을 향하여 손을 펴고 ‘주님을 사모합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 나에게 긍휼을 베푸시옵소서’하고 기도하며 찬송하십시오. 뭐가 문제가 됩니까?

여러분 심령 속에 하나님의 위로와 평강이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첨부파일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총회신학교
CCS
쥬빌리 통일구국기도회
대한민국전자정부
행복발전소
Prayer
대한성서공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