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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때가 있는데 지체해서는 안 되는 곳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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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수인
댓글 0건 조회 919회 작성일 22-06-29 18:40

본문

다 때가 있는데 지체해서는 안 되는 곳이 있습니다.

본문: 호세아 13:9~14. 찬송가: 28. 488. 338. 492.

9) 이스라엘아 네가 패망하였나니 이는 너를 도와주는 나를 대적함이니라.

10) 전에 네가 이르기를 내게 왕과 지도자들을 주소서 하였느니라. 네 모든 성읍에서 너를 구원할 자 곧 네 왕이 이제 어디 있으며 네 재판장들이 어디 있느냐?

11) 내가 분노하므로 네게 왕을 주고 진노하므로 폐하였노라.

12) 에브라임의 불의가 봉함되었고 그 죄가 저장되었나니

13) 해산하는 여인의 어려움이 그에게 임하리라. 그는 지혜 없는 자식이로다. 해산할 때가 되어도 그가 나오지 못하느니라.

14) 내가 그들을 스올의 권세에서 속량하며 사망에서 구속하리니 사망아 네 재앙이 어디 있느냐? 스올아 네 멸망이 어디 있느냐 뉘우침이 내 눈 앞에서 숨으리라.

● 중국 속담에 "일을 너무 서둘러 하면 잘 되기가 어렵다"는 말이 있습니다.

● 잠언 14장 29절에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고 하였고, 잠언 29장 20절에는 "네가 언어에 조급한 사람을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바랄 것이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상의 말씀들은 우리가 세상을 원만히 살아 나가려면 마음이 좀 느긋해야 하고,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유가 좀 있다고 해서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고, 금년 할 일을 내년으로 연기하라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일은 오늘 해야 하고, 금년 할 일은 금년에 해야 합니다. 다만 지체하여서는 안 될 장소가 있음을 명심하고 기억해야만 합니다. 오늘 본문 호세아서에서 보면 사람이 지체해서는 안 되는 곳이 몇 군데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체해서는 안 될 곳을 알아봅시다.

1. 첫째로, 산문(産門)이라고 하는 곳입니다.

우리가 오늘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성전 안으로 들어올 때 반드시 통과하지 아니하면 안 되는 곳이 있었습니다. 그곳이 어딘가 하면 현관문입니다. 저 현관문을 통과해야만 성전에 들어올 수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려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문이 있는데 그것은 어디겠습니까? 어머니의 산문인 것입니다.

성전문은 한 주간에도 여러 번 열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산문은 아무 때나 열리는 것이 아닙니다. 태중의 아기가 열어 달란다고 열리는 것도 아니며, 산모가 열렸으면 좋겠다고 중얼거려서 열리는 것도 아니고, 열릴 때에 이르러야 산문은 열리는 것입니다. 이 산문이 열릴 때쯤이면 큰 진통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인들이 아기를 분만할 때쯤 되면 안색이 변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요 16장 21절에서 어떤 말들을 하였습니까?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아이가 이 산문을 통과하여 세상으로 나가 주어야 산모들은 다시 숨을 내쉰다고 하는 것입니다. 아이가 이 산문을 통과하여 세상으로 나가 주는 동안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 오늘 본문에서 선지자 호세아는 무엇이라고 외쳤습니까? 호세아 13장 13절에 "해산하는 여인의 어려움이 그에게 임하리라. 그는 지혜 없는 자식이로다. 해산할 때가 되어도 그가 나오지 못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산문을 통과할 때 아이가 지체하면 아이는 질식하여 죽게 되고, 죽은 아이가 빠져 나오지 못하면 어머니도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가 산문을 통과할 때는 순식간에 통과하라고 여인은 있는 힘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위에서 아래로 밀어붙이는 것입니다. 이 뜨거운 노력과 힘쓰는 역사에 의하여 산문은 열리고 아이는 비로소 이 산문을 순식간에 통과하게 되는 것입니다. 선지자는 분명하게 외치고 있습니다. 산문에서 통과를 지체하는 자는 어리석은 인생이라고 역설하는 것입니다.

2. 둘째로, 음부의 권세가 있는 곳입니다.

