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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거룩한 결단. <룻 1:1~15~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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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마른곰
댓글 0건 조회 715회 작성일 20-08-21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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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거룩한 결단.

<룻 1:1~15~18~22>

(룻 1:15) 나오미가 또 이르되 보라 네 동서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너의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하니 16)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17)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18) 나오미가 룻이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

우리 성도들은 세상의 마지막 때가 가까이 다가올수록 더욱 결정하고 결단해야 할 것들이 많아지고, 진리를 따라야 할 결단이 필요합니다.

1. 바알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듯이 세상적인 칭찬과 하나님의 칭찬이 일치하기는 어렵습니다.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만 합니다. (거룩한 신부를 찾으십니다. 바로 룻입니다)

1) 룻의 신앙적인 성품 - 결단력이 있고(룻 16, 17), 신앙의 지조를 지켰으며(룻 17), 축복을 얻기 위해 고난을 감수했습니다. (룻 2:2). 부지런한(룻 2:17) 부피 1 에바: 한말이 좀 더 됨.

2)룻의 내면적인 성품 - 신의와 지조를 지켰고(룻 16), 시모를 잘 공경했으며(룻 2:2, 3), 근면, 겸손, 순종적이며(룻 2:7,13,3,5), 사랑이 많고 현숙한 여인이었음(룻 3:10, 11).

● 신랑되신 예수님 덕분에 비록 지금 신랑을 잃어서 없어도 그분의 아버지를 섬기는 마음

2. 참된 진리의 길은 동조해 주는 이가 없어도 혼자서라도 끝까지 지향해 가는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그런 자들을 많이 성경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왕상 18:24) 너희는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니 이에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니라. 백성이 다 대답하되 그 말이 옳도다. 하니.

· 사람들은 결단의 순간에 세상권력이 두렵기 때문에 하나님 편에 서지 못하고, 침묵을 지키는 소극적 자세를 견지합니다.

·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위한 결단이 필요할 때에 늘 진리 편에 서서 확신 있는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또한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의 기준에 근거한 선택이어야 합니다.

3. 우리는 마냥 하나님(영원한 삶)과 세상(육신이 원하는 삶) 둘 사이를 헤맬 수만은 없습니다. 물론 가정사에 필요한 헌신과 열정들을 버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최선을 다하되 우선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두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잃어버릴 때에 그 잃어버리거나 잊은 것을 찾아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혜 있는 자는 미리 준비하고 항상 하나님을 따르는 데 장애가 되는 썩어지고 없어질 것들은 무엇이라도 과감히 천국의 소망을 위해 포기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와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 소망이 바로 신랑 되신 예수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히 11: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그 상은 예수님의 십자가가 실체임을 믿고 얻는 참된 기쁨의 상입니다.

· 모세처럼 세상의 명예를 거절했고, 세상과 타협하지 않았으며, 세상의 권력자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오직 보이지 않는 능력의 손을 인내함으로 의지했습니다.

· 진정한 믿음은 이처럼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세상에 속한 모든 것(기분, 부귀, 영화, 권력, 인기, 사람, 자기사랑)을 극복하며 결단하는 가운데 성령을 따라 나아가는 것입니다.

● 사람과 함께 찾은 자유

기원전 6세기의 파사의 대왕에 고레스라고 하는 현군이 있었습니다. 처음 그는 메데왕에게 봉사하였으나 후에는 독립하여 이를 복종시켰고 그 후에는 아루메니아, 가바도기아, 유대, 바벨론, 길리기아, 페니키아 등 애굽을 제외한 당시의 온 세계를 거의 정복한 명군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또 바벨론 포로 중의 유대인을 귀국시켜 구약 중에도 그 이름이 칭송되고 있는 사람이이기도 합니다. 그는 피정복자에게도 극히 관대히 대하고 이를 등용 친임하였으므로 대왕의 이름으로 불려지고 있었습니다.

