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지켜야 할 자리는 어디일까요? (창 15: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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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켜야 할 자리는 어디일까요? (창 15:8-21)
우리 함께 따라 해 봅시다.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집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예쁩니다.
아싸! 행복 충만! 아싸! 감동 충만! 아싸! 성령 충만!
● 금실이 아주 좋은 부부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남편이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아내에게 뜬금없이 “당신........결혼했어?”라고 물었습니다. 아내는 이상하다 하는 표정으로 남편을 바라보았습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한마디 던졌습니다. “아직도 하도 예뻐서 한 번 더 꼬셔보고 싶어서 그런다오......하하하” 그러자 아내가 뒤집어지게 웃었습니다.
● 갓난아이는 하루에 400번 이상 웃는데 반해서 어른들은 하루에 6번도 채 웃지 않는다고 합니다. 어떤 이는 한 번도 웃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웃는 사람에게 복이 찾아옵니다.
따라 해 봅시다.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 곧 ‘웃음이 많은 가정에 만복이 들어온다.’는 뜻입니다.
억지로라도 웃으면 복이 됩니다. “하하하 호호호 히히히 헤헤헤”하면서 억지로라도 웃으면 복이 됩니다. 따라 해 봅시다. “하하하 호호호 히히히 헤헤헤” 얼마나 좋습니까?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서 웃을 수 있으면 좋습니다. 하나님은 웃는 이들에게 감동합니다.
하나님은 웃음으로 순종하는 이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 아브라함은 지난밤에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의 셀 수 없이 수없이 많은 뭇별들을 바라보게 하면서 “네 자식이 이와 같을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러면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 수 있나요?”하면서 물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올지니라.”하면서 제물을 준비하라고 합니다. 아브라함 집에는 소나 양이나 암소, 집비둘기는 많기 때문에 준비하는 데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산비둘기는 들에 가서 잡아와야 합니다. 산비둘기새끼를 잡아오는 것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또 3년 된 암소, 암염소, 숫양을 잡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3년 된 짐승은 힘이 굉장히 셉니다. 3년이면 몇 개월입니까? 36개월이지 않습니까?
미국과의 소고기 수입 문제 때문에 협상할 때 보니까 30개월 이상은 수입도 하지 않았습니다.
30개월 이내 된 소고기만 수입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중에 짐승을 잡아 본 사람이 있습니까? 저는 닭이랑 돼지를 잡지는 못하지만 잡는 것을 보았습니다. 물론 징그럽고, 잔인하고 사악한 개구리나, 바퀴나 뱀은 잡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쉽지 않습니다. 그것도 무턱 대고 아무렇게나 잡는 것이 아닙니다. 규율에 따라서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은 잡는 법이 따로 있습니다. 살아 있는 소나 양이나 염소를 끌어다가 시퍼런 칼로 피가 들어있는 짐승의 심장을 찌릅니다. 그러면 심장에서 피를 쏟아내게 됩니다. 그러면 짐승을 잡는 사람은 온통 피를 뒤 짚어 쓸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겁이 많거나 비위가 약한 사람은 짐승을 잡지 못합니다.
피를 다 쏟아낸 다음에 각을 뜨는 것입니다. 비둘기는 목을 자르는 것이 아니라 비틀어서 죽입니다. 그러니 아브라함 혼자서는 도저히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물을 준비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아무래도 종들과 함께 이른 새벽부터 시작하여 제물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제물을 준비했는데 하나님은 곧 바로 응답하지 않으시고 반갑지 않은 손님들만 몰려들려들었습니다. 여러분, 누가 찾아왔다고 합니까? 11절에 보니까 솔개가 찾아왔습니다.
(창 15:10)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가져다가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많은 주석가들이 이 부분을 산비둘기를 쪼개지 않아서 저주를 받았다고 설명하고 저도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은 언약의 시간이고, 증거를 보여주기 위한 하나님과 아브람과의 거룩한 은혜의 복을 받는 자리인 것입니다. 이것은 불순종의 자리가 아닌, 오히려 아모리 족속의 악함을 아시고 그 악함의 끝이 차기 까지 기다리심을 미리 말씀하심입니다.
아모리 족속들 이 나옵니다. 이들은 함의 자손 가나안의 아들 중에 한 부족입니다. : 그들의 성질은 사악하여 파괴를 일삼고,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후도 잔존했다(삿 1:35,3:5)
(레 1:14) 만일 여호와께 드리는 예물이 새의 번제이면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로 예물을 드릴 것이요 15 제사장은 그것을 제단으로 가져다가 그것의 머리를 비틀어 끊고 제단 위에서 불사르고 피는 제단 곁에 흘릴 것이며.