오늘 본문 호세아 13장 14절에서 "내가 그들을 스올의 권세에서 속량하며 사망에서 구속하리니 사망아 네 재앙이 어디 있느냐? 스올아 네 멸망이 어디 있느냐 뉘우침이 내 눈 앞에서 숨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신자는 스올 즉 음부의 권세 아래서 지체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 1945년 8.15 해방 직후 5년 동안 공산주의 아래 갇혀 있던 북녘 땅에 하나님께서는 1주일 내지 1개월간 자유통행의 문을 열어 주셨다고 합니다. 열린 문이 닫히기 전에 남한으로 탈출하거나 도망하여 나온 자는 다 살아서 군인이 되기도 하고 혹은 목사가 되기도 하고, 정계와 사회에 진출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때 어물어물하다가 자유통행의 문을 빠져 나오지 못한 자들은 오늘날 공산주의의 밥이 되어 목숨을 잃는 것입니다. 성경은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음부 즉 스올의 권세 아래서 신음하는 인생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문을 열어 주시는데, 그때 지체하지 말고 빨리 빠져 나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 창 19장 17절에 "그 사람들이 그들을 밖으로 이끌어 낸 후에 이르되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고 하였습니다. 롯은 천사들이 일러준 대로 음부의 권세가 기다리는 소돔을 빨리 빠져 나왔으므로 생명을 보존하였습니다. 그러나 롯의 처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창 19:26 말씀을 어기고 뒤를 돌아 본고로 소금기둥이 된 것입니다.

* 바울은 자기를 죽이려는 다메섹 도성에서 밤에 광주리를 타고 그 성문을 빠져 나왔다고 고후 11장 33절에 진술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마귀의 권세 아래서 일초의 지체함도 없이 "사탄아 물러가라 주 너희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쏘아부치고 집으로 돌아오셨던 것입니다. 이 모든 말씀들은 우리들에게 지체해서는 안 될 곳 즉 죽음의 시험장인 음부 즉 스올이라는 것을 명백하게 가르쳐 주는 귀한 교훈들입니다.

3. 마지막으로, 갈등 속에서 헤매는 방황의 거리입니다.

방황의 거리란 어떤 곳입니까? 반반의 세력 균형이 버티고 있는 곳이 방황의 거리입니다. 믿을 수도 있고 안 믿을 수도 있는 그런 형편의 입장, 말로는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불신앙의 태도를 취하는 상태, 세례는 받았으면서도 주님 앞으로 나아오기를 꺼리는 사람, 부자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는 하면서도 11조 생활은 못 하는 사람, 1년에 한 사람쯤은 전도의 목표를 세워 놓고 힘써 전도해야 할 터인데 아직 전도의 목표도 세워 놓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 주일날은 하나님 면회하는 날인데 만날 사람 있다고 성수주일을 못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아직 방황의 거리에서 헤매고 있는 자들입니다. 사람이 이 방황의 거리에서 오랫동안 지체하게 되면 그 신자의 정신은 공백상태를 이루게 되고, 그의 신앙은 해이하여져서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은 미지근한 사람이 되며, 그의 생활은 가도 아니고, 부도 아닌 애매한 인간이 됩니다.

● 성경은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너희는 차든지 뜨겁든지 둘 중의 하나가 되라"고 하고 있습니다. 가면 가, 부면 부, 태도가 분명하기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 마 5장 37절에는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고 하여 태도를 분명히 하라고 하였습니다.

● 왕상 18장 21절에서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고 말하였습니다. 색깔을 선명히 하라고 하나님의 사람 선지자 엘리야는 일찍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외쳤던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 사도 바울로마서 2장 28,29절에서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 서니라."라 하여,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 마음 속 중심도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마땅치 않겠느냐고 역설하였습니다.

●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바리새인들에게 외치기를 (마 3:07)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0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09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10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세례를 받을 마음의 각오를 하고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 사실 예수님의 십자가 옆에는 두 강도가 못 박혀 있었습니다. 하나는 끝까지 발악을 하고 고집을 부리다가 지옥에 갔습니다만, 다른 하나는 자기의 잘못을 회개하고 예수를 믿어 천국으로 갔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선교초대교회 성도 여러분!!

"주 예수를 믿으라. 그러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

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다"고 사도행전 4장 12절에는 기록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고후 6장 2절에는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물쭈물 살아가는 인생, 긴가, 민가 하는 선택의 방황?

어렴풋이 지나가는 인생, 결단을 못 내리고 지연만 하는 신자, 방황의 거리에서 아직도 우유부단하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있다고 한다면, 오늘 이 시간부터 아름다운 의지를 발휘하여 신속한 결단을 내려야 할 것입니다.

그 결단은 하나님을 믿는 기쁜 소망 안에서 비록 무모해 보여도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엄청난 행복과 기쁨이 넘치게 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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