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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과 아벨의 제사. 본문: 창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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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수인
댓글 0건 조회 872회 작성일 20-01-15 13:34

본문

가인과 아벨의 제사. 본문: 창 (4:1~7) 405. 406. 407. 411.

1)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2)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5)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어 쫓겨난 세상은 공중 권세를 잡은 사탄이 지배하는 곳이요, 죄로 인해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내는 곳이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행복하게 살던 한 사람이 죄를 지어 모든 자유를 박탈당하여 먹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교도소에 들어간 것과 같습니다. 교도소에서는 극히 제한적이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더불어 복된 삶을 보장받았던 우리들이 죄를 지어 쫓겨남으로 먹을 것과 죽음과 질병을 걱정해야 하고, 자녀문제로 평생 눈물을 흘리고, 속이고 속는 생존경쟁의 치열한 삶속에 살아야 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 세상으로 추방된 아담과 하와에게 일어난 첫 번째 사건1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1. 예언의 성취

첫 번째 기쁜 사건은 아들을 낳은 것입니다. 하와가 임신을 하게 됩니다. 1절에서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라는 두 단어가 인생의 중요한 이야기를 모두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하와가 출산했을 때 그가 하나님에 대해서 어떤 표현을 했나요?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라고 말합니다.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여호와로 말미암아 아이를 낳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 이 말은 첫째 하나님이 나에게 아들을 주셨다는 말입니다. 아마 이 말을 할 때 하와는 한 예언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그것은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뱀은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라는 말입니다. 여자가 아이를 낳았을 때 뱀으로 말미암아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서 저주스러운 이 삶이 회복되기를 원하는 마음이 하와에게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후회를 했을 것이고, 에덴동산으로 돌아가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길이 없었습니다. 어쩌면 이아들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해서 다시 에덴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을 겁니다.

● 둘째 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낳은 아들'이라는 말 속에는 '너는 해산하는 고통이 있을 것이다'를 생각하게 했을 것입니다. 해산의 날이 되었을 때 기가 막힌 고통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죽을 것 같은 고통이라고 합니다. 이 고통 중에 여자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요? 아마 '이 고통을 극복하게 해 주세요. 도와주세요'라고 했을 것입니다. 고통이 크면 클수록 아이를 낳았을 때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더욱 컸을 것입니다. 부르짖어 구했을 것입니다. 죽다 살아났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을 했습니다.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가인을 낳게 해 주신 사실 앞에 그들은 죄에 대한 회개가 있을 것이고, 하나님이 주시는 회복에 대한 기쁨이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태어난 자녀가 죄인들의 첫 번째 자녀입니다. 그런데 별다른 일이 없는 겁니다. 그 후에 한 아들을 낳았는데 그 사람을 가리켜 '아벨'이라고 합니다. 2절을 보십시오.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이었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이었더라.” 인류 최초의 형제입니다. 2절을 보면 두 아들의 직업이 있습니다. 둘째 아들 아벨은 양치는 자이었고 가인은 농사짓는 자였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남자는 이마에 땀을 흘려야 식물을 얻게 될 것이고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는 예언을 상기할 수 있습니다. 노동은 신성하며 복된 것입니다. *종류: 일을 시키면 안하는 사람, 더 일을 만드는 사람, 시킨 것만 하는 사람, 일을 시키지 않아도 잘하는 사람 중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2. 하나님을 찾는 가인과 아벨

가인과 아벨은 시간이 지난 후에 철이 들었습니다. 자기만 생각하는 사람이 철이 들면 부모를 생각하듯이 인간이 철이 들면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생각한다는 것은 제사를 드린다는 것인데 이것은 하나님과 관계를 맺겠다는 것입니다.

에덴이후 하나님과의 교제는 제사로 나타나게 됩니다. 사람들이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고 이방인과 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이유는 초자연적인 상대와 관계를 맺기 원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외로움과 고독과 한계를 깨달을 때 영적인 절대자를 찾게 됩니다. 3절과 4절을 보십시오.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사람이 철들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려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가인과 아벨도 많은 세월이 지난 후에야 자신의 소산물로 하나님께 제물을 드렸습니다. 죄를 짓기 전에는 제사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매일 만나고 교제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죄가 들어옴으로 말미암아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생명나무 실과를 먹을 수 없게 되었고, 하나님과 단절되었습니다. 즉 사망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이지면 죽음이나 마찬가지처럼 말입니다. 인생의 가장 큰 고독은 돈이 없거나 먹을 것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잃어버린 영원하고 절대적인 고독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보고 싶어하고 가까이 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원인은 죄 때문입니다. 죄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갈라놓은 것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께 나아가려고 한다면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거룩과 죄는 본질적으로 만날 수 없습니다.