(레 5:7) 만일 그의 힘이 어린 양을 바치는 데에 미치지 못하면 그가 지은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여호와께로 가져가되 하나는 속죄제물을 삼고 하나는 번제물을 삼아 08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그 속죄제물을 먼저 드리되 그 머리를 목에서 비틀어 끊고 몸은 아주 쪼개지 말며
(레 14:30) 그는 힘이 미치는 대로 산비둘기 한 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한 마리를 드리되
(레 15:14) 여덟째 날에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자기를 위하여 가져다가 회막 문 여호와 앞으로 가서 제사장에게 줄 것이요 15 제사장은 그 한 마리는 속죄제로, 다른 한 마리는 번제로 드려 그의 유출병으로 말미암아 여호와 앞에서 속죄할지니라.
호시탐탐 솔개가 사체 위에 내려서 먹이를 낚아채려고 찾아왔습니다. 솔개들은 피 냄새를 맡고는 찾아왔는데 한 마리만 찾아왔을까요? 몇 마리나 찾아왔을까요?
솔개는 마귀와 같습니다. 피 냄새를 찾고, 육의 것만 노립니다. 영혼은 관심 없지요.
이런 날짐승들은 절대로 혼자서 활동하지 않고 무리를 지어서 활동합니다.
날짐승들이 떼거리로 몰려 올 때 아브라함은 힘을 다하여 솔개들을 쫓아냈습니다.
솔개들이 고기를 먹어버리면 하나님께서 그 제물을 열납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죽을힘을 다하여 솔개들을 쫓아내는 것입니다. 잠시 잠잠해 졌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이른 새벽부터 제물을 준비하였기 때문에 피곤이 몰려왔습니다. 그래서 주저앉았는데 잠이 쏟아지는 것입니다. 잠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12절에 보세요. 해질 때에 아브람에게 깊은 잠이 임하였다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정신없이 단잠을 잤습니다. 그리고 번뜩 잠을 깼는데 온 통 캄캄하고 한 지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었습니다. 그러더니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상하고 음산한 소리를 지르면서 야생 짐승들이 몰려들고 있는 것입니다. 날짐승들은 낮에는 활동을 하지만 밤에는 활동하지 않습니다. 기껏 해봐야 부엉이 정도 활동하는데 부엉이는 그리 겁을 먹을 만큼 무서운 날짐승이 아닙니다. 밤에는 호랑이, 곰, 표범 같은 들짐승들이 몰려드는 것입니다. 낮에는 날짐승들이 고기를 빼앗아가려고 하더니 밤에는 맹수들이 고기를 빼앗아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칠흑같이 캄캄한 밤에 들짐승들이 한두 마리도 아니고 떼거리로 몰려드는 모습을 보면서 아브라함은 순간적으로 오금이 저려올 정도로 두려움과 무서움에 빠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 맹수들은 제물들뿐만 아니라 아브라함도 해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제물 곁에 있다가는 아브라함의 목숨은 보장할 수 없습니다. 언제 어떻게 들짐승들의 먹잇감이 될지 모르는 일입니다.
고민과 갈등이 되었으면 떠나야 하는 것도 정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그곳을 떠나지 않고 하나님을 끝까지 믿었습니다.
믿음으로 순종하며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지켜냈습니다. 제물 있는 곳을 떠나지 않으면 틀림없이 맹수들에 의해서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떠나야 하는 것이 정상적인 생각인데도 아브라함은 죽음을 무릅쓰고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지켰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죽을 줄을 뻔히 알면서도 끝까지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아브라함에게 감동을 받으신 것입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너무 무서워서 집으로, 장막으로 돌아갔다면 하나님께서 찾아오셨을까요? 찾아오지 않았을까요?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되십니까? 아닙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찾아오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아브라함을 통해서 해야 될 일이 있기 때문에 찾아오는 것입니다. 찾아오시기는 하는데 무엇이 없는지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감동을 받지 않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목숨의 위협을 당하면서도 믿음으로 순종하여 자신의 자리를 끝까지 지켰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감동을 받으신 것입니다.
올해 2019년에 우리들은 하나님을 감동시켜드리기 위해서 신앙생활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감동시켜 드리기 위해서는 끝까지 목숨을 잃을 것까지 각오하면서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할 때 하나님께서 감동받으시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찾아오셨습니다. 찾아오실 때 빈손으로 오시지 않았습니다.
무엇을 갖고 오셨습니다. 무엇을 갖고 오셨을까요? 여러분, 17절에 보면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하였지 않습니까? 그러니 무엇을 가지고 온 것이지요? 예, 불을 가지고 왔습니다.