이 고레스 대왕이 어떤 싸움에서 적장과 그 가족을 생포하였습니다. 이 적장도 이름 높은 지용있는 장수였으나 상승의 왕 고레스에게 도저히 당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고레스왕은 적장을 향하여 물었습니다. "만일 내가 그대에게 자유를 준다면 그대는 나에게 무엇을 주겠는가?"

"나의 소유 절반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그러면 그대의 아들들에게도 자유를 준다면?""나의 소유의 나머지 절반을 드리겠습니다." 하고 적장은 대답하였다. 고레스는 다시 물었다. "그러면 그대의 아내에게 자유를 준다면?" 적장에게는 이제 남은 것이 없었습니다. 그의 아내는 수려하기가 꽃도 무색하리 만큼 재색 겸비한 현부인으로 적장은 아내를 돌아보고 씽긋 미소 짓고 대답하였다. “만일 대왕께서 그녀에게 자유를 주기로 하신다면 그 대신 나의 생명을 바치겠습니다.”

이것을 듣자 과연 지용인덕이 일세에 울려퍼진 명군 고레스는 한참 동안 감탄한 후 말했습니다.

"그대의 슬기로운 대답으로 인하여 무상으로 그대의 몸과 그대의 아내와 그대의 아들들에게 자유를 주겠고 이런 남편에게 사랑받는 아내는 행복하리로다..."

적장의 말은 당연한 대답이었을텐데 이런 말에 왕은 또 왜 감탄했을까요? 생명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자유와 사랑의 강력한 의미를 아는 사람에겐 그 결단과 결정에 담대합니다.

● 자유 - 천국을 맛 본 거듭난 사람들은 진정한 자유를 알기에 천국을 놓지 못합니다.

사람이 배고플 때에는 코가 예민해지지만, 반대로 배가 부르면 후각이 둔해집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언제나 가난한 사람이 정의감에 강하고 무엇에 건 민감하게 반응을 합니다. 돈 많은 사람들이야 세상일이 다 그렇고 그런 것이 아니냐며 대범하게 넘어가려는 경향이 있어도 가난한 사람들은 그렇지를 못합니다. 좀처럼 참아 내지를 못합니다. 자유에로의 열망이 아주 강합니다. 우리 나라의 경우를 보십시오. 일본 사람들에게 짓눌려 고생을 할 때에 별다른 의식도 없이 일본 사람들 편에 붙어서 적당히 살던 사람들은 해방된 다음에도 해방의 기쁨을 제대로 누리지 못합니다. 조금 어려운 일만 있으면 “그때가 좋았지”하고 일본 사람들에게 눌려 지내던 때를 속도 없이 그리워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곧 자유 의식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일제 때에 고생을 많이 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잘 아는 목사님 가운데에도 그런 분이 계십니다. 박 목사님이라고 하는 분이 일제 말년에 7년 동안 감옥에서 고생을 했는데, 그분은 자신의 복부에다 우리나라 지도를 그려 놓아서 한때는 그 사진이 온 세계에 알려질 만큼 유명했습니다. 일본 사람들이 이분을 고문하면서 불에 달군 인두로 배를 지졌습니다. 그래서 배가 온통 만신창이가 된 것을 본 일이 있습니다. 일제 때에 신사참배를 반대하다가 매 맞고 감옥에서 고생하던 분들은 해방이 무엇인지를 압니다. 고생을 한 사람은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해방된 것, 자유 얻은 것이 좋습니다. 모진 고생을 겪을수록 자유의 진가가 더 절실하게 깨달아지는 것입니다. 인간의 진정한 참 자유는 하나님께 순종할 때 생깁니다.

죄로 인해 고통당해 본 사람은 하나님 안에서의 참 자유가 얼마나 귀중한 것인가를 압니다.