제사란 인간 안에 더러운 모든 죄와 하나님이 싫어하는 모든 죄를 소멸하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제사에는 제물이 있어야 합니다. 제물이 없는 제사는 없습니다. 본문을 보면 가인과 아벨도 제물을 가지고 하나님을 만나려고 시도합니다. 가인은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농산물을, 아벨은 목축업을 했기 때문에 양의 첫 새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모색했습니다. 감사의 예배로 드리는 행위에서 죄가 소멸할 것인가? 또는? 죄를 숨겨서 교만함으로 나아가기에 안 받으시나?

그러므로 제사를 드리는 일은 귀한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시고 아벨의 제사만 받으셨습니다. 우리는 받지 않으시는 제사도 있다는 교훈을 받게 됩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어떤 사람의 예배는 받으시고, 어떤 사람의 예배는 받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굉장히 심각한 일입니다. 50여 년 동안 예배를 드려왔지만, 하나님이 받지 않으셨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녀로서 아무리 이쁘게 찬송가를 불러도 하나님이 듣지 않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종으로서 아무리 충성해도 도무지 모르신다고 하겠다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이 기뻐하는 예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가 있고, 받지 않는 예배가 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은 예배의 겉모습을 보시는 분이 아니라, 중심을 보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형태를 가진 예배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실 수 있습니다. <의도와 자세를 보신다는 것입니다.>

● 이사야 1장 10~17절을 보면 “10)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16)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17)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하나님은 예배가 피곤하다고 제물을 가져오고 성회를 베푸는 것과 찬송으로 기쁘게 하려는 모든 것도 귀찮고 싫다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죄를 회개하지 않은, 피가 들려진 손을 가지고 예배를 드리기 때문입니다. 악을 버리지 않은 채 거짓되고, 속이는 제사를 드리기 때문입니다. 예배는 형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 드리는 자의 중심(의도)에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예레미야 선지자가 살던 시대의 모든 예배를 하나님은 거절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예배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마태복음 5장 23~24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용서하지 않고 분노를 가지고 와서 예배드리는 것을 하나님은 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형제에게 원망을 들을만한 일이 있거든 돌아가서 화목하는 것이 예배라고 가르치십니다. 참된 예배는 사랑하고 용서하는 것입니다. 분노하고 미워하면서 드리는 예배는 예배가 아닙니다.

● 한국에 많은 교회가 있고 오늘 이 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세상은 변하지 않습니다. 교도소에 있는 죄인들이 세상을 변화 시키려고 그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들이 변화되길 천국이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도소에서 죽는 자도 자기를 회개하고 영혼을 위해 죽는 자가 있고, 자기를 주장하다가 불평하며 죽는 자가 있는 것입니다. 히 11장 4절을 보십시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 우리는 이 말씀에서 하나님이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신 것과 아벨의 제사를 받은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 믿음으로 드린 제사

첫째,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아벨은 믿음으로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드리는 예배를 기뻐하십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습니다. 참된 예배는 형식과 전통이 아니라 믿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수 십년동안 드려왔던 예배의 형식 안에는 참된 예배가 없습니다. 그것은 순서와 프로그램의 반복되는 행위일 뿐입니다.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교통사고를 당할까 봐 드리는 예배나 습관적으로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이 받지 않으십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을 보십시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 우리의 예배가 역사를 자랑하고, 방자하고, 교만하고, 전통적인 것을 자랑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왔지만 사람만 봅니다. 예배가 진지하지 못한 것은 하나님에게 집중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여기 계십니다. 그 분 앞에 믿음으로, 영으로 드리는 예배가 참된 예배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예배가 믿음으로 드리는 예배가 되기를 원합니다. 율법의 예배가 아니라 은혜의 예배요, 문자의 예배가 아니라 영의 예배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살아있는 예배, 성령의 예배,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예배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 예배는 의롭다고 인정받는 것

두 번째, 참된 예배는 '의롭다'하심을 받은 것입니다. 아벨은 예배를 드린 후에 하나님으로부터 '너는 의롭다'는 증거를 얻었습니다. '의롭다'는 것은 죄가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가인이 드린 곡식의 제물 마치 무화과 잎으로 드린 것과 같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무화과 나뭇잎으로 수치를 가리려했지만 결코 그 수치가 가려지지 않았던 것처럼, 가인의 예배는 가인의 죄를 감출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가인은 죄를 덮고 그대로 제사에 나아간 것입니다.