불을 가지고 와서 제물들을 다 태우면서 열납하여 주셨습니다. 그런가하면 들짐승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예, 불을 가장 무서워합니다. 호시탐탐 고기들을 빼앗아 먹으려고 하는 그 찰나에 들짐승들이 가장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불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찾아오신 것입니다. 또 불은 무엇을 합니까? 지금 시간이 어떻게 되었다고 했지요? 예, 칠흑같이 캄캄한 어두운 밤입니다. 어두운 밤을 몰아내고 환하게 밝혀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아브라함을 지켜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무엇이라고 언약을 맺습니까?
그 언약이 바로 13-16절에 나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장수의 복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175세를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자손들의 복을 주셨습니다. 이삭, 야곱, 야곱의 12아들 등등 계속 자손들의 복을 주었습니다.
그런가하면 14절에 보니까 자손들에게 재물의 복을 주었습니다. 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땅을 주었습니다. 어떤 땅이라고 합니까? 예, 18-21절에 보면 애굽 강에서부터 유브라데 강까지의 넓은 땅을 후손들에게 주겠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우리들 자신을 봅시다. 성도들에게는 언제나 목숨을 걸어야 되는 결단의 때가 있습니다. 마치 자신이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해야 되는 일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에게는 순간순간 결단을 내려야 할 상황이 다가옵니다.
떠나야 하느냐. 남아야 하느냐 하는 결단, 죽느냐 사느냐 하는 결단, 해야 되느냐 하지 말아야 하느냐 하는 결단을 해야 될 때가 있습니다.
이런 극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키라고 하는 그 자리를 믿음으로 순종하며 지켜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시고 감동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부모가 신앙의 자리를 지키면 그 자식들이 복을 받습니다.
우리나라에 양반이라고 하면 안동을 이야기할 때가 많습니다.
안동에 안동 권씨가 있는데 어느 집 장손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믿자 권씨 문중에서 그야말로 멍석말이하여 두들겨 패고, 재산 하나 주지 않고 쫓아냈습니다. 그가 집에서 쫓겨나면서 가지 나가서 예수님을 믿었는데, 그의 아들이 권대홍이라는 아들이라고 합니다. 아버지의 신앙을 따라서 권대홍씨가 예수님을 믿어서 장로가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신앙을 따라서 열심히 예수님을 믿은 권대홍씨는 철로를 연결하는 고리를 만드는 일을 했는데 권대홍 장로님이 만드는 제품만이 유일하게 완전한 제품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전 세계로 수출이 되었는데 권대홍 장로님이 만드는 제품의 비밀을 알아내려고 해도 알아낼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쇠의 분량을 장로님의 손으로 무게를 재었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장로님이 만드는 제품을 수입하지 않겠다고 하고는 자신들이 만든 제품으로 철로를 놓았는데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사고의 원인을 찾아내다보니 그 연결고리가 잘 못되어서 일어난 사고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어쩔 수 없이 장로님이 만드는 제품을 수입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가격을 약 30% 인상되었어도 미국에서는 그 제품을 구입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부모님이 신앙의 자리를 지키고 순종하니까 그 아들 대에 복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자식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각오가 되어 있지 않습니까? 자식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각오와 결단이 서 있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서라도 자신의 신앙의 자리를 지킬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만 주신 그 자리를 바보스럽게, 우직하게 믿음으로 복음의 자리와 제사의 자리를 지키고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그 자리는 결코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없는 자리입니다. 부모의 자리, 자식의 자리, 배우자의 자리는 아무나 대신할 수 없는 자리입니다.
우리들만이 지킬 수 있는 자리입니다. 자신이 지켜야 되는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믿음으로 순종하며 굳건하게 지켜야 한다.
빼앗겨서는 안 되는 자리입니다. 저는 열심히 설교자의 자리를 지킬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직분자의 자리, 성도의 자리, 예배자의 자리를 지키시기 바랍니다. 우리 성도들이 지켜야 되는 그 자리는 아무도 대신해 주지 않습니다. 반드시 성도들이 지켜야 하는 자리입니다.
특히 가정예배의 자리를 빼앗기지 말고 믿음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시간과 요일과 장소를 미리 가정회의를 하면서 정하는 것이 훨씬 좋습니다.
아브라함은 맹수들로 인하여 죽을 수 있는데도 자신의 자리를 굳게 지킴으로 하나님께서 감동하시고 도와주시는 그 은혜를 입을 수 있었듯이 우리 신앙인들은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그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감동하시고, 가족이 감동하고, 동료들이 감동하고, 성도들이 감동한다.
그 자리는 자신의 생명을 걸고 반드시 지켜내야 하는 자리이다. 비록 환란이나 두려움이나 고난이 와도 마땅히 힘써 우리의 제사의 자리를 그리고 언약의 자리를 그리고 복 받는 자리를 지켜야 할 것입니다. 그런 은혜와 하나님의 복 주심 가운데 지내는 우리 선교초대교회 성도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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