● 자유의 중요성

옛날 미국 남부에 살던 흑인 노예 한명백인 주인으로부터 탈출, 대도시 시카고로 왔다. 그는 시카고 변호사를 찾아가 만났다. "자네는 먹고 살기가 어려워서 도망나왔나?" 변호사가 묻자 "아닙니다. 먹을 것은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그러면 사는 곳이 누추해서인가?" "아니요. 살고 있는 집은 썩 좋은 곳이었습니다." "그럼 주인의 학대가 심했던 모양이군." "천만에요. 주인의 학대는 없었습니다." "그럼 일이 몹시 고되었군." "일의 양은 많지 않았어요." "그럼 자넨 왜 좋은 환경을 버리고 도망을 쳤는가?" 변호사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노예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자 흑인은 변호사를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제 환경이 그렇게 좋아 보이시 거든 선생님이 제 대신 노예로 들어가시죠." 이 탈출한 노예에겐 모든 좋은 여건이 마련돼 있었지만 다만 한가지가 없었기 때문에 뛰쳐나온 것이다. 자유, 자유가 없었던 것이다.

● 물질에 자유하지 못한 사람

어느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죽지 못하는 것은 내것은 어느놈이 들고서 좋아할 것을 생각하면 울화통이 터지기 대문이이다]고 했는데 자유는 울화통이 아니라 새로운 소유를 향해 달려가게 하고 그것을 인하여 기뻐하게 합니다. 그리고 세상을 포기하게 합니다.

● 그리스도인의 자유 요 8:31-36. (딤전 2:5)

주님이 유대인들에게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씀했을 때, 주님의 자유란 말씀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 유대인들이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고 반문함.

1. 세상이 추구하는 자유는 진정한 자유의 형식에 불과하다. 세상 사람들의 자유란 권력에서 벗어나는 정치적 자유, 빈곤이나 빈부의 격차를 해소함으로써 오는 경제적 자유, 인간이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하는데서 요구하는 인권적 자유, 고통과 질병 등에서 자유하는 모든 불행에서의 자유, 언론의 자유, 양심의 자유 등이다. 물론 이러한 자유도 기독교의 관심 밖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유는 근원적인 자유에서 따라오는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다.

2. 자유를 상실하게 된 원인은 인간의 범죄에 있다. 주님은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말씀했다. 인간이 죄를 범함으로써 내적 능력을 상실하여 자아의식으로 위축되어 자아라는 감옥에 감금되었고, 외부적으로는 모든 사람이 생명의 근원인 하나님과 단절됨으로써 궁핍하여 서로서로 경쟁하고, 착취하고, 자기만족만을 추구함으로써 구조적으로 오는 자유의 상실이다. 인간은 하나님을 떠남으로써 자신과 이웃과 환경의 종이 되었다.

3. 예수 그리스도 안에 진정한 자유가 있다. (36절). 주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목케 하시는 유일무이한 중보자이시다. 하나님과 화목됨으로써 하나님이 우리에게서 거두어 가신 생명과 무한히 공급되는 부요함을 주셔서 내적으로 외적으로 인간은 진정한 자유를 누리게 됨.

4. 매일의 생활 속에서 자유를 누리기 위해 세 가지 사실을 기억하자

(1) 자신의 모든 삶을 선하신 하나님께 맡기라.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이루어지도록 완전히 맡기는 데 있다.

(2) 성령과 친근히 하라. "주의 영이 계시는 곳에 자유함이 있느니라."(고후 3:17). 주님의 영은 우리 마음에 평강을 주고, 닥쳐오는 모든 사건에 대하여 완전한 선택의 지혜와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주님으로 자유케 한다.

(3) 육체의 자유를 추구하지 말라. 육체적 자유는 방탕과 파멸을 가져온다. 세상의 모든 전쟁은 인간의 이념적 자유와 육체적 자유를 구하는 데서 오는 비극이다. 예수 믿는 것을 구속으로 알고 마음대로 자유하려던 한 청년은 방탕아가 되었고,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찾았던 한 청년은 성실한 시민이 되었다. 아들이 자유케 할 때, 참으로 자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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