그러나 아벨은 양의 첫 새끼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이 무화과 나무잎을 거두시고 동물을 죽여 가죽옷을 지어입힘으로 말미암아 아담과 하와의 허물을 가리워 준 것처럼 양의 제사는 양이 죽음으로 피 흘린 제사였습니다. 이 피는 죄를 사하여 주었습니다. 그래서 아벨이 드린 제사는 의롭다는 인정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죄가 없어지고, 허물이 가리워진 것입니다.

● 여러분의 허물이 가리워져야 예배가 가능해 집니다. 허물이 가리워지지 않은 종교적이고 윤리적인 예배는 소용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고 믿음으로 나아가는 예배는 예수의 피가 여러분의 죄를 씻어 주고, 허물을 가려줄 것이며 믿음으로 의롭다고 여겨 주실 것입니다. 그때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지는 예배가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당시에는 가죽옷을 입히고 어린양을 바친 것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께서 인류의 모든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누구든지 그 피를 믿는 자는 구원을 얻고 회복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예배입니다.

가죽옷으로부터 시작하여 아벨의 어린양으로 드린 제사와 염소와 송아지로 제사장이 날마다 제사를 드렸지만 그것은 원죄를 해결하고 완전할 수 없었습니다. 이 예배가 갈보리 언덕에서 예수로 드린 십자가 제사로 우리의 원죄가 비로소 믿음으로 눈과 같이 희어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자는 바로 '의로운 자', 거룩한 자라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만이 인간의 죄로 인한 허물을 가릴 수 있습니다. 교회에 와서 단순히 설교만 듣고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여 죄가 씻겨지고, 허물을 덮어주는 하나님 앞에 의로운 자가 되어서 경배와 찬양을 드리는 것이 참된 예배가 됩니다. 이 예배를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받으십니다. 히브리서 9장 6절~14절을 보면 우리는 송아지의 피나 염소의 피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양심이 깨끗해지며 하나님께 나아갈 길을 얻었습니다. 이것이 예배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예배가 형식적이고 종교적인 예배가 아니라 아벨이 드린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의지하는 예배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십자가의 보혈을 의지하여 예배드릴 때 성령께서 우리의 양심까지 깨끗케 하시는 역사가 나타나게 될 줄을 믿습니다.

● 5절을 보겠습니다.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가인은 자기의 제사가 하나님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첫 번째 거절감이라는 중요한 단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깊은 상처는 '거절감'입니다. 예배는 회개와 책망을 통해 은혜를 누리는 감사의 교제시간이지, 우리의 세상적인 자랑과 돈이 높여지는 교만의 시장판이 아닙니다.

4. 잘못된 예배는 지속적인 아픔을 초래하며 그로 인한 타인에게 거절 감의 상처를 남긴다.

낙태를 하려고 했던 아이에게는 성장해도 상처가 남아 있습니다. 이런 아이들은 자기가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는데 태어났는가? 라는 생각에 사로 잡혀 급한 일이 생기면 자신도 모르게 자기를 숨기려고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또 아이들이 자라면서 부모에게 입는 상처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결혼해서도 남편이 자기를 거절할 것이라고 선입견으로 착각하여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비위를 맞추려고 애씁니다. 사회는 온통 거절당하는 것의 연속입니다. 학교에 떨어지고 청혼에서도 거절당합니다. 거절감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사람들이 자신을 환영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람들은 거절을 당하지 않으려고 방어기질을 발휘해서 먼저 공격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이런 거절감이 생긴 이유는 잘못된 예배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참된 예배를 드리면 거절감의 상처가 치유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오면 어렸을 때부터 받았던 거절감의 상처가 치유됩니다. 가인은 자기의 제물이 열납되지 않은 것을 알았습니다. 예배를 잘 못 드린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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